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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05 [2025/05/26 08:55] ssio2b-005 [2025/06/01 23:28]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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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술대동보서(庚戌大同譜序) (1850년)=== ===경술대동보서(庚戌大同譜序) (1850년)===
-<WRAP 31em justify><hidden \_한문 원문 보기> +<WRAP 37em justify><hidden \_한문 원문 보기> 
-<typo ff:'한양해서'>+<typo ff:'한양해서'; fs:1.2em; lh:1.5em>
 \_**庚戌大同譜序**\\ \_**庚戌大同譜序**\\
 吾姓之著箕鄕古矣譜板之在豊城久矣世代寢遠系牒無傳則派分而支流 吾姓之著箕鄕古矣譜板之在豊城久矣世代寢遠系牒無傳則派分而支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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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旨燾氏設新譜于京城之華藏寺而舊譜諸宗之多不入以其豊兩派之俱不 旨燾氏設新譜于京城之華藏寺而舊譜諸宗之多不入以其豊兩派之俱不
 與也噫當日支吾者安知復有今日者乎廼於戊申秋錦陽宗人發書示意是 與也噫當日支吾者安知復有今日者乎廼於戊申秋錦陽宗人發書示意是
-不謀而合者遂設譜于豊取仍舊也維我箕黃之盛際美續己備於前人之+不謀而合者遂設譜于豊取仍舊也維我箕黃之盛際美續己備於前人之
 述今不必加屋疊床而學士公桴海錄出於東漢時事凡貫箕而族黃者至今 述今不必加屋疊床而學士公桴海錄出於東漢時事凡貫箕而族黃者至今
 爲疑信古蹟近見旌善宗大中家籍牒中唐朝學士八世配位墓所不啻昭著 爲疑信古蹟近見旌善宗大中家籍牒中唐朝學士八世配位墓所不啻昭著
-今依此改正是則先世所未發之事似不免率爾之責然有信籍烏可己也+今依此改正是則先世所未發之事似不免率爾之責然有信籍烏可己也
 遂錄干世譜中以爲傳後辨破之蹟未知後世雲仍庶或賴此而益詳於數千 遂錄干世譜中以爲傳後辨破之蹟未知後世雲仍庶或賴此而益詳於數千
 載之下乎蓋譜冊合爲三卷而始春終夏僉君子幹敏之功此可想矣今其主 載之下乎蓋譜冊合爲三卷而始春終夏僉君子幹敏之功此可想矣今其主
-幹宗憲周甫即錦翁孫而號農隱者也精於譜學又能繼述先志著重刊記+幹宗憲周甫即錦翁孫而號農隱者也精於譜學又能繼述先志著重刊記
 文事未就身先逝吾宗不幸抑何如也不侫居在姓貫之鄕當躬助讐校之役 文事未就身先逝吾宗不幸抑何如也不侫居在姓貫之鄕當躬助讐校之役
-老不能自力於越重嶺到岸??遂因其所感之懷而略叙顛末且道我貫鄕不+老不能自力於越重嶺到岝㠋遂因其所感之懷而略敍顚末且道我貫鄕不
 可無一語云爾\\ 可無一語云爾\\
-\_\_歲上草閣茂流頭月日裔孫龍九謹序+\_\_歲上章閹茂流頭月日裔孫龍九謹序
 </typo> </typo>
 </hidden> </hidden>
 \\ \\
-<typo ff:'바탕'; fs:0.8em; lh:1.5em>+<typo ff:'바탕'; fs:1em; lh:1.5em>
 \_경술대동보서\\ \_경술대동보서\\
-\_우리 姓이 平海를 本貫으로 定한 歷史는 오랜 옛날이며 譜板을 豊基錦陽에 두게 +\_우리 성()이 평해(平海)를 본관(本貫)으로 정()한 역사(歷史)는 오랜 옛날이며 보판(譜板)을 풍기(豊基) 금양(錦陽)에 두게된 것도 백수십년(百數十年)의 세월(歲月)이 흘렀다. 세대(世代)가 멀어지고 계첩(系牒)이 전()함이 없으면 파()가 
-된것도 百數十年의 歲月이 흘렀다. 世代가 멀어지고 系牒이 傳함이 없으면 派가 +고 그 나뉜 지파간(支派間)에 항열에 착오(錯誤)가 생기는 법이며 이것이 오늘날 같이 
-누이고 그 나누인 支派間에 항열에 錯誤가 생기는 법이며 이것이 오늘날 같이 +심()한 때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한 후손(後孫)의 책임(責任)이 또한 적다 할 수 없지
-甚한 때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에 對한 後孫의 責任이 또한 적다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않겠는가?\\
  
-\_지난 辛卯年에 春川宗氏인 承旨燾氏가 新譜廳을 京城의 華藏寺에 設置하고 舊 +\_지난 신묘년(辛卯年)에 춘천(春川) 종씨(宗氏)인 승지(承旨) 도()씨()가 신보청(新譜廳)을 경성(京城)화장사( 華藏寺)에 설치(設置)하고 구보(舊譜) 제종(諸宗)에게 입보(入譜)를 권유하였으나 평해(平海) 풍기(豊基) 양파(兩派)의 불참(不參)으로 많은 입보(人譜)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오호(鳴呼)라 그날에 지손(支孫)된 우리로서 어찌 다시 오늘과 같음이 
-譜諸宗에게 入譜를 권유하였으나 平海豊基兩派의 不參으로 많은 人譜가 이루 +있을 줄 알았으리요? 이에 무신년(戊申年가을에 금양(錦陽) 종인(宗人)이 통서(通書)를 발()하여 뜻을 보이므로 다시 회의(會議)없이도 합의(合意)된 것으로 묵인(默認드디어 풍기(豊基)에 보청(譜廳)을 설치(設置)한 것은 
-어지지 못하였다. 鳴呼라 그날에 支孫된 우리로서 어찌 다시 오늘과 같음이 +전일(前日)의 예()를 따른 것이다.\\
-있을 줄 알았으리요? 이에 戊申年 가을에 錦陽宗人이 通書를 發하여 뜻을 보 +
-이므로 다시 會議없이도 合意된 것으로 默認 드디어 豊基에 譜廳을 設置한 것은 +
-前日의 例를 따른 것이다.\\+
  
-\_우리 平海黃氏의 旺盛할 즈음에 그 아름다운 자취는 이미 옛날 先祖들의 著述에 +\_우리 평해황씨(平海黃氏)의 왕성(旺盛)할 즈음에 그 아름다운 자취는 이미 옛날 선조(先祖)들의 저술(著述)에 
-추어 있음으로 다시 지붕위에 마루를 거듭할 必要가 없으나 學士公의 桴海 +추어 있음으로 다시 지붕 위에 마루를 거듭할 필요(必要)가 없으나 학사공(學士公)의 부해록(桴海錄)이 동한시사(東漢時事)(: 동한 시대의 일)나 평해(平海)로 본관(本貫)을 삼고 성()을 황씨(黃氏)로 하여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 
-錄이 東漢時事나 平海로 本貫을 삼고 姓을 黃氏로 하여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 +근자(近者)에 와서 정선(旌善) 종인(宗人)의 대중(大中) 가적첩(家籍牒가운데 당() 학사(學士및 8세(八世) 배위(配位)와 묘소(墓所)뿐 아니라
-近者에 와서 旌善宗人의 大中家籍牒가운데 唐學士 및 八世配位와 墓所뿐아니라+
  
 +기타(其他) 소상(昭詳)하게 나타난 바 있음으로 이제 이에 의(依)하여 이를 바로 고친 것이니 이는
 +곧 선세(先世)가 발견(發見)치 못한 일을 새로 발견(發見)한 것이다. 그러나 이 처사(處事)가 경솔(輕率)하다는
 +책임(責任)을 면(免)치 못할 것 같은 느낌이 없는 바는 아니다. 이미 믿을 수 있는 문적(文籍)이
 +있음으로 어찌 가(可)히 이이(貳異)가 있으리요? 드디어 세보(世譜) 가운데 기록(記錄)하여 후세(後世)에 
 +변증(辨證)의 깨트린 자취를 삼고져 함이 다 알지 못한 일이나 후세(後世) 자손(子孫)은 혹 이에 의뢰(依賴)하여
 +수천년(數千年) 후(後)에라도 더욱 자세하게 될 것일까!\\
  
-其他昭詳하게 나타난 바 있음으로 이제 이에 依하여 이를 바로 고친것이니 이는 +\_이에 보책(譜冊)을 합()하여 세권을 만들었는데 봄에 합작(合作)하여 여름에 마쳤으니 모든 
-곧 先世가 發見치 목한 일을 새로 發見한 것이다. 그러나 이 處事가 輕率하다는 +간사(幹事)들의 민첩한 공로(功勞)는 이것으로 가()히 짐작하리로다. 주간(主幹)한 종인(宗人) 헌주(憲周)는 금계(綿溪) 선생(先生)의 주종(胄)으로 호(號)를 농은(農隱)이라하는 사람인데 보학(譜學)에 정통(精通)하고 또 선세(先世)의 뜻을 
-責任을 免치 목할 것같은 느낌이 벗는 바는 아니다. 이미 믿을 수 있는 文籍이 +이어 저술(著述)하는데 적절(適切)한 분으로 이 중간(中刊) 기문(記文)을 쓸 계획이였었다. 그러나 아깝게도 일에 나아가지 하고 몸이 먼저 갔으니 오종(吾宗)의 불행(不幸)이라 하지 않을 수
-있음으로 어찌 可히 貳異가 있으리요? 드디어 世譜가운데 記錄하여 後世에 辨 +
-證의 깨트린 자취를 삼고져 함이 다 알지 목한 일이나 後世子孫은 속 이에 依賴하여 +
-數千年後에라도 더욱 자세하게 될것일가.\\ +
- +
-\_이에 譜冊을 合하여 세권을 만드렀는데 봄에 合作하여 여름에 마쳤으니 모든 +
-幹事들의 민첩한 功勞는 이것으로 可히 짐작하리로다 主幹한 宗人憲周는 綿溪 +
-先生의 宗으로 를 農隱이라하는 사람인데 譜學에 精通하고 또 先世의 뜻을 +
-이어 著述하는데 適切한 분으로 이 中刊記文을 쓸 계획이 였었다. 그러나 아 +
-깝게도 일에 나아가지 하고 몸이 먼저 갔으니 吾宗의 不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없다.\\
  
-\_不肖는 마땅히 몸소 校正의 役을 도와야 할 處地임에 不拘하고 몸이 늙어 泰 +\_불초(不肖)는 마땅히 몸소 교정(校正)의 역할(割)을 도와야 할 처지(處地)임에 불구(不拘)하고 몸이 늙어 태산준령(泰山峻嶺)을 넘나들 수 없어 소임(所任)을 다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소감(所感)의 일단(一端)으로 
-山峻嶺을 넘나들 수 없어 所任을 다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所感의 一端으로 +대략(大略)의 전말(顚)을 펴며 또 거지(居地)가 관향(貫鄕)인 평해(平海)인지라 일언(一言)이 없을 수 없어 무사(蕪辭)를 돌보지 않고 아울러 두어줄 기술(記述)하노라.\\ 
-大略의 末을 펴며 또 居地가 貫鄕인 平海인지라 一言이 없을 수 없어 蕪辭를 +\_\_세() 상장(上章) 엄무(閣茂) 경술(庚戌) 유두월(流頭月) 일() 예손(裔孫) 용구(龍九) 근서(謹序)
-돌보지 않고 아울러 두어줄 記述하노라.\\ +
-\_\_歲上章閣茂庚戌流頭月日裔孫龍九謹序+
 </typo> </typo>
 </WRAP> </WRAP>
b-005.1748217305.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6 08:55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