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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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대동보서(丙辰大同譜序) (1976년)=== | ===병진대동보서(丙辰大同譜序) (1976년)=== | ||
<WRAP 37em justify>< | <WRAP 37em justify>< | ||
- | <typo ff:' | + | <typo ff:' |
- | \_平海黃氏世譜丙辰重刊序\\ | + | \_**平海黃氏世譜丙辰重刊序**\\ |
惟吾黃之得姓이 歷代가 亦古矣라 肇自學士公諱洛中國漢朝에 奉使交趾라가 | 惟吾黃之得姓이 歷代가 亦古矣라 肇自學士公諱洛中國漢朝에 奉使交趾라가 | ||
- | 漂到于東國하야 抵于平海月松崛山之下하사 子孫이 仍爲貫하다 裔孫이 有三兄弟하니 長曰甲古니 箕城君이요 次曰乙古니 長水君 | + | 漂到于東國하야 抵于平海月松崛山之下하사 子孫이 仍爲貫하다 |
- | 이요 三曰丙古니 昌原伯이라 三貫之子孫이 散在八域者| 其麗不億 | + | 裔孫이 有三兄弟하니 長曰甲古니 箕城君이요 次曰乙古니 長水君이요 |
- | 이나 然이나 平海之祖는 諱甲古以後로 有諱溫仁官金吾將軍太子檢校 | + | 三曰丙古니 昌原伯이라 三貫之子孫이 散在八域者| 其麗不億이나 |
- | 요 曾孫에 有三兄弟하니 長의 諱는 璡이니 官檢校요 次의 諱는 瑞니 | + | 然이나 平海之祖는 諱甲古以後로 有諱溫仁官金吾將軍太子檢校요 |
- | 官金紫光祿大夫評理門下侍中諡는 文節이요 三의 諱는 | + | 曾孫에 有三兄弟하니 長의 諱는 璡이니 官檢校요 次의 諱는 瑞니 |
- | 匡輔國崇祿大夫諡는 忠敬이라 分爲三派하야 同聲相應하며 同氣相救 | + | 官金紫光祿大夫評理門下侍中諡는 文節이요 三의 諱는 |
- | 러니 世代寢遠하야 後裔繁盛이나 是는 一祖之孫이라 古人張公藝는 | + | 官大匡輔國崇祿大夫諡는 忠敬이라 分爲三派하야 同聲相應하며 同氣相救러니 |
- | 九世同居하야 爲一家之親하니 如此譬之컨대 惟我도 即以一家之親이 | + | 世代寢遠하야 後裔繁盛이나 是는 一祖之孫이라 古人張公藝는 |
- | 로다 以一家之親으로 大同合譜하면 豈不爲慕先裕後之本意리요 於乎 | + | 九世同居하야 爲一家之親하니 如此譬之컨대 惟我도 即以一家之親이로다 |
- | 라 倫綱이 頹廢하고 族誼가 疎遠하니 庸是爲懼라 自數年前으로 世 | + | 以一家之親으로 大同合譜하면 豈不爲慕先裕後之本意리요 於乎라 |
- | 元氣淸德出및 僉宗이 累次討論한바 齋室狹窄으로 奠祀時遠近諸宗祭 | + | 倫綱이 頹廢하고 族誼가 疎遠하니 庸是爲懼라 自數年前으로 世元氣淸德出및 |
- | + | 僉宗이 累次討論한바 齋室狹窄으로 奠祀時遠近諸宗祭官이 會合하야 | |
- | 官이 會合하야 一夜宿泊에도 困難이 莫甚하와 因宗會而公議한 結果 | + | 一夜宿泊에도 困難이 莫甚하와 因宗會而公議한 結果 |
- | 他郡僉宗과 渡海한 宗人浚九與宗人諸位로 書詢面議하야 發此通諭하 | + | 他郡僉宗과 渡海한 宗人浚九與宗人諸位로 書詢面議하야 發此通諭하니 |
- | 니 雖是經濟之困難이나 顧其齊室이 狹窄則不得己라하며 幾年間으로 | + | 雖是經濟之困難이나 顧其齊室이 狹窄則不得<fc #ff0000>己</fc>라하며 幾年間으로 |
- | 黽勉竣功後에 又舊齊室及厨舎가 年久歲深하야 風磨雨酒로 柱椽이 | + | 黽勉竣功後에 又舊齊室及㕏舍가 年久歲深하야 風磨雨酒로 柱椽이 |
朽敗하야 廢室之境也라 宗會席上에서 爛相公議나 束手無策이러니 | 朽敗하야 廢室之境也라 宗會席上에서 爛相公議나 束手無策이러니 | ||
此際議論會席에 適時在日宗人後九來參하야 寒心한 光景을 視之하고 | 此際議論會席에 適時在日宗人後九來參하야 寒心한 光景을 視之하고 | ||
單獨으로 竭力誠意하야 壹百數拾萬원 贊助金으로 元像復舊竣功하니 | 單獨으로 竭力誠意하야 壹百數拾萬원 贊助金으로 元像復舊竣功하니 | ||
- | 慕先의 誠心은 永世不忘이라 及當此時하야 齋宇上下室과 | + | 慕先의 誠心은 永世不忘이라 及當此時하야 齋宇上下室과 |
- | 畢完工이나 分貫之祖箕城君以下四代位와 祭壇堅碑及祭壇入門室을 | + | 分貫之祖箕城君以下四代位와 祭壇堅碑及祭壇入門室을 |
- | 增築重建으로 自榮州世明의 通諭文에 因하야 宗會席上에서 公議發 | + | 增築重建으로 自榮州世明의 通諭文에 因하야 宗會席上에서 公議發文하와 |
- | 文하와 各處指定有司派遣이나 特遣有司는 慶州潤範青松永浩榮州世 | + | 各處指定有司派遣이나 特遣有司는 慶州潤範靑松永浩榮州世明이 二個星霜으로 |
- | 明이 二個星霜으로 各道各郡邑收金中에 夜則宿泊은 不溫하고 晝則 | + | 各道各郡邑收金中에 夜則宿泊은 不溫하고 晝則風雨를 不避하며 幾百萬원의 贊助金을 收集하야 立碑及祭壇完築과 |
- | 風雨를 不避하며 幾百萬원의 贊助金을 收集하야 立碑及祭壇完築과 | + | |
門樓를 竣功하니 雖幾百歲之後라도 어찌 爲先의 矜事가 되지 않으리요 | 門樓를 竣功하니 雖幾百歲之後라도 어찌 爲先의 矜事가 되지 않으리요 | ||
- | 然則其工事에 監視者는 氣淸鎭玄君也요 且昨年十月中丁日前夕에 自 | + | 然則其工事에 監視者는 氣淸鎭玄君也요 且昨年十月中丁日前夕에 自會長及某某僉宗으로 |
- | 會長及某某僉宗으로 本他道郡僉宗會會席上에 告之曰自甲戌大同譜以 | + | 本他道郡僉宗會會席上에 告之曰自甲戌大同譜以後로 其中間에 |
- | 後로 其中間에 各修派譜나 然이나 當今之時하야 後世子孫이 年代沈 | + | 各修派譜나 然이나 當今之時하야 後世子孫이 年代沈遠하고 規模節次도 |
- | 遠하고 規模節次도 未詳하리니 此時에 大同合譜가 如何오 問議則宗 | + | 未詳하리니 此時에 大同合譜가 如何오 問議則宗中僉員이 |
- | 中僉員이 咸曰唯唯之說을 | + | 咸曰唯唯之說을 |
- | 發刊通文하야 各處配送後各其各派收單하야 正抄之所則特設於平海月 | + | 各處配送後各其各派收單하야 正抄之所則特設於平海月松先齋하니 |
- | 松先齋하니 平海는 即始祖樹貫之鄕而先齋는 即裔孫追遠之所也라 始 | + | 平海는 即始祖樹貫之鄕而先齋는 即裔孫追遠之所也라 始祖裔孫으로 |
- | 祖裔孫으로 敦睦講誼하야 綠事會同合力하면 盡心所感에 必無爾我라 | + | 敦睦講誼하야 綠事會同合力하면 盡心所感에 必無爾我라 |
- | 事歸神速而必成合單하야 敦畢大事면 存一髮於殘機하고 講百世於同 | + | 事歸神速而必成合單하야 敦畢大事면 存一髮於殘機하고 講百世於同篇이면 |
- | 篇이면 上以承傳來父老之餘戒요 下以遺後來子孫之明案이라 敢以僭 | + | 上以承傳來父老之餘戒요 下以遺後來子孫之明案이라 敢以僭妄之說로 遂其所感하야 略敍顚末云爾\\ |
- | 妄之說로 遂其所感하야 略叙顚末云爾 | + | \_\_檀紀四三〇九年歲在丙辰小春上澣後裔孫載宇謹序 |
- | 檀紀四三〇九年歲在丙辰小春上澣後裔孫載宇謹序 | + | </ |
+ | </ | ||
+ | \\ | ||
+ | <typo ff:' | ||
+ | \_**병진보(丙辰譜) 서문(序文)**\\ | ||
+ | \_우리 황씨(黃氏)가 득성(得性)한 역사는 또한 오래되었다.\\ | ||
- | 병진보(丙辰譜) 서문(序文) | + | \_일찍이 학사공(學士公) 휘(諱) |
- | 우리 황씨(黃氏)가 득성(得性)한 역사는 또한 오래되었다. | + | 사신(使臣)으로 가셨다가 표류(漂流)하여 우리 나라에 도착하여 평해(平海)의 월송(月松) |
- | 일찍이 학사공(學士公) 휘(諱) | + | 굴산(崛山) 밑에 살았기 때문에 자손들이 평해(平海)를 관향(貫鄕)으로 했다.\\ |
- | (交趾)에 사신(使臣)으로 가셨다가 표류(漂流)하여 우리 나라에 도착하여 평 | + | |
- | 해(平海)의 월굴산(月崛山) 밑에 살았기 때문에 자손들이 평해(平海)를 관향 | + | \_후손(後孫)이 삼형제가 있었으니 |
- | (貫鄕)으로 했다. | + | 둘째는 을고(古)이니 장수군(長水君)이요 셋째는 병고(丙古)이니 창원백(昌原伯)이다.\\ |
- | 후손(後孫)이 삼형제가 있었으니 | + | |
- | 둘째는 을고(古)이니 장수군(長水君)이요 셋째는 병고(丙古)이니 창원백(昌 | + | \_세 관향(貫鄕)을 가진 황씨의 자손이 팔역(八域)< |
- | 原伯)이다. | + | 수 없이 많으나 평해황씨(平海黃氏)의 조상은 휘(諱) |
- | 세 관향(貫鄕)을 가진 황씨의 자손이 팔역(八域)에 흩어져 사는 그 수효를 헤아릴 | + | |
- | 수 없이 많으나 평해황씨(平海黃氏)의 조상은 휘(諱) | + | |
온인(溫仁)이 금오장군(金吾將軍) 태자검교(太子檢校) 벼슬을 지낸 분이 있으며 | 온인(溫仁)이 금오장군(金吾將軍) 태자검교(太子檢校) 벼슬을 지낸 분이 있으며 | ||
- | 증손자(曾孫子)에 삼형제가 있으니 | + | 증손자(曾孫子)에 삼형제가 있으니 |
- | (檢校)요 둘째는 휘(諱)가 서(瑞)이니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평리문하 | + | 둘째는 휘(諱)가 서(瑞)이니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평리문하시중(評理門下侍中) |
- | 시중(評理門下侍中) 벼슬을 하여 시호(諡號)는 문절(文節)이며 셋째는 휘(諱)가 | + | 벼슬을 하여 시호(諡號)는 문절(文節)이며 셋째는 휘(諱)가 |
- | 용(墉)이니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벼슬을 하여 시호(諡號)는 충 | + | 용(𤨭)이니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벼슬을 하여 시호(諡號)는 충경(忠敬)이다.\\ |
- | 경(忠敬)이다. | + | |
- | 이 삼형제가 삼파(三派)로 나누어져서 한 목소리로 서로 호응하고 같은 기미 | + | \_이 삼형제가 삼파(三派)로 나누어져서 한 목소리로 서로 호응하고 같은 기미(氣味)로 |
- | (氣味)로 서로 도우며 살았으나 세대(世代)가 점점 멀어져서 후손이 번성하였지만 | + | 서로 도우며 살았으나 세대(世代)가 점점 멀어져서 후손이 번성하였지만 |
- | 이는 모두 한 할아버지 자손이다. 옛날 장공예(張公藝)는 아홉 대(代)의 자 | + | 이는 모두 한 할아버지 자손이다. 옛날 장공예(張公藝)는 아홉 대(代)의 자손이 함께 |
- | 손이 함께 살면서 한 집에서 친하게 살았으니 이 같은 사실(史實)에 비유한다면 | + | 살면서 한 집에서 친하게 살았으니 이 같은 사실(史實)에 비유한다면 |
오직 우리도 일가(一家)의 친족이라 일가(一家)의 친족으로써 대동보(大同譜)로 | 오직 우리도 일가(一家)의 친족이라 일가(一家)의 친족으로써 대동보(大同譜)로 | ||
합보(合譜)한다면 어찌 조선(祖先)을 추모하고 후손을 넉넉히 하는 본의(本意)가 | 합보(合譜)한다면 어찌 조선(祖先)을 추모하고 후손을 넉넉히 하는 본의(本意)가 | ||
- | 아니겠는가. | + | 아니겠는가.\\ |
- | 아! 윤리(倫理)와 강령(綱領)이 무너지고 종족(宗族)의 의(誼)가 소원(疎遠) | + | |
- | 해지고 있으니 이것이 참으로 두려운 일이라. | + | \_아! 윤리(倫理)와 강령(綱領)이 무너지고 종족(宗族)의 의(誼)가 소원(疎遠)해지고 |
- | 수년 전부터 세원(世元)과 기청(氣淸)과 덕출(德出) 및 여러 종친(宗親)들이 | + | 있으니 이것이 참으로 두려운 일이라.\\ |
- | 여러차례 토론한 바 재사(齋舎)가 협착하여 전사(奠祀)를 올일 때에 원근에서 | + | |
- | 모인 종친제관(宗親祭官)들이 하룻밤을 숙박하는 데도 곤란이 막심하여 종회 | + | \_수년 전부터 세원(世元)과 기청(氣淸)과 덕출(德出) 및 여러 종친(宗親)들이 |
- | 시(宗會時)에 그것을 공의(公議)한 결과 본군과 타군에 사는 종친과 해외(海外)에 | + | 여러차례 토론한 바 재사(齋舍)가 협착하여 전사(奠祀)를 올릴 때에 원근에서 |
+ | 모인 종친제관(宗親祭官)들이 하룻밤을 숙박하는 데도 곤란이 막심하여 종회시(宗會時)에 | ||
+ | 그것을 공의(公議)한 결과 본군과 타군에 사는 종친과 해외(海外)에 | ||
나가 있는 종인(宗人) 준구(浚九)와 여러 종친들에게 서면(書面)으로 의사를 | 나가 있는 종인(宗人) 준구(浚九)와 여러 종친들에게 서면(書面)으로 의사를 | ||
묻고 또 대면하여 상의해서 통고문(通告文)을 발송하니 이 때가 비록 경제적으로 | 묻고 또 대면하여 상의해서 통고문(通告文)을 발송하니 이 때가 비록 경제적으로 | ||
곤란하지만 그 재실(齋室)이 협착한 것을 생각하면 부득이한 일이라 하여 몇해 | 곤란하지만 그 재실(齋室)이 협착한 것을 생각하면 부득이한 일이라 하여 몇해 | ||
- | 사이에 그럭저럭 준공(竣功)했는데 그 뒤에 또 주사(厨舎)가 세월이 오래되니 | + | 사이에 그럭저럭 준공(竣功)했는데 그 뒤에 또 주사(㕏舍)가 세월이 오래되니 |
- | 바람에 깍이고 비에 씻겨서 기둥과 서까래가 썩어서 집이 넘어질 지경이라。 | + | 바람에 깍이고 비에 씻겨서 기둥과 서까래가 썩어서 집이 넘어질 지경이라. |
- | 종희(宗會)의 석상에서 충분히 공의했으나 아무 대책(對策)이 없었는데 이 때 | + | 종회(宗會)의 석상에서 충분히 공의했으나 아무 대책(對策)이 없었는데 이 때 |
회의석상에는 마침 일본(日本)에서 살고 있는 종인(宗人) 준구(浚九)가 와서 | 회의석상에는 마침 일본(日本)에서 살고 있는 종인(宗人) 준구(浚九)가 와서 | ||
- | 참석하여 한심한 광경을 보고 단독으로 성력(誠力)을 표시하여 일백수십만원 | + | 참석하여 한심한 광경을 보고 단독으로 성력(誠力)을 표시하여 일백수십만원(一百數十萬원)의 |
- | (一百數十萬원)의 찬조금을 내어 재사(齋舎)를 원상(原狀)대로 복구하여 공사를 | + | 찬조금을 내어 재사(齋舍)를 원상(原狀)대로 복구하여 공사를 |
- | 마쳤으니 선조를 생각하는 정성은 길이길이 잊지 못할 일이라。 | + | 마쳤으니 선조를 생각하는 정성은 길이 길이 잊지 못할 일이라.\\ |
- | 이 때를 당하여 재사(齋舎)의 상하실(上下室)과 주사(厨舎)는 이미 공사를 | + | |
- | 쳤으나 관향(貫鄕)이 갈라진 방조(傍祖) 기성군(箕城君) 이하로 사대위(四代 | + | \_이 때를 당하여 재사(齋舍)의 상하실(上下室)과 주사(㕏舍)는 이미 공사를 |
- | 位)에 대한 제단비(祭壇碑)의 건립과 제단에 들어가는 문루(門樓)를 증축(增 | + | 마쳤으나 관향(貫鄕)이 갈라진 방조(傍祖) 기성군(箕城君) 이하로 사대위(四代位)에 |
- | 築)하고 중건(重建)키로 하여 영주(榮州)에 사는 세명(世明)으로부터 온 통고 | + | 대한 제단비(祭壇碑)의 건립과 제단에 들어가는 문루(門樓)를 증축(增築)하고 |
- | 문에 의하여 종회석상(宗會席上)에서 공의(公議)한 데로 발문(發文)하여 각처에 | + | 중건(重建)키로 하여 영주(榮州)에 사는 세명(世明)으로부터 온 통고문에 의하여 |
- | 지정한 유사(有司)를 파견했으나 특별유사(特別有司)는 경주(慶州)는 윤범(潤 | + | 종회석상(宗會席上)에서 공의(公議)한 데로 발문(發文)하여 각처에 |
- | 範)으로 하고 청송(青松)에는 영호(永浩)로 하며 영주(榮州)에는 세명(世明)으로 | + | 지정한 유사(有司)를 파견했으나 특별유사(特別有司)는 경주(慶州)는 윤범(潤範)으로 하고 |
- | 하여 | + | 청송(靑松)에는 영호(永浩)로 하며 영주(榮州)에는 세명(世明)으로 |
+ | 하여 | ||
차가운 여관방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비바람을 무릅쓰고 고생하여 몇백만원의 | 차가운 여관방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비바람을 무릅쓰고 고생하여 몇백만원의 | ||
찬조금을 수집하여 비석을 세우고 제단을 완축하며 문루(門樓)도 준공했으니 | 찬조금을 수집하여 비석을 세우고 제단을 완축하며 문루(門樓)도 준공했으니 | ||
- | 비록 몇백년 뒤에까지라도 어찌 위선(爲先)하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리오。 | + | 비록 몇백년 뒤에 까지라도 어찌 위선(爲先)하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리오.\\ |
- | 그런즉 그 공사를 감독(監督)한 사람은 기청군(氣淸君)과 진현(鎭玄)군이요 또 | + | \_그런즉 그 공사를 감독(監督)한 사람은 기청(氣淸)군과 진현(鎭玄)군이요 또 |
- | 작년 十월 중정일(中丁日) 전날 밤에 회장(會長)과 아무아무 종친(宗親)이 본도와 | + | 작년 |
타도에서 종친이 참석한 회의석상에서 말하기를 “갑술년에 대동보(大同譜)를 | 타도에서 종친이 참석한 회의석상에서 말하기를 “갑술년에 대동보(大同譜)를 | ||
한 이후로 그 중간에 각파별로 피보(派譜)는 닦았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후세의 | 한 이후로 그 중간에 각파별로 피보(派譜)는 닦았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후세의 | ||
자손이 연대(年代)가 멀어지고 규모(規模)와 절차(節次)도 자세하지 못할 것이니 | 자손이 연대(年代)가 멀어지고 규모(規模)와 절차(節次)도 자세하지 못할 것이니 | ||
- | 지금 대동보(大同譜)를 닦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물으니 종중의 여러 회 | + | 지금 대동보(大同譜)를 닦는 것이 어떻겠는가”하고 물으니 종중의 여러 회원들이 |
- | 원들이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찬동했다. 그 후에 풍기에 사는 영종 | + |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찬동했다. 그 후에 풍기에 사는 영종(永宗)과 |
- | (永宗)과 청안(淸安)의 인모(麟模)가 상의하여 통문(通文)을 각처에 발송한 후 | + | 청안(淸安)의 인모(麟模)가 상의하여 통문(通文)을 각처에 발송한 후 |
각파별로 수단(收單)하고 정본(正本)과 초본(抄本)을 기록하는 보소(譜所)는 | 각파별로 수단(收單)하고 정본(正本)과 초본(抄本)을 기록하는 보소(譜所)는 | ||
- | 특별히 평해(平海)의 월송선재(月松先齋)에 설치하였으니 평해는 즉 우리 시 | + | 특별히 평해(平海)의 월송선재(月松先齋)에 설치하였으니 평해는 즉 우리 시조공(始祖公)이 |
- | 조공(始祖公)이 관향(貫鄕)을 세운 곳이며 월송선재(月松先齋)는 즉 우리 후 | + | 관향(貫鄕)을 세운 곳이며 월송선재(月松先齋)는 즉 우리 후손들이 선조를 추모(追慕)하는 곳이다.\\ |
- | 손들이 선조를 추모(追慕)하는 곳이다. | + | |
- | 시조공(始祖公)의 후손으로서 목족(睦族)의 의(誼)를 돈독히 하고 문사(門事)로 | + | \_시조공(始祖公)의 후손으로서 목족(睦族)의 의(誼)를 돈독히 하고 문사(門事)로 |
인하여 모임을 함께하고 힘을 합해 마음에 느낀 바를 다한다면 반드시 너와 나가 | 인하여 모임을 함께하고 힘을 합해 마음에 느낀 바를 다한다면 반드시 너와 나가 | ||
- | 없을 것이다. 일을 신속히 처리하여 반드시 합보(合譜)를 성취하여 대사(大 | + | 없을 것이다. 일을 신속히 처리하여 반드시 합보(合譜)를 성취하여 대사(大事)를 돈독히 |
- | 事)를 돈독히 끝내고 남은 기회(機會)에도 털끝만한 일까지 세심히 잘 보아 백 | + | 끝내고 남은 기회(機會)에도 털끝만한 일까지 세심히 잘 보아 백세(百世)토록 |
- | 세(百世)토록 같은 족보에 족의(族誼)를 다져간다면 위로는 전해 내려오는 부 | + | 같은 족보에 족의(族誼)를 다져간다면 위로는 전해 내려오는 부로(父老)가 남기신 |
+ | 훈계를 계승하는 것이요 아래로는 후손들에게 물려줄 밝은 | ||
+ | 대안(對案)인 것이다.\\ | ||
+ | |||
+ | \_감히 분수에 넘치는 망령된 말로 그 느낀 바의 전말(顚末)을 간략하게 서술할 | ||
+ | 따름이다.\\ | ||
+ | \_\_단기 4309(四三〇九)년 병진 10(十)월 상순에 후예손 재우(載宇) 삼가 서하다.\\ | ||
+ | \\ | ||
+ | <WRAP subnote> | ||
+ | 주1. 교지(交趾): | ||
- | 로(父老)가 남기신 훈계를 계승하는 것이요 아래로는 후손들에게 물려줄 밝은 | + | 주2. 팔역(八域): 전국(全國) |
- | 대안(對案)인 것이다. | + | </ |
- | 감히 분수에 넘치는 망령된 말로 그 느낀 바의 | + | </ |
- | 따름이다. | + | </ |
- | 단기 四三〇九년 병진 +월 상순에 | + | |
- | 후예손 재우(載宇) 삼가 서하다. | + | |
- | 註一。交趾: | + | |
- | 二。八域: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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