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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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20 [2025/05/28 18:24] – ssio2 | b-020 [2025/06/06 17:48] (현재) – ssio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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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절공파 파보 서문(文節公派 派譜序文) (1996년)=== | ===문절공파 파보 서문(文節公派 派譜序文) (1996년)=== | ||
<WRAP 37em justify> | <WRAP 37em justify> | ||
- | <typo ff:' | + | <typo ff:' |
\_**문절공파 파보 서문(文節公派派譜序文)**\\ | \_**문절공파 파보 서문(文節公派派譜序文)**\\ | ||
\_정이천(程伊川) 선생(先生)이 말씀하기를 천하(天下)의 인심(人心)을 관섭(管攝) 함에는 종당(宗堂)이 수족(收族)하고 | \_정이천(程伊川) 선생(先生)이 말씀하기를 천하(天下)의 인심(人心)을 관섭(管攝) 함에는 종당(宗堂)이 수족(收族)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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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그러나 예빈공파(禮賓公派)는 이미 파보(派譜)를 하였으니 대동합보(大同合譜)는 불가능(不可能)한 일이지만 본원(本源)을 | \_그러나 예빈공파(禮賓公派)는 이미 파보(派譜)를 하였으니 대동합보(大同合譜)는 불가능(不可能)한 일이지만 본원(本源)을 | ||
- | 추구(推究)하고 돈종의친(敦宗毅親)의 도리(道理)로서는 어떻게 원만(緩晩) 할 수 있겠는가. 다만 기존(既存)의 보첩(譜牒)에 | + | 추구(推究)하고 돈종의친(敦宗毅親)의 도리(道理)로서는 어떻게 원만(緩晩) 할 수 있겠는가. 다만 기존(旣存)의 보첩(譜牒)에 |
- | 기록(記錄)된 23대조(二十三代祖)이신 휘(諱) 서(瑞)에서 고려(高麗) 충렬왕조(忠烈王朝)에 익대공신(翊戴功臣)으로서 금어대첨의(金魚黛僉議) | + | 기록(記錄)된 23대조(二十三代祖)이신 휘(諱) 서(瑞)에서 고려(高麗) 충렬왕조(忠烈王朝)에 익대공신(翊戴功臣)으로서 금어대(金魚黛) |
- | 평리(評理) 문하시중(門下侍中)의 벼슬이 제수(除授)되고 시호(諡號)는 충절(忠節)이라고 기록(記錄)된 것을 영주(榮州)의 세명(世明) | + | 첨의평리(僉議評理) 문하시중(門下侍中)의 벼슬이 제수(除授)되고 시호(諡號)는 충절(忠節)이라고 기록(記錄)된 것을 영주(榮州)의 세명(世明) |
족대부(族大夫)가 4천년(四千年) 문헌통고(文獻通考)한 책을 열람(閱覽)한 바 문절(文節) 시호란(諡號欄)에 등재(登載)되어 있어서 족인(族人) | 족대부(族大夫)가 4천년(四千年) 문헌통고(文獻通考)한 책을 열람(閱覽)한 바 문절(文節) 시호란(諡號欄)에 등재(登載)되어 있어서 족인(族人) | ||
윤석(允錫)과 일석(日錫) 등 3인(三人)이 서울대학교(大學校) 및 국립도서관(國立圖書館)에 가서 관계(関係) 사료(史料)를 확인(確認)한 결과(結果) | 윤석(允錫)과 일석(日錫) 등 3인(三人)이 서울대학교(大學校) 및 국립도서관(國立圖書館)에 가서 관계(関係) 사료(史料)를 확인(確認)한 결과(結果) | ||
- | 첨의(僉議) 주열(朱悦)과 좌정승(左政丞) 한종유(韓宗愈)와 지첨의(知僉議) 황서(黃瑞)와 전서(典書) 양사도(梁思道)와 차원류(車原類) 다섯 분이 | + | 첨의(僉議) 주열(朱悅)과 좌정승(左政丞) 한종유(韓宗愈)와 지첨의(知僉議) 황서(黃瑞)와 전서(典書) 양사도(梁思道)와 차원류(車原類) 다섯 분이 |
동시(同時)에 문절공(文節公)의 시호(諡號)를 받음이 확실(確實)하지만 선대(先代)에서 발견(發見)치 못한 사실(事實)을 | 동시(同時)에 문절공(文節公)의 시호(諡號)를 받음이 확실(確實)하지만 선대(先代)에서 발견(發見)치 못한 사실(事實)을 | ||
바로잡기는 참람(僭濫)한 처사(處事)인 듯 하나 근거(根據)가 분명(分明)하니 충절(忠節)을 문절(文節)로 바로 잡음을 | 바로잡기는 참람(僭濫)한 처사(處事)인 듯 하나 근거(根據)가 분명(分明)하니 충절(忠節)을 문절(文節)로 바로 잡음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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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이 있어서 음(陰) 12월(十二月) 하순(下旬)에 정서(正書)를 완료(完了)하고 인쇄(印刷)에 회부(回附)하게 됨에 즈음하여 | 보람이 있어서 음(陰) 12월(十二月) 하순(下旬)에 정서(正書)를 완료(完了)하고 인쇄(印刷)에 회부(回附)하게 됨에 즈음하여 | ||
제종인(諸宗人)이 내가 보사(譜事)의 시종(始終)을 잘 안다는 사실(事實)을 들어 서문(序文)을 지으라 하기에 종사(宗事)에 | 제종인(諸宗人)이 내가 보사(譜事)의 시종(始終)을 잘 안다는 사실(事實)을 들어 서문(序文)을 지으라 하기에 종사(宗事)에 | ||
- | 관(關)한 일이니 감(敢)히 불문(不文)하다는 핑계로 사피(辞避)할 수 없어서 대동보(大同譜)를 한 이후(以後)로 있었던 | + | 관(關)한 일이니 감(敢)히 불문(不文)하다는 핑계로 사피(辭避)할 수 없어서 대동보(大同譜)를 한 이후(以後)로 있었던 |
대로 한 일 만을 간략(簡略)히 기술(記述)하는 바이다.\\ | 대로 한 일 만을 간략(簡略)히 기술(記述)하는 바이다.\\ | ||
줄 47: | 줄 47: | ||
돈독(敦篤)히 하고 선조(先祖)의 유덕(遺德)에 욕됨이 없도록 힘써야 될 것이다. 끝으로 금반(今般) 보사(譜事)에 | 돈독(敦篤)히 하고 선조(先祖)의 유덕(遺德)에 욕됨이 없도록 힘써야 될 것이다. 끝으로 금반(今般) 보사(譜事)에 | ||
80(八十) 고령(高齡)임에도 불구(不拘)하고 도유사(都有司)를 맡아 지휘(指揮) 감독(監督)하신 세명(世明) 족대부(族大夫)의 현노(賢勞)에 깊이 | 80(八十) 고령(高齡)임에도 불구(不拘)하고 도유사(都有司)를 맡아 지휘(指揮) 감독(監督)하신 세명(世明) 족대부(族大夫)의 현노(賢勞)에 깊이 | ||
- | 감사(感謝)드리며 아울러 편집임원(編輯任員) 여러분의 노고(勞苦)를 충심(衷心)으로 치하(致賀)하는 바이다. | + | 감사(感謝)드리며 아울러 편집임원(編輯任員) 여러분의 노고(勞苦)를 충심(衷心)으로 치하(致賀)하는 바이다.\\ |
\_\_단기(檀紀) 4329년(四三二九年)(1996(一九九六)) 병자(丙子) 맹춘절(孟春節)에 후손(後孫) 덕진(德鎭) 근서(謹序) | \_\_단기(檀紀) 4329년(四三二九年)(1996(一九九六)) 병자(丙子) 맹춘절(孟春節)에 후손(後孫) 덕진(德鎭) 근서(謹序)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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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20.1748424291.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8 18:24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