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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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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55 [2025/05/31 08:03] ssio2b-055 [2025/05/31 08:45]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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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月朝之評有曰特立山岳之氣像淵泓河海之器量文可以應衆行可以範鄕 月朝之評有曰特立山岳之氣像淵泓河海之器量文可以應衆行可以範鄕
 此足以論公一生而且家狀所錄一如所聞遂綴其大以塞孝懇聊以寓平\\ 此足以論公一生而且家狀所錄一如所聞遂綴其大以塞孝懇聊以寓平\\
-日慕仰之吃云\\+日慕仰之<fc #ff0000></fc>云\\
 \_\_歲己亥暮春上浣大興白燦宗謹撰 \_\_歲己亥暮春上浣大興白燦宗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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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67: 줄 67:
 \_공(公)의 휘(諱)는 진영(震英)이요 자(字)는 망교(望敎)요 호(號)는 창은(滄隱)이며 성(姓)은 평해황씨(平海黃氏)니 고려(高麗) 충절공(忠節公) \_공(公)의 휘(諱)는 진영(震英)이요 자(字)는 망교(望敎)요 호(號)는 창은(滄隱)이며 성(姓)은 평해황씨(平海黃氏)니 고려(高麗) 충절공(忠節公)
 휘(諱) 서(瑞)의 후손(後孫)이라.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휘(諱) 옥숭(玉崇)이라는 어른이 계셔 한성판윤(漢城判官)이며 휘(諱) 휘(諱) 서(瑞)의 후손(後孫)이라.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휘(諱) 옥숭(玉崇)이라는 어른이 계셔 한성판윤(漢城判官)이며 휘(諱)
-보곤(輔坤)을 낳으시니 생원(生員)인 휘(諱) 우(瑀)를 낳으시니 목사(牧使)의 목사(牧使)는 휘(諱) 응청(應淸)을 낳으시니  +보곤(輔坤)을 낳으시니 생원(生員)이시고, 휘(諱) 우(瑀)를 낳으시니 목사(牧使)이시고, 휘(諱) 응청(應淸)을 낳으시니  
-상이 대해(大海) 선생(先生)이라 일컬으며 진사(進士)를 하셨고 효자(孝子)로 나라에서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表彰)했으며 또 유일(遺逸)로 천거(薦擧)되여 진보현감(眞寶縣監)에 제수(除授)되고 졸(卒) 후(後)에는 명계서원(明溪書院)에 향사(享祀)하시니 이 어른이 곧 공(公)의 11대조(十一代祖)이시다. 휘(諱) 명계(明溪)는 나라에서 공조참의(工曹參議)로 증작(贈爵)을+상이 대해(大海) 선생(先生)이라 일컬으며 진사(進士)를 하셨고 효자(孝子)로 나라에서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表彰)했으며 또 유일(遺逸)로 천거(薦擧)되어 진보현감(眞寶縣監)에 제수(除授)되고 졸(卒) 후(後)에는 명계서원(明溪書院)에 향사(享祀)하시니 이 어른이 곧 공(公)의 11대조(十一代祖)이시다. 휘(諱) 명계(明溪)는 나라에서 공조참의(工曹參議)로 증작(贈爵)을
 받았고 그 후(後) 4대(四代)를 지나서 휘(諱) 한창(漢昌) 호(號) 청부(聽夫)는 학행(學行)이 높아 방리(邦里)에서 큰 존경(尊敬)을 받았고 그 후(後) 4대(四代)를 지나서 휘(諱) 한창(漢昌) 호(號) 청부(聽夫)는 학행(學行)이 높아 방리(邦里)에서 큰 존경(尊敬)을
 받았으며 그의 유명(有名)한 유고(遺稿)가 있다.\\ 받았으며 그의 유명(有名)한 유고(遺稿)가 있다.\\
  
 \_고조(高祖)의 휘(諱)는 재화(載華)요 증조(曾祖)의 휘(諱)는 배곤(配坤)이요 조(祖)의 휘(諱)는 용구(龍九)요 고(考)의 휘(諱)는 도(濤)이니 \_고조(高祖)의 휘(諱)는 재화(載華)요 증조(曾祖)의 휘(諱)는 배곤(配坤)이요 조(祖)의 휘(諱)는 용구(龍九)요 고(考)의 휘(諱)는 도(濤)이니
-양세(兩世)모두 은덕(恩德)이 있었다. 비(妣)는 경주이씨(慶州李氏)니 관섭(觀燮)의 여(女)로 부덕호절(婦德壺範)이었다.\\+양세(兩世)모두 은덕(恩德)이 있었다. 비(妣)는 경주이씨(慶州李氏)니 관섭(觀燮)의 여(女)로 부덕호절(婦德壺範)이 었다.\\
  
-\_철종(哲宗) 기유(己酉) 6월(六月) 18일(十八日) 공(公)이 정명리(正明里) 제(第)에서 나시니 그 골상(骨相)에 기의(岐)하고 울음소리가+\_철종(哲宗) 기유(己酉) 6월(六月) 18일(十八日) 공(公)이 정명리(正明里) 제(第)에서 나시니 그 골상(骨相)에 기의(岐)하고 울음소리가
 우렁차서 대인공(大人公)이 심(甚)히 기이(奇異)하게 여기더니 점점(漸漸) 자라나서 처음으로 수학(受學)하게 우렁차서 대인공(大人公)이 심(甚)히 기이(奇異)하게 여기더니 점점(漸漸) 자라나서 처음으로 수학(受學)하게
 되니 그 재사(才思)가 민활(敏闊)하여 번거롭게 가르치지 않아도 곧 또렸하게 해득(解得)하는 것이 되니 그 재사(才思)가 민활(敏闊)하여 번거롭게 가르치지 않아도 곧 또렸하게 해득(解得)하는 것이
줄 114: 줄 114:
  
 \_그리고 이 지방(地方)에 새로 오는 관장(官長)들은 반드시 부임(赴任)하면 그 문에 이르러 예(禮)를 \_그리고 이 지방(地方)에 새로 오는 관장(官長)들은 반드시 부임(赴任)하면 그 문에 이르러 예(禮)를
-드렸다. 정유년(丁酉年)에 향산(響山) 이선생(李先生) 만(晩燾)씨(氏)가 동해안(東海岸)에 여행(旅行)케 되어 먼저 공(公)을 찾아와서+드렸다. 정유년(丁酉年)에 향산(響山) 이선생(李先生) 만(晩燾)씨(氏)가 동해안(東海岸)에 여행(旅行)케 되어 먼저 공(公)을 찾아와서
 3일간(三日間)을 유(留)하게 됨에 공(公)과 학문(學問)과 세상사(世上事)를 토론(討論)하고 좌우(左右)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3일간(三日間)을 유(留)하게 됨에 공(公)과 학문(學問)과 세상사(世上事)를 토론(討論)하고 좌우(左右)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줄 122: 줄 122:
 누세종미(累世宗楣)로 봉선접빈(奉先接賓)하는 도(道)와 출입응수(出入應酬)하는 절차(節次)를 누가 흠앙하지 않으리요. 누세종미(累世宗楣)로 봉선접빈(奉先接賓)하는 도(道)와 출입응수(出入應酬)하는 절차(節次)를 누가 흠앙하지 않으리요.
 선세(先世) 묘도(墓道)의 현각(顯刻)하는 일에 있어서는 침식(寢食)을 잊고 성심(誠心)과 충정(哀情)으로 노력(努力)하였으며 선세(先世) 묘도(墓道)의 현각(顯刻)하는 일에 있어서는 침식(寢食)을 잊고 성심(誠心)과 충정(哀情)으로 노력(努力)하였으며
-또 시조(始祖)의 선단(先壇)에 옛날부터 재우(齋宇)나 제(祭)이 없어 항상(恒常) 유감(遺憾)으로 생각(生覺)해오던 바 종인(宗人) 발(墢)과 기달(基達)로 더불어 그 규모(規模)와 계획(計劃)을 협의(協議)한 후에 각도(各道) 각읍(各邑)을 두루 다니면서+또 시조(始祖)의 선단(先壇)에 옛날부터 재우(齋宇)나 제(祭)이 없어 항상(恒常) 유감(遺憾)으로 생각(生覺)해오던 바 종인(宗人) 발(墢)과 기달(基達)로 더불어 그 규모(規模)와 계획(計劃)을 협의(協議)한 후에 각도(各道) 각읍(各邑)을 두루 다니면서
 비바람을 무릅쓰고 정성을 다하여 자원(資源)을 모아 완성(完成)하였더니 나이 더할수록 첨응(添應)이 더 심하여 끝을 맺지  비바람을 무릅쓰고 정성을 다하여 자원(資源)을 모아 완성(完成)하였더니 나이 더할수록 첨응(添應)이 더 심하여 끝을 맺지 
 못하고 세상(世上)을 버렸으니 진실(眞實)로 통탄(痛歎)할 노릇이었다. 못하고 세상(世上)을 버렸으니 진실(眞實)로 통탄(痛歎)할 노릇이었다.
줄 131: 줄 131:
 하여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두었다. 그리고 제전(祭田)이 넉넉지 못한 것과 종택(宗宅)이 허물어진 하여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두었다. 그리고 제전(祭田)이 넉넉지 못한 것과 종택(宗宅)이 허물어진
 것을 일체(一切) 새롭게 넓히고 수리(修理)하였으며 또 논과 밭을 얼마쯤 마련하여 종가(宗家)로 것을 일체(一切) 새롭게 넓히고 수리(修理)하였으며 또 논과 밭을 얼마쯤 마련하여 종가(宗家)로
-하여금 궁색(窘塞)을 면(免)케 하였다. 또 시조(始祖)의 단사(壇祀)에 전헌(奠獻)하는 것이 자주 체(改遞)되는 것을+하여금 궁색(窘塞)을 면(免)케 하였다. 또 시조(始祖)의 단사(壇祀)에 전헌(奠獻)하는 것이 자주 체(改遞)되는 것을
 미안(未安)히 생각(生覺)하고 종중(宗中)의 공의(公議)로 일정(一定)한 절차(節次)를 정(定)하여 시행(施行)케 하였다.\\ 미안(未安)히 생각(生覺)하고 종중(宗中)의 공의(公議)로 일정(一定)한 절차(節次)를 정(定)하여 시행(施行)케 하였다.\\
  
줄 145: 줄 145:
 글을 탁마(琢磨)하고 힘써 부지런히 읽어 수기치인(修己治人)하는 도(道)를 실천(實踐)하는 것이 글을 탁마(琢磨)하고 힘써 부지런히 읽어 수기치인(修己治人)하는 도(道)를 실천(實踐)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 깨닫고 나날이 선(善)하고 의(義)로운 일이면서 적다하여 소홀(疏忽)히 하지 않고 옳은 길이라 깨닫고 나날이 선(善)하고 의(義)로운 일이면서 적다하여 소홀(疏忽)히 하지 않고
-행(行)하는데 노력(努力)하니 몸에 엄(嚴)하든 기운(氣運)이 점점(漸漸) 너그럽고 화평(和平)한대로 나아가고 +행(行)하는데 노력(努力)하니 몸에 엄(嚴)하던 기운(氣運)이 점점(漸漸) 너그럽고 화평(和平)한대로 나아가고 
 교만(嬌慢)하게 자랑하는 뜻은 점점(漸漸) 온순(溫順)하고 유화(柔和)한데로 기울어져 일언일행(一言一行)이 남에게 교만(嬌慢)하게 자랑하는 뜻은 점점(漸漸) 온순(溫順)하고 유화(柔和)한데로 기울어져 일언일행(一言一行)이 남에게
 애이(厓異)함이 없어서 모든 사람마다 머리가 수그러지고 듣는 사람마다 흠모(欽慕)하였으니 애이(厓異)함이 없어서 모든 사람마다 머리가 수그러지고 듣는 사람마다 흠모(欽慕)하였으니
줄 153: 줄 153:
 일이며 의(義)로운 것이면 좋고 행(行)했으니 깊은 사의(思誼)가 종족(宗族)에게 높은 신의(信義)가 향당(鄕黨)에 일이며 의(義)로운 것이면 좋고 행(行)했으니 깊은 사의(思誼)가 종족(宗族)에게 높은 신의(信義)가 향당(鄕黨)에
  
-들어나 큰 종사(宗事)에 있어서나 병신년(丙申年) 국모의거사건(國母義擧事件)같은 국사(國事)에 있어서도 향민(鄕民)들이+드러나 큰 종사(宗事)에 있어서나 병신년(丙申年) 국모의거사건(國母義擧事件)같은 국사(國事)에 있어서도 향민(鄕民)들이
 믿고 따라 나라에도 영광(榮光)되게 하였다. 이같이 그의 몸에 쌓인 것이 이미 후(厚)한 믿고 따라 나라에도 영광(榮光)되게 하였다. 이같이 그의 몸에 쌓인 것이 이미 후(厚)한
 고(故)로 문사(文辭)로 발(發)하는 것도 또한 깊고 그윽하며 높고 굳세어 속된 선비들이 조박(粗粕)하고 고(故)로 문사(文辭)로 발(發)하는 것도 또한 깊고 그윽하며 높고 굳세어 속된 선비들이 조박(粗粕)하고
줄 176: 줄 176:
 소문(所聞)과 꼭 같으므로 드디어 그 대개(大慨)를 꿰매어 효간(孝懇)을 막음하고 또 평일(平日)에 앙모(仰慕)의 소문(所聞)과 꼭 같으므로 드디어 그 대개(大慨)를 꿰매어 효간(孝懇)을 막음하고 또 평일(平日)에 앙모(仰慕)의
 정성(情誠)을 붙여 이르노라.\\ 정성(情誠)을 붙여 이르노라.\\
-\_\_세(歲) 기해(己亥) 모춘(暮春) 상완(上浣) 대흥(大興) 백찬(白燦宗) 근찬(謹撰)+\_\_세(歲) 기해(己亥) 모춘(暮春) 상완(上浣) 대흥(大興) 백찬(白燦宗) 근찬(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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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AP> </WRAP>
b-055.1748646221.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31 08:03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