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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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곡황치술묘갈명(丹谷黃致述墓碣銘)=== | ===단곡황치술묘갈명(丹谷黃致述墓碣銘)=== | ||
<WRAP 37em justify>< | <WRAP 37em justify>< | ||
- | <typo ff:' | + | <typo ff:' |
\_**丹谷黃致述墓碣銘**\\ | \_**丹谷黃致述墓碣銘**\\ | ||
曰黃君和錫龍錫甫錫余於鳳山之陽請其六代祖參奉公碣銘辭以老病不 | 曰黃君和錫龍錫甫錫余於鳳山之陽請其六代祖參奉公碣銘辭以老病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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使號淸齊祖諱仁默考諱運南妣永陽李氏生公于竹谷里第天性淳厚恭儉 | 使號淸齊祖諱仁默考諱運南妣永陽李氏生公于竹谷里第天性淳厚恭儉 | ||
就學書塾塾不與群兒相争專心所業孜孜不懈孝於事親睦於處族勤於治 | 就學書塾塾不與群兒相争專心所業孜孜不懈孝於事親睦於處族勤於治 | ||
- | 産每念家 | + | 産每念家世中替以紹述爲務且周恤之義有鄕里籍甚\_正廟甲寅除通德 |
- | 世中替以紹述爲務且周恤之義有鄕里籍甚\_正廟甲寅除通德郞明陵參奉 | + | 郞明陵參奉晩築丹谷小庵優遊終世臨終戒諸子曰汝曹各守家規永永勿 |
- | 晩築丹谷小庵優遊終世臨終戒諸子曰汝曹各守家規永永勿替也墓公德\\ | + | 替也墓公德谷子坐配恭人完山李氏郡守瑞華之女有壺範墓同原同坐祔 |
- | 谷子坐配恭人完山李氏郡守瑞華之女有壺範墓同原同坐祔男騮海馹\\ | + | 男騮海馹海駿海鳳海騮海男大淵馹海男道淵駿海男性淵智淵鳳海男基 |
- | 海駿海鳳海騮海男大淵馹海男道淵駿海男性淵智淵鳳海男基淵斗淵啓\\ | + | 淵斗淵啓淵餘不錄公以古家苗裔僻居深谷篤修勤儉孝睦之行承先業遺 |
- | + | 嘉謨公之爲公< | |
- | 淵餘不錄公以古家苗裔僻居深谷篤修勤儉孝睦之行承先業遺嘉謨公\\ | + | 家道昌兮德谷淸暢雙釖藏兮潛蹟昭著百世光兮\\ |
- | 之爲公< | + | |
- | 兮德谷淸暢雙釖藏兮潛蹟昭著百世光兮\\ | + | |
\_\_疆園大淵獻春分節利川徐錫宗撰 | \_\_疆園大淵獻春分節利川徐錫宗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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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28: | 줄 26: | ||
\_**단곡(丹谷) 황치술(黃致述)의 묘갈명(墓碣銘)**\\ | \_**단곡(丹谷) 황치술(黃致述)의 묘갈명(墓碣銘)**\\ | ||
\_어느날 황화석(黃和錫)군과 황용석(黃龍錫)군이 봉산(鳳山)의 남쪽에 있는 나를 | \_어느날 황화석(黃和錫)군과 황용석(黃龍錫)군이 봉산(鳳山)의 남쪽에 있는 나를 | ||
- | 찾아와서 그의 六代祖이신 참봉공(參奉公)의 묘갈명(墓碣銘)을 지어 달라고 | + | 찾아와서 그의 |
- | 청하는지라. 내가 늙고 병들어 지을 수 없다고 사양했으나 두 번 세 번 찾아와서 | + | 청하는지라, 내가 늙고 병들어 지을 수 없다고 사양했으나 두 번 세 번 찾아와서 |
간청하기에 부득이하여 곧 그의 유사(遺事)를 상고해 본즉 공(公)의 휘(諱)는 | 간청하기에 부득이하여 곧 그의 유사(遺事)를 상고해 본즉 공(公)의 휘(諱)는 | ||
- | 치술(致述)이요 자(字)는 석운(錫允)이니 평해황씨(平海黃氏)가 동방(東邦)의 | + | 치술(致述)이요 자(字)는 석윤(錫允)이니 평해황씨(平海黃氏)가 동방(東邦)의 |
드러난 성씨(姓氏)가 된 것은 오래이다.\\ | 드러난 성씨(姓氏)가 된 것은 오래이다.\\ | ||
줄 37: | 줄 35: | ||
온인(溫仁)은 고려조(高麗朝)에서 벼슬이 검교(檢校)였고 휘(諱) 응청(應淸)은 | 온인(溫仁)은 고려조(高麗朝)에서 벼슬이 검교(檢校)였고 휘(諱) 응청(應淸)은 | ||
조선조(朝鮮朝)의 선조(宣祖) 27(二十七)년 갑오(1594(一五九四))에 학행(學行)으로 | 조선조(朝鮮朝)의 선조(宣祖) 27(二十七)년 갑오(1594(一五九四))에 학행(學行)으로 | ||
- | 부름을 받아 진보현감( 寶縣監)에 제수되고 명계서원(明溪書院)에 제향되고 | + | 부름을 받아 진보현감(眞寶縣監)에 제수되고 명계서원(明溪書院)에 제향되고 |
있으며 세상에서 대해선생(大海先生)이라고 일컬는다. 아들은 거일(居一)이니 | 있으며 세상에서 대해선생(大海先生)이라고 일컬는다. 아들은 거일(居一)이니 | ||
줄 59: | 줄 57: | ||
\_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겼고 동족(同族)에는 화목했으며 치산(治産)에 부지런히 | \_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겼고 동족(同族)에는 화목했으며 치산(治産)에 부지런히 | ||
- | 힘쓰면서 가문(家門)이 | + | 힘쓰면서 가문(家門)이 |
계승하도록 힘썼다.\\ | 계승하도록 힘썼다.\\ | ||
\_또 불쌍한 사람을 구제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향중(鄕中)에 칭찬이 자자했으며 | \_또 불쌍한 사람을 구제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향중(鄕中)에 칭찬이 자자했으며 | ||
정종(正宗) 18(十八)년 갑인(1794(一七九四))에 통덕랑(通德郞)의 품계로 | 정종(正宗) 18(十八)년 갑인(1794(一七九四))에 통덕랑(通德郞)의 품계로 | ||
- | 명릉참봉(明陵參奉)이 제수되었으며, | + | 명릉참봉(明陵參奉)이 제수되었으며, |
짓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살다가 세상을 마쳤다.\\ | 짓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살다가 세상을 마쳤다.\\ | ||
줄 71: | 줄 69: | ||
\_묘(墓)는 공덕곡(公德谷)의 자좌(子坐)의 둔덕에 있으며 배위(配位)는 공인(恭人)인 | \_묘(墓)는 공덕곡(公德谷)의 자좌(子坐)의 둔덕에 있으며 배위(配位)는 공인(恭人)인 | ||
- | 완산이씨(完山李氏)인데 군수(郡守)를 지낸 서화(瑞華)의 따님이며 규증(閨中)의 | + | 완산이씨(完山李氏)인데 군수(郡守)를 지낸 서화(瑞華)의 따님이며 규중(閨中)의 |
- | 법도가 있었으며 묘는 같은 둔덕의 같은 좌향에 부장(葬)했다.\\ | + | 법도가 있었으며 묘는 같은 둔덕의 같은 좌향에 부장(祔葬)했다.\\ |
- | \_아들은 유해(騮海)와 <fc # | + | \_아들은 유해(騮海)와 <fc # |
일해(馹海)의 아들은 도연(道淵)이며 준해(駿海)의 아들은 성연(性淵)과 | 일해(馹海)의 아들은 도연(道淵)이며 준해(駿海)의 아들은 성연(性淵)과 | ||
지연(智淵)이고 봉해(鳳海)의 아들은 기연(基淵)과 두연(斗淵)과 계연(啓淵)이며 | 지연(智淵)이고 봉해(鳳海)의 아들은 기연(基淵)과 두연(斗淵)과 계연(啓淵)이며 | ||
줄 90: | 줄 88: | ||
家道昌兮 가도(家道)가 번창하고 \\ | 家道昌兮 가도(家道)가 번창하고 \\ | ||
德谷淸暢 공덕공(公德谷)의 맑고 화창하니 \\ | 德谷淸暢 공덕공(公德谷)의 맑고 화창하니 \\ | ||
- | 雙釖藏兮 쌍검(雙剣)을 감추었다.\\ | + | 雙釖藏兮 쌍검(雙劍)을 감추었다.\\ |
潛蹟昭著 숨은 행적(行蹟)을 밝게 나타내었으니\\ | 潛蹟昭著 숨은 행적(行蹟)을 밝게 나타내었으니\\ | ||
百世光兮 백세(百世)토록 빛나리로다.\\ | 百世光兮 백세(百世)토록 빛나리로다.\\ | ||
- | \_\_정해(丁亥)년 춘분절(春分節)날 이천(利川) 서석봉(徐錫宗)이 짓다. | + | \_\_정해(丁亥)년 춘분절(春分節)날 이천(利川) 서석종(徐錫宗)이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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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77.1748766698.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1 17:31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