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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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82 [2025/05/26 12:17] – ssio2 | b-082 [2025/06/01 23:17] (현재) – ssio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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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고황각민묘갈명(鶴고黃覺民墓碣銘) | + | ===학고황각민묘갈명(鶴고黃覺民墓碣銘)=== |
- | + | <WRAP 37em justify>< | |
- | 鶴皐黃覺民墓碣銘 | + | <typo ff:' |
- | 公諱는 覺民이요 字는 覺夫요 號는 鶴皐니 黃氏系出平海斗 新羅文 | + | \_**鶴皐黃覺民墓碣銘**\\ |
- | 武王朝에 漢學士諱洛이 爲始祖요 中世에 有諱瑞金紫光祿大夫以翊戴 | + | 公諱는 覺民이요 字는 覺夫요 號는 鶴皐니 黃氏系出平海라 新羅文武王朝에 |
- | 功으로 陞縣爲郡 諡文節公이요 入 本朝에 有諱玉崇이 漢城判尹이요 | + | 漢學士諱洛이 爲始祖요 中世에 有諱瑞金紫光祿大夫以翊戴功으로 |
- | 生諱輔坤이 生員이요 生諱瑀璃牧使요 生諱應淸 穆陵朝에 擧遺逸하야 | + | 陞縣爲郡 諡文節公이요 入 本朝에 有諱玉崇이 漢城判尹이요 |
- | 特除真寶縣監하고 以孝行으로 旌閭하고 士林이 俎豆干明溪書院하야 | + | 生諱輔坤이 生員이요 生諱瑀牧使요 生諱應淸 穆陵朝에 擧遺逸하야 |
+ | 特除眞寶縣監하고 以孝行으로 旌閭하고 士林이 俎豆干明溪書院하야 | ||
世稱大海先生이요 生諱有一이 號虎谷이니 輿從父兄海月公諱汝一로 | 世稱大海先生이요 生諱有一이 號虎谷이니 輿從父兄海月公諱汝一로 | ||
- | 早登鶴峯金先生門하야 克蒙獎詡하고 宣廟丁亥에 文科하야 未及拆 | + | 早登鶴峯金先生門하야 克蒙奬詡하고 宣廟丁亥에 文科하야 未及坼號에 |
- | 號에 病卒旅邸러니 贈成均正字요 生諱中吉이니 宣務郞이요 生諱銃 | + | 病卒旅邸러니 贈成均正字요 生諱中吉이니 宣務郞이요 生諱銑이요 |
- | 이요 號春昭니 受業干百拙菴柳先生諱稷之門하야 大得師門獎許하고 | + | 號春昭니 受業干百拙菴柳先生諱稷之門하야 大得師門奬許하고 |
- | 生諱命老號百拙齋요 生諱는 世平이니 有隱德하고 妣는 安東權氏處 | + | 生諱命老號百拙齋요 生諱는 世平이니 有隱德하고 妣는 安東權氏處士任巽女요 |
- | 士任巽女요 思復齋定后斗 以英宗癸卯十月十五日에 生公于傳道村 | + | 思復齋定后라 以 英宗癸卯十月十五日에 生公于傳道村第하니 聰穎하야 |
- | 第하니 聰穎하야 不與群兒로 遊嬉하야 未成童에 儼然有成人儀러니 | + | 不與群兒로 遊嬉하야 未成童에 儼然有成人儀러니 |
- | 及長에 受學于祖考할새 潛心體認하야 孜孜不怠하고 在親側에 應唯 | + | 及長에 受學于祖考할새 潛心體認하야 孜孜不怠하고 在親側에 應唯敬對하야 |
- | + | 無一事子弟過하고 御宗族接賓友에 必誠必愼하야 皆有準則하고 | |
- | 敬對하야 無一事子弟過하고 御宗族接賓友에 必誠必慎하야 皆有準則 | + | 桑榆己婉晩矣에 優遊而卒歲하야 以庚子十一月六日에 卒하니 |
- | 하고 桑榆己婉晚矣에 優遊而卒歲하야 以庚子十一月六日에 卒하니 | + | 壽七十八이라 葬西門壬坐原하다 以曾孫壽坤貴로 贈通訓大夫司僕寺正하니라 |
- | 壽七十八이라 葬西門壬坐原하다 以曾孫壽坤貴로 贈通訓大夫司僕寺 | + | 配淑夫人禮安金氏參奉元凱의 女라 忌는 同日이요 墓는 西門壬坐合封이라 |
- | 正하니라 配淑夫人禮安金氏參奉元凱의 女라 忌는 同日이요 墓는 西 | + | 生四男하니 東憲은 出이요 東幹東佐東弼이라 東幹의 |
- | 門壬坐合封이라 生四男하니 東憲은 出이요 東幹東佐東弼이라 東幹의 | + | 系子는 履中이요 東佐는 贈通政大夫左承旨라 生四男一女하니 男必中은 |
- | 系子는 履中이요 東佐는 贈通政大夫左承旨라 生四男一女하니 男 | + | 贈嘉善大夫戶曹參判이요 建中致中範中이라 女는 月城李昌龍이요 |
- | 必中은 贈嘉善大夫戶曹參判이요 建中致中範中이라 女는 月城李昌 | + | 東弼이 生二男二女하니 男履中은 出하고 敏中이요 女는 仁同張審矩治城宋鼎鎔이요 |
- | 龍이요 東弼이 生二男二女하니 男履中은 出하고 敏中이요 女는 仁 | + | 履中이 生三男二女하니 男은 壽範壽箕壽極이요 女는 咸昌金基祚月城李章華요 |
- | 同張審矩治城宋鼎鎔이요 履中이 生三男二女하니 男은 壽範壽箕壽極 | + | 必中이 生一男五女하니 男壽坤은 |
- | 이요 女는 咸昌金基祚月城李章華요 必中이 生一男五女하니 男壽坤은 | + | 嘉善大夫副護軍이요 女는 月城李應韶眞城李道燮宣城金樂遠潘南朴標中咸昌金鎭大요 |
- | 嘉善大夫副護軍이요 女는 月城李應韶真城李道燮宣城金樂遠潘南朴標 | + | 敏中이 生三男一女하니 男에 壽鍾壽瓚壽斗요 女는 |
- | 中咸昌金鎮大요 敏中이 生三男一女하니 男에 壽鍾壽瓚壽斗요 女는 | + | |
安東權東夏라 餘不錄하노라 鳴呼라 公之世遠矣라 墓木이 己拱호데 | 安東權東夏라 餘不錄하노라 鳴呼라 公之世遠矣라 墓木이 己拱호데 | ||
- | 隧道之銘을 尙未遑하니 爲後承이 懼懿跡之久易沈泯하야 將伐石侈其 | + | 隧道之銘을 尙未遑하니 爲後承이 懼懿跡之久易沈泯하야 將伐石侈其羨門할새 |
+ | 曰에 後孫世明과 主孫基舜甫가 過<fc # | ||
+ | 其請이 益墾이라 敢忘其僭越하고 遂敍次爲之銘曰 質禀純慤하고 行篤倫常이라 | ||
+ | 績躬旣厚에 克世而昌이라 | ||
+ | 嶷嶷西山이여 百世典型이라 鑱辭揭美하니 昭示無疆이라\\ | ||
+ | \_\_朝鮮開國九戊申十一月甲子族後孫承文院副正字[土憲]謹撰 | ||
+ | </ | ||
+ | </ | ||
+ | \\ | ||
+ | <typo ff:' | ||
+ | \_**학고(鶴阜) 황각민(黃覺敏)의 묘갈명(墓碣銘)**\\ | ||
+ | \_공(公)의 휘(諱)는 각민(覺敏)이요 자(字)는 각부(覺夫)이며 호(號)는 | ||
+ | 학고(鶴皐)이니 평해(平海)에서 세계(世系)가 나온 황씨(黃氏)이다. | ||
+ |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때에 한(漢)나라의 학사(學士)였던 휘(諱) 낙(洛)이 | ||
+ | 시조(始祖)가 되며 중세(中世)에 휘(諱)는 서(瑞)요 벼슬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서 | ||
+ | 익대공신(翊戴功臣)이었기 때문에 평해현(平海縣)을 군(郡)으로 승호(陞號)하도록 | ||
+ | 했으며 시호(諡號)는 문절공(文節公)이다.\\ | ||
- | 감(眞寶縣監)이 제수(除授)되었으며 효행(孝行)으로 정려(旌閭)가 내리고 | + | \_조선시대(朝鮮時代)에 들어와서 휘(諱) 옥숭(玉崇)은 벼슬이 한성판윤(漢城判尹)이었고 |
- | 림(士林)에서 명계서원(明溪書院)에 제향(祭享)하고 있는데 이 분이 세상에서 | + | 아들은 휘(諱)가 우(瑀)이니 목사(牧使) 벼슬을 했으며 아들의 휘는 |
- | 말하는 대해선생(大海先生)이다. | + | 응청(應淸)이니 선조(宣祖) 때의 유일(遺逸)로 천거(薦擧)되여 특별히 진보현감(眞寶縣監)이 |
- | 아들은 휘(諱)가 유일(有一)이요 호(號)는 호곡(虎谷)이니 종형(從兄)인 해월 | + | 제수(除授)되었으며 효행(孝行)으로 정려(旌閭)가 내리고 |
- | 공(海月公) 휘(諱) 여일(汝一)과 더불어 일찍이 학봉(鶴奉) 김선생(金先生)의 | + | 사림(士林)에서 명계서원(明溪書院)에 제향(祭享)하고 있는데 이 분이 세상에서 |
- | 문하에 나아가 많은 칭찬과 격려를 받았으며 선조(宣祖) 二十년(서기 一五八 | + | 말하는 대해선생(大海先生)이다.\\ |
- | 七) 정해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직첩(職牒)의 내봉(內封)을 뜯어 | + | |
- | 지도 못하고 병으로 여관(旅館)에서졸(卒)하여서 성균정자(成均正字)에 증직 | + | \_아들은 휘(諱)가 유일(有一)이요 호(號)는 호곡(虎谷)이니 종형(從兄)인 |
- | (贈職)되었다. | + | 해월공(海月公) 휘(諱) 여일(汝一)과 더불어 일찍이 학봉(鶴奉) 김선생(金先生)의 |
- | 아들은 휘가 중길(中吉)이니 선무랑(宣務郞)이요 그 아들은 휘가 선(鏡)이요 | + | 문하에 나아가 많은 칭찬과 격려를 받았으며 선조(宣祖) |
- | 호(號)는 춘소(春昭)이니 백졸암(百拙菴) | + | 七)) 정해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직첩(職牒)의 내봉(內封)을 뜯어 |
- | 하에서 배움을 받아 스승의 많은 칭찬과 격려를 받았으며 아들은 휘가 명노(命 | + | 보지도 못하고 병으로 여관(旅館)에서 졸(卒)하여서 성균정자(成均正字)에 증직(贈職)되었다.\\ |
- | 老)요 호(號)는 백졸재(百拙齋)이며 그 아들은 휘가 세평(世平)이니 공(公)의 | + | |
+ | \_아들은 휘가 중길(中吉)이니 선무랑(宣務郞)이요 그 아들은 휘가 선(銑)이요 | ||
+ | 호(號)는 춘소(春昭)이니 백졸암(百拙菴) | ||
+ | 문하에서 배움을 받아 스승의 많은 칭찬과 격려를 받았으며 아들은 휘가 | ||
+ | 명노(命老)요 호(號)는 백졸재(百拙齋)이며 그 아들은 휘가 세평(世平)이니 공(公)의 | ||
아버지로서 숨은 덕행(德行)이 있었고 어머니 안동권씨(安東權氏)는 처사(處士) | 아버지로서 숨은 덕행(德行)이 있었고 어머니 안동권씨(安東權氏)는 처사(處士) | ||
- | 임손(任巽)의 따님으로서 사복재(思復齋) 정(定)의 후예이다. | + | 임손(任巽)의 따님으로서 사복재(思復齋) 정(定)의 후예이다.\\ |
- | 영조(英祖) 계묘년 十월 十五일에 공이 전도(傳道)마을 집에서 출생하니 총명하고 | + | |
- | 영특하여 범상한 아이들과는 놀지도 않았으며 十五세도 안 되어서 벌써 엄전 | + | |
- | 하기가 어른의 거동이 있었으며 장년(長年)이 되어서는 조부(祖父) 앞에서 | + | \_영조(英祖) 계묘년 10(十)월 15(十五)일에 공이 전도(傳道)마을 집에서 출생하니 총명하고 |
- | 학(受學)했는데 마음을 가라앉혀 배움을 체득(體得)하여 게으름 없이 부지런 | + | 영특하여 범상한 아이들과는 놀지도 않았으며 15(十五)세도 안 되어서 벌써 엄전하기가 |
- | 하였다. 부모의 곁에 있을 때에는 응답(應答)이 공경하며 자제(子弟)로서 한가지 | + | 어른의 거동이 있었으며 장년(長年)이 되어서는 조부(祖父) 앞에서 |
+ | 수학(受學)했는데 마음을 가라앉혀 배움을 체득(體得)하여 게으름 없이 | ||
+ | 부지런하였다. 부모의 곁에 있을 때에는 응답(應答)이 공경하며 자제(子弟)로서 한가지 | ||
일도 과실을 범하지 않았으며 종족(宗族)을 대함과 손님과 친우를 접대함에도 | 일도 과실을 범하지 않았으며 종족(宗族)을 대함과 손님과 친우를 접대함에도 | ||
- | 정성스러우며 신중하여 모든 행동이 법도가 있었다. | + | 정성스러우며 신중하여 모든 행동이 법도가 있었다.\\ |
- | 노경(老境)에 이르러서는 한가롭게 지내다가 경자년 十一월 六일에 별세하니 | + | |
- | 七十八세의 수(壽)를 누렸다. | + | \_노경(老境)에 이르러서는 한가롭게 지내다가 경자년 |
- | 서문(西門)의 임좌(壬坐) 둔덕에 장례를 지냈으며 증손(曾孫)인 수곤(壽坤)이 | + | 78(七十八)세의 수(壽)를 누렸다.\\ |
+ | |||
+ | \_서문(西門)의 임좌(壬坐) 둔덕에 장례를 지냈으며 증손(曾孫)인 수곤(壽坤)이 | ||
벼슬하여 귀하게 된 때문에 통훈대부(通訓大夫)의 품계로 사복시정(司僕寺正) | 벼슬하여 귀하게 된 때문에 통훈대부(通訓大夫)의 품계로 사복시정(司僕寺正) | ||
- | 벼슬이 증직(贈職)되었다. | + | 벼슬이 증직(贈職)되었다.\\ |
- | 배위(配位)는 숙부인(淑夫人)인 예안김씨(禮安金氏)로서 참봉(參奉)을 지낸 원 | + | |
- | 걔(元凱)의 따님이며 기제일(忌祭日)은 공과 같은 날이요 묘(墓)는 서문(西門)의 | + | |
- | 임좌(壬坐)에 있는 공의 묘와 합봉(合封)이다. | + | |
- | 아들 넷을 두었으니 동헌(東憲)은 출계(出系)했고 동간(東幹)과 동좌(東佐)와 | + | |
- | 동필(東弼)이 있는데 동간(東幹)은 이중(履中)을 계자(系子)로 했고 동좌(東 | + | |
- | 佐)는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로 좌승지(左承旨)에 증직(贈職)되었으며 아들 | + | |
- | 넷과 딸 하나를 두었으니 아들 필증(必中)은 가선대부(嘉善大夫)의 품계로 호 | + | |
- | 조참판(戶曹參判)에 증직(贈職)되었고 건증(建中)과 치중(致中)과 범증(範中)이 | + | \_배위(配位)는 숙부인(淑夫人)인 예안김씨(禮安金氏)로서 참봉(參奉)을 지낸 |
+ | 원걔(元凱)의 따님이며 기제일(忌祭日)은 공과 같은 날이요, 묘(墓)는 서문(西門)의 | ||
+ | 임좌(壬坐)에 있는 공의 묘와 합봉(合封)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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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아들 넷을 두었으니 동헌(東憲)은 출계(出系)했고 동간(東幹)과 동좌(東佐)와 | ||
+ | 동필(東弼)이 있는데 동간(東幹)은 이중(履中)을 계자(系子)로 했고 | ||
+ | 동좌(東佐)는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로 좌승지(左承旨)에 증직(贈職)되었으며 아들 | ||
+ | 넷과 딸 하나를 두었으니 아들 필중(必中)은 가선대부(嘉善大夫)의 품계로 | ||
+ |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증직(贈職)되었고 건중(建中)과 치중(致中)과 범중(範中)이 | ||
있으며 딸은 월성(月城) 이창룡(李昌龍)에게 출가했고 동필(東弼)은 아들 둘과 | 있으며 딸은 월성(月城) 이창룡(李昌龍)에게 출가했고 동필(東弼)은 아들 둘과 | ||
- | 딸 둘을 두었으니 아들 이중(履中)은 동간(東幹)에게 출계(出系)했고 아들 | + | 딸 둘을 두었으니 아들 이중(履中)은 동간(東幹)에게 출계(出系)했고 아들 |
- | 중(敏中)이 있으며 딸은 인동(仁同) 장심구(張審矩)와 야성(冶城) 송정용(宋 | + | 민중(敏中)이 있으며 딸은 인동(仁同) 장심구(張審矩)와 야성(冶城) 송정용(宋鼎鎔)에게 출가했다.\\ |
- | 鼎鎔)에게 출가했다. | + | |
- | 이중(履中)은 아들 셋과 딸 둘을 두었으니 아들은 수범(壽範)과 수기(壽箕)와 | + | \_이중(履中)은 아들 셋과 딸 둘을 두었으니 아들은 수범(壽範)과 수기(壽箕)와 |
- | 수극(壽極)이요 딸은 함창(咸昌) 김기조(金基祚)와 월성(月城)이장화(李章華) | + | 수극(壽極)이요 딸은 함창(咸昌) 김기조(金基祚)와 월성(月城) 이장화(李章華)에게 |
- | 에게 출가했으며 동증(東中)은 아들 하나와 딸 다섯을 두었으니 아들 수곤(壽 | + | 출가했으며 동중(東中)은 아들 하나와 딸 다섯을 두었으니 아들 수곤(壽坤)은 |
- | 坤)은 가선대부(嘉善大夫)의 품계로 부호군(副護軍) 벼슬을 했고 딸은 월성(月 | + | 가선대부(嘉善大夫)의 품계로 부호군(副護軍) 벼슬을 했고 딸은 월성(月城) |
- | 城)이응소(李應韶)와 진성(眞城)이도섭(李道燮)과 선성(宣城) 김낙원(金樂 | + | 이응소(李應韶)와 진성(眞城) 이도섭(李道燮)과 선성(宣城) 김낙원(金樂遠)과 |
- | 遠)과 반남(潘南) 박표증(朴標中)과 함창(咸昌) 김진대(金鎮大)에게 출가했으며 | + | 반남(潘南) 박표중(朴標中)과 함창(咸昌) 김진대(金鎭大)에게 출가했으며 |
- | 민증(敏中)은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두었으니 아들은 수종(壽鍾)과 수찬(壽瓚)과 | + | 민중(敏中)은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두었으니 아들은 수종(壽鍾)과 수찬(壽瓚)과 |
- | 수두(壽斗)이며 딸은 안동(安東) 권동하(權東夏)에게 출가했고 남은 자손은 | + | 수두(壽斗)이며 딸은 안동(安東) 권동하(權東夏)에게 출가했고, 남은 자손은 |
- | 록하지 않는다. 아! 공이 살던 세상은 멀어져서 묘(墓)가에 서 있는 나무가 | + | 기록하지 않는다. |
+ | |||
+ | \_아! 공이 살던 세상은 멀어져서 묘(墓)가에 서 있는 나무가 | ||
벌써 아름드리가 되었지만 묘도(墓道)에 비명(碑銘)을 아직도 세우지 못했으니 | 벌써 아름드리가 되었지만 묘도(墓道)에 비명(碑銘)을 아직도 세우지 못했으니 | ||
- | 후손 된 사람들이 공의 떳떳했던 행적(行跡)이 오래 될수록 쉽게 없어질까 | + | 후손된 사람들이 공의 떳떳했던 행적(行跡)이 오래 될수록 쉽게 없어질까 |
- | 려워서 장차 비석(碑石)을 다음어 묘도에 세울 계획으로 어느날 후손인 세명 | + | 두려워서 장차 비석(碑石)을 다듬어 묘도에 세울 계획으로 어느날 후손인 세명(世明)과 |
+ | 주손(主孫)인 기순(基舜)이 소백산 밑의 초가에 사는 나를 찾아와서 | ||
+ | 비문(碑文)에 나타낼 글을 지어 달라고 자못 청하는 지라. 내가 늙고 혼몽하여 | ||
+ | 사양했으나 그의 청(請)이 더욱 간절하여 감히 분수에 넘침을 잊고 드디어 | ||
+ | 차례대로 서술(敍述)하고 명(銘)을 말하노니\\ | ||
+ | \\ | ||
+ | 質禀純慤하고 타고난 천성이 순박하였고 \\ | ||
+ | 行篤倫常이라 행실은 인류(人倫)과 강상(綱常)에 독실했다. \\ | ||
+ | 績躬旣厚에\_ 몸에 쌓은 덕의(德義)가 이미 더터우니 \\ | ||
+ | 克世而昌이라 세상을 잘 살아 번창하였다.\\ | ||
+ | 嶷嶷西山이여 서산(西山) 같이 높고 높은 그 덕망은 \\ | ||
+ | 百世典型이라 백세(百世)를 내려가며 모범이 되겠네\\ | ||
+ | 鑱辭揭美하니 비석(碑石)에 말을 새겨 아름답게 나타내어\\ | ||
+ | 昭示無疆이라 천지가 무궁토록 밝게 표시(表示)하노라.\\ | ||
+ | \\ | ||
+ | \_\_조선(朝鮮)이 개국(開國)하여 아홉번째 무신년(서기 1968(一九六八)) 11(十一)월 갑자일에 | ||
+ | 족후손(族後孫)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 헌([土憲]) 삼가 짓다. | ||
+ | </ | ||
+ | </ | ||
- | (世明)과 주손(主孫)인 기순(基舜)이 소백산 밑의 초가에 사는 나를 찾아와서 | ||
- | 비문(碑文)에 나타낼 글을 지어 달라고 잘못 청하는 지라. 내가 늙고 혼몽하여 | ||
- | 사양했으나 그의 청(請)이 더욱 간절하여 감히 분수에 넘침을 잊고 드디어 차 | ||
- | 례대로 서술(敍述)하고 명(銘)을 말하노니 | ||
- | 타고난 천성이 순박하였고 행실은 인류(人倫)과 강상(綱常)에 독시했다. 몸에 | ||
- | 쌓은 덕의(德義)가 이미 더터우니 세상을 잘 살아 번창하였다. | ||
- | 서산(西山) 같이 높고 높은 그 덕망은 백세(百世)를 내려가며 모범이 되겠네 | ||
- | 비석(碑石)에 말을 새겨 아름답게 나타내어 천지가 무궁토록 밝게 표시(表示) | ||
- | 하노라。 | ||
- | 조선(朝鮮)이 개국(開國)하여 아홉번째 무신년(서기 一九六八) 十一월 갑자일에 | ||
- | 족후손(族後孫)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헌(憲) 삼가 짓다. |
b-082.1748229421.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6 12:17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