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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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황각민묘갈명(鶴고黃覺民墓碣銘)=== | ===학고황각민묘갈명(鶴고黃覺民墓碣銘)=== | ||
<WRAP 37em justify>< | <WRAP 37em justify>< | ||
- | <typo ff:' | + | <typo ff:' |
- | \_((鶴皐黃覺民墓碣銘**\\ | + | \_**鶴皐黃覺民墓碣銘**\\ |
- | 公諱는 覺民이요 字는 覺夫요 號는 鶴皐니 黃氏系出平海斗 新羅文武王朝에 | + | 公諱는 覺民이요 字는 覺夫요 號는 鶴皐니 黃氏系出平海라 新羅文武王朝에 |
漢學士諱洛이 爲始祖요 中世에 有諱瑞金紫光祿大夫以翊戴功으로 | 漢學士諱洛이 爲始祖요 中世에 有諱瑞金紫光祿大夫以翊戴功으로 | ||
陞縣爲郡 諡文節公이요 入 本朝에 有諱玉崇이 漢城判尹이요 | 陞縣爲郡 諡文節公이요 入 本朝에 有諱玉崇이 漢城判尹이요 | ||
- | 生諱輔坤이 生員이요 生諱瑀璃牧使요 生諱應淸 穆陵朝에 擧遺逸하야 | + | 生諱輔坤이 生員이요 生諱瑀牧使요 生諱應淸 穆陵朝에 擧遺逸하야 |
特除眞寶縣監하고 以孝行으로 旌閭하고 士林이 俎豆干明溪書院하야 | 特除眞寶縣監하고 以孝行으로 旌閭하고 士林이 俎豆干明溪書院하야 | ||
世稱大海先生이요 生諱有一이 號虎谷이니 輿從父兄海月公諱汝一로 | 世稱大海先生이요 生諱有一이 號虎谷이니 輿從父兄海月公諱汝一로 | ||
- | 早登鶴峯金先生門하야 克蒙奬詡하고 宣廟丁亥에 文科하야 未及拆號에 | + | 早登鶴峯金先生門하야 克蒙奬詡하고 宣廟丁亥에 文科하야 未及坼號에 |
- | 病卒旅邸러니 贈成均正字요 生諱中吉이니 宣務郞이요 生諱銃이요 | + | 病卒旅邸러니 贈成均正字요 生諱中吉이니 宣務郞이요 生諱銑이요 |
號春昭니 受業干百拙菴柳先生諱稷之門하야 大得師門奬許하고 | 號春昭니 受業干百拙菴柳先生諱稷之門하야 大得師門奬許하고 | ||
生諱命老號百拙齋요 生諱는 世平이니 有隱德하고 妣는 安東權氏處士任巽女요 | 生諱命老號百拙齋요 生諱는 世平이니 有隱德하고 妣는 安東權氏處士任巽女요 | ||
- | 思復齋定后斗 以英宗癸卯十月十五日에 生公于傳道村第하니 聰穎하야 | + | 思復齋定后라 以 英宗癸卯十月十五日에 生公于傳道村第하니 聰穎하야 |
不與群兒로 遊嬉하야 未成童에 儼然有成人儀러니 | 不與群兒로 遊嬉하야 未成童에 儼然有成人儀러니 | ||
及長에 受學于祖考할새 潛心體認하야 孜孜不怠하고 在親側에 應唯敬對하야 | 及長에 受學于祖考할새 潛心體認하야 孜孜不怠하고 在親側에 應唯敬對하야 | ||
줄 29: | 줄 29: | ||
敏中이 生三男一女하니 男에 壽鍾壽瓚壽斗요 女는 | 敏中이 生三男一女하니 男에 壽鍾壽瓚壽斗요 女는 | ||
安東權東夏라 餘不錄하노라 鳴呼라 公之世遠矣라 墓木이 己拱호데 | 安東權東夏라 餘不錄하노라 鳴呼라 公之世遠矣라 墓木이 己拱호데 | ||
- | 隧道之銘을 尙未遑하니 爲後承이 懼懿跡之久易沈泯하야 將伐石侈其美門할새 | + | 隧道之銘을 尙未遑하니 爲後承이 懼懿跡之久易沈泯하야 將伐石侈其羨門할새 |
- | 曰에 後孫世明과 主孫基舜甫가 過慮於小山草廬하야 謬請顯刻之文한대 辭以耄荒호대 | + | 曰에 後孫世明과 主孫基舜甫가 過<fc # |
其請이 益墾이라 敢忘其僭越하고 遂敍次爲之銘曰 質禀純慤하고 行篤倫常이라 | 其請이 益墾이라 敢忘其僭越하고 遂敍次爲之銘曰 質禀純慤하고 行篤倫常이라 | ||
績躬旣厚에 克世而昌이라 | 績躬旣厚에 克世而昌이라 | ||
줄 43: | 줄 43: | ||
학고(鶴皐)이니 평해(平海)에서 세계(世系)가 나온 황씨(黃氏)이다. | 학고(鶴皐)이니 평해(平海)에서 세계(世系)가 나온 황씨(黃氏)이다. | ||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때에 한(漢)나라의 학사(學士)였던 휘(諱) 낙(洛)이 |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때에 한(漢)나라의 학사(學士)였던 휘(諱) 낙(洛)이 | ||
- | 시조(始祖)가 되며 | + | 시조(始祖)가 되며 |
익대공신(翊戴功臣)이었기 때문에 평해현(平海縣)을 군(郡)으로 승호(陞號)하도록 | 익대공신(翊戴功臣)이었기 때문에 평해현(平海縣)을 군(郡)으로 승호(陞號)하도록 | ||
했으며 시호(諡號)는 문절공(文節公)이다.\\ | 했으며 시호(諡號)는 문절공(文節公)이다.\\ | ||
- | \_조선시대(朝鮮時代)에 들어와서 휘(諱) 옥승(玉崇)은 벼슬이 한성판윤(漢城判尹)이었고 | + | \_조선시대(朝鮮時代)에 들어와서 휘(諱) 옥숭(玉崇)은 벼슬이 한성판윤(漢城判尹)이었고 |
아들은 휘(諱)가 우(瑀)이니 목사(牧使) 벼슬을 했으며 아들의 휘는 | 아들은 휘(諱)가 우(瑀)이니 목사(牧使) 벼슬을 했으며 아들의 휘는 | ||
- | 응청(應清)이니 선조(宣祖)때의 유일(遺逸)로 천거(薦擧)되여 특별히 진보현감(眞寶縣監)이 | + | 응청(應淸)이니 선조(宣祖) 때의 유일(遺逸)로 천거(薦擧)되여 특별히 진보현감(眞寶縣監)이 |
제수(除授)되었으며 효행(孝行)으로 정려(旌閭)가 내리고 | 제수(除授)되었으며 효행(孝行)으로 정려(旌閭)가 내리고 | ||
사림(士林)에서 명계서원(明溪書院)에 제향(祭享)하고 있는데 이 분이 세상에서 | 사림(士林)에서 명계서원(明溪書院)에 제향(祭享)하고 있는데 이 분이 세상에서 | ||
줄 92: | 줄 92: | ||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증직(贈職)되었고 건중(建中)과 치중(致中)과 범중(範中)이 |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증직(贈職)되었고 건중(建中)과 치중(致中)과 범중(範中)이 | ||
있으며 딸은 월성(月城) 이창룡(李昌龍)에게 출가했고 동필(東弼)은 아들 둘과 | 있으며 딸은 월성(月城) 이창룡(李昌龍)에게 출가했고 동필(東弼)은 아들 둘과 | ||
- | 딸 둘을 두었으니 아들 이중(履中)은 동간(東幹)에게 출계(出系)했고 아들 | + | 딸 둘을 두었으니 아들 이중(履中)은 동간(東幹)에게 출계(出系)했고 아들 |
- | 중(敏中)이 있으며 딸은 인동(仁同) 장심구(張審矩)와 야성(冶城) 송정용(宋鼎鎔)에게 출가했다.\\ | + | 민중(敏中)이 있으며 딸은 인동(仁同) 장심구(張審矩)와 야성(冶城) 송정용(宋鼎鎔)에게 출가했다.\\ |
\_이중(履中)은 아들 셋과 딸 둘을 두었으니 아들은 수범(壽範)과 수기(壽箕)와 | \_이중(履中)은 아들 셋과 딸 둘을 두었으니 아들은 수범(壽範)과 수기(壽箕)와 | ||
줄 100: | 줄 100: | ||
가선대부(嘉善大夫)의 품계로 부호군(副護軍) 벼슬을 했고 딸은 월성(月城) | 가선대부(嘉善大夫)의 품계로 부호군(副護軍) 벼슬을 했고 딸은 월성(月城) | ||
이응소(李應韶)와 진성(眞城) 이도섭(李道燮)과 선성(宣城) 김낙원(金樂遠)과 | 이응소(李應韶)와 진성(眞城) 이도섭(李道燮)과 선성(宣城) 김낙원(金樂遠)과 | ||
- | 반남(潘南) 박표증(朴標中)과 함창(咸昌) 김진대(金鎭大)에게 출가했으며 | + | 반남(潘南) 박표중(朴標中)과 함창(咸昌) 김진대(金鎭大)에게 출가했으며 |
민중(敏中)은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두었으니 아들은 수종(壽鍾)과 수찬(壽瓚)과 | 민중(敏中)은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두었으니 아들은 수종(壽鍾)과 수찬(壽瓚)과 | ||
- | 수두(壽斗)이며 딸은 안동(安東) 권동하(權東夏)에게 출가했고 남은 자손은 | + | 수두(壽斗)이며 딸은 안동(安東) 권동하(權東夏)에게 출가했고, 남은 자손은 |
기록하지 않는다. \\ | 기록하지 않는다. \\ | ||
\_아! 공이 살던 세상은 멀어져서 묘(墓)가에 서 있는 나무가 | \_아! 공이 살던 세상은 멀어져서 묘(墓)가에 서 있는 나무가 | ||
벌써 아름드리가 되었지만 묘도(墓道)에 비명(碑銘)을 아직도 세우지 못했으니 | 벌써 아름드리가 되었지만 묘도(墓道)에 비명(碑銘)을 아직도 세우지 못했으니 | ||
- | 후손 된 사람들이 공의 떳떳했던 행적(行跡)이 오래 될수록 쉽게 없어질까 | + | 후손된 사람들이 공의 떳떳했던 행적(行跡)이 오래 될수록 쉽게 없어질까 |
두려워서 장차 비석(碑石)을 다듬어 묘도에 세울 계획으로 어느날 후손인 세명(世明)과 | 두려워서 장차 비석(碑石)을 다듬어 묘도에 세울 계획으로 어느날 후손인 세명(世明)과 | ||
주손(主孫)인 기순(基舜)이 소백산 밑의 초가에 사는 나를 찾아와서 | 주손(主孫)인 기순(基舜)이 소백산 밑의 초가에 사는 나를 찾아와서 | ||
줄 113: | 줄 113: | ||
사양했으나 그의 청(請)이 더욱 간절하여 감히 분수에 넘침을 잊고 드디어 | 사양했으나 그의 청(請)이 더욱 간절하여 감히 분수에 넘침을 잊고 드디어 | ||
차례대로 서술(敍述)하고 명(銘)을 말하노니\\ | 차례대로 서술(敍述)하고 명(銘)을 말하노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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質禀純慤하고 타고난 천성이 순박하였고 \\ | 質禀純慤하고 타고난 천성이 순박하였고 \\ | ||
行篤倫常이라 행실은 인류(人倫)과 강상(綱常)에 독실했다. \\ | 行篤倫常이라 행실은 인류(人倫)과 강상(綱常)에 독실했다. \\ | ||
줄 122: | 줄 122: | ||
鑱辭揭美하니 비석(碑石)에 말을 새겨 아름답게 나타내어\\ | 鑱辭揭美하니 비석(碑石)에 말을 새겨 아름답게 나타내어\\ | ||
昭示無疆이라 천지가 무궁토록 밝게 표시(表示)하노라.\\ | 昭示無疆이라 천지가 무궁토록 밝게 표시(表示)하노라.\\ | ||
- | 조선(朝鮮)이 개국(開國)하여 아홉번째 무신년(서기 1968(一九六八)) 11(十一)월 갑자일에 | + | \\ |
+ | \_\_조선(朝鮮)이 개국(開國)하여 아홉번째 무신년(서기 1968(一九六八)) 11(十一)월 갑자일에 | ||
족후손(族後孫)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 헌([土憲]) 삼가 짓다. | 족후손(族後孫)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 헌([土憲]) 삼가 짓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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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82.1748562107.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30 08:41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