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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84 [2025/05/30 19:34] ssio2b-084 [2025/06/07 07:14] (현재) ssio2
줄 14: 줄 14:
 考諱는 應淸이니 以孝로 聞於朝하야 命棹楔後로 以弓旌超하고  考諱는 應淸이니 以孝로 聞於朝하야 命棹楔後로 以弓旌超하고 
 授通訓大夫眞寶縣監하니 即世稱大海先生也라 妣는 蔚珍張氏니 授通訓大夫眞寶縣監하니 即世稱大海先生也라 妣는 蔚珍張氏니
-江界府使伯孫之子漢輔之女斗 嘉靖丙寅에 擧公于正明先第하야 犀角이+江界府使伯孫之子漢輔之女라 嘉靖丙寅에 擧公于正明先第하야 犀角이
 豐滿하고 聰識이 絶倫하며 甫上學에 不煩提督而曉解文義하니  豐滿하고 聰識이 絶倫하며 甫上學에 不煩提督而曉解文義하니 
 八九歲時에 先大海公이 呼韻命賦하시면 公이 應口輒對에 句法이 警絶하니 八九歲時에 先大海公이 呼韻命賦하시면 公이 應口輒對에 句法이 警絶하니
줄 21: 줄 21:
 聲譽大噪러라 審에 移居于寧海元邱하니 鄕士爭相揖而願交하며 長道以軸으로  聲譽大噪러라 審에 移居于寧海元邱하니 鄕士爭相揖而願交하며 長道以軸으로 
 遇坎而蹶于하고 霄之木이 觸雷而折하니 實丁亥三月三日이라  遇坎而蹶于하고 霄之木이 觸雷而折하니 實丁亥三月三日이라 
-見于世纔二十二라 實蹟이 載寧海府誌하다 其也에 遠近士友가+見于世纔二十二라 實蹟이 載寧海府誌하다 其也에 遠近士友가
 爭執挽謀而悼之하니 公之見慕於人者多類此러라 配務安朴氏參議世淳의 女니  爭執挽謀而悼之하니 公之見慕於人者多類此러라 配務安朴氏參議世淳의 女니 
 無育하야 以仲兄子中美로 爲嗣하고 女는 金是相이라 墓는 無育하야 以仲兄子中美로 爲嗣하고 女는 金是相이라 墓는
-在虎田先下雙封이라 於乎라 公以篤厚之資와 超邁遇之才로 若久於世면 +在虎田先下雙封이라 於乎라 公以篤厚之資와 超邁遇之才로 若久於世면 
 大可以法宮之賞이요 小可以扶世敎淑人心이은마는 而乃瑞草琦花之朝榮暮悴는  大可以法宮之賞이요 小可以扶世敎淑人心이은마는 而乃瑞草琦花之朝榮暮悴는 
 又何也오 昔에 王子安李長吉數君은 雖早世하야 爲可寃이나  又何也오 昔에 王子安李長吉數君은 雖早世하야 爲可寃이나 
 而膝閣高軒之文으로 膾炙人口하니 寃可洩也라 而公則無零之瑙句之箱麓하야  而膝閣高軒之文으로 膾炙人口하니 寃可洩也라 而公則無零之瑙句之箱麓하야 
-無以供球璧之玩하니 是亦重可悲也오 且仍이 中贊하야 +無以供球璧之玩하니 是亦重可悲也오 且仍이 中贊하야 
 至八世孫敎旭號宿巖이 有誠孝特行하니 邑倅가 使臺로 交章褒啓라  至八世孫敎旭號宿巖이 有誠孝特行하니 邑倅가 使臺로 交章褒啓라 
-有七子하니 溶澯이요 十二世孫石英은 文而世其家者也 +有七子하니 [氵奎][氵壁][氵軫]溶澯이요 十二世孫石英은 文而世其家者也오 
 中英正英喆英極英斗英達英浩英壽英舜英智英德英澤英은 各房子也요  中英正英喆英極英斗英達英浩英壽英舜英智英德英澤英은 各房子也요 
 十二世孫暾子載塤은 其世嫡也라 遂爲銘하노니 銘曰 敻想黃公은  十二世孫暾子載塤은 其世嫡也라 遂爲銘하노니 銘曰 敻想黃公은 
-麗鮮族이라 海爺賢庭이요 月翁同塾이라 胡門侃은 柳氏家法이라  +麗鮮族이라 海爺賢庭이요 月翁同塾이라 胡門侃은 柳氏家法이라  
-三棣交輝에 六經是嚼이라 其來有爲러니 其去何고 惟虎之原은 +三棣交輝에 六經是嚼이라 其來有爲러니 其去何고 惟虎之原은 
 瀧崗之麓이라 焰紫淑氣가 繞封不熄이라 我銘玄石하니 永來百世이라\\ 瀧崗之麓이라 焰紫淑氣가 繞封不熄이라 我銘玄石하니 永來百世이라\\
 \_\_漢陽趙獻基謹撰 \_\_漢陽趙獻基謹撰
줄 44: 줄 44:
 \_곧 기성(箕城縣의 서쪽 호전(虎田) 임방(壬方)을 등진 둔덕에 봉분(封墳)이 \_곧 기성(箕城縣의 서쪽 호전(虎田) 임방(壬方)을 등진 둔덕에 봉분(封墳)이
 우뚝한 것이 있으니 이것은 처사(處士) 황공(黃公)의 무덤인데 비문(碑文)이 우뚝한 것이 있으니 이것은 처사(處士) 황공(黃公)의 무덤인데 비문(碑文)이
-불비하여 평생의 이력(履歷)을 증명할 근거가 없으니 그의 세손(十世孫)인 +불비하여 평생의 이력(履歷)을 증명할 근거가 없으니 그의 10세손(十世孫)인 
-정영(正英)이 이것을 두려워하여 여러 종중(宗中)사람에게 물어보고 장차 비 +정영(正英)이 이것을 두려워하여 여러 종중(宗中)사람에게 물어보고 장차 비석(碑石)을  
-석(碑石)을 세우기 위해 비명(碑銘)의 글을 잘못 나에게 책임 지우는 지라. +세우기 위해 비명(碑銘)의 글을 잘못 나에게 책임 지우는 지라. 
 생각해 보니 내가 나이도 많고 정신도 산만하여 감히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할  생각해 보니 내가 나이도 많고 정신도 산만하여 감히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할 
 듯하며 세의(世誼)로 보아서도 글이 짧은 것으로 또한 끝내 사양했으나 할 수 없어서 듯하며 세의(世誼)로 보아서도 글이 짧은 것으로 또한 끝내 사양했으나 할 수 없어서
줄 63: 줄 63:
 \_이로부터 우리나라의 드러난 문벌(門閥)이 되어 혹은 문학(文學)과 행의(行義)가 \_이로부터 우리나라의 드러난 문벌(門閥)이 되어 혹은 문학(文學)과 행의(行義)가
 독실했고 혹은 높은 관작(官爵)과 과거(科擧)에서 장원(壯元)의 영광(榮光)을 독실했고 혹은 높은 관작(官爵)과 과거(科擧)에서 장원(壯元)의 영광(榮光)을
-누렸으니 공에게는 증조(曾祖) 이상 6세(世)이다.\\+누렸으니공에게는 증조(曾祖) 이상 6세(世)이다.\\
  
 \_조부(祖父)의 휘(諱)는 우(瑀)이니 성주목사(星州牧使)를 지냈고 아버지의 휘 \_조부(祖父)의 휘(諱)는 우(瑀)이니 성주목사(星州牧使)를 지냈고 아버지의 휘
줄 82: 줄 82:
 이 아이와 너의 아이 중윤(中允)이 모두 같은 또래 중에서 재주가 특출하니  이 아이와 너의 아이 중윤(中允)이 모두 같은 또래 중에서 재주가 특출하니 
 후일에 우리 가문(家門)을 크게 넓힐 희망이 이 아이들에게 있다고 말했다.  후일에 우리 가문(家門)을 크게 넓힐 희망이 이 아이들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로부터 글 재주가 날마다 달라져서 명성(名聲)이 크게 떠들석 했으며 학문이  +이로부터 글 재주가 날마다 달라져서 명성(名聲)이 크게 떠들썩 했으며 학문이  
-한 뒤에 영해(寧海)의 원구(元邱)에 집을 옮겨 사니 영해(寧海)의 선비들이+한 뒤에 영해(寧海)의 원구(元邱)에 집을 옮겨 사니 영해(寧海)의 선비들이
 서로 읍(揖)하며 친교(親交)를 맺기를 원하여 장래가 촉망되는 발걸음이었는데  서로 읍(揖)하며 친교(親交)를 맺기를 원하여 장래가 촉망되는 발걸음이었는데 
 액운(厄運)을 만나 병이 들어 요절(夭折)했으니 실로 정미년 3(三)월 초3(三)일이며  액운(厄運)을 만나 병이 들어 요절(夭折)했으니 실로 정미년 3(三)월 초3(三)일이며 
줄 90: 줄 90:
 실려있다.\\ 실려있다.\\
  
-\_그를 장사 지낼 때에 원근(遠近)에 사는 선비 벗들이 다투어 만사(挽詞)와 +\_그를 장숙 지낼 때에 원근(遠近)에 사는 선비 벗들이 다투어 만사(挽詞)와 
 제문(祭文)을 지어 그의 죽음을 애도(哀悼)했으니 공이 남들로부터 존모(尊慕)의 제문(祭文)을 지어 그의 죽음을 애도(哀悼)했으니 공이 남들로부터 존모(尊慕)의
 대상이었음이 모두 이러했다.\\ 대상이었음이 모두 이러했다.\\
줄 116: 줄 116:
 군수(郡守)가 조정에 포장(褒奬)이 내리도록 장계(狀啓)를 올렸다.\\ 군수(郡守)가 조정에 포장(褒奬)이 내리도록 장계(狀啓)를 올렸다.\\
  
-\_아들이 일곱 사람 있으니 규()와 기()와 벽()과 익(瀷)과 진()과 용(溶)과 +\_아들이 일곱 사람 있으니 규([氵奎])와 기([氵箕])와 벽([氵壁])과 익(瀷)과 진([氵軫])과 용(溶)과 
-찬()이요 세손(十世孫)인 석영(石英)은 문학(文學)으로 그 가문(家門)의 +찬()이요 10세손(十世孫)인 석영(石英)은 문학(文學)으로 그 가문(家門)의 
-대(代)를 이은 사람이며(中英)과 정영(正英)과 철영(喆英)과 극영(極英)과  +대(代)를 이은 사람이며 중영(中英)과 정영(正英)과 철영(喆英)과 극영(極英)과  
-영(斗英)과 달영(達英)과 호영(浩英)과 수영(壽英)과 순영(舜英)과 지영(智英) +영(斗英)과 달영(達英)과 호영(浩英)과 수영(壽英)과 순영(舜英)과 지영(智英)과  
-과 덕영(德英)과 태영(澤英)은 각집의 아들이요 십이세손(十二世孫) 돈(暾)의 +덕영(德英)과 태영(澤英)은 각 집의 아들이요 12세손(十二世孫) 돈(暾)의 
-아들 재훈(載塤)이 그의 적손(嫡孫)이다. +아들 재훈(載塤)이 그의 적손(嫡孫)이다.\\
-드디어 명(銘)을 하노니 명(銘)에 가로대 멀리 생각하오니 황공(黃公)께서는 +
-고려와 조선조(朝鮮朝)에 번성했던 씨족이라. 대해선생(大海先生)의 어진 아 +
-들로 태어나고 해월공(海月公)과 같은 학당에서 글을 배웠다. +
-호문(胡門)에 화기롭고 강직한 것은 당나라 류비(柳玭)의 가훈(家訓)이었다. +
-삼형제가 서로 배움에 힘쓰니 육경(六經)의 글을 모두 익혔다. +
-타고난 재질(質)은 세상에 쓰일 것인데 죽음으로 가는 길은 어이 그리 빨랐던 고 +
-오직 호전(虎田)의 임좌(壬坐) 둔덕은 선대(先代)의 분영(墳塋)이 있는 산록+
  
-이다. +\_드디어 명(銘)을 하노니 명(銘)에 가로대 \\ 
-붉게 타오르는 맑은 기운이 봉분(封墳)을 둘러 싸고 멈추지 않네 검은 비(碑) +柳氏家法라  
-돌에 내가 명(銘)을 하노니 백세(百世)토록 영원히 전해지리라 +三棣交輝에 六經是嚼이라 其來有爲러니 其去何倐고 惟虎之原은  
-한양(漢陽) 조헌기(趙獻基) 삼가 짓다. +瀧崗之麓이라 焰紫淑氣가 繞封不熄이라 我銘玄石하니 永來百世이라\\ 
-註一。王 勃:唐代의 詩人字는子安詞藻가 奇鹿하여 四傑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交趾로 가는 +\\ 
-길에 南昌에 들러 都督閻伯嶼를 위하여 지은 滕王閣序는 有名하다. +敻想黃公은\_ 멀리 생각하오니 황공(黃公)께서는\\ 
-二。李長吉: 唐나라 宗室의 人士李賀의 字이며 詩文이 特出하였으나 二十七로 夭折했다. +麗鮮嘸族이라 고려와 조선조(朝鮮朝)에 번성했던 씨족이라. \\ 
-三。의 家訓: 唐나라 때의 名門의 子孫小學外篇에 있는 柳氏家訓을 지은 사람+海爺賢庭이요 대해선생(大海先生)의 어진 아들로 태어나고 \\ 
 +月翁同塾이라 해월공(海月公)과 같은 학당에서 글을 배웠다.\\ 
 +胡門誾侃은\_ 호문(胡門)에 화기롭고 강직한 것은 \\ 
 +柳氏家法이라 당나라 유비(柳玭)의 가훈(家訓)이었다.\\ 
 +三棣交輝에\_ 삼형제가 서로 배움에 힘쓰니 \\ 
 +六經是嚼이라 육경(六經)의 글을 모두 익혔다.\\ 
 +其來有爲러니 타고난 재질(才質)은 세상에 쓰일 것인데 \\ 
 +其去何倐고\_ 죽음으로 가는 길은 어이 그리 빨랐던고\\ 
 +惟虎之原은\_ 오직 호전(虎田)의 임좌(壬坐) 둔덕은 \\ 
 +瀧崗之麓이라 선대(先代)의 분영(墳塋)이 있는 산록이다.\\ 
 +焰紫淑氣가\_ 붉게 타오르는 맑은 기운이 \\ 
 +繞封不熄이라 봉분(封墳)을 둘러 싸고 멈추지 않네 \\ 
 +我銘玄石하니 검은 비(碑) 돌에 내가 명(銘)을 하노니 \\ 
 +永來百世이라 백세(百世)토록 영원히 전해지리라.\\ 
 +\\ 
 +\_\_한양(漢陽) 조헌기(趙獻基) 삼가 짓다.\\ 
 +\\ 
 +<WRAP subnote> 
 +주1. 왕발(王勃)당대(唐代)의 시인(詩人). 자()는 자안(子安). 사조(詞藻)가 기록(奇鹿)하여 4걸(四傑)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교지(交趾)로 가는 길에 남창(南昌)에 들러 도독(都督) 염백서(閻伯嶼)를 위하여 지은 등왕각서(滕王閣序)가 유명(有名)하다.\\ 
 + 
 +주2. 이장길(李長吉)당()나라 종실(宗室)의 인사(人士) 이하(李賀)의 자()이며 시문(詩文)이 특출(特出)하였으나 27(二十七)세로 요절(夭折)했다.\\ 
 + 
 +주3. 유비(玭)의 가훈(家訓)당()나라 때의 명문(名門)의 자손(子孫). 소학(小學) 외편(外篇)에 있는 유씨가훈(柳氏家訓)을 지은 사람
 +</WRAP>
 </typo> </typo>
 </WRAP> </WRAP>
b-084.1748601245.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30 19:34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