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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13 [2025/05/27 20:57] ssio2b-113 [2025/06/03 22:45]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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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海黃氏 文節公派譜 乙亥刊行跋 +===평해황씨 문절공파보 을해간행 발(平海黃氏文節公派譜乙亥刊行跋)=== 
- +<WRAP 37em justify> 
-平海黃氏 文節公派譜 乙亥刊行跋 +<typo ff:'한양해서'; fs:1.2em; lh:1.5em> 
-族譜라고 하면 뿌리를 聯想케 한다. 世上萬物이 다 根源이 있듯이 人間에게도 +\_**평해황씨(平海黃氏) 문절공파보(文節公派譜) 을해(乙亥) 간행발(刊行跋)**\\ 
-그 根本인 뿌리가 있는 法。 그 뿌리는 깊어야 한다. 龍飛御天歌에 뿌리 깊은+\_족보(族譜)라고 하면 뿌리를 연상(聯想)케 한다. 세상만물(世上萬物)이 다 근원(根源)이 있듯이 인간(人間)에게도 
 +그 근본(根本)인 뿌리가 있는 법(). 그 뿌리는 깊어야 한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끊이지를 않는다고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끊이지를 않는다고
-했으니 모든 것이 얕아서는 別로 神通함이 없다는 것이리라 +했으니 모든 것이 얕아서는 별()로 신통(神通)함이 없다는 것이리라.\\ 
-우리 黃氏의 깊은 뿌리는 古代 中國 顓頊 皇帝의 玄孫 陸終이 顧命 皇帝로서 + 
-黃이란 땅에 奉해져 中國三皇中 한 분이 되어 黃帝 軒轅氏라 하였고 그 五世孫 +\_우리 황씨(黃氏)의 깊은 뿌리는 고대(古代) 중국(中國) 전욱(顓頊) 황제(皇帝)의 현손(玄孫) 육종(陸終)이 고명(顧命) 황제(皇帝)로서 
-西의 아드님 矯·宏·叔·季 四兄弟分中 둘째 아드님이신 宏이 또 아드님  +황()이란 땅에 봉()해져 중국(中國) 3황(三皇) 중(한 분이 되어 황제헌원(黃帝軒轅)씨()라 하였고 그 5세손(五世孫) 
-兄弟를 는데 海·洛·湖 三兄弟分中 둘째 아드님이신 洛가 新羅 儒理王 五 +서패(西霸)의 아드님 교()·굉()·숙()·계() 4형제분(四兄弟分) 중()  둘째 아드님이신 굉()이 또 아드님  
-年(漢光武帝建武四年)에 使臣으로 交國에 가던 中 風浪을 만나 漂流中 平 +3형제(三兄弟)를 두었는데 해()·낙()·호() 3형제분(三兄弟分) 중(둘째 아드님이신 낙()<fs:0.7em>字</fs>가 신라(新羅) 유리왕(儒理王) 5년(五年)(한 광무제 건무 4년(漢光武帝建武四年))에 사신(使臣)으로 교지국()에 가던 중() 풍랑(風浪)을 만나 표류(漂流) 중() 평해(平海땅에 상륙(上陸)하여 자리를 잡았으며 다시 그 후세(後世) 갑고(甲古)(평해(平海)), 을고(乙古)(장수(長水)), 병고(丙古)(창원(昌原)) 3형제분(三兄弟分) 중(그 맏 분()이신 갑고(甲古)의 후손(後孫) 고려조(高麗朝) 관지(官至) 금오장군(金吾將軍) 태자검교(太子檢敎) 
-海땅에 上陸하여 자리를 잡았으며 다시 그 後世甲古(平海)乙古(長水) +온<fs:0.7em>字</fs>인<fs:0.7em>字</fs>(<fs:0.7em></fs><fs:0.7em></fs>)를 중시조(中始祖) 1세(一世)로 하여 2세(二世)가 고려조(高麗祖) 관지(官至) 군기소윤(軍器少尹) 우<fs:0.7em>字</fs>정<fs:0.7em>字</fs>(<fs:0.7em>字</fs><fs:0.7em>字</fs>)요 3세(三世)가 
-古(昌原)三兄弟分中 그 말 分이신 甲古의 後孫 高麗朝 官至 金吾將軍太子檢敎 +고려조(高麗朝) 관지(官至) 문하시중(門下侍中) 유<fs:0.7em>字</fs>중<fs:0.7em>字</fs>(<fs:0.7em>字</fs><fs:0.7em></fs>)이시고 그 아드님이신 4세(四世) 고려조(高麗朝) 관지(官至) 검교(檢敎) 군기감(軍器監) 진<fs:0.7em>字</fs>(<fs:0.7em></fs>)이시며 고려조(高麗朝) 관지(官至)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금어대첨의평리(金魚袋僉議評理) 문하시중(門下侍中) 시() 문절(文節) 서<fs:0.7em>字</fs>(<fs:0.7em></fs>)요 고려조(高麗朝) 관지(官至) 숭록대부(崇祿大夫)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 시() 충경(忠敬) 용<fs:0.7em></fs>(𤨭<fs:0.7em>字</fs>)로 3형제분(三兄弟分) 중(둘째 분()이신 
-溫字仁字를 中始祖一世로 하여 二世가 高麗祖 官至軍器少尹 佑요 三世가 +문절공(文節公) 서<fs:0.7em>字</fs>(<fs:0.7em>字</fs>) 이후(以後) 30여대(三十餘代가까이 지나 왔으니 자손(子孫)도 번창(繁昌)했고 효제충신(孝悌忠信) 
-高麗朝 官至 門下侍中 裕中字이시고 그 아드님이신 四世 高麗朝 官至 檢敎 + 
-軍器監 璡字이시며 高麗朝 官至 金紫光祿大夫 金魚袋僉議評理門下侍中諡文節瑞 +많은 인물(人物)이 배출(輩出)되었도다.\\ 
-字요 高麗朝官至崇祿大夫 三重大匡輔國 諡忠敬 字로 三兄弟分中 둘째 分이신 + 
-文節公 瑞以後 三十餘代 가까이 지나 왔으니 子孫도 繁昌했고 孝悌忠信의+\_병진(丙辰) 대동보(大同譜)를 발간(發刊)한 지는 19년(十九年) 밖에 되지 않았으나 문절공파보(文節公派譜)는 기해년(己亥年) 이후(以後) 
 +처음 간행(刊行)하게 되는 것이니 36년(三十六年)만이다.\\
  
-많은 人物이 輩出되었도다. +\_무릇 족보(族譜)란 30년(三十年)을 한 대()로 하여 가시는 조상부모(祖上父母)와 새로 태어나는 자손(子孫)을 
-丙辰 大同譜를 發刊한 지는 十九年밖에 되지 않았으나 文節公派譜는 己亥年以後 +기록(記錄)하여 그 번성(繁盛)함과 청사(靑史)에 길이 남을 훌륭한 선조(先祖)의 사적(業績) 등() 위대(偉大)한 오성(吾姓)의 
-처음 刊行하게 되는 것이니 三十六年만이다. +유구(悠久)한 역사(歷史)를 기록(記錄)하고 그 뿌리를 잃지 않으려 함이니 모쪼록 30년(三十年)마다 한 
-무릇 族譜란 三十年을 한 代로 하여 가시는 祖上父母와 새로 태어나는 子孫을 +번씩 수보(修譜)하는 족보(族譜)에 누보(漏譜)되는 자손(子孫)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懇切)하고 우리의 
-記錄하여 그 繁盛함과 靑史에 길이 남을 훌륭한 先祖의 業績等 偉大한 吾姓의 +깊은 뿌리에 장()하신 선조(先祖)들의 족적(足跡)을 따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함으로써 모두가 
-悠久한 歷史를 記錄하고 그 뿌리를 잃지 않으려 함이니 모쪼록 三十年마다 한 +다 같이 우리 가문(家門)을 빛내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번씩 修譜하는 族譜에 漏譜되는 子孫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懇切하고 우리의 +
-깊은 뿌리에 壯하신 先祖들의 足跡을 따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함으로써 모두가 +
-다 같이 우리 家門을 빛내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
-뿌리를 알고 父母祖上께 孝行을 할 줄 알아야 바른 道理와 바른 行實이 나올 +
-수 있는 法이니 이제 完成된 우리 族譜를 머리맡에 두고 우리의 깊은 뿌리를 +
-익히는데 다같이 努力해야 할 것이다. +
-끝으로 子子孫孫千秋萬代의 永遠한 繁榮을 祝願하며 이 族譜가 完成될 때까지의 +
-譜所 任員 諸位의 많은 勞苦에 깊은 感謝를 드린다. +
-平海黃氏世譜 +
-歲 一九九五年 乙亥 暢月 上浣後裔孫義錫 謹書+
  
 +\_뿌리를 알고 부모조상(父母祖上)께 효행(孝行)을 할 줄 알아야 바른 도리(道理)와 바른 행실(行實)이 나올
 +수 있는 법(法)이니 이제 완성(完成)된 우리 족보(族譜)를 머리 맡에 두고 우리의 깊은 뿌리를
 +익히는데 다같이 노력(努力)해야 할 것이다.\\
  
 +\_끝으로 자자손손(子子孫孫) 천추만대(千秋萬代)의 영원(永遠)한 번영(繁榮)을 기원(祝願)하며 이 족보(族譜)가 
 +완성(完成)될 때까지의
 +보소(譜所) 임원(任員) 제위(諸位)의 많은 노고(勞苦)에 깊은 감사(感謝)를 드린다.\\
 +\_\_세(歲) 1995년(一九九五年) 을해(乙亥) 창월(暢月) 상완(上浣) 후예손(後裔孫) 의석(義錫) 근서(謹書)
 +</typo>
 +</WRAP>
b-113.1748347055.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7 20:57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