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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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16 [2025/06/04 09:32] – ssio2 | b-116 [2025/06/07 07:08] (현재) – ssio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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力有以制動也鵝溪歎服著正明村記以自警海月虎谷二先生并華於堂廡 | 力有以制動也鵝溪歎服著正明村記以自警海月虎谷二先生并華於堂廡 | ||
之間莫非先生勳德之深則家庭授受之詇豈不章章衣哉先生役後鄕人士 | 之間莫非先生勳德之深則家庭授受之詇豈不章章衣哉先生役後鄕人士 | ||
- | 立祠于明溪書院系以銘曰東海箕城淑氣磅礴種靈毓秀哲人廼作不自師 | + | 立祠于明溪書院系以銘曰東海箕城淑氣磅礴種靈毓秀哲人迺作不自師 |
- | 承得于天性善言善行莫非主靜觧紱歸來潜心經籍莊敬日强進修宋篤富 | + | 承得于天性善言善行莫非主靜解紱歸來潜心經籍莊敬日强進修宋篤富 |
貴嬉嬉潤槃適軸棹楔煒煌俎豆靜庸遺風不洙仰止彌屹惟虎之厓松杉蒼 | 貴嬉嬉潤槃適軸棹楔煒煌俎豆靜庸遺風不洙仰止彌屹惟虎之厓松杉蒼 | ||
- | 欝樂石嵯峨有崒其宮敬作銘詩用告無窮\\ | + | 鬱樂石嵯峨有崒其宮敬作銘詩用告無窮\\ |
\_\_仁同後人張建德謹撰 | \_\_仁同後人張建德謹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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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61: | 줄 61: | ||
세명(世明)과 종제(從弟)인 윤곤(允坤)군으로 하여금 행적(行蹟)을 | 세명(世明)과 종제(從弟)인 윤곤(允坤)군으로 하여금 행적(行蹟)을 | ||
적은 글을 가지고 와서 나 건덕(建德)에게 비명(碑銘)을 지어 달라고 청하는지라. | 적은 글을 가지고 와서 나 건덕(建德)에게 비명(碑銘)을 지어 달라고 청하는지라. | ||
- | 오직 나와 같은 만생(晩生)도 공(公)이 후세에 남긴 교회(敎化)와 멀리 | + | 오직 나와 같은 만생(晩生)도 공(公)이 후세에 남긴 교화(敎化)와 멀리 |
- | 전해오는 덕업(德業)을 들을 수 있어써 높이 앙모(仰慕)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 + | 전해오는 덕업(德業)을 들을 수 있어서 높이 앙모(仰慕)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
그러나 스스로 생각해도 식견(識見)이 얕은 내가 감히 높고 큰 묘소에 용두(龍頭)와 | 그러나 스스로 생각해도 식견(識見)이 얕은 내가 감히 높고 큰 묘소에 용두(龍頭)와 | ||
구질(龜跌)이 빛나는 비명(碑銘)의 글로 부응(副應)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 구질(龜跌)이 빛나는 비명(碑銘)의 글로 부응(副應)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 ||
줄 78: | 줄 78: | ||
진사(進士)로서 예빈시(禮賓寺)의 동정(同正)벼슬을 했고 휘(諱) 용기(龍起)는 | 진사(進士)로서 예빈시(禮賓寺)의 동정(同正)벼슬을 했고 휘(諱) 용기(龍起)는 | ||
벼슬이 예빈시정(禮賓寺正)이었으며 휘(諱) 길보(吉甫)는 벼슬이 병사(兵使)였고 | 벼슬이 예빈시정(禮賓寺正)이었으며 휘(諱) 길보(吉甫)는 벼슬이 병사(兵使)였고 | ||
- | 휘(諱) 득재(得載)는 벼슬이 함풍현감(咸豐縣監)이었다.\\ | + | 휘(諱) 득재(得載)는 벼슬이 함풍현감(咸豊縣監)이었다.\\ |
\_증조(曾祖)의 휘(諱)는 옥숭(玉崇)이니 벼슬은 한성판윤(漢城判尹)이었고 | \_증조(曾祖)의 휘(諱)는 옥숭(玉崇)이니 벼슬은 한성판윤(漢城判尹)이었고 | ||
줄 85: | 줄 85: | ||
진주김씨(眞珠金氏)는 참봉(參奉)을 지낸 빈(賓)의 따님이다.\\ | 진주김씨(眞珠金氏)는 참봉(參奉)을 지낸 빈(賓)의 따님이다.\\ | ||
- | \_선생이 선조(宣祖 十칠년(서기 1584) 갑신에 출생하였는데 어릴 때부터 | + | \_선생이 선조(宣祖) 17(十七)년(서기 1584(一五八四)) 갑신에 출생하였는데 어릴 때부터 |
- | 지극한 생실과 특이한 재질(質)을 타고나서 사람의 도리를 익힌 다음 학문을 | + | 지극한 생실과 특이한 재질(才質)을 타고나서 사람의 도리를 익힌 다음 학문을 |
- | 배워 광해(光海) 사년(서기 1612) 임자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광해(光해) | + | 배워 광해(光海) 사년(서기 1612) 임자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광해(光海) |
- | 십이년(서기 1620) 경신에 별시과거(別試科擧)에 응시(應試)하려고 | + | 12(十二)년(서기 1620(一六二○)) 경신에 별시과거(別試科擧)에 응시(應試)하려고 |
과장(科場)에 들어가서 책문(策問)의 제목을 보고 좋은 말이 아니라고 하여 | 과장(科場)에 들어가서 책문(策問)의 제목을 보고 좋은 말이 아니라고 하여 | ||
대책(對策)을 하지 않고 나와 버렸다.\\ | 대책(對策)을 하지 않고 나와 버렸다.\\ | ||
줄 95: | 줄 95: | ||
길러 고명(高明)한 덕행(德行)이 조정에 알려져서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부름을 | 길러 고명(高明)한 덕행(德行)이 조정에 알려져서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부름을 | ||
받아 예빈시(禮賓寺)의 봉사(奉事) 벼슬이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으니 또 | 받아 예빈시(禮賓寺)의 봉사(奉事) 벼슬이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으니 또 | ||
- | 연사전(延思殿)의 참봉(參奉)이 제수되어 배명(拜命)받고 얼마 안되어 사직했다. | + | 연은전(延ㅇ恩殿)의 참봉(參奉)이 제수되어 배명(拜命)받고 얼마 안되어 사직했다. |
갑오년에 장악원(掌樂院)의 별좌(別坐) 벼슬이 제수되었는데 그 때에 상감(上監)이 | 갑오년에 장악원(掌樂院)의 별좌(別坐) 벼슬이 제수되었는데 그 때에 상감(上監)이 | ||
의주(義州)로부터 환궁(還宮)하였다.\\ | 의주(義州)로부터 환궁(還宮)하였다.\\ | ||
- | \_선생이 신하의 직분(職分)으로서 상감의 심기(心氣)가 불안하실 듯하여 예궐(請闕)을 | + | \_선생이 신하의 직분(職分)으로서 상감의 심기(心氣)가 불안하실 듯하여 예궐(詣闕)을 |
미루어 오다가 네가지 폐단(弊端)을 진술한 상소(上疏)를 올렸는데 | 미루어 오다가 네가지 폐단(弊端)을 진술한 상소(上疏)를 올렸는데 | ||
상소의 말이 대단히 적절하여 상감이 기꺼이 받아들이고 발탁(拔擢)하여 | 상소의 말이 대단히 적절하여 상감이 기꺼이 받아들이고 발탁(拔擢)하여 | ||
진보현감(眞寶縣監)을 제수하니 난리에서 살아남은 백성을 어루만져주는 등 고을을 | 진보현감(眞寶縣監)을 제수하니 난리에서 살아남은 백성을 어루만져주는 등 고을을 | ||
- | 다스리는 공적(功績)이 크게 나타났으나 | + | 다스리는 공적(功績)이 크게 나타났으나 |
돌아왔다. 천성(天性)이 효성스럽고 우애로웠으며 정성과 공경을 다했는데 | 돌아왔다. 천성(天性)이 효성스럽고 우애로웠으며 정성과 공경을 다했는데 | ||
부모상(父母喪)을 당해서는 예법에 의하여 삼년상(三年喪)을 죽을 먹고 살았으며 | 부모상(父母喪)을 당해서는 예법에 의하여 삼년상(三年喪)을 죽을 먹고 살았으며 | ||
줄 117: | 줄 117: | ||
말마다 깊게했으며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단전(單傳)과 지결(旨訣)의 | 말마다 깊게했으며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단전(單傳)과 지결(旨訣)의 | ||
연구를 굳세게 하면서 관혼상제(冠婚喪祭)에도 근엄(謹嚴)하여 가문과 향중(鄕中)의 | 연구를 굳세게 하면서 관혼상제(冠婚喪祭)에도 근엄(謹嚴)하여 가문과 향중(鄕中)의 | ||
- | 풍속순화(風俗淳化)에 앞장서 나간 것은 더욱 빛난 일이니 선생의 교회(敎化)는 | + | 풍속순화(風俗淳化)에 앞장서 나간 것은 더욱 빛난 일이니 선생의 교화(敎化)는 |
자못 백세(百世)토록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 자못 백세(百世)토록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 ||
\_배위(配位)는 숙인(淑人) 울진장씨(蔚珍張氏)이니 한보(漢輔)의 따님이며 | \_배위(配位)는 숙인(淑人) 울진장씨(蔚珍張氏)이니 한보(漢輔)의 따님이며 | ||
- | 강계부사(江界府使)를 지낸 백(伯)의 손녀로서 선생보다 十九년 먼저 졸(卒)했다. | + | 강계부사(江界府使)를 지낸 백(伯)의 손녀로서 선생보다 |
묘(墓)는 선생과 같은 둔덕에 있으며 아들 다섯과 딸 하나가 있는데 맏아들은 | 묘(墓)는 선생과 같은 둔덕에 있으며 아들 다섯과 딸 하나가 있는데 맏아들은 | ||
거일(居一)이니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증직(贈職)되었으며 다음은 유일(有一)이니 | 거일(居一)이니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증직(贈職)되었으며 다음은 유일(有一)이니 | ||
- | 호(號)는 호곡(虎谷)이며 성균정자(成均正字) 벼슬을 했고 김학봉선생(金鶴峯先生)의 | + | 호(號)는 호곡(虎谷)이며 성균정자(成均正字) 벼슬을 했고 김학봉(金鶴峯) 선생(先生)의 |
문하(門下)에 유학(遊學)했다. 다음은 경일(慶一)이요 다음은 천일(千一)이며 | 문하(門下)에 유학(遊學)했다. 다음은 경일(慶一)이요 다음은 천일(千一)이며 | ||
다음은 억일(億一)이고 딸은 백인경(白仁鏡)에게 출가했다.\\ | 다음은 억일(億一)이고 딸은 백인경(白仁鏡)에게 출가했다.\\ | ||
\_거일(居一)은 아들 셋이 있으니 중건(中健)과 중신(中信)과 중숙(中俶)이며 | \_거일(居一)은 아들 셋이 있으니 중건(中健)과 중신(中信)과 중숙(中俶)이며 | ||
- | 유일(有一)에게는 | + | 유일(有一)에게는 |
경일(慶一)은 중미(中美)를 후사(後嗣)로 하였으며 딸은 김시상(金是相)에게 출가했다. | 경일(慶一)은 중미(中美)를 후사(後嗣)로 하였으며 딸은 김시상(金是相)에게 출가했다. | ||
천일(千一)의 두 아들은 중재(中載)와 중석(中碩)이며 억일(億一)의 세 아들은 | 천일(千一)의 두 아들은 중재(中載)와 중석(中碩)이며 억일(億一)의 세 아들은 | ||
줄 136: | 줄 136: | ||
출가했다.\\ | 출가했다.\\ | ||
- | \_중신(中信)의 다섯 아들은 연(𨬔)과 혜(鏸)와 정(鋏)과 일(鎰)과 진(鎭)이며 | + | \_중신(中信)의 다섯 아들은 연(𨬔)과 혜(鏸)와 정(鋌)과 일(鎰)과 진(鎭)이며 |
- | 딸은 김굉좌(金宏佐)에게 출가했으며 중수(中俶)의 한 아들은 빈(鐵)이요 | + | 딸은 김굉좌(金宏佐)에게 출가했으며 중숙(中俶)의 한 아들은 빈(鑌)이요 |
- | 중길(中吉)의 한 아들은 선(鏡)이며 중미(中美)의 네 아들은 심(鉍)과 현(鉉)과 | + | 중길(中吉)의 한 아들은 선(銑)이며 중미(中美)의 네 아들은 심(鉍)과 현(鉉)과 |
- | 집(鎭)과 영(錄)이고 딸은 남황(南徨)과 남두원(南斗遠)과 남상인(南尙仁)과 | + | 집(鏶)과 영(𨥭)이고 딸은 남황(南徨)과 남두원(南斗遠)과 남상인(南尙仁)과 |
금삼소(琴尙素)에게 출가했으며 중재(中載)의 네 아들은 섬(暹)과 경(景)과 담(曇)과 | 금삼소(琴尙素)에게 출가했으며 중재(中載)의 네 아들은 섬(暹)과 경(景)과 담(曇)과 | ||
성(晟)이고 중석(中碩)의 아들은 호(鎬)이며 중익(中益)은 성(晟)으로 | 성(晟)이고 중석(中碩)의 아들은 호(鎬)이며 중익(中益)은 성(晟)으로 | ||
줄 157: | 줄 157: | ||
엄(嚴)하였으며 문장(文章)이 바르고 무게가 있는 것은 그의 | 엄(嚴)하였으며 문장(文章)이 바르고 무게가 있는 것은 그의 | ||
동해무조석(東海無潮汐)이란 부(賦)에서 볼 수 있다. 거기에 있는 한 절구시(絶句詩)에 말하기를 | 동해무조석(東海無潮汐)이란 부(賦)에서 볼 수 있다. 거기에 있는 한 절구시(絶句詩)에 말하기를 | ||
- | 명아주 | + | '명아주 |
- | 서이(序而)를 본받는다 했고 또 의관(衣冠)을 갖추어 전모(典謨)를 읽으면서 | + | 서이(序而)를 본받는다' |
시에서 서생(書生)이 쓰일 곳 없다. 말하지 말라 한 몸이 온통 이게 | 시에서 서생(書生)이 쓰일 곳 없다. 말하지 말라 한 몸이 온통 이게 | ||
요순세계(堯舜世界)이다고 했으니 대체로 덕(德)을 길러가는 가운데 스스로를 만족해 | 요순세계(堯舜世界)이다고 했으니 대체로 덕(德)을 길러가는 가운데 스스로를 만족해 | ||
줄 168: | 줄 168: | ||
물으니 선생이 말하기를 나는 학문(學問)에 종사하지 않고 다만 내가 마음을 | 물으니 선생이 말하기를 나는 학문(學問)에 종사하지 않고 다만 내가 마음을 | ||
다스려 온 소치(所致)로 동정(動靜)의 득실(得失)을 대강 얻었으나 그러나 | 다스려 온 소치(所致)로 동정(動靜)의 득실(得失)을 대강 얻었으나 그러나 | ||
- | 비유(譬喻)하건대 닥치는 대로 흩어 없에 버려서 더욱 자신이 공허(空虛)하니 | + | 비유(譬喻)하건대 닥치는 대로 흩어 없애 버려서 더욱 자신이 공허(空虛)하니 |
정(靜)의 힘이 동(動)을 억제한 것이 어찌 아니겠는가 하니 아계(鵝溪) | 정(靜)의 힘이 동(動)을 억제한 것이 어찌 아니겠는가 하니 아계(鵝溪) | ||
이(李) 정승이 탄복하고 정명촌기(正明村記)를 지어 자신(自身)을 경계했다고 한다. | 이(李) 정승이 탄복하고 정명촌기(正明村記)를 지어 자신(自身)을 경계했다고 한다. | ||
줄 181: | 줄 181: | ||
淑氣磅礴 숙기(淑氣)가 서리어 가득하구나.\\ | 淑氣磅礴 숙기(淑氣)가 서리어 가득하구나.\\ | ||
種靈毓秀 영기(靈氣)가 싹트고 빼어나게 걸리지니 \\ | 種靈毓秀 영기(靈氣)가 싹트고 빼어나게 걸리지니 \\ | ||
- | 哲人廼作 철인(哲人)이 여기에 나시었도다. \\ | + | 哲人迺作 철인(哲人)이 여기에 나시었도다. \\ |
不自師承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 | 不自師承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 | ||
得于天性 특출한 재주는 천성(天性)으로 얻었다. \\ | 得于天性 특출한 재주는 천성(天性)으로 얻었다. \\ | ||
善言善行 말씀이 착하고 행의(行義)가 바른 것은 \\ | 善言善行 말씀이 착하고 행의(行義)가 바른 것은 \\ | ||
莫非主靜 주정(主靜)으로 수양(修養)함이 아님이 없네.\\ | 莫非主靜 주정(主靜)으로 수양(修養)함이 아님이 없네.\\ | ||
- | 觧紱歸來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서 \\ | + | 解紱歸來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서 \\ |
潜心經籍 마음을 가다듬어 경적(經籍)을 읽었네.\\ | 潜心經籍 마음을 가다듬어 경적(經籍)을 읽었네.\\ | ||
莊敬日强 엄숙하고 공경함이 날로 더하니 \\ | 莊敬日强 엄숙하고 공경함이 날로 더하니 \\ | ||
줄 197: | 줄 197: | ||
仰止彌屹 우러러 사모하니 산처럼 높이네. \\ | 仰止彌屹 우러러 사모하니 산처럼 높이네. \\ | ||
惟虎之厓 오직 호전(虎田)에 있는 묘소(墓所) 언덕에 \\ | 惟虎之厓 오직 호전(虎田)에 있는 묘소(墓所) 언덕에 \\ | ||
- | 松杉蒼欝 소나무 삼(杉) 나무 울창하구나.\\ | + | 松杉蒼鬱 소나무 삼(杉) 나무 울창하구나.\\ |
樂石嵯峨 비갈(碑碣)을 높게 높게 세워 놓으니\\ | 樂石嵯峨 비갈(碑碣)을 높게 높게 세워 놓으니\\ | ||
有崒其宮 그 봉분(封墳) 드높게 우뚝하구나.\\ | 有崒其宮 그 봉분(封墳) 드높게 우뚝하구나.\\ | ||
줄 205: | 줄 205: | ||
\_\_인동후인(仁同後人) 장건덕(張建德) 삼가 짓다.\\ | \_\_인동후인(仁同後人) 장건덕(張建德) 삼가 짓다.\\ | ||
\\ | \\ | ||
+ | <WRAP subnote> | ||
주1. 책문(策問): | 주1. 책문(策問): | ||
+ | |||
주2. 대책(對策): | 주2. 대책(對策): | ||
+ | |||
주3. 유일(遺逸): | 주3. 유일(遺逸): | ||
- | 주4. 아계(鵝溪): | + | |
+ | 주4. 아계(鵝溪): | ||
주5. 주정(主靜): | 주5. 주정(主靜): | ||
+ | |||
주6. 징사(徵士): | 주6. 징사(徵士):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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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16.1748997161.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4 09:32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