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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07

망미정황원묘갈략(望美亭黃瑗墓碣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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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望美亭黃瑗墓碣畧
父諱瑗開國功臣平海君諱希碩之玄孫也考諱建中監司祖諱甫祖刑曹叅判曾 祖諱麟資憲大夫禮曹判書公逮 端廟遜國不樂仕進退居平海月松沙岸鼻祖 學士公遺址因搆小亭扁以望美嘆曰古人進退之憂其心一也愛君之忱形諸寓 目唯與嶺湖達士博覽物理逍遙湖山邀月擧盃抱琴倚松消遺世慮焉晩年移居 郡南谷所務在種德敎人修齊訓子孝友此志未遂天不憗遺嗚呼潛德幽光無以 闡發後昆慨恨爲如何哉以禮葬于谷內中起山子坐之原配金海金氏墓在下子 孫世居云云
  十四世孫宗爀謹撰


 망미정 황원 묘갈략
 공의 휘는 원(瑗)이오 개국공신 평해군 휘 희석(希碩)이라는 분의 현손이라, 고위(考位)의 휘는 건중(建中)이니 감사요, 조(祖)의 휘는 보조(甫祖)니 형조참판이오, 증조(曾祖)의 휘는 인(麟)이니 자헌대부 예조판서라.
 공이 단종의 양위됨을 보고 벼슬에 임함을 즐겨하지 않고, 관향인 평해 월송 시조 학사(學士)공 유허지로 퇴거, 인하야 자그마한 정자를 짖고 망미(望美)라 편액하여 탄식 왈, 고인이 진퇴하기를 근심하고 염려하는 마음은 오늘날도 한가지니라.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이 형제우목 즉 주목해 보는 곳에 나타내니, 오직 영남이나 호서지방의 달사들로 부터 물리를 박람하고 호산에 소요하며 달밤에 잔을 들고 송음에서 거문고를 타면서 세속을 잊어버리더니, 만년에 군남 곡소에 이거하여 힘쓰는 일은 덕을 심고 선을 권장함이요, 수신제가로 사람을 가르치고 자제들을 효우로 훈계하더니 그 큰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천명이 다함에 슬프도다. 숨은 덕과 그윽한 빛을 천명하지 못하였으니 이 어찌 후손들의 유한사가 아니겠는가? 예를 다하여 곡내 중기산 자좌 지원에 장사하고 배위는 김해 김씨로 그 묘하에 두다. 이곳에 자손들이 세거하니라。
  14세손 종혁(宗爀) 근찬

c-107.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27 08:58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