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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001 [2025/05/04 10:41] ssio2c-001 [2025/05/27 20:57]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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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ypo ff:'한양해서'> <typo ff:'한양해서'>
 \_草譜序\\ \_草譜序\\
-黃之著於東國古矣自新羅始建六姓之後根蔓葉布世爲大姓分係籍如鐵原+黃之著於東國古矣自新羅始建六姓之後根蔓葉布世爲大姓分係籍如鐵原
 昌原長水箕城是其表表者而其中箕城之黃最遠且久未知其初始於何人也諺 昌原長水箕城是其表表者而其中箕城之黃最遠且久未知其初始於何人也諺
 傳羅代上世有黃將軍者與丘將軍同時入來黃則居越松北麓至今有黃將軍址 傳羅代上世有黃將軍者與丘將軍同時入來黃則居越松北麓至今有黃將軍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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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初歷代隆顯文武相望名公鉅卿至我\_朝猶班班可見苟非祖先深仁厚澤培植 初歷代隆顯文武相望名公鉅卿至我\_朝猶班班可見苟非祖先深仁厚澤培植
 而積漸曷能數百載傳其閥而世其業耶信乎有植則有穫有漑則有流彼時必有 而積漸曷能數百載傳其閥而世其業耶信乎有植則有穫有漑則有流彼時必有
-相傳信譜而麗季海寇衝斥竹嶺以南擧爲賊藪人皆避亂北徙所有氈盡燹無+相傳信譜而麗季海寇衝斥竹嶺以南擧爲賊藪人皆避亂北徙所有氈盡燹無
 餘吁可惜也然我姓之遍於朔方亦始於此時而其後黃象歸窆文川郡因而又蕃 餘吁可惜也然我姓之遍於朔方亦始於此時而其後黃象歸窆文川郡因而又蕃
 至於散處各邑者僅一髮比而猶不絶亦幸也顧以失譜無聞之故箕城子孫分爲 至於散處各邑者僅一髮比而猶不絶亦幸也顧以失譜無聞之故箕城子孫分爲
 兩派各祖其祖實未知其初一祖者何人互爲婚媾而恬無愧恥此豈非大幸中之 兩派各祖其祖實未知其初一祖者何人互爲婚媾而恬無愧恥此豈非大幸中之
 大不幸耶黃瑞以翊戴元勳陞郡黃鉉以經明行修稱世近代又有黃瑞黃俊良之 大不幸耶黃瑞以翊戴元勳陞郡黃鉉以經明行修稱世近代又有黃瑞黃俊良之
-博洽多聞皆未能詳其一祖而著其同宗遂爲吾子孫無窮之痛嗚呼吾僻郡也+博洽多聞皆未能詳其一祖而著其同宗遂爲吾子孫無窮之痛嗚呼吾僻郡也
 吾輩孱孫也處僻郡爲孱孫目見世族之流於氓隸子姓之遠於行路無窮之痛到 吾輩孱孫也處僻郡爲孱孫目見世族之流於氓隸子姓之遠於行路無窮之痛到
 此又如何也重以壬癸陽六甚於麗季之蕩盡後日之無徵應甚於今日之無存氓 此又如何也重以壬癸陽六甚於麗季之蕩盡後日之無徵應甚於今日之無存氓
 隸行路之歎亦應益甚於今日之孱孫用是大懼有志裒集而疾病相仍耳目不弘 隸行路之歎亦應益甚於今日之孱孫用是大懼有志裒集而疾病相仍耳目不弘
-姑依叔父應平日手所札錄補入余交游間所聞見爲一家私傳之覽其間或詳+姑依叔父應平日手所札錄補入余交游間所聞見爲一家私傳之覽其間或詳
 或略或闕而不書遵前誌也或一名而派不同或同生而名不侔傳疑傳信俱存而 或略或闕而不書遵前誌也或一名而派不同或同生而名不侔傳疑傳信俱存而
 不削尊先代也外孫之外派舅親之舅族一書屢書而不已明士族也至如爲氓爲 不削尊先代也外孫之外派舅親之舅族一書屢書而不已明士族也至如爲氓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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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초보서\\ \_초보서\\
-\_황()성이 동국에 나타남은 오랜 옛날이며 신라 때 처음 생긴 이(李), 김(金), 최(崔), 설(薛), +\_황()성이 동국에 나타남은 오랜 옛날이며 신라 때 처음 생긴 이(李), 김(金), 최(崔), 설(薛), 
 정(鄭), 박(朴) 6성의 뒤로 부터이나, 뿌리와 줄기와 잎이 퍼져서 어느덧 대성(大姓)이 되어  정(鄭), 박(朴) 6성의 뒤로 부터이나, 뿌리와 줄기와 잎이 퍼져서 어느덧 대성(大姓)이 되어 
 파계의 관향이 철원, 창원, 장수, 평해 등이 가장 많은 편이며 그중에도 평해 황(黃)이  파계의 관향이 철원, 창원, 장수, 평해 등이 가장 많은 편이며 그중에도 평해 황(黃)이 
 가장 먼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면 시조는 누구였든가? 전설에 의하면 신라  가장 먼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면 시조는 누구였든가? 전설에 의하면 신라 
 상세에 황(黃)장군이란 분과 구(丘)장군이란 분이 같은 때에 들어와  상세에 황(黃)장군이란 분과 구(丘)장군이란 분이 같은 때에 들어와 
-황()은 즉 월송의 북 기슭에 살아 지금도 황(黃)장군터라 이르고 丘는 구미의 북포에 정박하여 지명이 +황()은 즉 월송의 북 기슭에 살아 지금도 황(黃)장군터라 이르고 丘는 구미의 북포에 정박하여 지명이 
 구미진이라 한다. 이렇게 모두 평해군지에 있는 말이나 세대가 황박하고 문적의  구미진이라 한다. 이렇게 모두 평해군지에 있는 말이나 세대가 황박하고 문적의 
-증거가 없다. 그러나 뜻하건대 황()성의 근원은 여기로 틀림이 없으며+증거가 없다. 그러나 뜻하건대 황()성의 근원은 여기로 틀림이 없으며
 장수, 창원은 평해에서 나뉘어졌다 하니 그 처음은 한 조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장수, 창원은 평해에서 나뉘어졌다 하니 그 처음은 한 조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
 \_우리 황(黃)씨는 고려초 역대로 문무관에 재상의 \_우리 황(黃)씨는 고려초 역대로 문무관에 재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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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연했던 그때 반드시 보첩을 통하여 서로 믿고 전함이 있었건만 고려말 왜의 해적 떼가 난입하여 죽령 이남은 거개가 도적에게 화를 찬연했던 그때 반드시 보첩을 통하여 서로 믿고 전함이 있었건만 고려말 왜의 해적 떼가 난입하여 죽령 이남은 거개가 도적에게 화를
 입어 많은 사람이 피난. 북으로 옮겨 가니 간직했던 전래 문적이 모두 소실되어 남음이 없어 참으로 슬프도다. 이것이 우리 황씨(黃氏)가 북방에 많이 살게 된  입어 많은 사람이 피난. 북으로 옮겨 가니 간직했던 전래 문적이 모두 소실되어 남음이 없어 참으로 슬프도다. 이것이 우리 황씨(黃氏)가 북방에 많이 살게 된 
-연유이다. 그후 판서 황상(象)의 돌아가신 무덤이 문천군에 있음도 이에 인함이라 또는 각처에+연유이다. 그후 판서 황상(象)의 돌아가신 무덤이 문천군에 있음도 이에 인함이라 또는 각처에
 흩어져 한터럭과 같이 근근이라도 이어감은 역시 다행이라.\\ 흩어져 한터럭과 같이 근근이라도 이어감은 역시 다행이라.\\
 \_돌아보건대 보첩도 잃고 듣는 바도 없이 살아온 고로 평해의 자손이 양파로 나뉘어 그 조상을 각각으로 하였으니 처음 조상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서로이 혼인을 하여 부끄럼이 없이 \_돌아보건대 보첩도 잃고 듣는 바도 없이 살아온 고로 평해의 자손이 양파로 나뉘어 그 조상을 각각으로 하였으니 처음 조상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서로이 혼인을 하여 부끄럼이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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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는 것보다 더 심하고 없는 것보다 더 심하고
 천인과 행로인과 같이 된 탄식이 오늘에 잔손보다 더 심할 것이므로  천인과 행로인과 같이 된 탄식이 오늘에 잔손보다 더 심할 것이므로 
-이에 크게 두려움이 있어 동족의 족보사를 수집코저 하였으나 질병이 잦고 이목이 넓지 못하여 숙부 응청(應) 어른의 평일 수거하신 것을 토대로 나의 교우간에 +이에 크게 두려움이 있어 동족의 족보사를 수집코저 하였으나 질병이 잦고 이목이 넓지 못하여 숙부 응청(應) 어른의 평일 수거하신 것을 토대로 나의 교우간에 
 듣고 본 바를 보입하여 듣고 본 바를 보입하여
 일가의 사사로이 전하는 편람으로 하였으니 그 간혹 자세함과 간략함과 빠진 것을  일가의 사사로이 전하는 편람으로 하였으니 그 간혹 자세함과 간략함과 빠진 것을 
c-001.1746322896.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04 10:41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