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002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양쪽 이전 판이전 판다음 판 | 이전 판 | ||
c-002 [2025/04/24 13:05] – 121.166.63.129 | c-002 [2025/05/28 07:27] (현재) – ssio2 | ||
---|---|---|---|
줄 1: | 줄 1: | ||
- | ====경인보서(庚寅譜序)==== | + | ===경인보서(庚寅譜序)=== |
- | <WRAP 33em fs=3 justify> | + | <WRAP 33em justify>< |
- | <hidden 한문 원문 보기> | + | <typo ff:' |
+ | \_庚寅譜序\\ | ||
平海之有吾氏肇自東漢建武之年迄于今一千七百四十有餘年海舟之自漢浦 | 平海之有吾氏肇自東漢建武之年迄于今一千七百四十有餘年海舟之自漢浦 | ||
- | 松之移越黃將軍之造山流傳爲箕城古事而皆遠不可稱述也由羅迄麗圭結聯 | + | 松之移越黃將軍之造山流傳爲箕城古事而皆遠不可稱述也由羅迄麗圭絓聯 |
- | 翩碩士聞人輝映竹帛者前後相望而文籍無徵譜牒不傳各因流移隨作貫鄉其 | + | 翩碩士聞人輝映竹帛者前後相望而文籍無徵譜牒不傳各因流移隨作貫鄕其 |
不失箕城之籍而接派系溯源本者惟以吾金吾公爲中祖嘉靖年間吾先祖錦溪 | 不失箕城之籍而接派系溯源本者惟以吾金吾公爲中祖嘉靖年間吾先祖錦溪 | ||
- | 先生始哀輯爲草譜繼而有海月先生及南塘公所修之譜近又有曾叔祖處正之 | + | 先生始裒輯爲草譜繼而有海月先生及南塘公所修之譜近又有曾叔祖處正之 |
- | 收錄三從父尚鍾之繕寫廣搜詳據幾成完譜而猶未遑於刊行也關逢之歲長湍 | + | 收錄三從父尙鍾之繕寫廣搜詳據幾成完譜而猶未遑於刊行也閼逢之歲長湍 |
- | 宗人變與外裔孫金汝綱合議爲新譜先印襄武公派一卷走千里來示之其誠意 | + | 宗人燮與外裔孫金汝綱合議爲新譜先印襄武公派一卷走千里來示之其誠意 |
- | 則勤且摯而所錄系牒多差讓越二年閹茂議移譜所于豊基之錦陽其明年秋燮 | + | 則勤且摯而所錄系牒多差譌越二年閹茂議移譜所于豊基之錦陽其明年秋燮 |
- | 以衰服踰大嶺託宗人鎰幹其事而定有司收系單至屠維之夏而始付諸剖劂氏 | + | 以衰服踰大嶺託宗人鎰幹其事而定有司收系單至屠維之夏而始付諸剞劂氏 |
首尾六年譜事粗完此誠爲一宗之大幸也昔日海月先生之爲譜不及知爲金吾 | 首尾六年譜事粗完此誠爲一宗之大幸也昔日海月先生之爲譜不及知爲金吾 | ||
公後孫而一篇遺序之作徒發未詳一祖之歎迺者長湍譜之新成亦不察夫大匡 | 公後孫而一篇遺序之作徒發未詳一祖之歎迺者長湍譜之新成亦不察夫大匡 | ||
- | 公倫序而當世博治之士便起舜禹世系之疑今皆悉互考究昭然釐正既知評理 | + | 公倫序而當世博洽之士便起舜禹世系之疑今皆叅互考究昭然釐正旣知評理 |
公爲金吾公之後而大匡公爲評理公之弟三派序次昭穆行第秩然可觀後嗣孱 | 公爲金吾公之後而大匡公爲評理公之弟三派序次昭穆行第秩然可觀後嗣孱 | ||
孫於是乎無憾此又大幸中最大幸者也其他附錄諸派非無帳籍私譜之可據而 | 孫於是乎無憾此又大幸中最大幸者也其他附錄諸派非無帳籍私譜之可據而 | ||
- | 既漏舊譜亦不敢直係異代此則不得不有待於他日也譜既成諸宗以潤九爲錦 | + | 旣漏舊譜亦不敢直係異代此則不得不有待於他日也譜旣成諸宗以潤九爲錦 |
- | 溪公宗嗣又居譜所傍得以與聞其始終俾爲數行語以叙之既繫宗事亦不敢以 | + | 溪公宗嗣又居譜所傍得以與聞其始終俾爲數行語以敍之旣繫宗事亦不敢以 |
- | 不肖辭嗚呼惟我黃氏之緒遠矣譜中所載勳賢碩德表表著稱皆可爲宗族子姓 | + | 不肖辭嗚呼惟我黃氏之緖遠矣譜中所載勳賢碩德表表著稱皆可爲宗族子姓 |
- | 之所可儀法凡我諸宗後嗣之觀於譜者又當交相勅勵以無忝祖先遺德方能無 | + | 之所可儀法凡我諸宗後嗣之觀於譜者又當交相勑勵以無忝祖先遺德方能無 |
- | 負於收族合譜之勤意其各勉乎哉若夫譜役之顛末功費之多寡自有家弟所記 | + | 負於收族合譜之勤意其各勉乎哉若夫譜役之顚末功費之多寡自有家弟所記 |
付于卷末今不復贅於此云爾\\ | 付于卷末今不復贅於此云爾\\ | ||
- | 上之四十六年庚寅孟春後裔孫潤九敬序 | + | \_\_上之四十六年庚寅孟春後裔孫潤九敬序 |
+ | </ | ||
</ | </ | ||
\\ | \\ | ||
- | 경인보서\\ | + | <typo fs: |
- | 평해의 우리 황씨는 동한 건무년대에 비롯 우금에 이르되 | + | \_경인보서\\ |
- | 해 월송포에 | + | \_평해의 우리 황씨는 동한 건무년대에 비롯 우금에 이르되 |
- | 아득히 멀고 먼 옛적이라 자상함이 불가니라 신라를 말미암아 고려에 이르기까지 큰 벼슬과 귀한 소임 또는 학문과 명 | + | 평해 월송포에 |
- | 망이 전후 연면하였것만 그간의 문적이 없어지고 또는 보첩이 전치 | + | 아득히 멀고 먼 옛적이라 자상함이 불가니라.\\ |
- | 그중에도 기성의 본적은 잃치않고 파계의 근원은 오직 우리 금오공으로 중조로 하야 이조중엽 명종년간에 나의 선조 錦 | + | \_신라를 말미암아 고려에 이르기까지 큰 벼슬과 귀한 소임 또는 학문과 명망이 |
- | 溪선생께서 처음 초보를 부즙하시니 이어 海月선생 및 南塘공께서 보첩을 닦으시고 또 근자에는 증숙조 處正에서 수록 | + | 전후 연면하였것만 그간의 문적이 없어지고 또는 보첩이 전치 |
- | 삼종조부 | + | 각기 흘러 옮긴 고장을 관향으로 삼음이라. |
- | + | 그중에도 기성의 본적은 잃치않고 파계의 근원은 오직 우리 금오공으로 중조로 하야 이조 중엽 명종 년간에 | |
- | 에 장단의 일가 燮씨께서 외손 김여강과 더불어 합의하여 襄武공파보를 인쇄'한권을 가지고 千里길을 달려와 보이니 | + | 나의 선조 |
- | 그 성의와 노고는 대단했으나 손록의 계대가 오차가 많음으로 고증의 자료 수집으로 인하여 | + | 부집((부집(裒辑): |
- | 보소를 풍기 금양으로 옮긴 그 다음해 가을 燮씨께서 상복을 하고 준령을 넘어와 족인 鎰씨께 그일을 주간케하고 유사 | + | 또 근자에는 증숙조 |
- | 를 정하여 계파단자를 거두어 己丑년 여름에 비로서 인판을 다듬고 자획을 새기며 출판에 들어가 수미 | + | 삼종조부 |
- | 이제 완성을 보니 참으로 종중의 경사며 대행이니라 옛날 海月선생께서 초보를 닦으실때 評理공이 金吾공의 후손인줄을 | + | 갑신(甲申)(1764)년에 장단의 일가 |
- | 미쳐 알지못하고 그 서문에 徒發未詳一祖之歎이라고 하여 누가 과연 한 할아버지의 자손인지 자세히 알수 없음을 탄식 | + | 인쇄, 한권을 가지고 |
- | 한 것이나 지난번 장단보역시나 대광공의 윤서를 찾지못함이 옛날에 당시의 박식하고 뜻있는 선비들이 舜임금과 禹임금 | + | 그 성의와 노고는 대단했으나 손록의 계대가 오차가 많음으로 고증의 자료 수집으로 인하여 |
- | 의 그 위차와 세계에 의심이 있던 바이니 이제야 구명하여 분명한즉 평리공이 금오공의 후예이오 대광공이 평리공의 아 | + | 보소를 풍기 금양으로 옮긴 그 다음해 가을 |
- | 우가 됨이니 삼파 서차와 소목 항렬이 질서 분명하니 후손들의 유감이 없게 됨이니 이야말로 종중의 다행이 아닐수 없 | + | 유사를 정하여 계파 단자를 거두어 |
- | 다.기타 부록의 모든 파는 장적이나 자기의 가보에 근거가 없는것은 아니며 옳타하오나 이미 구보에 빠진것을 구태여 | + | 이제 완성을 보니 참으로 종중의 경사며 대행이니라. \\ |
- | 이번에 편입할수 없기로 이는 후일을 기다릴수 밖에 없노라 보사가 이미 이루어짐에 제종중이 潤九가 금계공의 종손이 | + | \_옛날 |
- | 며 또 보소옆에 살며 참여 시종을 듣고 본바니 몇줄의 서문을 쓰라기에 종사에 관함이니 감히 불초함을 사퇴치 못하고 | + | 미쳐 알지 못하고 그 서문에 |
- | 이글을 쓰는 것이다. 오호라 우리 黃氏의 이어 흐름이 유서가 오랜 역사며 보책중에 실려있는 선현들중에는 많은 분들 | + | 자세히 알 수 없음을 탄식한 것이나, 지난번 장단보 역시나 대광공의 윤서를 찾지 못함이 |
- | 의 훈업과 공덕이 뛰어나 세인의 칭송이 자자하니 종족 후손들은 이를 본받아야 할것이다.무릇 우리 모든 일가와 후손 | + | 옛날에 당시의 박식하고 뜻있는 선비들이 |
- | 들은 보첩을 봄에 있어서 마땅히 서로 면여하여 조상의 유덕을 욕되게 하지 말것이며 또 이렇게 하는것이 보첩을 완성 | + | 이제야 구명하여 분명한즉, 평리공이 금오공의 후예이오 대광공이 평리공의 아우가 됨이니 |
- | 한 동종들의 힘쓴 공덕에 보답하는 길일 것이니 각자 노력하기 바란다.그리고 보사 진행과 경비의 다과등에 대하여는 | + | 삼파 서차와 소목 항렬이 질서 분명하니 후손들의 유감이 없게 됨이니 이야말로 종중의 다행이 아닐수 없다.\\ |
- | 나의 아우가 기록한바를 권말에 첨부하였으니 다시 부언치 않겠다.\\ | + | \_기타 부록의 모든 파는 장적이나 자기의 가보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며 옳타하오나 이미 구보에 빠진 것을 구태여 |
- | 영조 | + | 이번에 편입할 수 없기로 이는 후일을 기다릴 수 밖에 없노라.\\ |
+ | \_보사가 이미 이루어짐에 제종중이 | ||
+ | 또 보소 옆에 살며 참여 시종을 듣고 본 바니 몇줄의 서문을 쓰라기에 종사에 관함이니 감히 불초함을 사퇴치 못하고 | ||
+ | 이 글을 쓰는 것이다. | ||
+ | \_오호라 우리 | ||
+ | 훈업과 공덕이 뛰어나 세인의 칭송이 자자하니 종족 후손들은 이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 ||
+ | 무릇 우리 모든 일가와 후손들은 보첩을 봄에 있어서 마땅히 서로 면려하여 조상의 유덕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며 | ||
+ | 또 이렇게 하는 것이 보첩을 완성한 동종들의 힘쓴 공덕에 보답하는 길일 것이니 각자 노력하기 바란다. | ||
+ | 그리고 보사 진행과 경비의 다과 등에 대하여는 나의 아우가 기록한 바를 권말에 첨부하였으니 다시 부언치 않겠다.\\ | ||
+ | \_\_영조 | ||
+ | </ | ||
</ | </ |
c-002.1745467523.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24 13:05 저자 121.166.63.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