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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13 [2025/04/23 20:19] – created 121.166.63.129c-113 [2025/06/27 09:14]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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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곡황여하묘갈명(隱谷黃汝厦墓碣銘)=== ===은곡황여하묘갈명(隱谷黃汝厦墓碣銘)===
-公諱汝厦字士平海人肇高麗金吾將軍以下連五六代皆有顯職入國朝開 +<WRAP 33em justify><hidden \_한문 원문 보기> 
-國功臣崇祿大夫右議政封平海君 諡襄武公諱希碩即公之遠祖也自判書公 +<typo ff:'한양해서'> 
-諱麟判公諱甫祖監司公諱建中至望美公諱瑗隱德不仕退居平海雖不大顯 +\_隱谷黃汝厦墓碣銘\\ 
-世篤行能不替舊家聲歷公高祖諱永宗曾祖諱禧老祖諱岱生司果考諱浩亮 +公諱汝厦字士平海人肇高麗金吾將軍以下連五六代皆有顯職入國\_朝開 
-同知中樞府事有學行號枕溪妣學生寧越嚴貴賢之女 肅廟丁亥生公公生有 +國功臣崇祿大夫右議政封平海君\_諡襄武公諱希碩即公之遠祖也自判書公 
-異質禀性粹和持心介潔以文藝名世及長稍從士友間與講道樂志晝夜疊疊+諱麟判公諱甫祖監司公諱建中至望美公諱瑗隱德不仕退居平海雖不大顯 
 +世篤行能不替舊家聲歷公高祖諱永宗曾祖諱禧老祖諱岱生司果考諱浩亮 
 +同知中樞府事有學行號枕溪妣學生寧越嚴貴賢之女\_肅廟丁亥生公公生有 
 +異質禀性粹和持心介潔以文藝名世及長稍從士友間與講道樂志晝夜亹亹
 怠每語人曰修天爵則人爵自至何屑屑於世欲乎又以宦遊非修己正心之道飄 怠每語人曰修天爵則人爵自至何屑屑於世欲乎又以宦遊非修己正心之道飄
-然脫歸跡邱園將老於隱谷之間嘜嘜然有意於經學其獨處也一室蕭爽帖聖+然脫歸跡邱園將老於隱谷之間嘐嘐然有意於經學其獨處也一室蕭爽帖聖
 賢要訓於四壁常自警省而述家訓十餘篇其餘百家詩書無不融會旁通所著詩 賢要訓於四壁常自警省而述家訓十餘篇其餘百家詩書無不融會旁通所著詩
-稿三十餘篇不幸而付回祿公之手書萬無存一吁亦慨矣公又孝出天性侍親 +稿三十餘篇不幸而付回祿公之手書萬無存一吁亦慨矣公又孝出天性侍親 
-有血持糞之誠奉先祀盡執膳躬饌之敬常曰孝者人子之職也累登剡薦獲+有血持糞之誠奉先祀盡執膳躬饌之敬常曰孝者人子之職也累登剡薦獲
 拜同樞當時士大夫家敬公者以海東老師稱之戊戌九月二十九日考終于寢得 拜同樞當時士大夫家敬公者以海東老師稱之戊戌九月二十九日考終于寢得
-年七十二葬于平海郡南谷所孔時山子坐之原配淑夫人昌原黃氏學生諱道 +年七十二葬于平海郡南谷所孔時山子坐之原配淑夫人昌原黃氏學生諱道 
-之女生於甲申先公而卒墓後有四男長曰海中以經明行修世師範次海 +之女生於甲申先公而卒墓後有四男長曰海中以經明行修世師範次海 
-海正曰海五亦以文雅著世其餘曾玄孫三十餘人不可悉錄云云\\ +海正曰海五亦以文雅著世其餘曾玄孫三十餘人不可悉錄云云\\ 
-七世孫宗爀謹撰 +\_\_七世孫宗爀謹撰 
- +</typo> 
-은곡황영하묘갈명+</hidden> 
 +\\ 
 +<typo fs:0.8em> 
 +\_은곡 황영하 묘갈명\\ 
 +\_공의 휘는 여하(汝厦)오, 자는 사비(士庇)니 평해인이라. 고려  
 +금오장군으로부터 5, 6대에 연이어 현관이 있었고, 아조에 와서는  
 +개국공신 숭록대부 우의정 봉 평해군 시 양무공 휘 희석(希碩)이라는 분을  
 +위시해서, 판서공 휘 인(麟), 참판공 휘 보조(甫祖),  
 +감사공 휘 건중(建中) 등 여러 어른들은 모두 공의 원조이시다.\\ 
 +\_망미공 휘 원(瑗)은 오직 덕을 심고 벼슬을 하지 않으며 평해로 퇴거하니,  
 +비록 세상에 크게 이름난 것은 없으나 향리의 독행지사로 구가의 명성을  
 +잃지 아니했고, 공의 고조의 휘는 영종(永宗)이오,  
 +증조의 휘는 희로(禧老)요, 조의 휘는 대(岱)이니 생원 사과요,  
 +선고의 휘는 호량(浩亮)이오 동지중추부사로 학행이 있고 호는 침계(枕溪)라.  
 +비는 학생 영월 엄귀현(嚴貴賢)의 여라. \\ 
 +\_숙종 정해(丁亥)(1707)에 공을 낳으니, 나면서부터 특이한 바탕에  
 +성품이 순수 화평하며, 개결한 심지와 문예로서 향리에 알려졌더니,  
 +점차 장성함에 훈융한 선비들과 교유하고 강도낙지하여,  
 +주야로 면려 게으르지 아니하니, 인격의 단련함이 점점 더하더라.  
 +그리고 평소에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천작을 닦으면  
 +인작은 스스로 오는 것이어늘 어찌 세속 물욕에 급급하라.  
 +또 사환의 길을 밟는 것은 수기(修己) 정심의도가 못된다 하고  
 +표연히 털고 고향으로 돌아와 전원에 발자취를 감추고,  
 +은곡 간에 남은 여생을 보내니, 이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더라. \\ 
 +\_그리고 경학에 뜻을 두고 그 홀로 거처하는 한방에는 소조상쾌하고  
 +성현의 긴요한 말씀을 4벽에 붙혀 놓고, 항상 스스로 경성하며  
 +가훈 10여편을 서술하고, 그 외에 백가 시서를 모르는 것이 없이 통달하고,  
 +시고 30여편이 불행하게도 화재로 소실되어, 공의 수서가 없어지니  
 +슬프고 한스럽다. \\ 
 +\_공이 또 효성이 출천하여, 친환이 있음에 혈지상분하는 성심을 다하였으며,  
 +또 선조의 제사에는 친집궁찬하는 공경심을 발현하였다.  
 +그리고 항상 말하기를 효라는 것은 사람의 본분이라 하였다.  
 +누차 추천을 받아 동지중추에 제수됨에, 당시 사대부가에서 공을 존경하기를  
 +해동노사라 칭하였다. \\ 
 +\_무술(戊戌) 9월 29일에 정침에서 고종하니, 향년이 72더라.  
 +평해 군남 곡소 공시산의 자(子)좌원에 장사하였다.  
 +배위는 정부인 창원 황씨(黃氏)니 학생 휘 도참(道叅)의 여라,  
 +갑신(甲申)에 생하고 공보다 먼저 졸하여 부후하다.\\ 
 +\_4남이 있으니 장남은 해중(海中)이니 경학에 밝고 행검이 높아  
 +세상에 모범이 되었으며, 다음은 해일(海一), 해정(海正), 해오(海五)니  
 +또한 문필과 아사(雅士)로 이름이 높았다.  
 +이외에 증현손 30여인이 있어 다 기록하지 못하노라. \\ 
 +\_\_7세손 종혁(宗爀) 근찬 
 +</typo> 
 +</WRAP>
c-113.1745407161.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23 20:19 저자 121.166.63.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