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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군묘표비문(平海君廟表碑文)=== | ===평해군묘표비문(平海君廟表碑文)=== | ||
- | 平海君廟表碑文\\ | + | <WRAP 33em justify>< |
- | 太祖朝官至推忠協賛純忠奮義佐命開國功臣崇祿大夫賛成事封平海君 贈 | + | <typo ff:' |
- | 右議政諡襄武姓黃諱希碩以開國元勳特命旌賞不遷之廟位本在漢城府梨 | + | \_平海君廟表碑文\\ |
- | 峴壬癸倭酋之亂六世孫瑁與長侄潤身移安于清安縣院坪西坐之基英祖五 | + | 太祖朝官至推忠協贊純忠奮義佐命開國功臣崇祿大夫贊成事封平海君\_贈 |
- | 年己酉春裔孫鍾與諸孫重修本宇檀紀四二七〇年丁丑春裔孫啟欽聖源與諸 | + | 右議政諡襄武姓黃諱希碩以開國元勳特\_命旌賞不遷之廟位本在漢城府梨 |
- | 宗重修本宇檀紀四二八五年壬辰春裔孫義模與清安諸宗改修門垣墻自宣 | + | 峴壬癸倭酋之亂六世孫琩與長侄潤身移安于淸安縣院坪酉坐之基\_英祖五 |
- | 廟以後四百年之久矣其間三四次重修而正殿不過三間規模狹窄棟宇傾頹為 | + | 年己酉春裔孫鍾與諸孫重修本宇檀紀四二七〇年丁丑春裔孫啓欽聖源與諸 |
- | 子孫者以是大懼 歲壬子春裔孫麟模與胃孫元九諸宗協賛重建本宇廟道始 | + | 宗重修本宇檀紀四二八五年壬辰春裔孫義模與淸安諸宗改修門垣墻自\_宣 |
- | 完國朝以來褒賢獎忠之道於是乎無憾為子孫者奉先之心於是乎永世不替\\ | + | 廟以後四百年之久矣其間三四次重修而正殿不過三間規模狹窄棟宇傾頹爲 |
- | 後裔孫賢模謹撰 | + | 子孫者以是大懼\_歲壬子春裔孫麟模與胄孫元九諸宗協贊重建本宇廟道始 |
- | 檀紀四三一一年戊午月 日立\\ | + | 完\_國朝以來褒賢奬忠之道於是乎無憾爲子孫者奉先之心於是乎永世不替 |
- | + | \_\_後裔孫賢模謹撰\\ | |
- | 평해군묘표비문\\ | + | \_\_檀紀四三一一年戊午月 日立\\ |
- | 조선太祖조에 벼슬이 추충협찬순층분의 좌명개국공신으로 숭록대부찬성사 봉 평해군 증 우의정 시호 양무로서 성은 黃 | + | </ |
- | 이오 휘는 希碩인데 개국의원훈임에 특별한 명으로 정상하되 불천지묘위라 본시는 서울의 이현에 있아옵더니 임진계사 | + | </ |
- | 의 왜난으로 소실되니 | + | \\ |
- | 더니 英祖五年(一七二九) 己酉봄에 예손鍾과 더불어 제종이 중수하였고 또 그후 단기四二七〇年(一九三七) 丁丑봄에 예손 | + | <typo fs: |
- | 啓欽과 聖源으로 더불어 제종이 중수하였고 또 그후 단기四二八五年(一九五二)壬辰봄에 예손義模와 더불어 청안의 제종 | + | \_평해군 묘표 비문\\ |
- | 이 문간과 원장을 수리하였으나 宣祖이후 | + | \_조선 |
- | 간으로 규모도 협착할뿐더러 기둥이 기울고 재목이 퇴락하니 자손된이는 누구든 어찌 송구하고 죄스럽지 아니하리오 | + | 숭록대부 찬성사 봉 평해군 증 우의정 시호 양무로서, 성은 |
- | 子年(一九七二)에 예손麟模와 더불어 주손元九며 제종이 협찬일대 중건이 본우하니 비로서 묘당의 의도를 처음갖추었다 | + | 휘는 |
- | 하겠음이라 이러함은 우리 동방의 국조이래로 어진 현신과 공훈의 충신께 포장하는 道義의 정상이니라 이제 자손이된이 | + | \_본시는 서울의 이현에 있아 옵더니 임진계사의 왜란으로 소실되니, |
- | 는 유한이 없으리니 조상을 받듬에 치성을 다할지어다.영원한 세세를 끊임이 없으리。 | + | 6세손 |
- | 후예손 賢模 근찬 | + | 청안의 원평으로 이안, 유좌(酉坐)의 자리에 |
+ | \_영조(英祖) 5년(1729) 기유(己酉) 봄에 예손 | ||
+ | \_또 그후 단기 | ||
+ | 계흠(啓欽)과 성원(聖源)으로 더불어 제종이 중수하였고, \\ | ||
+ | \_또 그후 단기 | ||
+ | 청안의 제종이 문간과 원장을 수리하였으나, \\ | ||
+ | \_선조(宣祖) 이후 | ||
+ | 오랜동안 | ||
+ | 규모도 협착할 뿐더러 기둥이 기울고 재목이 퇴락하니 자손된 이는 누구든 | ||
+ | 어찌 송구하고 죄스럽지 아니하리오. \\ | ||
+ | \_임자(壬子)년(1972)에 예손 | ||
+ | 협찬일대 중건이 본우하니 비로소 묘당의 의도를 처음 갖추었다 하겠음이라. \\ | ||
+ | \_이러함은 우리 동방의 국조 이래로 어진 현신과 공훈의 충신께 포장하는 | ||
+ | 도의(道義)의 정상이니라. 이제 자손이 된이는 유한이 없으리니, | ||
+ | 조상을 받듬에 치성을 다할지어다.\\ | ||
+ | \_영원한 세세를 끊임이 없으리.\\ | ||
+ | \_\_후예손 | ||
+ | \_\_단기 4311년(1978) 무오(戊午) 월 일 립\\ | ||
+ | </ | ||
+ | </ |
c-122.1745408420.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23 20:40 저자 121.166.63.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