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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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군묘각중건기(平海君廟閣重建記)=== | ===평해군묘각중건기(平海君廟閣重建記)=== | ||
- | 平海君廟閣重建記\\ | + | <WRAP 33em justify>< |
- | 先祖襄武公諱希碩姓黃氏箕城大族也 李太祖創業時純忠奮義佐命開國功 | + | <typo ff:' |
- | 臣封平海君諡襄武 太祖亟稱曰寡躬之得有今日皆卿定策之力也仍賜功臣 | + | \_平海君廟閣重建記\\ |
- | 錄券帶礪有誓宥及子孫因减國財建廟于漢師之梨峴四節奉祀時運不幸宣 | + | 先祖襄武公諱希碩姓黃氏箕城大族也\_李太祖創業時純忠奮義佐命開國功 |
- | 祖壬辰倭亂經過後六世孫瑁與胃孫潤身竭力周旋移建于忠清道清安縣清安 | + | 臣封平海君諡襄武\_太祖亟稱曰寡躬之得有今日皆卿定策之力也仍賜功臣 |
+ | 錄券帶礪有誓宥及子孫因减國財建廟于漢師之梨峴四節奉祀時運不幸\_宣 | ||
+ | 祖壬辰倭亂經過後六世孫琩與胄孫潤身竭力周旋移建于忠淸道淸安縣淸安 | ||
縣即士大夫之冀北也名山韻水軒堂亭閣往往模置而平海君廟宇亦是一也鷄 | 縣即士大夫之冀北也名山韻水軒堂亭閣往往模置而平海君廟宇亦是一也鷄 | ||
龍山羅列於前泗沘水灣回於右盖野地之別境界也歲久年深廟閣腐敗闔族大 | 龍山羅列於前泗沘水灣回於右盖野地之別境界也歲久年深廟閣腐敗闔族大 | ||
- | 懼於麟模與胃孫元九瀾漫相議不惜勞苦涉海踰嶺周流各地布告散在族人竭 | + | 懼於麟模與胄孫元九瀾漫相議不惜勞苦涉海踰嶺周流各地布告散在族人竭 |
心力之所及即其地而重修凡堂宇門寮咸復舊觀以今年春速賓而落之鳴乎偉 | 心力之所及即其地而重修凡堂宇門寮咸復舊觀以今年春速賓而落之鳴乎偉 | ||
哉吾之子孫亦有人焉此先廟之得復起而不永爲荆棘樵牧之場也於是而寓慕 | 哉吾之子孫亦有人焉此先廟之得復起而不永爲荆棘樵牧之場也於是而寓慕 | ||
- | 有所而亦可慰尊靈於九原爲其子孫者豈不佼佼然哉一日永浩族叔與麟模族 | + | 有所而亦可慰尊靈於九原爲其子孫者豈不恔恔然哉一日永浩族叔與麟模族 |
弟甫訪余於葛峴之茅屋責之以廟宇重修記余年老矣不文矣何敢當是役然同 | 弟甫訪余於葛峴之茅屋責之以廟宇重修記余年老矣不文矣何敢當是役然同 | ||
- | 是子孫之地豈敢辭歟畧叙聞見如右以示不忘云\\ | + | 是子孫之地豈敢辭歟畧敍聞見如右以示不忘云\\ |
- | 十九世孫夏模謹記 | + | \_\_十九世孫夏模謹記 |
- | + | </ | |
- | 평해군묘각중건기\\ | + | </ |
- | 선조 襄武공은 휘자가 希碩이오 성은 黃氏며 평해지방의 대족이니라 李太祖께서 건국할때 순층분의 좌명개국공신하야 | + | \\ |
- | 봉 平海君하고 시호를 襄武라 太祖께서 자주 이르기를 과인의 몸이 오늘날을 얻을수 있음은 모두 경의 슬기로운 정책의 | + | <typo fs: |
- | 힘이니라 이로 인하야 공신록권과 훈장으로 대여며 자손등에게 만약의 경우 사면하겠다는 맹약을 하였으며 인하여 국재 | + | \_평해군 묘각 중건기\\ |
- | 로써 서울의 이현에다가 불천지묘위를 세워 | + | \_선조 |
- | 세손瑁이 주손潤身과 더불어 갈역주선하야 충청도 청안고을로 사당을 옮겨 세웠으니 청안고을은 곧 사대부들의 기북지 | + | 이태조(李太祖)께서 건국할 때 순충분의 좌명 개국공신하여 |
- | + | 봉 평해군(平海君)하고 시호를 | |
- | 지니라 명산과 운수 헌당과 정각이 즐비하야 타향의 부러움이러라 그중에 平海君묘각이 또한 하나니라 계룡산낙맥이 둘 | + | 과인의 몸이 오늘날을 얻을 수 있음은 모두 경의 슬기로운 정책의 |
- | 러싸였고 앞에는 사비수가 구비처 돌았으며 좌우로 | + | 힘이니라. 이로 인하여 공신록권과 훈장으로 대여며, 자손 등에게 만약의 경우 |
- | 묘각이 부패됨이니 모든 후손들이 크게 두려워함이었나니 이러함으로써 부득이 麟模가 주손元九와 고심으로 난망상의하 | + | 사면하겠다는 맹약을 하였으며, 인하여 국재로써 서울의 이현에다가 불천지묘위를 |
- | 야 노고를 아끼지 아니하고 찬물을 건너 태령을 넘나들어 각지각향을 두루돌아 품고하니 흩어져있는 족인들이 힘을모아 | + | 세워 |
- | 다 합침에 그힘이 그로모여 미친바되어 본시 묘우가 중건됨이니 적막하기만 하였던 어쨋날의 대구가 모두 다함께 봄눈 | + | 겪은 뒤 6세손 |
- | 처럼 녹아내림은 옛것을 다시보임 이니라 비로서 금년 봄에와서는 빈객이 속속다투어 모임에 성대한 낙성을 이루웠더라 | + | 충청도 청안 고을로 사당을 옮겨 세웠으니 청안 고을은 곧 사대부들의 |
- | 하물며 우리의 자손중에도 역시 난사람은 있노라 이러한 선조의 묘각이 다시 일어나 영원한 장래에도 가시덤풀이나 초 | + | 기북지지니라. 명산과 운수 헌당과 정각이 즐비하여 타향의 부러움이러라. |
- | 동의 목장은 되지않을지니 이로써 선조를 받드는 치성이 더욱 합쳐 구원의 존령을 위로하고 사모한다면 후손들의 쾌함 | + | 그중에 |
- | 이 아니리오 하루는 永浩족숙과 麟模족제로 더불어 갈현의 초막에 나를 찾아와 묘우 중건기를 부탁하니 내 나이 늙었노 | + | \_계룡산 낙맥이 둘러 |
- | 라 글이 되지 않음이니 어찌 감당하리오 그러나 다같은 자손의 처지요 어찌 감히 사향할수 있으라 하야 듣고 본바를 략 | + | 들판은 별유경계니라, 하오나 세월이 흘러 년도가 깊어짐에 |
- | 히 서술함이 우와같이 뵈임으로써 영원한 앞날에 잊지않으리。\\ | + | 묘각이 부패됨이니 모든 후손들이 크게 두려워 함이었나니, 이러함으로써 부득이 |
- | 十九세손 夏模 근기 | + | 인모(麟模)가 주손 |
+ | 찬물을 건너 태령을 넘나들어 각지각향을 두루돌아 품고하니, | ||
+ | 흩어져 있는 족인들이 힘을 모아 다 합침에, 그 힘이 그로모여 미친 바 되어 | ||
+ | 본시 묘우가 중건됨이니, 적막하기만 하였던 어잿 날의 대구가 모두 다함께 봄눈처럼 | ||
+ | 녹아내림은 옛 것을 다시 보임이니라. 비로소 금년 봄에 와서는 빈객이 | ||
+ | 속속 다투어 모임에, 성대한 낙성을 이루었더라.\\ | ||
+ | \_하물며 우리의 자손 중에도 역시 난 사람은 있노라. 이러한 선조의 묘각이 다시 일어나 | ||
+ | 영원한 장래에도 가시덤불이나 초동의 목장은 되지 않을지니, 이로써 선조를 | ||
+ | 받드는 치성이 더욱 합쳐 구원의 존령을 위로하고 사모한다면 후손들의 쾌함이 | ||
+ | 아니리오. \\ | ||
+ | \_하루는 | ||
+ | 나를 찾아와 묘우 중건기를 부탁하니, 내 나이 늙었노라 글이 되지 않음이니 | ||
+ | 어찌 감당하리오. 그러나 다 같은 자손의 처지요 어찌 감히 사향할 수 | ||
+ | 있으라 하여, 듣고 본 바를 | ||
+ | 영원한 앞날에 잊지 않으리.\\ | ||
+ | \_\_19세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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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23.1745749842.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27 19:30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