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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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류정황경신행장략(枕流亭黃敬身行狀畧)=== | ===침류정황경신행장략(枕流亭黃敬身行狀畧)=== | ||
- | <WRAP 33em justify> | + | <WRAP 33em justify>< |
- | <hidden 한문 원문 보기> | + | <typo ff:' |
- | 枕流亭黃敬身行狀畧\\ | + | \_枕流亭黃敬身行狀畧\\ |
- | 公諱敬身字直夫號枕流亭平海人有諱希碩\_\_\_太祖龍興之日推忠協贊開國元 | + | 公諱敬身字直夫號枕流亭平海人有諱希碩\_太祖龍興之日推忠協贊開國元 |
- | 勳封平海君\_\_\_贈右議政諡襄武是為公之七代祖也六代祖諱象\_\_\_太宗朝駙馬 | + | 勳封平海君\_贈右議政諡襄武是爲公之七代祖也六代祖諱象\_太宗朝駙馬 |
- | 兵曹判書兼八道都摠制\_\_\_贈領議政五代祖諱繼祖通訓大夫修義副尉佐軍蔭 | + | 兵曹判書兼八道都摠制\_贈領議政五代祖諱繼祖通訓大夫修義副尉佐軍蔭 |
- | 司直高祖諱自中通訓大夫司僕寺正大護軍曾祖諱詮保功將軍行宣傳官\_\_\_贈 | + | 司直高祖諱自中通訓大夫司僕寺正大護軍曾祖諱詮保功將軍行宣傳官\_贈 |
- | 通政大夫刑曹參議祖諱世通禦侮將軍\_\_\_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 | + | 通政大夫刑曹叅議祖諱世通禦侮將軍\_贈嘉善大夫戶曹叅判兼同知義禁府 |
- | 事考諱唱宣畧將軍行尚州牧使妣淑夫人河陰奉氏樑之女以公\_\_\_宣祖二年己 | + | 事考諱琩宣畧將軍行尙州牧使妣淑夫人河陰奉氏樑之女以公\_宣祖二年己 |
- | 巳十一月二十一日生于漢師之梨峴京第稟資清雅聰明過人年甫十二誦達書 | + | 巳十一月二十一日生于漢師之梨峴京第稟資淸雅聰明過人年甫十二誦達書 |
經有聞輒誦出語驚人可擬於李白樂天及長氣稟敦厚和平寬裕誠孝出天定省 | 經有聞輒誦出語驚人可擬於李白樂天及長氣稟敦厚和平寬裕誠孝出天定省 | ||
之禮甘旨之奉始終不懈可擬於文曾睦族以和一念而與賢仁達士交遊博覽勝 | 之禮甘旨之奉始終不懈可擬於文曾睦族以和一念而與賢仁達士交遊博覽勝 | ||
- | 地山水早遊京鄉而然承襲於求名要譽相去遠矣夫君子之樹德修功將以遺後 | + | 地山水早遊京鄕而然承襲於求名要譽相去遠矣夫君子之樹德修功將以遺後 |
- | 也隱德不仕不得其志飲裝而歸于青川武陵洞築亭於桃源江上名其亭曰枕流 | + | 也隱德不仕不得其志歛裝而歸于靑川武陵洞築亭於桃源江上名其亭曰枕流 |
亭與李西溪得胤相善有講劘之樂友愛尤篤可及於司馬伯康接人和敬詩酒自 | 亭與李西溪得胤相善有講劘之樂友愛尤篤可及於司馬伯康接人和敬詩酒自 | ||
- | 娛然崇祖睦族之誠初志一貫為促單輪告于各郡各派大匡公子孫草輯始於枕 | + | 娛然崇祖睦族之誠初志一貫爲促單輪告于各郡各派大匡公子孫草輯始於枕 |
- | 流亭内仁外和睦族之誠公躐世修己之大槩也\_\_\_孝宗元年庚寅考終于寢壽八 | + | 流亭內仁外和睦族之誠公躐世修己之大槩也\_孝宗元年庚寅考終于寢壽八 |
- | 十三\_\_\_孝廟二年辛卯\_\_\_贈通訓大夫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盖特贈也配淑人 | + | 十三\_孝廟二年辛卯\_贈通訓大夫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盖特贈也配淑人 |
- | 星州李氏僉正元培之女生三男長曰逸忠義衛行司果次曰遈三曰逵承襲於處 | + | 星州李氏僉正元培之女生三男長曰逸忠義衛行司果次曰𢌪三曰逵承襲於處 |
- | 心行己孝友篤行仁厚寬大與物無競鄉里莫不稱之焉公臨江作亭因以枕流亭 | + | 心行己孝友篤行仁厚寬大與物無競鄕里莫不稱之焉公臨江作亭因以枕流亭 |
- | 為號望實俱隆為鄉儀範云餘不盡錄\\ | + | 爲號望實俱隆爲鄕儀範云餘不盡錄\\ |
- | 後裔孫義模謹撰 | + | \_\_後裔孫義模謹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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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류정 황경신 행장략\\ | + | <typo fs: |
- | 공의 휘는 경신(敬身)이오 자는 직부(直夫)라 호는 침류정(枕流亭)이니 평해인이오 휘를 희석(希碩)이라 하는 어른이 계시온데 태조(太祖) 건국에 | + | \_침류정 황경신 행장략\\ |
- | 추충협찬 개국원훈으로 평해군(平海君)을 봉하고 우의정하야 시호 양무공이라 즉 공의 7대조가 되시고 6대조의 휘는 상(象)이오 태종(太宗)조의 | + | \_공의 휘는 경신(敬身)이오 자는 직부(直夫)라 호는 침류정(枕流亭)이니 평해인이오. |
- | 부마 병조판서 겸 팔도 도총제 증 영의정이오 5대조의 휘 계조(繼祖)는 통훈대부 수의부위 좌군 음사직이오 고조의 휘는 | + | 휘를 희석(希碩)이라 하는 어른이 계시온데 태조(太祖) 건국에 |
- | 자중(自中) 통훈대부 사복시정 대호군이요 증조의 휘 전(詮)은 보공장군 행 선전관 증 통정대부 형조참의요 조의 휘 세통(世通)은 | + | 추충협찬 개국원훈으로 평해군(平海君)을 봉하고 우의정하여 시호 양무공이라 즉 공의 7대조가 되시고, 6대조의 휘는 상(象)이오 태종(太宗)조의 |
- | 어모장군 승 통정대부 형조참의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검부사요 선고의 휘 창(琩)은 선략장군 행 상주목사라 선비(先妣) 숙부인은 하음 봉씨(奉氏) 양(樑)의 여(女)라 공이 선조(宣祖) 2년(1569) 기사(己已) 11월 20일에 서울의 이현의 세가에서 생하시니 자질이 청아하고 | + | 부마 병조판서 겸 팔도 도총제 증 영의정이오, 5대조의 휘 계조(繼祖)는 통훈대부 |
- | 총명이 과인하야 나이 겨우 12세에 4서3경을 달송하며 한번 들으면 곧 외우고 글을 지으면 사람들을 놀라게 하니 | + | 수의부위 좌군 음사직이오, 고조의 휘는 |
- | 가히 장자 이백(李白)과 백낙천(白樂天)을 압도할 사람이 될 것이라고 모두 칭찬하였다. 또 장성함에 기품이 돈후하야 화평하고 관유한 | + | 자중(自中) 통훈대부 사복시정 대호군이요, 증조의 휘 전(詮)은 보공장군 |
- | 천성으로 효성이 출천하야 혼정신성과 감지봉양하는 정성이 시종 게으르지 아니하여 가히 문증(文曾)에 비유하겠으나 이름을 | + | 행 선전관 증 통정대부 형조참의요, 조의 휘 세통(世通)은 |
- | 알리고 명예를 얻기 위한 행동은 일체 없었다. 무릇 군자의 덕을 심고 공을 닦는 것은 장차 후래에 남김을 위함이라 하고 | + | 어모장군 승 통정대부 형조참의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요, |
- | 덕을 감추고 벼슬을 마다하니 뜻을 펴지 못하고 가족과 행장을 거두어 | + | 선고의 휘 창(琩)은 선략장군 행 상주목사라, 선비(先妣) 숙부인은 하음 봉씨(奉氏) |
- | 청천 무능동에 들어가 도원강상에 정자를 짓고 枕流亭이라 편액하였다. | + | 양(樑)의 여(女)라. \\ |
- | 연이나 李서계 득윤(得胤)과 기지상합하여 성리지학을 강마하며 우의가 더욱 두터워 옛날 사마백강(司馬伯康)간의 | + | \_공이 선조(宣祖) 2년(1569) 기사(己已) 11월 20일에 서울의 이현의 |
+ | 세가에서 생하시니, 자질이 청아하고 | ||
+ | 총명이 과인하여 나이 겨우 12세에 4서3경을 달송하며, 한번 들으면 곧 외우고 | ||
+ | 글을 지으면 사람들을 놀라게 하니, | ||
+ | 가히 장자 이백(李白)과 백낙천(白樂天)을 압도할 사람이 될 것이라고 모두 칭찬하였다. | ||
+ | 또 장성함에 기품이 돈후하야 화평하고 관유한 | ||
+ | 천성으로, 효성이 출천하야 혼정신성과 감지봉양하는 정성이 시종 게으르지 | ||
+ | 아니하여 가히 문증(文曾)에 비유하겠으나, 이름을 | ||
+ | 알리고 명예를 얻기 위한 행동은 일체 없었다. | ||
+ | \_무릇 군자의 덕을 심고 공을 닦는 것은 장차 후래에 남김을 위함이라 하고, | ||
+ | 덕을 감추고 벼슬을 마다하니 뜻을 펴지 못하고, 가족과 행장을 거두어 | ||
+ | 청천 무릉동에 들어가, 도원 강상에 정자를 짓고 | ||
+ | 연이나 | ||
우애에 비길만하더라. 또 접객에 항상 화열과 겸손이 일관함으로 친함이 | 우애에 비길만하더라. 또 접객에 항상 화열과 겸손이 일관함으로 친함이 | ||
- | 없는 이 없으며 성품이 쾌활하여 수시로 시주의 | + | 없는 이 없으며, 성품이 쾌활하여 수시로 시주의 |
- | 흥취에 잠기는 등 고상한 생활을 즐겼고 도는 숭조목족의 의(義)는 일생을 | + | 흥취에 잠기는 등 고상한 생활을 즐겼고, 도는 숭조목족의 의(義)는 일생을 |
- | 일관함으로 각읍 문중에 통유단자를 수즙 초보를 | + | 일관함으로 각읍 문중에 통유단자를 수집, 초보를 |
- | 집성함이 침류정(枕流亭)공의 내인외화란 목족지성의 실이라하겠다. | + | 집성함이 침류정(枕流亭)공의 내인외화란 목족지성의 실이라 하겠다.\\ |
- | 공이 일생을 걸어온 자취와 자기수행의 대략이 위와 같으며 | + | \_공이 일생을 걸어온 자취와 자기수행의 대략이 위와 같으며 |
- | 효종(孝宗) 원년(元年) 경인(庚寅)에 정침에서 고종하니 향년이 83이라 효종(孝宗) 2년 신묘(辛卯)에 증 통훈대부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하니 이는 | + | 효종(孝宗) 원년(元年) 경인(庚寅)에 정침에서 고종하니 향년이 83이라. |
- | 특별 증첩이었다. 배위는 숙부인(淑夫人) 성주이씨(星州李氏) 첨정 원배(元培)의 여(女)라 3남을 생하셨으니 장왈 일(逸)이니 충의위사과요 차왈 | + | 효종(孝宗) 2년 신묘(辛卯)에 증 통훈대부 절충장군 첨지 중추부사하니. 이는 |
- | 관대하니 원근향리에서 칭찬이 자자터러라 | + | 특별 증첩이었다. 배위는 숙부인(淑夫人) 성주이씨(星州李氏) 첨정 원배(元培)의 |
- | 공이 청천무릉 도원 강변에 침류정(枕流亭)을 세우고 인망과 실존이 | + | 여(女)라. 3남을 생하셨으니, 장왈 일(逸)이니 충의위사과요, 차왈 |
- | 융숭하니 일향의 의절이 되었다 하더라 나머지는 다 기록치 못하노라。\\ | + | 3왈 규(逵)이라. 모두 착한 마음과 정직한 행실로 효도하고 우애하며 |
- | 후예손 의모 근서 | + | 관대하니 원근향리에서 칭찬이 자자하더라. |
+ | 공이 청천 무릉 도원 강변에 침류정(枕流亭)을 세우고 인망과 실존이 | ||
+ | 융숭하니 일향의 의절이 되었다 하더라. 나머지는 다 기록치 못하노라\\ | ||
+ | \_\_후예손 의모(義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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