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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員前娶判書利川徐仁元之孫女繼娶進士星州李致遠之孫女考諱世俊成均生 | 員前娶判書利川徐仁元之孫女繼娶進士星州李致遠之孫女考諱世俊成均生 | ||
員以經明行修見稱於世娶郡守全州崔世珪之女\_景廟壬寅生府君于西上盤 | 員以經明行修見稱於世娶郡守全州崔世珪之女\_景廟壬寅生府君于西上盤 | ||
- | 松舊第天質敦厚姿品異凡宗族奇之鄉里稱之甫十歲能詩賦語輒驚人事親以 | + | 松舊第天質敦厚姿品異凡宗族奇之鄕里稱之甫十歲能詩賦語輒驚人事親以 |
- | 孝睦族以和年十七丁外艱斷指流血哀慟號哭三年食素泣血丁内艱又爲斷指 | + | 孝睦族以和年十七丁外艱斷指流血哀慟號哭三年食素泣血丁內艱又爲斷指 |
- | 哀毁昏絕一鄉皆稱出天之孝府君兒時俱遭內外艱倚於伯氏生員公諱運河生 | + | 哀毁昏絶一鄕皆稱出天之孝府君兒時俱遭內外艱倚於伯氏生員公諱運河生 |
- | 員公奇其絕才課督不已乃成巨儒京洛公卿皆慕其德望成叅判德雨洪承旨彦 | + | 員公奇其絶才課督不已乃成巨儒京洛公卿皆慕其德望成叅判德雨洪承旨彦 |
喆朴都正師喆皆待以先生當文巖院任時以退陶先生祝辭往論於尾湖金撰善 | 喆朴都正師喆皆待以先生當文巖院任時以退陶先生祝辭往論於尾湖金撰善 | ||
而言語正直問答有理金撰善待之以畏友公志氣慷慨俯示濁世無所顧憚俗子 | 而言語正直問答有理金撰善待之以畏友公志氣慷慨俯示濁世無所顧憚俗子 | ||
- | 輩娼嫉搆捏而未小屈也晚年有遺世之志隱居北中開明洞杖屨彷徨于漁磯幽 | + | 輩娼嫉搆捏而未小屈也晩年有遺世之志隱居北中開明洞杖屨彷徨于漁磯幽 |
- | 溪之上興至飲一深盃咏一絕詩慷慨望千古一日或以和言接人或以至論激世 | + | 溪之上興至飮一深盃咏一絶詩慷慨望千古一日或以和言接人或以至論激世 |
- | 故所見或非義則斥絕不容若將浼焉所喜者故舊所愛者親戚配僉中樞驪興閔 | + | 故所見或非義則斥絶不容若將凂焉所喜者故舊所愛者親戚配僉中樞驪興閔 |
- | 垕之女生六男長曰尚樂次曰尚穆三曰尚植四曰尚菊五曰尚栗六日尚秀周甲 | + | 垕之女生六男長曰尙樂次曰尙穆三曰尙植四曰尙菊五曰尙栗六曰尙秀周甲 |
- | 壬寅卒山林崔左海輓詩九發解可爲一進士難得進士李光鎭輓詩斷指絕誠春 | + | 壬寅卒山林崔左海輓詩九發解可爲一進士難得進士李光鎭輓詩斷指絶誠春 |
色暮驚人佳作洛城傳進士梁德周輓詩曰以公志業何不成爭道其門運再享公 | 色暮驚人佳作洛城傳進士梁德周輓詩曰以公志業何不成爭道其門運再享公 | ||
之遺稿行于世\\ | 之遺稿行于世\\ | ||
- | \_\_不肖子尚穆泣撰 | + | \_\_不肖子尙穆泣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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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조의 휘는 인(麟) 예조판서요, | 13대조의 휘는 인(麟) 예조판서요, | ||
11대조의 휘 길원(吉源)은 선공감정이요, | 11대조의 휘 길원(吉源)은 선공감정이요, | ||
- | 예조참의요, | + | 예조참의요, |
전배위는 판서 서인원(徐仁元)의 손녀(孫女)요, | 전배위는 판서 서인원(徐仁元)의 손녀(孫女)요, | ||
계배위는 진사 성주 이치원(李致遠)의 손녀(孫女)요. 고위의 휘는 세준(世俊)이니 | 계배위는 진사 성주 이치원(李致遠)의 손녀(孫女)요. 고위의 휘는 세준(世俊)이니 | ||
성균생원으로 경명행수 즉 경학에 밝고 행실이 착하여 세상에서 칭찬이 | 성균생원으로 경명행수 즉 경학에 밝고 행실이 착하여 세상에서 칭찬이 | ||
- | 자자하였으며 배위는 군수 전주최세규(崔世珪)의 여(女)라. \\ | + | 자자하였으며 배위는 군수 전주 최세규(崔世珪)의 여(女)라. \\ |
\_부군은 경종(景宗) 임인(壬寅)(1722)에 서상 반송 구제에서 생하셨다. | \_부군은 경종(景宗) 임인(壬寅)(1722)에 서상 반송 구제에서 생하셨다. | ||
천성이 돈후하고 인품이 범상치 않으니 종족 향당이 기특이 여겨 | 천성이 돈후하고 인품이 범상치 않으니 종족 향당이 기특이 여겨 | ||
줄 54: | 줄 54: | ||
박(朴) 도정 사철(師喆) 등이 모두 선생님으로 존경하였다. | 박(朴) 도정 사철(師喆) 등이 모두 선생님으로 존경하였다. | ||
당시 문암서원((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에 있었던 조선후기 이황과 조목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임원으로 재임할 때 이(李)퇴계 선생에 관한 | 당시 문암서원((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에 있었던 조선후기 이황과 조목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임원으로 재임할 때 이(李)퇴계 선생에 관한 | ||
- | 축사할 일이 있어 갔을 때, 미호 김찬서(金撰善)과 상론 함에 있어서 | + | 축사할 일이 있어 갔을 때, 미호 김찬선(金撰善)과 상론 함에 있어서 |
언어가 정직하고 문답이 유리하니 김찬선(金撰善)이 | 언어가 정직하고 문답이 유리하니 김찬선(金撰善)이 | ||
외우(畏友)((두려워하며 존경하는 벗.))로 존경하였으며, | 외우(畏友)((두려워하며 존경하는 벗.))로 존경하였으며, | ||
줄 64: | 줄 64: | ||
또 때로는 다정한 말로 사람들을 접하고 때로는 엄숙한 언론으로 세인을 | 또 때로는 다정한 말로 사람들을 접하고 때로는 엄숙한 언론으로 세인을 | ||
격려하는 고로, 비의와 탐음을 볼 때는 호되게 꾸짖고 경계하며 멀리하더라. | 격려하는 고로, 비의와 탐음을 볼 때는 호되게 꾸짖고 경계하며 멀리하더라. | ||
- | 그리고 반가워 하는 것은 옛친구요, | + | 그리고 반가워 하는 것은 옛친구요, |
\_배위는 첨지중추 여흥 민후(閔垕)의 여(女)라. \\ | \_배위는 첨지중추 여흥 민후(閔垕)의 여(女)라. \\ | ||
- | \_6남을 두었으니 장에 왈 상락(尚樂), 차에 왈 상목(尚穆), 3에 왈 | + | \_6남을 두었으니 장에 왈 상락(尙樂), 차에 왈 상목(尙穆), 3에 왈 |
- | 상식(尚植), 4에 왈 상국(尚菊), 5에 왈 상률(尚栗), 6에 왈 상수(尚秀)라. \\ | + | 상식(尙植), 4에 왈 상국(尙菊), 5에 왈 상률(尙栗), 6에 왈 상수(尙秀)라. \\ |
\_주갑 임인(壬寅)에 졸하니, 산림(山林) 최좌해(崔左海) 만시에 왈 | \_주갑 임인(壬寅)에 졸하니, 산림(山林) 최좌해(崔左海) 만시에 왈 | ||
- | ' | + | ' |
- | 우나 한 진사를 얻기는 어렵더라. 진사 이광진(李光鎭) 만시에 왈 | + | 쉬우나 한 진사를 얻기는 어렵더라. 진사 이광진(李光鎭) 만시에 왈 |
- | ' | + | ' |
- | 도기문운(道其門運)' | + | 즉, 단지하는 효성은 춘색이 저물었고, |
+ | 진사 양덕주(梁德周) 만시에 왈 ' | ||
+ | 쟁도기문(爭道其門) 운재형(運再亨)' 즉, 공이 뜻한 일이 | ||
어찌해서 이루지 못하리요, | 어찌해서 이루지 못하리요, | ||
- | \_재형(再亨) | + | \_공의 유고가 세상에 빛나더라.\\ |
- | \_\_불초子 상목(尚穆) 근찬 | + | \_\_불초자(子) 상목(尙穆) 근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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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34.1746310355.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04 07:12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