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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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오재황응명행장략(少梧齋黃應明行狀略)=== | ===소오재황응명행장략(少梧齋黃應明行狀略)=== | ||
+ | <WRAP 33em justify>< | ||
+ | <typo ff:' | ||
\_少梧齋黃應明行狀略\\ | \_少梧齋黃應明行狀略\\ | ||
公姓黃諱應明字昌世平海人少梧其號也黃氏自學士公東來之後仍家東海其 | 公姓黃諱應明字昌世平海人少梧其號也黃氏自學士公東來之後仍家東海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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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事雕繡而文詞贍暢不用桅蠟而操履端直孝友以治家敦睦以處族尤用力於 | 不事雕繡而文詞贍暢不用桅蠟而操履端直孝友以治家敦睦以處族尤用力於 | ||
接物之道見人有過傾心以規之聞人有善虛己以贊之至於臨利害輒先人而後 | 接物之道見人有過傾心以規之聞人有善虛己以贊之至於臨利害輒先人而後 | ||
- | 己如溝洫盡力之事亦多利澤之及人而後世稱頌焉晚築茅廬於梧谷之月延山 | + | 己如溝洫盡力之事亦多利澤之及人而後世稱頌焉晩築茅廬於梧谷之月延山 |
- | 下扁其齋日少梧日與村秀才子講明為人之道不知老之將至間邀賓友詩酒以 | + | 下扁其齋曰少梧日與村秀才子講明爲人之道不知老之將至間邀賓友詩酒以 |
- | 娛每誦陶靖節歸去來辭以樂夫天命四字為一生究竟而不喜徵逐於世求知於 | + | 娛每誦陶靖節歸去來辭以樂夫天命四字爲一生究竟而不喜徵逐於世求知於 |
人隱行潛德盡其在我之道而已故當世之知者盖尠而公無慍焉享年八十二而 | 人隱行潛德盡其在我之道而已故當世之知者盖尠而公無慍焉享年八十二而 | ||
- | 卒追\_贈嘉善嗚呼有善而隱有文而謙盡我人道沒世無憫如公者真可謂篤行 | + | 卒追\_贈嘉善嗚呼有善而隱有文而謙盡我人道沒世無㦖如公者眞可謂篤行 |
- | 君子昔大海海月兩先生以文章德行重於一世公以吳中晚生承襲遺馥此夫子 | + | 君子昔大海海月兩先生以文章德行重於一世公以吳中晩生承襲遺馥此夫子 |
+ | 所云魯無君子斯焉取斯者儘公之謂耶公之七世孫一河甫訪余山中求記一言 | ||
+ | 於行錄之後余固非其人且念公之事行載在平鄕人士之傳誦桐山行義自有百 | ||
+ | 世之昌藜則何待余言之寂寥也然好善之彛遠邇無間略記所感如右云爾\\ | ||
+ | \_\_漢陽趙秉雲謹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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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typo fs: | ||
+ | \_소오재 황응명 행장략\\ | ||
+ | \_공의 성은 황(黃)이오 휘는 응명(應明)이오 자는 창세(昌世)인데, | ||
+ | 계출이 평해라. 소오(少梧)는 그의 호이다. 황씨(黃氏)는 신라 때에 | ||
+ | 학사공(學士公)께서 동으로 오심에 인하여, 세가가 동해안의 평해이라. | ||
+ | 그간 세세로 큰 선비와 덕망이 높은 분이 많았으며 찬성(贊成)공의 | ||
+ | 공훈과 업적과 더불어 애모(愛慕)공의 출천지효는 더욱 빛나 | ||
+ | 세인의 우러러 망족으로 나타남이요. \\ | ||
+ | \_공이 생함에 총명할 뿐더러 지혜가 범아와 다르더니 | ||
+ | 차차 장성함에는 착한 중심이 옥에다 수를 놓은 듯 다를 바 없더니, | ||
+ | 문장기법이 날로 넉넉 창성함에 비할 바 없는 박학달사더라. | ||
+ | 몸가짐이 단정 고직하여 행의가 엄숙하고, | ||
+ | 가솔을 다스림에 돈목으로서 조이하며, | ||
+ | 남을 대할 때나 사물을 접함에는 예도로써 응하며, 남에게 허물이 있을 때에는 | ||
+ | 그 말을 하지 않고 의범으로써 대하고, 남의 착함을 들을 때에는 헛되게 | ||
+ | 하지 않고 찬성으로써 자기의 본을 삼음이라. | ||
+ | 이해득실에 있어서는 남을 먼저하고 나를 뒤로 하며, 남을 언제나 먼저 편히 하니, | ||
+ | 항시 당신은 구혁을 면치 못하더라. | ||
+ | 언제나 힘을 다함은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미치는 덕이더라. | ||
+ | 행신이 항상 이러함이니 후세까지도 그의 칭송이 전함이라. \\ | ||
+ | \_만년에 오곡의 월연산 밑에 초가를 짓고 소오재(少梧齋)라 현판을 달고, | ||
+ | 마을의 가제를 모아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며, | ||
+ | 간혹 손님이나 벗을 맞이하여 시(詩)를 짓고 술을 마시며 즐기고, | ||
+ | 매번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외우고 낙부천명(樂夫天命)이란 | ||
+ | 4자(四字)를 일생 동안 연구하고, | ||
+ |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도 구하지 아니하여 행실과 덕을 숨기며 | ||
+ | 나의 도리를 다할 뿐이라하는 연고로, 당세에 아는 이는 많치 않았으나 | ||
+ | 한됨은 없었다. \\ | ||
+ | \_향년 82로 생을 마치니 이의 | ||
+ | 덕망과 행의가 널리 알려짐에, | ||
+ | 의가 현세에 몰락하여 민망함을 금할 바 없는 이 시점에 공과 같은 이는 | ||
+ | 참으로 | ||
+ | 가히 돈독한 행위군자리라. \\ | ||
+ | \_옛날 대해(大海) 해월(海月) 양선생의 문장덕행으로써 한 세대를 중히 하시더니 | ||
+ | 공이 종중에 후생으로서 선대에 끼친 향기를 잘 이어나가고 있으니, | ||
+ | 이것은 공자가 말씀한 노나라에 군자가 없으니 이는 성심열의로 도를 닦음의 | ||
+ | 노력으로 얻어지는 바이라 하더니, 진실로 공을 이름인가 함이라. \\ | ||
+ | \_7세손 일하(一河)씨가 산 중의 나를 찾아와 말하되, 선조의 행장기를 | ||
+ | 후세에 남기기를 구함이라 하며 열심히 간청커늘, | ||
+ | 미치지 못함에 아니 됨을 고집이나, | ||
+ | 평해향현록에 재재하여 전송함이 동산행의라, | ||
+ | 100세의 후에라도 | ||
+ | 한퇴지((한유(韓愈) 대력 3년(768년)~장경 4년(824년). 중국 당(唐)을 대표하는 문장가 · 정치가 · 사상가이다. 당송 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자(字)는 퇴지(退之), | ||
+ | 그러나 호선지이는 원리가 없음은 점하노라. \\ | ||
+ | \_공의 행덕사실을 략하여 기술인 바나 느낌이 우와 같음이라.\\ | ||
+ | \_\_한양 조병운(趙秉雲) 근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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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36.1746103095.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01 21:38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