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재황응명행장략(少梧齋黃應明行狀略)
소오재 황응명 행장략
공의 성은 황(黃)이오 휘는 응명(應明)이오 자는 창세(昌世)인데,
계출이 평해라. 소오(少梧)는 그의 호이다. 황씨(黃氏)는 신라 때에
학사공(學士公)께서 동으로 오심에 인하여, 세가가 동해안의 평해이라.
그간 세세로 큰 선비와 덕망이 높은 분이 많았으며 찬성(贊成)공의
공훈과 업적과 더불어 애모(愛慕)공의 출천지효는 더욱 빛나
세인의 우러러 망족으로 나타남이요.
공이 생함에 총명할 뿐더러 지혜가 범아와 다르더니
차차 장성함에는 착한 중심이 옥에다 수를 놓은 듯 다를 바 없더니,
문장기법이 날로 넉넉 창성함에 비할 바 없는 박학달사더라.
몸가짐이 단정 고직하여 행의가 엄숙하고, 효성과 우애가 지성하며,
가솔을 다스림에 돈목으로서 조이하며, 종족에 있어는 더욱 힘을 다하며,
남을 대할 때나 사물을 접함에는 예도로써 응하며, 남에게 허물이 있을 때에는
그 말을 하지 않고 의범으로써 대하고, 남의 착함을 들을 때에는 헛되게
하지 않고 찬성으로써 자기의 본을 삼음이라.
이해득실에 있어서는 남을 먼저하고 나를 뒤로 하며, 남을 언제나 먼저 편히 하니,
항시 당신은 구혁을 면치 못하더라.
언제나 힘을 다함은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미치는 덕이더라.
행신이 항상 이러함이니 후세까지도 그의 칭송이 전함이라.
만년에 오곡의 월연산 밑에 초가를 짓고 소오재(少梧齋)라 현판을 달고,
마을의 가제를 모아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며, 장차 늙어감을 알지 못하고
간혹 손님이나 벗을 맞이하여 시(詩)를 짓고 술을 마시며 즐기고,
매번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외우고 낙부천명(樂夫天命)이란
4자(四字)를 일생 동안 연구하고, 세상에 벼슬하는 것을 즐기지 아니하고,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도 구하지 아니하여 행실과 덕을 숨기며
나의 도리를 다할 뿐이라하는 연고로, 당세에 아는 이는 많치 않았으나
한됨은 없었다.
향년 82로 생을 마치니 이의
덕망과 행의가 널리 알려짐에, 추후로 나라에서 증직 함에 가선대부를 제수하니라. 오호라! 선함이 유하고 은사로 문학이 유여하나 겸손함을 다하니, 우리의 인생사에도
의가 현세에 몰락하여 민망함을 금할 바 없는 이 시점에 공과 같은 이는
참으로
가히 돈독한 행위군자리라.
옛날 대해(大海) 해월(海月) 양선생의 문장덕행으로써 한 세대를 중히 하시더니
공이 종중에 후생으로서 선대에 끼친 향기를 잘 이어나가고 있으니,
이것은 공자가 말씀한 노나라에 군자가 없으니 이는 성심열의로 도를 닦음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바이라 하더니, 진실로 공을 이름인가 함이라.
7세손 일하(一河)씨가 산 중의 나를 찾아와 말하되, 선조의 행장기를
후세에 남기기를 구함이라 하며 열심히 간청커늘, 나는 그만한 장문의 글에
미치지 못함에 아니 됨을 고집이나, 그의 집념이 공의 사적이
평해향현록에 재재하여 전송함이 동산행의라, 공의 적덕행의가 이러하니
100세의 후에라도
한퇴지1) 같은 문장이 지어 줄 것인데 어찌 나 같이 고루한 자에 부탁하는가?
그러나 호선지이는 원리가 없음은 점하노라.
공의 행덕사실을 략하여 기술인 바나 느낌이 우와 같음이라.
한양 조병운(趙秉雲) 근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