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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22 [2025/05/11 11:15] ssio2c3-022 [2025/05/29 18:26]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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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ypo ff:'한양해서'> <typo ff:'한양해서'>
 \_**甲子譜序**\\ \_**甲子譜序**\\
-\_내가 초여름부터 先墓에 治石 役事가 있어서 文山 丙舍에 머무른지가 +\_내가 초여름부터 선묘(先墓)에 치석(治石) 역사(役事)가 있어서 문산(文山) 병사(丙舍)에 머무른지가 
-이미 月餘가 넘은 어느날 黃君 鍾欽이 專委해서 旅中에 來訪하여 +이미 월여(月餘)가 넘은 어느날, 황군(黃君) 종흠(鍾欽)이 전위(專委)해서 여중(旅中)에 내방(來訪)하여 
-대충 兩家에 世誼가 있었다는 말을 하고 一冊子와 族人 과 玉 兩氏의 +대충 양가(兩家)에 세의(世誼)가 있었다는 말을 하고, 1책자(一冊子)와 족인(族人) 발(墢)과 옥() 양씨(兩氏)의 
-書札을 보이면서 吾家의 新編 世譜인 바 卷首에 序文이 없을 수 없다 하여 +서찰(書札)을 보이면서, 오가(吾家)의 신편(新編) 세보(世譜)인 바  
-나에게 一言을 要請하는데 그 촉탁이 매우 간결하고도 또 遠路에 +권수(卷首)에 서문(序文)이 없을 수 없다 하여, 
-찾아온 誠意가 사람을 感動케 하나 돌아보건데 나의 學文이 적고 +나에게 일언(一言)을 요청(要請)하는데 그 촉탁이 매우 간결하고도 또 원로(遠路)에 
-精神이 昏迷한데 이런 처지로 글을 써 과연 높은 眼目에 合用될 것인지 +찾아온 성의(誠意)가 사람을 감동(感動)케 하나돌아보건데 나의 학문(學文)이 적고 
-염려스러워 차라리 굳게 사양하고 말리라 생각했으나 世誼가 있는 처지요 +정신(精神)이 혼미(昏迷)한데 이런 처지로 글을 써 과연 높은 안목(眼目)에 합용(合用)될 것인지 
-또 나의 蕪拙한 말로는 그 청탁을 防塞할 수 없어 삼가 譜牒을  +염려스러워차라리 굳게 사양하고 말리라 생각했으나, 세의(世誼)가 있는 처지요 
-상고해보니 平海黃氏의 始祖이신 諱 洛이라는 어른이 처음 東쪽 나라에 +또 나의 무졸(蕪拙)한 말로는 그 청탁을 방색(防塞)할 수 없었다.\\
-오셔서 因居 平海하시고 後에 그의 아들 兄弟 三人이 +
-各各 貫鄕을 封한 바 平海가 제일 위라. 그 後 簪組相承官爵이 계속 +
-이어졌는데 忠敬公 같은 분은 벼슬이 崇秩 즉 一人之下에 +
-萬人之上인 最高 관직에 이르렀으며 또 數世를 지나서 襄武公이 +
-李太祖 建國日에 推忠協贊의 功業의 뛰어나 爵祿을 贈受하고 +
-封君의 榮寵이 있으니 아ㅣ隆盛하도다. 또 監司公은 經學에 밝고 +
-行義가 높았으며 養閒公은 壬辰倭亂 때에 義兵을 +
-일으켜 忠義를 다함과 忠烈公의 殉國大節이며 八警公은 我先祖  +
-尤庵 門下에서 學業을 닦아 性理書를 힘써 배움으로써 士友 間에 +
-重望이 있었음은 더욱 可賞할 것이다. 생각컨데 이같은 名門閥族이 +
-오늘 東方의 大族으로서 修譜하는 舉事가 어찌 +
-重大치 않겠는가?\\+
  
-\_대저 의 親疏 遠近을 論할 것 없이 本貫이 同貫일 때는 同譜로 +\_삼가 보첩(譜牒)을  
-歸一는 것이 人家의 떳떳한 規則는 하나 代가 멀질수록 +상고해보니 평해황씨(平海黃)의 시조(始祖)신 휘(諱) 낙(洛)는 어른이 처음 동(東)쪽 나라에 
-子姓 즉 後孫이 더욱 많져서 一譜에 合同가 어려운 것은 事 +오셔서 인거(因居) 평해(平海)시고, 후(後)에 그의 아들 형제(兄弟) 3인(三人)이 
-그렇게 만들는 것이다.\\+각각(各各) 관향(貫鄕)을 봉(封)한 바 평해(平海)가 제일 위라.  
 +그 후(後) 잠조(簪組) 상승(相承) 관작(官爵)이 계속 
 +이어졌데, 충경공(忠敬公) 같은 분은 벼슬이 숭질(崇秩) 즉 일인지(一人之下)에 
 +만인지상(萬人之上)인 최고(最高) 관직에 이르렀으며, 또 수세(數)를 지나서 양무공(襄武公)이 
 +이태조(李太祖) 건국일(建國日)에 추충협찬(推忠協贊)의 공업(功業)의 뛰나 작(爵祿)을 증수(贈受)하고 
 +봉군(封君)의 영총(榮寵)이 있었으니, ! 융성(隆盛)하도다. 또 감사공(監司公)은 경학(經學)에 밝고 
 +행의(行義)가 높았으며, 양한당(養閒公)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 의병(義兵)을 
 +일으켜 충의(忠義)를 다함과, 충렬공(忠烈公)의 순국대절(殉國大節)이며, 팔경공(八警公)은 아(我) 선조(先祖)  
 +우암(尤庵) 문(門下)에서 학업(學業)을 닦아 성리서(性理書)를 힘써 배움으로써 사우(士友) 간(間)에 
 +중망(重望)이 있었음은 더욱 상(可賞)할 이다. 생각컨데 이같은 명문벌족(名門閥族)이 
 +오늘 동방(東方)의 대족(大族)으로서 수보(修譜)하는 거사(擧)가 어찌 
 +중대(重大)치 않겠가?\\
  
-\_오직 여기 黃가 宗會한지 一年만에 한 派의 譜系를 考證하고 +\_대저 씨족(族)의 친소(親疏) 원근(遠近)을 논(論)할 것 없이 본관(本貫)이 동관(同貫)일 때는 동보(同)로 
-訂正여 忠敬公의 先代 系 및 子孫올 詳審여 遺漏함+귀일(歸一)는 것이 인가(人家)의 떳떳한 규칙(規則)이기는 하나 세대(代)가 멀어질수록 
 +자성(姓) 즉 후손(後)이 더욱 많아져서 1보(一譜)에 합동(合同)기가 어려운 것은 사세(事勢)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다.\\
  
-19p 까+\_오직 여기 황씨(黃氏)가 종회(宗會)한지 1년(一年)만에 한 파(派)의 보계(譜系)를 고증(考證)하고 
 +정정(訂正)하여 충경공(忠敬公)의 선대(先代) 세계(世系) 및 자손(子孫)을 상심(詳審)하여 유루(遺漏)함이 
 +없고 자람(孜覽)하기 편리하도록 편집하기를 수십번(數十番)하여 장차 인판(印版)에  
 +붙이게 되었으니, 가히 성력(誠力)있는 바요 또 보족(保族)의 성사(盛事)임을  
 +알만하다. 참으로 감탄하여 마지않는다. 충경공(忠敬公)의 하계(下系)가  
 +이미 려대(麗代)에 이르러 파분지렬(派分枝列)이 각처(各處)에 산거(散居)하니  
 +왕왕(往往) 명자(名字)나 안면을 모르고 행인(行人)과 같이 지낸다면  
 +이것이 어찌 조상(祖上)의 뜻이겠는가? 이제 보책(譜冊)이 편집 완료되었으니  
 +종족(宗族)이 한자리에 모인 것 같고 또 친애(親愛)하는 마음이 자연히  
 +그 가운데 흐를 것이다. 충경공(忠敬公)의 후예(後裔)되는 자 각각 힘쓰기  
 +바란다. 충경공(忠敬公) 백중(伯仲) 양파(兩派)도 각위(各爲) 수보(修譜)한다는 말이 있다.\\ 
 +\_\_소양(昭陽) 대연헌(大淵獻)(=계해(癸亥)) 복지(復之) 상한(上澣) 덕은(德隱) 송술헌(宋述憲) 근서(謹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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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22.1746929728.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1 11:15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