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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26 [2025/05/13 18:14] ssio2c3-026 [2025/05/18 18:05] (현재) 121.166.63.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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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ypo ff:'한양해서'> <typo ff:'한양해서'>
 \_**甲戌譜跋**\\ \_**甲戌譜跋**\\
-\_내가 일찍이 소씨(蘇氏)의 보학(譜學)을 읽다가 효제(孝悌)의 마음이 유연(油然)히 生한다는 +\_내가 일찍이 소씨(蘇氏)의 보학(譜學)을 읽다가 효제(孝悌)의 마음이 유연(油然)히 생()한다는 
-구절(句節)에 이르러서 탄식하여 말하되 우리 황씨(黃氏)의 관향(貫鄕)을+구절(句節)에 이르러서 탄식하여 말하되우리 황씨(黃氏)의 관향(貫鄕)을
 평해(平海)로 한 것은 학사공(學士公)으로부터 비롯하여 금오공(金吾公)이 중조(中祖)가 된 후(後)로 평해(平海)로 한 것은 학사공(學士公)으로부터 비롯하여 금오공(金吾公)이 중조(中祖)가 된 후(後)로
 3세(三世)를 지나서 검교(檢校) 평리(評理) 대광(大匡)의 3형제분(三兄弟分)이 나누어 3파(三派)가 된 것이다. 3세(三世)를 지나서 검교(檢校) 평리(評理) 대광(大匡)의 3형제분(三兄弟分)이 나누어 3파(三派)가 된 것이다.
-세대(世代)가 비록 멀어졌어도 그 처음은 또한 하나로 같다. 그 동안+세대(世代)가 비록 멀어졌어도 그 처음은 또한 하나로 같다. \\ 
 + 
 +\_그 동안
 여러차례 병화(兵火)로 문적(文籍)이 전(傳)하지 못하고 파계(派系)의 여러차례 병화(兵火)로 문적(文籍)이 전(傳)하지 못하고 파계(派系)의
-증거가 없어 노위(魯衛)의 친(親)함을  +증거가 없어  
-초월(楚越)((초월(楚越): 1. ‘중국(中國)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초나라(楚--)와 월나라(越--)의 사이’라는 뜻으로, 서로 원수(怨讎)처럼 여기는 사이를 비유적(比喩的)으로 이르는 말.\\ 2. 서로 떨어져 상관(相關)이 없는 사이를 비유적(比喩的)으로 이르는 말.)) 즉 떨어져 상관이 없는 것 같이+노위(魯衛)((노위(魯衛):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 주공(周公)과 강숙(康叔)은 형제지간으로 노(魯)나라와 위(衛)나라의 제후가 되어 서로 이웃하고 있었던 일에서 유래하여 가까운 사이를 뜻함.))의 친(親)함을  
 +초월(楚越)((초월(楚越): 1. ‘중국(中國)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초나라(楚--)와 월나라(越--)의 사이’라는 뜻으로, 서로 원수(怨讎)처럼 여기는 사이를 비유적(比喩的)으로 이르는 말.\\ 2. 서로 떨어져 상관(相關)이 없는 사이를 비유적(比喩的)으로 이르는 말.))\_즉 떨어져 상관이 없는 것 같이
 보고 왔은 즉 오종(吾宗) 간(問)의 소루지감(疏漏之感)이 항상 그 극(極)에 처(處)해 있었다. 보고 왔은 즉 오종(吾宗) 간(問)의 소루지감(疏漏之感)이 항상 그 극(極)에 처(處)해 있었다.
-지나간 庚寅年에 譜廳을 豊基 錦陽에 두어 드디어 一次 完譜를  +지나간 경인년(庚寅年)에 보청(譜廳)을 풍기(豊基) 금양(錦陽)에 두어 드디어 1차(一次) 완보(完譜)를  
-이룬 後로부터 累次 敦睦함을 닦아왔으나 이는 다 錦溪 海月 +이룬 후()로부터 누차(累次) 돈목(敦睦)함을 닦아왔으나 이는 다 금계(錦溪) 해월(海月) 
-兩先生의 草輯에서 始作된 것이다. 다시 壬申年 봄에 錦溪 先生의 +양선생(兩先生)의 초집(草輯)에서 시작(始作)된 것이다. \\ 
-胄孫 永來가 祖上을 밝히고 宗族을 보호할 큰 뜻으로 平海大同譜를 + 
-修譜할 것을 發議하여 通文을 平海와 各地方으로 보냈더니 +\_다시 임신년(壬申年봄에 금계(錦溪) 선생(先生)의 
-諸宗이 大擧하여 모여 合議를 보고 譜廳을 月松 追遠에 +주손(胄孫) 영래(永來)씨가 조상(祖上)을 밝히고 종족(宗族)을 보호할 큰 뜻으로 평해대동보(平海大同譜)를 
-設置하여 譜役을 始作하였다. 이와같은 大同譜事는 百年에 한번  +수보(修譜)할 것을 발의(發議)하여 통문(通文)을 평해(平海)와 각지방(各地方)으로 보냈더니 
-이루어지기 힘드는 일인데 先祖의 靈魂의 가호로 +제종(諸宗)이 대거(大擧)하여 모여 합의(合議)를 보고 보청(譜廳)을 월송(月松) 추원재(追遠齋)에 
-꼭 祖上들이 臨存하시고 子孫들이 그 左右에 뫼시고 앉아 +설치(設置)하여 보역(譜役)을 시작(始作)하였다. \\ 
-合心協力하는 느낌으로 譜事가 進行되어갔다. 그럼으로 追遠에 + 
-오는 사람은 同宗 누구나다 孝悌의 마음이 油然히 우러남을 禁치+\_이와 같은 대동보사(大同譜事)는 백년(百年)에 한번  
 +이루어지기 힘 드는 일인데 선조(先祖)의 영혼(靈魂)의 가호로 
 +꼭 조상(祖上)들이 임존(臨存)하시고 자손(子孫)들이 그 좌우(左右)에 뫼시고 앉아 
 +합심협력(合心協力)하는 느낌으로 보사(譜事)가 진행(進行)되어갔다. 그럼으로 추원재(追遠齋)에 
 +오는 사람은 동종(同宗누구나 다 효제(孝悌)의 마음이 유연(油然)히 우러남을 금()
 못하였다는 것이다.\\ 못하였다는 것이다.\\
  
-\_그리고 族叔 萬英와 同宗 仲坤가 크고 작은 凡百事를 돌보아 +\_그리고 족숙(族叔) 만영(萬英)씨와 동종(同宗) 중곤(仲坤)씨가 크고 작은 범백사(凡百事)를 돌보아 
-誠力을 기우렸으며 그들은 私經濟도 넉넉치 못한데 譜廳의 +성력(誠力)을 기울였으며 그들은 사경제(私經濟)도 넉넉치 못한데 보청(譜廳)의 
-財政도 事務도 모두 두분이 도맡다시피하여 數年동안을 不顧家事하고 +재정(財政)도 사무(事務)도 모두 두 분이 도맡다시피하여 수년(數年)동안을 불고(不顧) 가사(家事)하고 
-有終의 美를 거둘 때까지 始終 一貫 하였으니 宗中의 大幸이라 하지+유종(有終)의 미()를 거둘 때까지 시종일관(始終一貫)하였으니 종중(宗中)의 대행(大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않을 수 없다.\\
  
-\_嗚呼라 回顧하건데 나와 같은 不足한 사람이 校正의 責任을 +\_오호(嗚呼)! 회고(回顧)하건데 나와 같은 부족(不足)한 사람이 교정(校正)의 책임(責任)을 
-지고 執事의 一員으로 뒤따라왔으니 부끄러운 일이나 始末을 +지고 집사(執事)의 일원(一員)으로 뒤따라 왔으니부끄러운 일이나 시말(始末)을 
-잘 안다는 핑계로 猥濫함을 헤아리지 않고 重刊의 末을  +잘 안다는 핑계로 외람(猥濫)함을 헤아리지 않고 중간(重刊)의 전말(顚)을  
-大略 記述하여 용하게도 序文 末尾에 붙이노라.\\ +대략(大略) 기술(記述)하여 용하게도 서문(序文) 말미(末尾)에 붙이노라.\\ 
-\_\_後裔孫 暉 謹跋+\_\_후예손(後裔孫) 휘() 근발(謹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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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AP> </WRAP>
c3-026.1747127691.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3 18:14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