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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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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戊戌譜跋\\ +\_**戊戌譜跋**\\ 
-\_우리 東方의 士族之家에 가장 貴重한 일은 譜牒을 닦아서 밝히는 +\_우리 동방(東方)의 사족지가(士族之家)에 가장 귀중(貴重)한 일은 보첩(譜牒)을 닦아서 밝히는 
-일이니 저 譜牒이라는 것은 宗族을 收合하고 世系를 明確히 해서 +일이니 저 보첩(譜牒)이라는 것은 종족(宗族)을 수합(收合)하고 세계(世系)를 명확(明確)히 해서 
-永世不忘케하는 것이다.\\+영세불망(永世不忘)케 하는 것이다.\\
  
-\_生覺컨대 우리 平海黃氏가 上古 以來 名門巨族으로 一國에 +\_생각(生覺)컨대 우리 평해황씨(平海黃氏)가 상고(上古) 이래(以來)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일국(一國)에 
-散處한 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서 萬歷 丙午年에 +산처(散處)한 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서, 만력(萬歷) 병오년(丙午年)에 
-枕流亭 草輯이 淸安에서 始發되고 그 後 五十年이 지난 孝廟 七年  +침류정(枕流亭) 초집(草輯)이 청안(淸安)에서 시발(始發)되고그 후() 50년(五十年)이 지난 효묘(孝廟) 7년(七年 
-丙申에 各家에서 家乘을 編修한 以來로 三百餘年間에 大同譜가 +병신(丙申)에 각가(各家)에서 가승(家乘)을 편수(編修)한 이래(以來)로 3백여년간(三百餘年間)에 대동보(大同譜)가 
-六次요, 派譜가 四次로되 不幸하게도 南北次序가 紊亂하여 添加되고 +6차(六次)요, 파보(派譜)가 4차(四次)로되, 불행(不幸)하게도 남북차서(南北次序)가 문란(紊亂)하여 첨가(添加)되고 
-漏落한 者가 많이 있고 또 系統을 잃고 派系가 顚倒되어 祖孫兄弟之行列을 +누락(漏落)한 자()가 많이 있고 또 계통(系統)을 잃고 파계(派系)가 전도(顚倒)되어 조손형제지항렬(祖孫兄弟之行列)을 
-分辨키 困難한 것 이없지 않았다. 世代가 멀고 歲月이 오래되니  +분변(分辨)키 곤란(困難)한 것이 없지 않았다. \\
-同族이 마치 길손과 같이 됨을 느끼게 되었다. +
-甲戌年의 大同譜 以後는 世俗이 많이 變易되고 또 乙酉解放으로  +
-風俗이 疏遠하고 綱常이 紊亂하더니 뜻밖에 六二五動亂으로 +
-同族이 南北으로 離散하고 骨肉이 相爭하여 派系를 分辨하기 +
-어렵게되니 진실로 同族間에 서로 길가는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
-實로 慷慨之恨이라 痛歎하고 寒心스럽기 그지없는 故로 丁酉年 봄 +
-寒食節에 淸原郡 美湖驛前 養閒堂 十三世孫 義模氏의 孝廬에서  +
-哀麻 中에도 勞苦를 돌보지 않고 譜事를 開始할 것을 發說하니 +
-遠近 族親들이 모두 크게 贊成하므로 有司를 分定하고 정성을 +
-다하여 힘을 모았으며 收單을 서둘러서 大事를 달성하니 眞實로 +
-우리 同族의 큰 多幸이 아닐 수 없다.\\+
  
-\_나는 역시 監司公의 後裔로서 비록 어리석고 淺見薄識이지만 +\_세대(世代)가 멀고 세월(歲月)이 오래되니  
-어찌 垂手傍觀만 하고 있을 수 없어 義模와 더불어 爛慢相議하여 +동족(同族)이 마치 길손과 같이 됨을 느끼게 되었다. 
-始終如一하게 參與하였으니 猥濫함을 헤아리지 않고 修譜의 末을 +갑술년(甲戌年)의 대동보(大同譜) 이후(以後)는 세속(世俗)이 많이 변역(變易)되고 또 을유해방(乙酉解放)으로  
-以上과 같이 略記하는 바이다.\\ +풍속(風俗)이 소원(疏遠)하고 강상(綱常)이 문란(紊亂)하더니 뜻밖에 625동란(六二五動亂)으로 
-\_\_戊戌 小春 後裔孫 元模 謹跋+동족(同族)이 남북(南北)으로 이산(離散)하고 골육(骨肉)이 상쟁(相爭)하여 파계(派系)를 분변(分辨)하기 
 +어렵게되니 진실로 동족(同族) 간(間)에 서로 길가는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 
 +\_실(實)로 강개지한(慷慨之恨)이라 통탄(痛歎)하고 한심(寒心)스럽기 그지없는 고(故)로 정유년(丁酉年) 봄 
 +한식절(寒食節)에 청원군(淸原郡) 미호역전(美湖驛前) 양한당(養閒堂) 13세손(十三世孫) 의모(義模)씨의  
 +효려(孝廬)((효려(孝廬): 상제(喪制)가 상제(喪制) 노릇을 하고 거처(居處)하는 곳.))에서  
 +애마(哀麻) 중(中)에도 노고(勞苦)를 돌보지 않고 보사(譜事)를 개시(開始)할 것을 발설(發說)하니 
 +원근(遠近) 족친(族親)들이 모두 크게 찬성(贊成)하므로 유사(有司)를 분정(分定)하고 정성을 
 +다하여 힘을 모았으며 수단(收單)을 서둘러서 대사(大事)를 달성하니 진실(眞實)로 
 +우리 동족(同族)의 큰 다행(多幸)이 아닐 수 없다.\\ 
 + 
 +\_나는 역시 감사공(監司公)의 후예(後裔)로서 비록 어리석고 천견박식(淺見薄識)이지만 
 +어찌 수수방관(垂手傍觀)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의모(義模)씨와 더불어 난만상의(爛慢相議)하여 
 +시종여일(始終如一)하게 참여(參與)하였으니 외람(猥濫)함을 헤아리지 않고 수보(修譜)의 전말(顚)을 
 +이상(以上)과 같이 약기(略記)하는 바이다.\\ 
 +\_\_무술(戊戌) 소춘(小春) 후예손(後裔孫) 원모(元模) 근발(謹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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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AP> </WRAP>
c3-031.1747090404.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3 07:53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