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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41 [2025/05/13 08:52] ssio2c3-041 [2025/05/31 19:11]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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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휴당황귀성행장(晩休堂黃貴成行狀)=== ===만휴당황귀성행장(晩休堂黃貴成行狀)===
 +<WRAP 33em justify>
 +<typo ff:'한양해서'>
 +\_晩休堂黃貴成行狀\\
 +\_공(公)의 휘(諱)는 귀성(貴成)이요 초휘(初諱)는 귀영(貴榮)이라, 
 +자(字)는 치장(致章)이요 호(號)는 만휴당(晩休堂)이라. 
 +선세(先世)는 평해인(平海人)이니 학사(學士) 휘(諱) 낙(洛)의 후손(後孫)이며, 
 +개국(開國) 창업(創業) 공신(功臣)으로 삼도관찰사(三道觀察使)를 역임(歷任)하신 
 +휘(諱) 천계(天繼) 호(號) 잠제공(潛齊公)의 8세손(八世孫)이다.\\
  
-의 諱는 貴成이요 初諱는 貴榮이라 字는 致章이요 號는 晚休堂이라 先世는 平海人이니 學士 諱 洛의 後孫이며 開國 創業 功臣으로 三道觀察使를 歷任하신 諱 天繼 號 潛齊公의 八世孫이다. +\_공()이 나면서 바탕이 특이(特異)하여 기개(氣慨)가 높고 범상(凡常)치  
-이나면서 바탕이 特異하여 氣慨가 높고 凡常치 않으며 어릴 때부터 나의 先祖 西厓 柳成龍 先生의 門下에서 學業을 닦아 進就한 바 있더니 己丑年에 先生이 宣祖大王의 부름을 받고 公을 隨行케 하니 서울에 이르러 본즉 倭使 義智 玄蘇등이 우리 나라 사람의 密入國者 數人을 잡아 바치는 지라 王이 가상히 여겨 불러보시고 歡迎宴을 베풀어 주시는 지라 公이 西厓 先生 에게 告하되 倭使가 온 것은 逋亡者를 바치는데 本意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 實狀은 우리 나라 形便을 탐정키 爲한 것 이라 하였다. 果然 그 후 七年이 지난 庚寅年에 다시 使者를 보내 明나라로 進軍 爲計이니 通路를 빌리라는 通信을 하고 또 壬辰四月에 倭兵이 大擧 侵入해오니 朝廷에서 明나라에 援兵을 請하고 西厓 先生이 明將을 接對하기 위하여 平壤에 留하시 니 이 날에 倭敵이 벌써 平壤을 攻擊하는 지라 +않으며어릴 때부터 나의 선조(先祖)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선생(先生)의  
-이때 公은 西厓 先生과 함께 鍊光亭에 올라있었더니 紅衣賊이 가만히 모래언덕에 숨어 鳥銃을 쏘거늘 公은 片箭을 連發해 서 적을 많이 傷하였다. +문하(門下)에서 학업(學業)을 닦아 진취(進就)한 바 있더니,  
-그 후 王의 行次가 定州에 이르러 宜川으로 還幸할 새 西厓 先生으로 하여 定州를 守備케 하더니 敵將이 軍糧을 약탈코 저 糧穀倉庫로 大刀를 차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四方에서 大擧 몰려오거늘 公이 말을 타고 활을 메고 크게 외치고 突擊해 나아 가+기축년(己丑年)에 선생(先生)이 선조대왕(宣祖大王)의 부름을 받고  
 +공()을 수행(隨行)케 하니서울에 이르러 본 즉 왜사(倭使)  
 +평의지(平義智) 현소(玄蘇등이 우리 나라 사람의 밀입국자(密入國者)  
 +수인(數人)을 잡아 바치는 지라, 왕()이 가상히 여겨 불러보시고 환영연(歡迎宴)을  
 +베풀어 주시는 지라. 공()이 서애(西厓) 선생(先生)에게 고()하되  
 +왜사(倭使)가 온 것은 포망자(逋亡者)를 바치는데 본의(本意)가  
 +있는 것이 아니고그 실상(實狀)은 우리 나라 형편(形便)을 탐정키  
 +위()한 것이라 하였다. 과연(果然그 후 7년(七年)이 지난  
 +경인년(庚寅年)에 다시 사자(使者)를 보내 명()나라로 진군(進軍)  
 +위계(爲計)이니 통로(通路)를 빌리라는 통신(通信)을 하고,  
 +또 임진(壬辰) 4월(四月)에 왜병(倭兵)이 대거(大擧) 침입(侵入)해오니  
 +조정(朝廷)에서 명()나라에 원병(援兵)을 청()하고  
 +서애(西厓) 선생(先生)이 명장(明將)을 접대(接對)하기 위하여  
 +평양(平壤)에 유()하시이 날에 왜적(倭敵)이  
 +벌써 평양(平壤)을 공격(攻擊)하는 지라.\\
  
 +\_이때 공(公)은 서애(西厓) 선생(先生)과 함께 연광정(鍊光亭)에 
 +올라 있었더니 홍의적(紅衣賊)이 가만히 모래 언덕에 숨어 
 +조총(鳥銃)을 쏘거늘 공(公)은 편전(片箭)을 연발(連發)해서 
 +적을 많이 상(傷)하였다.\\
  
-니활시위소리가나는곳에賊이쓰러지는지라그목을베어倉庫길가에달아두니敵의무리가간담이떨어져싸울뜻을갖 +\_그 후 왕(王)의 행차(行次)가 정주(定州)에 이르러  
-지못하고도망하여흩어지는지라이로因하여定州邑糧穀倉庫는保全되었다그때가뭄이몹시甚하여江물이얕아지니 +의천(宜川)으로 환행(還幸)할 새 서애(西厓) 선생(先生)으로 하여  
-先生이上流의防備가무너질까念慮하고邊方守禦할計策을議論하며公으로大定江을지키라命하다이를지키는中江 +정주(定州)를 수비(守備)케 하더니, 적장(敵將)이 군량(軍糧)을  
-邊에서逃亡온軍士를보고或平壤에失手가있지나않나疑心되어公이이를探知한즉이미平壤이함락되었는지라곧이 +약탈코저 양곡창고(糧穀倉庫)로 대도(大刀)를 차고  
-를先生께報告하니先生이大驚하여即時公을보내王의臨時行宮에上啓하였다 그리고장차明나라救援兵이이르면糧 +몽둥이를 휘두르며 사방(四方)에서 대거(大擧) 몰려 오거늘,  
-穀과飼料의備蓄이없으므로先生이근심하고들으니龜城에양곡이많이있다하니公과宗祿두사람이龜城에가서곡식 +공(公)이 말을 타고 활을 메고 크게 외치고 돌격(突擊)해 나아  
-과飼料를準備하라命하는지라두사람이龜城에이르러逃亡간百姓들을모아國家의危急함과愛國精神을鼓吹하여不 +니 활시위 소리가 나는 곳에 적()이 쓰러지는지라.  
-日之間에많은糧穀과飼料를備蓄하고援兵을苦待하였다 +그 목을 베어 창고(倉庫길가에 달아두니 적() 
-그해十二月에援軍都元帥李如松이安州에당도하니先生이李元帥를보러가려하거늘公이先生에게아뢰기를처음만 +무리가 간담이 떨어져 싸울 뜻을 갖지 못하고 도망하여 
-날때李如松으로하여흐뭇하도록할計策을講究하시는것이좋을것이니充分한智略을짜라하였다先生또한같은生覺 +흩어지는지라이로 인()하여 정주읍(定州邑)  
-을가져두분이充分한意見을交換하였다그리고先生이李提督을만나소매속에平壤地圖를내보이니李如松이朱線을 +양곡창고(糧穀倉庫)는 보전(保全)되었다. \\ 
-쳐가며仔細히살피고말하되倭敵의포로가눈앞에있는것이나다름없다하였다 + 
-明將祖承訓이安州에서敗戰하고돌아갈제公이先生의命을받들어술과食으로크게慰勞宴을베풀어주고自進退兵 +\_그 때 가뭄이 몹시 심()하여 강(물이 얕아지니 
-하기를勸하니承訓이스스로敗戰한것을부끄럽게生覺하여遼東으로돌아갔다 +선생(先生)이 상류(上流)의 방비(防備)가 무너질까 염려(念慮)하고  
-明將李如松이進擊하여平壤을포위하니公이急히駱吳두將軍께勸하여一時에左右로挾攻케함에敵이견디지못하고 +변방(邊方) 수어(守禦)할 계책(計策)을 의논(議論)하며  
-城內로몰려들어가거늘다시公이하되敵이城內로들어감은마치호랑이가함정에 빠짐같은格인데敵이궁한즉險惡 +공()으로 대정강(大定江)을 지키라 명()하다
-한反動이推測되는것이니敵이빠져나갈길을열어주고뒤로서소탕해버림이마땅하다하였다李提督이公의말을좇아 +이를 지키는 중() 강변(江邊)에서 도망(逃亡온 군사(軍士) 
-用兵했다 +보고 혹() 평양(平壤)에 실수(失手)가 있지나 않나 
-또西厓先生이公에게命하여江邊여울목지키는軍卒을監視하라하니江기슭을지나며絶句一首를읊으니詩曰 +의심(疑心)되어 공()이 이를 탐지(探知)한 즉 이미 평양(平壤) 
-投筆操弓手亦高(투필조궁수역고)붓을던지고활을잡으니솜씨도높다 +함락 되었는지라곧 이를 선생(先生)께 보고(報告)하니  
-大同江水正滔滔(대동강수정도도)대동강수는옛과다름없이滔滔히흐르네 +선생(先生)이 대경(大驚)하여 즉시(即時) 공()을 보내 왕()의  
-他時露布王城下(타시로포왕성하)他日에勝戰旗날리고王城下에돌아가면 +임시(臨時) 행궁(行宮)에 상계(上啓)하였다. \\ 
-欲挽銀河洗此刀(욕만은하세차도)銀河水(漢江水)를길러다피묻은칼을씻으리라 + 
-하니西厓先生이웃으시며壯士詩人이있다하더니오늘날에 그대를 보겠다하더라 +\_그리고 장차 
-正月에援兵이京城으로向할새解氷되어江을건널수없으매提督이浮橋를놓을것을命하는지라이에先生이公을불러 +명()나라 구원병(救援兵)이 이르면 양곡(糧穀)과 사료(飼料) 
-牛峰郡守李希愿과한가지로浮橋를놓는데必要한칡넝굴을끊어오라하거늘公이李郡守와議論하기를지금民力이퇴 +비축(備蓄)이 없으므로 선생(先生)이 근심하고 들으니  
-폐해있는데强制로夫役을시키느니보다는먼저우리두사람이直接山에올라칡을끊는것이오히려民心을달래고感動 +구성(龜城)에 양곡이 많이 있다 하니, 공()과 종록(宗祿)  
-시키는結果가될것이라하고率先垂範하였더니遠近에사는百姓들이다투어칡을모은故로不日內에浮橋를이루었다. +두 사람이 구성(龜城)에 가서 곡식과 사료(飼料)를 준비(準備)하라 
-四月에援軍이京城에들어와다시都城을회복하고王의車駕도회복할公이扈聖즉王駕를호위한功勞로定略將軍의 +명()하는지라두 사람이 구성(龜城)에 이르러 도망(逃亡)간  
-官職을下賜받았다 +백성(百姓)들을 모아 국가(國家)의 위급(危急)함과 애국정신(愛國精神) 
-戊戌十月에統制使李舜臣將軍이南海에서戰死하니先生이듣고크게놀라며슬퍼하였다그리고公으로하여代身弔問 +고취(鼓吹)하여, 불일지간(不日之間)에 많은 양곡(糧穀) 
-케하니公도일찍부터李公과더불어忠義之心이相合하여莫逆之間이였는지라더욱哀惜히여기고몹시아파하였으며 +사료(飼料)를 비축(備蓄)하고 원병(援兵)을 고대(苦待)하였다.\\ 
-李公의姪莞芬등과治喪之節을協議하여鄭重히葬事를치루었다 + 
-公은이해에職責을辭任하고故에돌아와퇴폐해진舊臺를헐고數間의草堂을새로짓고그堂에休라縣額하였다 +\_그해 12월(十二月)에 원군(援軍) 도원수(都元帥) 이여송(李如松) 
-人들이公에게歲祭享祀를謀策하고益陽書堂을建立하였다 +안주(安州)에 당도하니 선생(先生)이 이()원수(元帥)를 보러  
-通政大夫行校理知製敎兼經筵參贊官春秋官記注官豊山柳光睦謹撰+가려하거늘 공()이 선생(先生)에게 아뢰기를 처음 만날 때 
 +이여송(李如松)으로 하여 흐뭇하도록 할 계책(計策) 
 +강구(講究)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니 충분(充分)한 지략(智略)을  
 +짜라 하였다. 선생(先生또한 같은 생각(生覺)을 가져 두 분이 
 +충분(充分)한 의견(意見)을 교환(交換)하였다그리고 선생(先生) 
 +이() 제독(提督)을 만나 소매 속에 평양(平壤) 지도(地圖) 
 +내보이니 이여송(李如松)이 주선(朱線)을 
 +쳐 가며 자세(仔細)히 살피고 말하되, 왜적(倭敵)의 포로가 
 +눈 앞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였다.\\ 
 + 
 +\_명장(明將) 조승훈(祖承訓)((조승훈(祖承訓): 중국 명나라의 무장며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파견된 장수. 생몰년 미상이지만 아들 조대수가 1579년생이므로, 임진왜란 때는 40대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이 안주(安州)에서 패전(敗戰)하고 
 +돌아갈 제, 공()이 선생(先生)의 명()을 받들어 
 +술과 음식(飮)으로 크게 위로연(慰勞宴)을 베풀어 주고 
 +자진퇴병(自進退兵)하기를 권()하니 승훈(承訓)이 스스로 
 +패전(敗戰)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生覺)하여 요동(遼東)으로 
 +돌아갔다.\\ 
 + 
 +\_명장(明將) 이여송(李如松)이 진격(進擊)하여 평양(平壤) 
 +포위하니 공()이 급()히 낙() 오(두 장군(將軍) 
 +권()하여 일시(一時)에 좌우(左右)로 협공(挾攻)케 함에
 +적()이 견디지 못하고 
 +성내(城內)로 몰려 들어가거늘 다시 공()이 고(告)하되  
 +적()이 성내(城內)로 들어감은 마치 호랑이가 함정에  
 +빠짐 같은 격()인데, 적()이 궁한 즉 험악(險惡)한  
 +반동(反動)이 추측(推測)되는 것이니 적()이 빠져 나갈 길을 
 +열어주고 뒤로서 소탕해버림이 마땅하다 하였다.  
 +이() 제독(提督)이 공()의 말을 좇아 용병(用兵)했다.\\ 
 + 
 +\_또 서애(西厓) 선생(先生)이 공()에게 명()하여 
 +강변(江邊여울목 지키는 군졸(軍卒)을 감시(監視)하라 
 +하니 강(기슭을 지나며 절구(絶句) 1수(一首)를 읊으니 시왈(詩曰)\\ 
 +\\ 
 +投筆操弓手亦高 (투필조궁수역고) 붓을 던지고 활을 잡으니 솜씨도 높다.\\ 
 +大同江水正滔滔 (대동강수정도도) 대동강 물은 옛과 다름없이 도도(滔滔)히 흐르네.\\ 
 +他時露布王城下 (타시로포왕성하) 타일(他日)에 승전기(勝戰旗날리고 왕성(王城) 하()에 돌아가면\\ 
 +欲挽銀河洗此刀 (욕만은하세차도) 은하수(銀河水)(한강수(漢江水))를 길러다 피 묻은 칼을 씻으리라.\\ 
 +\\ 
 +하니 서애(西厓) 선생(先生)이 웃으시며 장사(壯士)  
 +시인(詩人)이 있다 하더니 오늘날에 그대를 보겠다 하더라.\\ 
 + 
 +\_정월(正月)에 원병(援兵)이 경성(京城)으로 향()할 새 
 +해빙(解氷)되어 강()을 건널 수 없으매 제독(提督) 
 +부교(浮橋)를 놓을 것을 명()하는지라이에 선생(先生) 
 +공()을 불러 우봉군수(牛峰郡守) 이희원(李希愿)과  
 +한 가지로 부교(浮橋)를 놓는데 필요(必要)한 칡넝굴을 
 +끊어오라 하거늘, 공()이 이() 군수(郡守)와  
 +의논(議論)하기를 지금 민력(民力)이 퇴폐해 있는데 
 +강제(强制)로 부역(夫役)을 시키느니 보다는 먼저 우리  
 +두 사람이 직접(直接) 산()에 올라 칡을 끊는 것이,  
 +오히려 민심(民心)을 달래고 감동(感動)시키는 결과(結果) 
 +될 것이라 하고 솔선수범(率先垂範)하였더니, 원근(遠近)에  
 +사는 백성(百姓)들이 다투어 칡을 모은 고()로  
 +불일내(不日內)에 부교(浮橋)를 이루었다. 
 +4월(四月)에 원군(援軍)이 경성(京城)에 들어와 다시  
 +도성(都城)을 회복하고 왕()의 거가(車駕)도 회복할 새, 
 +공()이 호성(扈聖즉 왕가(王駕)를 호위한 공로(功勞) 
 +정략장군(定略將軍)의 관직(官職)을 하사(下賜)받았다.\\ 
 + 
 +\_무술(戊戌) 10월(十月)에 통제사(統制使) 이순신(李舜臣)  
 +장군(將軍)이 남해(南海)에서 전사(戰死)하니 선생(先生) 
 +듣고 크게 놀라며 슬퍼하였다그리고 공()으로 하여 
 +대신(代身) 조문(弔問)케 하니 공()도 일찍부터 
 +이공(李公)과 더불어 충의지심(忠義之心)이 상합(相合)하여 
 +막역지간(莫逆之間)이였는지라 더욱 애석(哀惜)히 여기고 
 +몹시 아파하였으며 
 +이공(李公)의 질() 완() 분(등과 치상지절(治喪之節) 
 +협의(協議)하여 정중(鄭重)히 장사(葬事)를 치루었다.\\ 
 + 
 +\_공()은 이 해에 직책(職責)을 사임(辭任)하고 고향(鄕) 
 +돌아와 퇴폐해진 구대(舊臺)를 헐고 수간(數間)의 초당(草堂) 
 +새로 짓고 그 당()에 만휴(晩)라 현액(縣額)하였다 
 +후인(後)들이 공()에게 세제향사(歲祭享祀)를 모책(謀策)하고 
 +익양서당(益陽書堂)을 건립(建立)하였다.\\ 
 +\_\_통정대부(通政大夫) 행() 교리(校理) 지제교(知製敎) 겸() 경연(經筵) 참찬관(參贊官)  
 +춘추관(春秋官) 기주관(記注官) 풍산(豊山) 유광목(柳光睦) 근찬(謹撰
 +</typo> 
 +</WRAP>
c3-041.1747093931.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3 08:52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