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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41 [2025/05/14 20:29] ssio2c3-041 [2025/05/31 19:11] (현재) ssio2
줄 3: 줄 3:
 <typo ff:'한양해서'> <typo ff:'한양해서'>
 \_晩休堂黃貴成行狀\\ \_晩休堂黃貴成行狀\\
-\_공(公)의 휘(諱)는 귀성(貴成)이요 초휘(初諱)는 귀영(貴榮)이라  +\_공(公)의 휘(諱)는 귀성(貴成)이요 초휘(初諱)는 귀영(貴榮)이라 
-자(字)는 치장(致章)이요 호(號)는 만휴당(休堂)이라.  +자(字)는 치장(致章)이요 호(號)는 만휴당(休堂)이라.  
-선세(先世)는 평해인(平海人)이니 학사(學士) 휘(諱) 낙(洛)의 후손(後孫)이며 +선세(先世)는 평해인(平海人)이니 학사(學士) 휘(諱) 낙(洛)의 후손(後孫)이며
 개국(開國) 창업(創業) 공신(功臣)으로 삼도관찰사(三道觀察使)를 역임(歷任)하신  개국(開國) 창업(創業) 공신(功臣)으로 삼도관찰사(三道觀察使)를 역임(歷任)하신 
 휘(諱) 천계(天繼) 호(號) 잠제공(潛齊公)의 8세손(八世孫)이다.\\ 휘(諱) 천계(天繼) 호(號) 잠제공(潛齊公)의 8세손(八世孫)이다.\\
줄 13: 줄 13:
 문하(門下)에서 학업(學業)을 닦아 진취(進就)한 바 있더니,  문하(門下)에서 학업(學業)을 닦아 진취(進就)한 바 있더니, 
 기축년(己丑年)에 선생(先生)이 선조대왕(宣祖大王)의 부름을 받고  기축년(己丑年)에 선생(先生)이 선조대왕(宣祖大王)의 부름을 받고 
-공(公)을 수행(隨行)케 하니 서울에 이르러 본 즉 왜사(倭使)  +공(公)을 수행(隨行)케 하니서울에 이르러 본 즉 왜사(倭使)  
-의지(義智) 현소(玄蘇) 등이 우리 나라 사람의 밀입국자(密入國者)  +의지(義智) 현소(玄蘇) 등이 우리 나라 사람의 밀입국자(密入國者)  
-수인(數人)을 잡아 바치는 지라, 王이 가상히 여겨 불러보시고 환영연(歡迎宴)을 +수인(數人)을 잡아 바치는 지라, 왕()이 가상히 여겨 불러보시고 환영연(歡迎宴)을 
 베풀어 주시는 지라. 공(公)이 서애(西厓) 선생(先生)에게 고(告)하되  베풀어 주시는 지라. 공(公)이 서애(西厓) 선생(先生)에게 고(告)하되 
 왜사(倭使)가 온 것은 포망자(逋亡者)를 바치는데 본의(本意)가  왜사(倭使)가 온 것은 포망자(逋亡者)를 바치는데 본의(本意)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실상(實狀)은 우리 나라 형편(形便)을 탐정키  +있는 것이 아니고그 실상(實狀)은 우리 나라 형편(形便)을 탐정키  
-위(爲)한 것 이라 하였다. 과연(果然) 그 후 7년(七年)이 지난 +위(爲)한 것이라 하였다. 과연(果然) 그 후 7년(七年)이 지난 
 경인년(庚寅年)에 다시 사자(使者)를 보내 명(明)나라로 진군(進軍)  경인년(庚寅年)에 다시 사자(使者)를 보내 명(明)나라로 진군(進軍) 
-위계(爲計)이니 통로(通路)를 빌리라는 통신(通信)을 하고 +위계(爲計)이니 통로(通路)를 빌리라는 통신(通信)을 하고
 또 임진(壬辰) 4월(四月)에 왜병(倭兵)이 대거(大擧) 침입(侵入)해오니  또 임진(壬辰) 4월(四月)에 왜병(倭兵)이 대거(大擧) 침입(侵入)해오니 
 조정(朝廷)에서 명(明)나라에 원병(援兵)을 청(請)하고  조정(朝廷)에서 명(明)나라에 원병(援兵)을 청(請)하고 
 서애(西厓) 선생(先生)이 명장(明將)을 접대(接對)하기 위하여  서애(西厓) 선생(先生)이 명장(明將)을 접대(接對)하기 위하여 
-평양(平壤)에 유(留)하시더니 이 날에 왜적(倭敵)이 +평양(平壤)에 유(留)하시더니이 날에 왜적(倭敵)이 
 벌써 평양(平壤)을 공격(攻擊)하는 지라.\\ 벌써 평양(平壤)을 공격(攻擊)하는 지라.\\
  
줄 35: 줄 35:
 \_그 후 왕(王)의 행차(行次)가 정주(定州)에 이르러  \_그 후 왕(王)의 행차(行次)가 정주(定州)에 이르러 
 의천(宜川)으로 환행(還幸)할 새 서애(西厓) 선생(先生)으로 하여  의천(宜川)으로 환행(還幸)할 새 서애(西厓) 선생(先生)으로 하여 
-정주(定州)를 수비(守備)케 하더니 적장(敵將)이 군량(軍糧)을 +정주(定州)를 수비(守備)케 하더니적장(敵將)이 군량(軍糧)을 
 약탈코저 양곡창고(糧穀倉庫)로 대도(大刀)를 차고  약탈코저 양곡창고(糧穀倉庫)로 대도(大刀)를 차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사방(四方)에서 대거(大擧) 몰려 오거늘 +몽둥이를 휘두르며 사방(四方)에서 대거(大擧) 몰려 오거늘
 공(公)이 말을 타고 활을 메고 크게 외치고 돌격(突擊)해 나아  공(公)이 말을 타고 활을 메고 크게 외치고 돌격(突擊)해 나아 
 가니 활시위 소리가 나는 곳에 적(賊)이 쓰러지는지라.  가니 활시위 소리가 나는 곳에 적(賊)이 쓰러지는지라. 
줄 43: 줄 43:
 무리가 간담이 떨어져 싸울 뜻을 갖지 못하고 도망하여 무리가 간담이 떨어져 싸울 뜻을 갖지 못하고 도망하여
 흩어지는지라. 이로 인(因)하여 정주읍(定州邑)  흩어지는지라. 이로 인(因)하여 정주읍(定州邑) 
-양곡창고(糧穀倉庫)는 보전(保全)되었다. 그 때 가뭄이 +양곡창고(糧穀倉庫)는 보전(保全)되었다. \\ 
-몹시 심(甚)하여 강(江) 물이 얕아지니+ 
 +\_그 때 가뭄이 몹시 심(甚)하여 강(江) 물이 얕아지니
 선생(先生)이 상류(上流)의 방비(防備)가 무너질까 염려(念慮)하고  선생(先生)이 상류(上流)의 방비(防備)가 무너질까 염려(念慮)하고 
 변방(邊方) 수어(守禦)할 계책(計策)을 의논(議論)하며  변방(邊方) 수어(守禦)할 계책(計策)을 의논(議論)하며 
줄 53: 줄 54:
 함락 되었는지라. 곧 이를 선생(先生)께 보고(報告)하니  함락 되었는지라. 곧 이를 선생(先生)께 보고(報告)하니 
 선생(先生)이 대경(大驚)하여 즉시(即時) 공(公)을 보내 왕(王)의  선생(先生)이 대경(大驚)하여 즉시(即時) 공(公)을 보내 왕(王)의 
-임시(臨時) 행궁(行宮)에 상계(上啓)하였다. 그리고 장차+임시(臨時) 행궁(行宮)에 상계(上啓)하였다. \\ 
 + 
 +\_그리고 장차
 명(明)나라 구원병(救援兵)이 이르면 양곡(糧穀)과 사료(飼料)의 명(明)나라 구원병(救援兵)이 이르면 양곡(糧穀)과 사료(飼料)의
 비축(備蓄)이 없으므로 선생(先生)이 근심하고 들으니  비축(備蓄)이 없으므로 선생(先生)이 근심하고 들으니 
-구성(龜城)에 양곡이 많이 있다 하니 공(公)과 종록(宗祿) +구성(龜城)에 양곡이 많이 있다 하니공(公)과 종록(宗祿) 
 두 사람이 구성(龜城)에 가서 곡식과 사료(飼料)를 준비(準備)하라 두 사람이 구성(龜城)에 가서 곡식과 사료(飼料)를 준비(準備)하라
 명(命)하는지라. 두 사람이 구성(龜城)에 이르러 도망(逃亡)간  명(命)하는지라. 두 사람이 구성(龜城)에 이르러 도망(逃亡)간 
 백성(百姓)들을 모아 국가(國家)의 위급(危急)함과 애국정신(愛國精神)을 백성(百姓)들을 모아 국가(國家)의 위급(危急)함과 애국정신(愛國精神)을
-고취(鼓吹)하여 불일지간(不日之間)에 많은 양곡(糧穀)과+고취(鼓吹)하여불일지간(不日之間)에 많은 양곡(糧穀)과
 사료(飼料)를 비축(備蓄)하고 원병(援兵)을 고대(苦待)하였다.\\ 사료(飼料)를 비축(備蓄)하고 원병(援兵)을 고대(苦待)하였다.\\
  
-\_그해十二月에援軍都元帥李如松이安州에당도하니先生이李元帥를보러가려하거늘公이先生에게아뢰기를처음만 +\_그해 12월(十二月)에 원군(援軍) 도원수(都元帥) 이여송(李如松) 
-날때李如松으로하여흐뭇하도록할計策을講究하시는것이좋을것이니充分한智略을짜라하였다先生또한같은生覺 +안주(安州)에 당도하니 선생(先生)이 이()원수(元帥)를 보러  
-을가져두분이充分한意見을交換하였다그리고先生이李提督을만나소매속에平壤地圖를내보이니李如松이朱線을 +가려하거늘 공()이 선생(先生)에게 아뢰기를 처음 만날 때 
-쳐가며仔細히살피고말하되倭敵의포로가눈앞에있는것이나다름없다하였다 +이여송(李如松)으로 하여 흐뭇하도록 할 계책(計策) 
-明將祖承訓이安州에서敗戰하고돌아갈제公이先生의命을받들어술과食으로크게慰勞宴을베풀어주고自進退兵 +강구(講究)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니 충분(充分)한 지략(智略)을  
-하기를勸하니承訓이스스로敗戰한것을부끄럽게生覺하여遼東으로돌아갔다 +짜라 하였다. 선생(先生또한 같은 생각(生覺)을 가져 두 분이 
-明將李如松이進擊하여平壤을포위하니公이急히駱吳두將軍께勸하여一時에左右로挾攻케함에敵이견디지못하고 +충분(充分)한 의견(意見)을 교환(交換)하였다그리고 선생(先生) 
-城內로몰려들어가거늘다시公이하되敵이城內로들어감은마치호랑이가함정에 빠짐같은格인데敵이궁한즉險惡 +이() 제독(提督)을 만나 소매 속에 평양(平壤) 지도(地圖) 
-한反動이推測되는것이니敵이빠져나갈길을열어주고뒤로서소탕해버림이마땅하다하였다李提督이公의말을좇아 +내보이니 이여송(李如松)이 주선(朱線)을 
-用兵했다 +쳐 가며 자세(仔細)히 살피고 말하되, 왜적(倭敵)의 포로가 
-또西厓先生이公에게命하여江邊여울목지키는軍卒을監視하라하니江기슭을지나며絶句一首를읊으니詩曰 +눈 앞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였다.\\ 
-投筆操弓手亦高(투필조궁수역고)붓을던지고활을잡으니솜씨도높다 + 
-大同江水正滔滔(대동강수정도도)대동강수는옛과다름없이滔滔히흐르네 +\_명장(明將) 조승훈(祖承訓)((조승훈(祖承訓): 중국 명나라의 무장며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파견된 장수. 생몰년 미상이지만 아들 조대수가 1579년생이므로, 임진왜란 때는 40대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이 안주(安州)에서 패전(敗戰)하고 
-他時露布王城下(타시로포왕성하)他日에勝戰旗날리고王城下에돌아가면 +돌아갈 제, 공()이 선생(先生)의 명()을 받들어 
-欲挽銀河洗此刀(욕만은하세차도)銀河水(漢江水)를길러다피묻은칼을씻으리라 +술과 음식(飮)으로 크게 위로연(慰勞宴)을 베풀어 주고 
-하니西厓先生이웃으시며壯士詩人이있다하더니오늘날에 그대를 보겠다하더라 +자진퇴병(自進退兵)하기를 권()하니 승훈(承訓)이 스스로 
-正月에援兵이京城으로向할새解氷되어江을건널수없으매提督이浮橋를놓을것을命하는지라이에先生이公을불러 +패전(敗戰)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生覺)하여 요동(遼東)으로 
-牛峰郡守李希愿과한가지로浮橋를놓는데必要한칡넝굴을끊어오라하거늘公이李郡守와議論하기를지금民力이퇴 +돌아갔다.\\ 
-폐해있는데强制로夫役을시키느니보다는먼저우리두사람이直接山에올라칡을끊는것이오히려民心을달래고感動 + 
-시키는結果가될것이라하고率先垂範하였더니遠近에사는百姓들이다투어칡을모은故로不日內에浮橋를이루었다. +\_명장(明將) 이여송(李如松)이 진격(進擊)하여 평양(平壤) 
-四月에援軍이京城에들어와다시都城을회복하고王의車駕도회복할公이扈聖즉王駕를호위한功勞로定略將軍의 +포위하니 공()이 급()히 낙() 오(두 장군(將軍) 
-官職을下賜받았다 +권()하여 일시(一時)에 좌우(左右)로 협공(挾攻)케 함에
-戊戌十月에統制使李舜臣將軍이南海에서戰死하니先生이듣고크게놀라며슬퍼하였다그리고公으로하여代身弔問 +적()이 견디지 못하고 
-케하니公도일찍부터李公과더불어忠義之心이相合하여莫逆之間이였는지라더욱哀惜히여기고몹시아파하였으며 +성내(城內)로 몰려 들어가거늘 다시 공()이 고(告)하되  
-李公의姪莞芬등과治喪之節을協議하여鄭重히葬事를치루었다 +적()이 성내(城內)로 들어감은 마치 호랑이가 함정에  
-公은이해에職責을辭任하고故에돌아와퇴폐해진舊臺를헐고數間의草堂을새로짓고그堂에休라縣額하였다 +빠짐 같은 격()인데, 적()이 궁한 즉 험악(險惡)한  
-人들이公에게歲祭享祀를謀策하고益陽書堂을建立하였다 +반동(反動)이 추측(推測)되는 것이니 적()이 빠져 나갈 길을 
-通政大夫行校理知製敎兼經筵參贊官春秋官記注官豊山柳光睦謹撰+열어주고 뒤로서 소탕해버림이 마땅하다 하였다.  
 +이() 제독(提督)이 공()의 말을 좇아 용병(用兵)했다.\\ 
 + 
 +\_또 서애(西厓) 선생(先生)이 공()에게 명()하여 
 +강변(江邊여울목 지키는 군졸(軍卒)을 감시(監視)하라 
 +하니 강(기슭을 지나며 절구(絶句) 1수(一首)를 읊으니 시왈(詩曰)\\ 
 +\\ 
 +投筆操弓手亦高 (투필조궁수역고) 붓을 던지고 활을 잡으니 솜씨도 높다.\\ 
 +大同江水正滔滔 (대동강수정도도) 대동강 물은 옛과 다름없이 도도(滔滔)히 흐르네.\\ 
 +他時露布王城下 (타시로포왕성하) 타일(他日)에 승전기(勝戰旗날리고 왕성(王城) 하()에 돌아가면\\ 
 +欲挽銀河洗此刀 (욕만은하세차도) 은하수(銀河水)(한강수(漢江水))를 길러다 피 묻은 칼을 씻으리라.\\ 
 +\\ 
 +하니 서애(西厓) 선생(先生)이 웃으시며 장사(壯士)  
 +시인(詩人)이 있다 하더니 오늘날에 그대를 보겠다 하더라.\\ 
 + 
 +\_정월(正月)에 원병(援兵)이 경성(京城)으로 향()할 새 
 +해빙(解氷)되어 강()을 건널 수 없으매 제독(提督) 
 +부교(浮橋)를 놓을 것을 명()하는지라이에 선생(先生) 
 +공()을 불러 우봉군수(牛峰郡守) 이희원(李希愿)과  
 +한 가지로 부교(浮橋)를 놓는데 필요(必要)한 칡넝굴을 
 +끊어오라 하거늘, 공()이 이() 군수(郡守)와  
 +의논(議論)하기를 지금 민력(民力)이 퇴폐해 있는데 
 +강제(强制)로 부역(夫役)을 시키느니 보다는 먼저 우리  
 +두 사람이 직접(直接) 산()에 올라 칡을 끊는 것이,  
 +오히려 민심(民心)을 달래고 감동(感動)시키는 결과(結果) 
 +될 것이라 하고 솔선수범(率先垂範)하였더니, 원근(遠近)에  
 +사는 백성(百姓)들이 다투어 칡을 모은 고()로  
 +불일내(不日內)에 부교(浮橋)를 이루었다. 
 +4월(四月)에 원군(援軍)이 경성(京城)에 들어와 다시  
 +도성(都城)을 회복하고 왕()의 거가(車駕)도 회복할 새, 
 +공()이 호성(扈聖즉 왕가(王駕)를 호위한 공로(功勞) 
 +정략장군(定略將軍)의 관직(官職)을 하사(下賜)받았다.\\ 
 + 
 +\_무술(戊戌) 10월(十月)에 통제사(統制使) 이순신(李舜臣)  
 +장군(將軍)이 남해(南海)에서 전사(戰死)하니 선생(先生) 
 +듣고 크게 놀라며 슬퍼하였다그리고 공()으로 하여 
 +대신(代身) 조문(弔問)케 하니 공()도 일찍부터 
 +이공(李公)과 더불어 충의지심(忠義之心)이 상합(相合)하여 
 +막역지간(莫逆之間)이였는지라 더욱 애석(哀惜)히 여기고 
 +몹시 아파하였으며 
 +이공(李公)의 질() 완() 분(등과 치상지절(治喪之節) 
 +협의(協議)하여 정중(鄭重)히 장사(葬事)를 치루었다.\\ 
 + 
 +\_공()은 이 해에 직책(職責)을 사임(辭任)하고 고향(鄕) 
 +돌아와 퇴폐해진 구대(舊臺)를 헐고 수간(數間)의 초당(草堂) 
 +새로 짓고 그 당()에 만휴(晩)라 현액(縣額)하였다 
 +후인(後)들이 공()에게 세제향사(歲祭享祀)를 모책(謀策)하고 
 +익양서당(益陽書堂)을 건립(建立)하였다.\\ 
 +\_\_통정대부(通政大夫) 행() 교리(校理) 지제교(知製敎) 겸() 경연(經筵) 참찬관(參贊官)  
 +춘추관(春秋官) 기주관(記注官) 풍산(豊山) 유광목(柳光睦) 근찬(謹撰
 +</typo> 
 +</WRAP>
c3-041.1747222167.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4 20:29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