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c3-043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링크

양쪽 이전 판이전 판
다음 판
이전 판
c3-043 [2025/05/15 08:54] ssio2c3-043 [2025/05/27 20:58] (현재) ssio2
줄 10: 줄 10:
 시(諡) 양무(襄武)라. 이 어른이 휘(諱) 상(象) 평조판서(兵曹判書)를 시(諡) 양무(襄武)라. 이 어른이 휘(諱) 상(象) 평조판서(兵曹判書)를
 낳아 소도지란(昭悼之亂)으로 문천(文川)에 적거(謫居)하다 낳아 소도지란(昭悼之亂)으로 문천(文川)에 적거(謫居)하다
-병사(病死)하고 참의(議) 휘(諱) 계조(繼祖)에 이르러 한양(漢陽)으로 +병사(病死)하고참의(議) 휘(諱) 계조(繼祖)에 이르러 한양(漢陽)으로 
-방면(放免) 귀환(歸還)하여 이현(梨峴)에 살더니  +방면(放免) 귀환(歸還)하여 이현(梨峴)에 살더니 
-자(子) 휘(諱) 자중(自中)이 관(官) 참의(議)로 휘(諱) 전(詮)을+자(子) 휘(諱) 자중(自中)이 관(官) 참의(議)로 휘(諱) 전(詮)을
 생(生)하니 이 분이 공(公)의 5대조(五代祖)라. 고조(高祖)의 휘(諱) 생(生)하니 이 분이 공(公)의 5대조(五代祖)라. 고조(高祖)의 휘(諱)
-세통(世通)이니 형조참의(刑曹議)로 세거(世居) 이현(梨峴)하고 +세통(世通)이니 형조참의(刑曹議)로 이현(梨峴)에 세거(世居)하고, 
-문전(門前)에 석교(石橋)가 있는 바 참의공(議公)이 가교(架橋)한+문전(門前)에 석교(石橋)가 있는 바 참의공(議公)이 가교(架橋)한
 고(故)로 고(故)로
-지금(至今)도 세칭(世稱) 황참의교(黃議橋)라 한다. 증조(曾祖)의 +지금(至今)도 세칭(世稱) 황참의교(黃議橋)라 한다. \\ 
-휘(諱) 창(琩)은 사과(司果)니 백공(伯公) 참의공(議公) 서(瑞)로+ 
 +\_증조(曾祖)의 
 +휘(諱) 창(琩)은 사과(司果)니 백공(伯公) 참의공(議公) 서(瑞)로
 더불어 청안(淸安)에 우거(寓居)하다. 청안(淸安)은 조비(祖妣) 더불어 청안(淸安)에 우거(寓居)하다. 청안(淸安)은 조비(祖妣)
-유씨(柳氏)의 고향(故)이라. 그래서 군방동(群芳洞)에 거지(居地)를+유씨(柳氏)의 고향(故)이라. 그래서 군방동(群芳洞)에 거지(居地)를
 정(定)하고 당사(堂舍)를 지어 당호(堂號)를 양한(養閒)이라 편액(扁額)하다. 정(定)하고 당사(堂舍)를 지어 당호(堂號)를 양한(養閒)이라 편액(扁額)하다.
 여기서 은덕불사(隱德不仕)하니 당세(當世) 고위고관(高位高官)들의 여기서 은덕불사(隱德不仕)하니 당세(當世) 고위고관(高位高官)들의
 많은 송시(頌詩)가 현판(懸板)에 게시(揭示)되었더라. 많은 송시(頌詩)가 현판(懸板)에 게시(揭示)되었더라.
-조(祖) 경신(敬身)은 중추부사(中樞府事)니 충북(忠北) 청천(川) +조(祖) 경신(敬身)은 중추부사(中樞府事)니 충북(忠北) 청천(川) 
 무릉동(武陵洞)에 이거(移居)하여 강변(江邊)에 정자(亭子)를 무릉동(武陵洞)에 이거(移居)하여 강변(江邊)에 정자(亭子)를
 짓고 호(號)를 침류정(枕流亭)이라 하였다. 이도 또한 벼슬에 짓고 호(號)를 침류정(枕流亭)이라 하였다. 이도 또한 벼슬에
줄 34: 줄 36:
 손녀(孫女)요. 고(考)의 휘(諱)는 일(逸)이니 통덕랑(通德郞)이요, 손녀(孫女)요. 고(考)의 휘(諱)는 일(逸)이니 통덕랑(通德郞)이요,
 배(配)는 병조좌랑(兵曹佐郞) 조휴(趙烋)의 여(女)이니 배(配)는 병조좌랑(兵曹佐郞) 조휴(趙烋)의 여(女)이니
-공(公)은 그의 4남(四男)으로 계부(季父) 증(贈) 참의(議) +공(公)은 그의 4남(四男)으로계부(季父) 증(贈) 참의(議) 
-휘(諱) 에 출계(出系)하고 도 또한 계부(季父)인  +휘(諱) 연([日延])에 출계(出系)하고, 연([日延])도 또한 계부(季父)인  
-진사(進士) 휘(諱) 수신(守身)에 출계(出系)하였으며+진사(進士) 휘(諱) 수신(守身)에 출계(出系)하였으며,
 배(配)는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 노색(盧穡)의 여(女)요 배(配)는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 노색(盧穡)의 여(女)요
-판서(判書) 직(稙)의 질녀(姪女)라. 참의공(議公)의 배(配)는 +판서(判書) 직(稙)의 질녀(姪女)라. 참의공(議公)의 배(配)는 
-선전관(宣傳官) 윤순(尹淳)의 여(女)요판서(判書) 한준(韓準)의 +선전관(宣傳官) 윤순(尹淳)의 여(女)요 판서(判書) 한준(韓準)의 
-외손녀(外孫女)라. 공(公)이 숭정(崇禎) 기사(己巳) 3월(三月) 8일(八日)에+외손녀(外孫女)라. \\ 
 + 
 +\_공(公)이 숭정(崇禎) 기사(己巳) 3월(三月) 8일(八日)에
 출생(出生)하니 날 때 영민하여 범상(凡常)한 아이들과 다르니 출생(出生)하니 날 때 영민하여 범상(凡常)한 아이들과 다르니
 부모(父母)의 사랑이 각별(格別)하더라. 장성(長成)함에 부모(父母)의 사랑이 각별(格別)하더라. 장성(長成)함에
줄 51: 줄 55:
 패철에 비유(比喩)하니 선생(先生)이 극구칭찬(極口稱讚)하기를 패철에 비유(比喩)하니 선생(先生)이 극구칭찬(極口稱讚)하기를
 지혜(智慧)롭다 비유(比喩)함이여 가(可)히 천도(天道)를  지혜(智慧)롭다 비유(比喩)함이여 가(可)히 천도(天道)를 
-말할 수 있도다 하더니, 무기지연간(戊己年間)에 선생(先生)이+말할 수 있도다 하더니, 무기(戊己) 연간(年間)에 선생(先生)이
 침류정(枕流亭)에 와서 우거(寓居)하니 공(公)이 스스로  침류정(枕流亭)에 와서 우거(寓居)하니 공(公)이 스스로 
 스승을 모시고 전(前)에 듣지 못하던 바를 듣고 사제지간(師弟之間)의 스승을 모시고 전(前)에 듣지 못하던 바를 듣고 사제지간(師弟之間)의
-의(義)가 더욱 두터웠더라. 공(公)이 만년(晩年)에+의(義)가 더욱 두터웠더라. \\ 
 + 
 +\_공(公)이 만년(晩年)에
 군방촌(群芳村) 양한당(養閒堂) 근처(近處)에 정사(享舍)를 군방촌(群芳村) 양한당(養閒堂) 근처(近處)에 정사(享舍)를
-지으니 선생(先生)이 손수 팔경당(八警堂) 3자(三字)를 +지으니선생(先生)이 손수 팔경당(八警堂) 3자(三字)를 
-써서 현판(懸板)을 걸어주고 기문(記文)을 지어 주니 +써서 현판(懸板)을 걸어주고 기문(記文)을 지어 주니, 
-대개 팔경(八警)이란 뜻은 愼默緩忍敬直謙固(신묵완인경직겸고)인데 +대개 팔경(八警)이란 뜻은  
-8자(八字)로 공(公)을 면려(勉勵)함이라.\\+愼默緩忍敬直謙固(신묵완인경직겸고)((신(愼): 삼갈 신\\ 묵(默): 잠잠할 묵\\ 완(緩) 느릴 완\\ 인(忍): 참을 인\\ 경(敬): 공경 경\\ 직(直): 곧을 직\\ 겸(謙) 겸손할 겸\\ 고(固): 굳을 고))인데 
 +8자(八字)로 공(公)을 면려(勉勵)함이라. 
 + 
 +\_그 후(後)에 선생(先生)이 동춘(同春) 송(宋) 선생(先生) 및 
 +이(李) 상공(相公) 경억(慶億)으로 더불어 침류정(枕流亭)에 
 +회동(會同)하고 공(公)이 또  
 +권(權) 수암(邃菴)((권상하(權尙夏): 1641~1721\\ 이조 숙종 때의 학자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邃菴). 한수재(寒水齋). 시호는 문순(文純). 집의 격의 아들이다. 1660년(현종 1)에 21세로 진사에 급제했으며, 일찍 송시열과 송준길의 문하에서 주자학을 공부하여 촉망을 받았다. 1675년(숙종 1)에 송시열의 갑인예송으로 덕원에 유배되자 후진배양에 힘썼다. 1680년(숙종 6)에 경신대출척으로 귀양에서 송시열이 돌아와 충청도 화양동에서 강학하자 송시열의 문하에서 10년간 정주의 저술을 교정하였다.\\ 1689년 숙종 15년에 기사환국으로 송시열이 다시 제주도로 유배되어 사약을 받게 되자 송시열을 만나 이별을 고하고 책과 의복을 유품으로 받고 유언에 따라 화양동에 만동묘를 세우고 명나라의 신종과 의종을 모시었다. 다시 숙종의 뜻을 받들어 대보단을 쌓고 전기 두왕을 제사 하였다. 숙종의 충애를 받아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의 벼슬까지 하사 하였으나 끝내 모두 사양하고 관직에 오르지 않았다. 그는 송시열의 직전에 이은 기호학파의 대유로서 세인의 추앙을 받았다.))선생(先生)으로 
 +더불어 함께 이들을 모시니 원근(遠近) 사람들이 듣고 
 +보는 이가 현인군자(賢人君子)들이 모였다 하더라.\\
  
-\_그 後에 先生이同春宋先生및李相公慶億으로더불어枕流亭에會同하고公이또權邃菴先生으로더불어함께이들모 +\_(甲乙) 연간(年間)에 우암(尤奄)이 흉도(凶徒)들의 모함을  
-시니遠近사람들이듣고보는이가賢人君子들이모였다하더라 +당()하여 해도(海道) 중()으로 귀양가게 됨을 보고 
-甲乙年間에尤奄이凶徒들의모함을當하여海道中으로귀양가게됨을보고同志諸生으로더불어上疏를올려先生의 +동지(同志) 제생(諸生)으로 더불어 상소(上疏)를 올려 선생(先生)의 
-울함을밝히려하더니 그뜻을흔들 고말리는者가있어上疏를드리지못하니죽을때까지有恨이되었으며告廟之論즉朝 +울함을 밝히려 하더니그 뜻을 흔들고 말리는 자() 
-廷에서前朝의重臣을處刑할때는宗廟에告하는廟議에서尤奄에對한罪狀을凶徒들이發論하여그通文을各道에揭示 +있어 상소(上疏)를 드리지 못하니 죽을 때까지 유한(有恨)이  
-하니公이路上에서그揭示文을보고痛哭하고찢어버리니凶徒들이더욱惡意를품고公의名字를八道에通文하여科擧+되었으며, 고묘지론(告廟之論즉 조정(朝廷)에서 전기(前朝) 
 +중신(重臣)을 처형(處刑)할 때는 종묘(宗廟)에 고()하는 
 +묘의(廟議)에서 우암(尤奄)에 대()한 죄상(罪狀)을 흉도(凶徒)들이 
 +발론(發論)하여 그 통문(通文)을 각도(各道)에 게시(揭示)하니
 +공()이 노상(路上)에서 그 게시문(揭示文)을 보고 통곡(痛哭)하고 
 +찢어버리니 흉도(凶徒)들이 더욱 악의(惡意)를 품고 공() 
 +명자(名字)를 8도(八道)에 통문(通文)하여 과거(科擧)를 보지 
 +못하도록 하였다. 기사(己巳)에 선생(先生)의 후명지일(後命之日) 
 +즉 왕(王)의 사약(賜藥) 처분(處分)이 있을 때에 공(公)이  
 +90(九十) 편모(偏母)의 병환(病患)이 위급(危急)하여 집을  
 +떠날 수 없는 고(故)로 멀리 나아가지 못하였으나, 스승의 
 +상복(喪服)을 사제(私第)에서 입고 시신(屍身)이 돌아오는 날 
 +분곡(奔哭)하고 평생(平生)에 지통지한(至痛之恨)이 
 +되었다 한다.\\
  
 +\_일찍이 모부인(母夫人) 윤씨(尹氏) 상중(喪中)에 있을 때
 +간혹(間或) 잠결에 생시(生時)와 같이였을 줄 일이
 +생각(生覺)나서 모부인(母夫人) 침실(寢室)로 
 +들어가다가, 모부인(母夫人)이 계시지 않는 것을 깨닫고
 +영연(靈筵)에 들어가 실성통곡(失聲痛哭)하는 일이 있었으니,
 +이것은 공(公)이 어릴 때부터 윤씨(尹氏)의 교훈(敎訓)을
 +전적(全的)으로 받았고 특(特)히 윤씨(尹氏)는 시서백가(詩書百家)에
 +능통(能通)하여 자녀교육(子女敎育)에 전념(專念)한 
 +분이었으므로, 공(公)이 평소(平素)에도 학문(學問)에 
 +의문(疑問)이 생(生)할 때는 모부인(母夫人)에게
 +질정(質正)했던 연고(緣故)더라.\\
  
 +\_공(公)의 천품(天稟)이 순수(純粹)하고 돈후(敦厚)하여
 +엄정(嚴正)하고 화평(和平)하며 관대(寬大)하나 위엄(威嚴)이
 +있으며 언론(言論)이 신중(愼重)하고 처사(處事)에 
 +면밀(綿密)하며, 또 의리(義理)를
 +위하여 용감(勇敢)하여 남에게 성의(誠意)를 다하고 
 +부모(父母)에게는 효성(孝誠)이 극진(極盡)하고, 상제(喪祭)에
 +있어서는 예제(禮制)를 엄격(嚴格)히 준수(遵守)하여
 +선조(先祖)의 제사(祭祀)를 차손(次孫)에게 돌리지 않고
 +단독(單獨) 봉사(奉祀)하며, 종족척당(宗族戚黨)을 어루만지며
 +도와주고 은혜(恩惠)롭게 돌보며 급박(急迫)한 재난(災難)이
 +있을 때는 주선(周旋)을 몸소하며 상사(喪事)의 슬픈 일에는
 +위문과 제문(祭文) 조례(弔禮)같은 정례(情禮)를 갖추고,
 +원근간(遠近間) 친구(親舊)의 부음(訃音)을 들은 즉 
 +자리를 펴고 예곡(禮哭)을
 +하였으며, 비록 늙어서 병환(病患)이 있어도 시종(始終) 
 +변(變)함이 없고 항상(恒常)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하고 책상(冊床)앞에
 +단정(端正)히 앉아 고서(古書)에 잠심(潛心)하며,
 +비루(鄙陋)한 폐담(廢談)을 입 밖에 내지 아니하며
 +태만(怠慢)한 빛을 신상(身上)에 두지 아니하며, 
 +대인접물(對人接物)에는 훈훈한
 +봄바람이 감돌 듯하고 집에 항상(恒常) 빈객(賓客)이 끊이지
 +않으며 그 주식공궤(酒食供饋)를 하루 같이하고, 또 가법(家法)이
 +엄정(嚴正)하여 자제(子弟)들을 교훈(敎訓)하되 과(過)가
 +있으면 조금도 가차(假借)가 없으며 빈자(貧者)에게는 힘껏
 +도와주고, 형제간(兄弟間)에 우애(友愛)함이 천성(天性)에서 
 +나오는 것인데 많은 족제족질(族弟族姪)들을 기출(己出)같이하고
 +종족(宗族) 중(中)에 빈궁(貧窮)해서 가취(嫁娶)를 못하는 
 +자(者)는 공(公)이 반드시 담당(擔當)해서 때를 넘기지 않게
 +하고, 항상(恒常) 여혼(女婚)의 초례(初禮) 날에는 술을
 +마시지 않고 노래 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수연일혼례(愁然日婚禮)는
 +선대(先代)의 후사(後嗣)를 있게 함이라 대견스러운 마음이 
 +있어야 한다하고, 근친(近親) 중(中) 사상(死喪)이 있을 때는
 +역시 영상범절(營喪凡節)을 힘껏 도와 대사(大事)에 유감(遺憾)이
 +없게 치루게 하며, 마음가짐이 공손(恭遜)하고 근엄(謹嚴)하며
 +윤리(論理)가 정직(正直)하여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미워하는 것이 지극(至極)히 공변됨으로, 사람들이 존경(尊敬)하며
 +어렵게 여겨 감히 함부로 대(對)하지 못하더라.\\
  
-己巳에先生의後命之日즉王의賜藥處分이있을때에이九十傷母의病患이危急하여짐을떠 +\_그리고 손수 일기를 쓰되 당시(當時)의 득실(得失) 
-날수없는故로멀리나아가지못하였으나스승의喪服을私第에서입고屍身이돌아오는 날奔哭하고平生에至痛之恨이 +인륜상(人倫上)의 선악(善惡)을 직필(直筆)로 쓰고 죽는 날까지 
-되었다한다 +하루도 간단(間斷)이 없어 마치 야사(野史)같았다 하더라
-일찍이 母夫人尹氏喪中에있을때間或잠결에生時와같이였을줄일이生覺나서母夫人寢室로들어가다가母夫人이계 +만년(晩年)에는 특()히 예기(禮記)를 좋아하여 깊이 의미(意味) 
-시지않는것을깨닫고靈筵에들어가失聲痛哭하는일이있었으니이것은公이어릴때부터尹氏의敎訓을全的으로받았 +캐서 반드시 익숙한 해석(解釋)을 얻은 연후(然後)에  
-고特히尹氏는詩書百家에能通하여子女教育에專念한분이었으므로公이平素에도學問에疑問이生할때는母夫人에 +과정(課程)을 옮기니 공()의 공부(工夫)하는 태도(度)가 
-게質正했던緣故더라 +늙을수록 더 독실(篤實)한 편(便)이었더라.\\ 
-公의天稟이純粹하고敦厚하여嚴正하고和平하며寬大하나威嚴이있으며言論이慎重하고處事에綿密하며또義理를 +\_\_장언적() 찬()
-위하여勇敢하여남에게誠意를다하고父母에게는孝誠이極盡하고喪祭에있어서는禮制를嚴格히遵守하여先祖의祭 +
-祀를次孫에게돌리지않고單獨奉祀하며宗族戚黨을어루만지며도와주고恩惠롭게돌보며急迫한災難이있을때는周 +
-旋을몸소하며喪事의슬픈일에는위문과祭文弔禮같은情禮를갖추고遠近間親舊의訃音을들은즉자리를펴고禮哭을 +
-하였으며비록늙어서病患이있어도始終變함이없고恒常일찍일어나세수하고머리빗고衣冠을整齊하고冊床앞에端 +
-正히앉아古書에潛心하며鄙陋한廢談을입밖에내지아니하며怠慢한빛을身上에두지아니하며對人接物에는훈훈한 +
-봄바람이감돌듯하고집에恒常賓客이끊이지않으며그酒食供饋를하루같이하고또家法이嚴正하여子弟들을敎訓하 +
-되過가있으면조금도假借가없으며貧者에게는힘껏도와주고兄弟間에友愛함이天性에서나오는것인데많은族弟族 +
-姪들을己出같이하고宗族中에貧窮해서嫁娶를못하는 者는公이반드시擔當해서때를넘기지않게하고恒常女婚의初 +
-禮날에는술을마시지않고노래소리를 듣지아니하고愁然日婚禮는先代의後嗣를있게함이라대견스러운마음이있어 +
-야한다하고近親中死喪이있을때는역시營喪凡節을힘껏도와大事에遺憾이없게치루게하며마음가짐이恭遜하고謹 +
-嚴하며論理가正直하여善을좋아하고惡을미워하는것이至極히공변됨으로사람들이尊敬하며어렵게여겨감히함부 +
-로對하지못하더라 +
-行狀 +
-그리고손수일기를쓰되當時의得失과人倫上의善惡을直筆로쓰고죽는날까지하루도間斷이없어마치野史같았다하 +
-더라晩年에는特히禮記를좋아하여깊이意味를캐서반드시익숙한解釋을얻은然後에課程을옮기니公의工夫하는態 +
-;;;;; +
-績撰+
 </typo> </typo>
 </WRAP> </WRAP>
  
c3-043.1747266875.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5 08:54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