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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48 [2025/05/17 11:43] ssio2c3-048 [2025/06/03 16:57] (현재) ssio2
줄 64: 줄 64:
 많은 선비들의 중망(重望)이 되었다. 공(公)이 일찍이  많은 선비들의 중망(重望)이 되었다. 공(公)이 일찍이 
 말하기를, 우리 선조(先祖)께서 우리 후손(後孫)들에게 남긴  말하기를, 우리 선조(先祖)께서 우리 후손(後孫)들에게 남긴 
-유산(遺)은 근학신행(勤學愼行)이라는 문구를 문집(文集)에 +유산(遺)은 근학신행(勤學愼行)이라는 문구를 문집(文集)에 
 실어 있거늘, 가훈(家訓)으로 전(傳)하고 대대(代代)로 지켜오는 것인데 실어 있거늘, 가훈(家訓)으로 전(傳)하고 대대(代代)로 지켜오는 것인데
 지금인들 어찌 이 무념(無念)의 교훈(敎訓)을 저버릴 수  지금인들 어찌 이 무념(無念)의 교훈(敎訓)을 저버릴 수 
줄 85: 줄 85:
 \_병신년(丙申年)에는 왜적(倭敵)에게 국모(國母) 살해사건(殺害事件)이  \_병신년(丙申年)에는 왜적(倭敵)에게 국모(國母) 살해사건(殺害事件)이 
 생(生)하니 전국민(全國民)이 국모(國母)를 위(爲)하여 의거(義擧)가  생(生)하니 전국민(全國民)이 국모(國母)를 위(爲)하여 의거(義擧)가 
-일어남에, 공(公)도 향병(兵)을 거느리고 이 사건(事件)에+일어남에, 공(公)도 향병(兵)을 거느리고 이 사건(事件)에
 응(應)하였더니 일을 성사(成事)치 못한 채 투옥(投獄)되었는지라.  응(應)하였더니 일을 성사(成事)치 못한 채 투옥(投獄)되었는지라. 
 공(公)이 옥리(獄吏)를 불러 종이와 붓을 가져오라 명(命)하여,  공(公)이 옥리(獄吏)를 불러 종이와 붓을 가져오라 명(命)하여, 
줄 92: 줄 92:
 영장(營將)에게 고(告)하였더니, 양관(兩官)이 모두 영장(營將)에게 고(告)하였더니, 양관(兩官)이 모두
 탄식(歎息)하고 이는 세상에서 구(求)하기 어려운 인물(人物)이라 탄식(歎息)하고 이는 세상에서 구(求)하기 어려운 인물(人物)이라
-하고, 도리어 사례(謝禮)하며 돌려 보내니 이 후(後)로 부터+하고, 도리어 사례(謝禮)하며 돌려 보내니 이 후(後)로부터
 공(公)의 성명(聲名)이 날로 더 하여, 멀고 가까운  공(公)의 성명(聲名)이 날로 더 하여, 멀고 가까운 
 문인호걸(文人豪傑)들이 다 추중(推重)하며 따르더라.\\ 문인호걸(文人豪傑)들이 다 추중(推重)하며 따르더라.\\
줄 124: 줄 124:
 전수(奠需)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전수(奠需)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_무술년(戊戌年)에 통문(通文)을 발(發)하여 경향(京)의 +\_무술년(戊戌年)에 통문(通文)을 발(發)하여 경향(京)의 
 대보(大譜)를 청안(淸安)에서 닦을 때, 청안(淸安)은 곧 대보(大譜)를 청안(淸安)에서 닦을 때, 청안(淸安)은 곧
 방선조(傍先祖) 양무공(襄武公)의 세거(世居) 종택(宗宅)이다. 방선조(傍先祖) 양무공(襄武公)의 세거(世居) 종택(宗宅)이다.
줄 154: 줄 154:
 \_공(公)이 장중(莊重)한 자품(資稟)의 품성(品性)을 지니시고 \_공(公)이 장중(莊重)한 자품(資稟)의 품성(品性)을 지니시고
 고매(高邁)한 지기(志氣)를 가지시어 지난 날의 암락(岩落)한 고매(高邁)한 지기(志氣)를 가지시어 지난 날의 암락(岩落)한
-기개(氣)는 큰 출세(出世)를 기대(期待)했으나, 때가 아님을+기개(氣)는 큰 출세(出世)를 기대(期待)했으나, 때가 아님을
 자각(自覺)하고 부운(浮雲)같은 세상(世上) 일에 허무(虛無)하게 자각(自覺)하고 부운(浮雲)같은 세상(世上) 일에 허무(虛無)하게
 좌왕우왕(左往右往)하느니보다, 차라리 가학(家學) 연원(淵源)의 좌왕우왕(左往右往)하느니보다, 차라리 가학(家學) 연원(淵源)의
줄 172: 줄 172:
 그르다 하지않고 오직 좋은 일이며 의(義)로운 것이면 좋고  그르다 하지않고 오직 좋은 일이며 의(義)로운 것이면 좋고 
 행(行)했으니, 깊은 사의(思誼)가 종족(宗族)에게 높은 신의(信義)가 행(行)했으니, 깊은 사의(思誼)가 종족(宗族)에게 높은 신의(信義)가
-향당(黨)에 들어나 큰 종사(宗事)에 있어서나 병신년(丙申年)+향당(黨)에 들어나 큰 종사(宗事)에 있어서나 병신년(丙申年)
 국모의거사건(國母義擧事件) 같은 국사(國事)에 있어서도  국모의거사건(國母義擧事件) 같은 국사(國事)에 있어서도 
-향민(民)들이 믿고 따라 나라에도 영광(榮光)되게 하였다. +향민(民)들이 믿고 따라 나라에도 영광(榮光)되게 하였다. 
 이같이 그의 몸에 쌓인 것이 이미 후(厚)한 고(故)로 문사(文辭)로 이같이 그의 몸에 쌓인 것이 이미 후(厚)한 고(故)로 문사(文辭)로
 발(發)하는 것도 또한 깊고 그윽하며 높고 굳세어 속된 선비들이 발(發)하는 것도 또한 깊고 그윽하며 높고 굳세어 속된 선비들이
-조박(粗粕)하고 재치있는 글과는 다른 문화적(文化的) 가치(價)있는+조박(粗粕)하고 재치있는 글과는 다른 문화적(文化的) 가치(價)있는
 저술(著述)이 적지 않았는데, 누차(累次)의 병화(兵火)로  저술(著述)이 적지 않았는데, 누차(累次)의 병화(兵火)로 
 소실(燒失)되고 다만 시문(詩文) 몇 편(篇)만 집에 간수해 있을 뿐이다.\\ 소실(燒失)되고 다만 시문(詩文) 몇 편(篇)만 집에 간수해 있을 뿐이다.\\
줄 198: 줄 198:
 여(女)는 순흥(順興) 안용발(安鎔浡)에게 출가(出嫁)하였다, 여(女)는 순흥(順興) 안용발(安鎔浡)에게 출가(出嫁)하였다,
 학([日學])이 2남(二男)을 두었는데 재린(載麟) 재봉(載鳳)이다. 학([日學])이 2남(二男)을 두었는데 재린(載麟) 재봉(載鳳)이다.
-재우(載宇)가 4남3녀(四男三女)를 두었으니, 장남(長男)은 덕진(德)이요,  +재우(載宇)가 4남3녀(四男三女)를 두었으니, 장남(長男)은 덕진(德)이요,  
-다음은 석진(碩) 한진(漢) 익진(翼)이요, +다음은 석진(碩) 한진(漢) 익진(翼)이요, 
 여(女)는 신안(新安) 주재수(朱宰壽)에게 출가(出嫁)하고  여(女)는 신안(新安) 주재수(朱宰壽)에게 출가(出嫁)하고 
 나머지는 어려서 기록(記錄)하지 아니한다.\\ 나머지는 어려서 기록(記錄)하지 아니한다.\\
  
-\_찬종(燦宗)이 이웃 고을에 살고 있어 공(公)의 훌륭한 풍(風彩)와 +\_찬종(燦宗)이 이웃 고을에 살고 있어 공(公)의 훌륭한 풍(風彩)와 
-뛰어난거동(擧動)을 잘 듣고도 한번도 승배(承拜)치 못함을  +뛰어난 거동(擧動)을 잘 듣고도 한번도 승배(承拜)치 못함을  
-한(恨)스럽게 여겼더니 하루는 공(公)의 손(孫) 재우(載宇)가 +한(恨)스럽게 여겼더니하루는 공(公)의 손(孫) 재우(載宇)가 
 공(公)의 유사(遺事)를 가지고 나에게 장덕지문(狀德之文)을 공(公)의 유사(遺事)를 가지고 나에게 장덕지문(狀德之文)을
-청(請)하거늘 스스로 부족(不足)함을 느껴 감(敢)히 이런 일은 +청(請)하거늘스스로 부족(不足)함을 느껴 감(敢)히 이런 일은 
-감당(堪當)치 못하나 일찍이 들으니 인물평(人物評)이 산악(山岳)과+감당(堪當)치 못하나일찍이 들으니 인물평(人物評)이 산악(山岳)과
 같은 기상(氣像)을 갖추었고 하해(河海)와 같은 도량(度量)을 같은 기상(氣像)을 갖추었고 하해(河海)와 같은 도량(度量)을
 품어 그 넓고 깊은 모양이 외형(外形)으로는 누구나 가까이  품어 그 넓고 깊은 모양이 외형(外形)으로는 누구나 가까이 
c3-048.1747449790.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7 11:43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