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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52 [2025/05/15 19:50] ssio2c3-052 [2025/05/23 20:39] (현재) ssio2
줄 6: 줄 6:
 추증(追贈) 우의정(右議政)하고 시호(諡號)는 양무공(襄武公)이니 추증(追贈) 우의정(右議政)하고 시호(諡號)는 양무공(襄武公)이니
 평해군(平海君)을 봉(封)하신 어른이다. 황씨(黃氏)가 동국(東國)에 평해군(平海君)을 봉(封)하신 어른이다. 황씨(黃氏)가 동국(東國)에
-나타남은 학사공(學士公) 휘(諱) 낙(洛)으로부터인데 중세(中世)에+나타남은 학사공(學士公) 휘(諱) 낙(洛)으로부터인데중세(中世)에
 와서 시중(侍中) 휘(諱) 유중(裕中)이라는 어른이  와서 시중(侍中) 휘(諱) 유중(裕中)이라는 어른이 
 아들 3형제(三兄弟)를 두셨으며, 장자(長子)는 휘(諱) 진(璡)이니 아들 3형제(三兄弟)를 두셨으며, 장자(長子)는 휘(諱) 진(璡)이니
-태자검교(太子檢校)요, 다음은 휘(諱) 서(瑞)니 평(評理)로 +태자검교(太子檢校)요, 다음은 휘(諱) 서(瑞)니 평(評理)로 
-시호(諡號) 충절공(忠節公)이요, 그 다음은 휘(諱) 용(<fc:red>墉</fc>)이니+시호(諡號) 충절공(忠節公)이요, 그 다음은 휘(諱) 용(𤨭)이니
 대광(大匡)으로 시호(諡號) 충경공(忠敬公)이다. 이 세분이  대광(大匡)으로 시호(諡號) 충경공(忠敬公)이다. 이 세분이 
 3파(三派)로 나누이신 처음 조상(祖上)들인데 충경공(忠敬公)이 3파(三派)로 나누이신 처음 조상(祖上)들인데 충경공(忠敬公)이
-휘(諱) 태백(太白)을 낳으시니 형조전서(刑曹典書)며 전서공(典書公)이 +휘(諱) 태백(太白)을 낳으시니 형조전서(刑曹典書)며전서공(典書公)이 
-휘(諱) 우(祐)를 낳으시니 병조전서(兵曹典書)이며 +휘(諱) 우(祐)를 낳으시니 병조전서(兵曹典書)이며
 병조전서공(兵曹典書公)이 휘(諱) 천록(天祿)을 병조전서공(兵曹典書公)이 휘(諱) 천록(天祿)을
-낳으시니 판도판서(版圖判書)로 공(公)의 고조(考祖) 증조(曾祖)이시다.+낳으시니 판도판서(版圖判書)로공(公)의 고조(考祖) 증조(曾祖)이시다.
 이조(李朝)에 와서 공(公)이 추충협찬(推忠協贊)으로 개국원훈(開國元勳)에 이조(李朝)에 와서 공(公)이 추충협찬(推忠協贊)으로 개국원훈(開國元勳)에
-책록(策錄)되니 그 윗 代 3대(三代)를 모두 영의정(領議政) +책록(策錄)되니그 윗 대(3대(三代)를 모두 영의정(領議政) 
 좌의정(左議政) 우의정(右議政)으로 추증(追贈)되셨다.\\ 좌의정(左議政) 우의정(右議政)으로 추증(追贈)되셨다.\\
  
 \_공(公)이 나시니 몸이 크고 울음소리가 웅장하여 보고 듣는  \_공(公)이 나시니 몸이 크고 울음소리가 웅장하여 보고 듣는 
-사람들이 범상(凡常)치 않다 하더니 점점(漸漸) 자라나매 +사람들이 범상(凡常)치 않다 하더니점점(漸漸) 자라나매 
 기골(氣骨)이 장대(壯大)하고 미목(眉目)이 수려(秀麗)하며 기골(氣骨)이 장대(壯大)하고 미목(眉目)이 수려(秀麗)하며
-안광(眼光)이 불빛 같고 인물(人物)이 준수(俊秀)한데 또 재조(才操)가+안광(眼光)이 불빛 같고 인물(人物)이 준수(俊秀)한데또 재조(才操)가
 뛰어나 한 가지를 가르치면 열 가지를 이해(理解)하니 열 살 전에 벌써 뛰어나 한 가지를 가르치면 열 가지를 이해(理解)하니 열 살 전에 벌써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통달(通達)하고 그 앉은 자세(姿勢)와+사서삼경(四書三經)을 통달(通達)하고그 앉은 자세(姿勢)와
 걷는 태도(態度)가 의젓하고 무거워서 뭇 사람들이 공(公)을 걷는 태도(態度)가 의젓하고 무거워서 뭇 사람들이 공(公)을
 만나면 부지불식(不知不識) 간(間)에 머리가 수그러짐을 깨닫지 만나면 부지불식(不知不識) 간(間)에 머리가 수그러짐을 깨닫지
줄 32: 줄 32:
  
 \_그리고 장대(壯大)한 기골(氣骨)에 힘이 남보다 뛰어나  \_그리고 장대(壯大)한 기골(氣骨)에 힘이 남보다 뛰어나 
-백근(百斤) 철퇴(鐵槌) 휘두르기를 은 돌을 집어 던지듯 하며+백근(百斤) 철퇴(鐵槌) 휘두르기를 은 돌을 집어 던지듯 하며,
 말을 타고 활쏘며 칼쓰는 무예(武藝)를 숭상(崇尙)하니 6척(六尺) 쌍검(雙劍)을 말을 타고 활쏘며 칼쓰는 무예(武藝)를 숭상(崇尙)하니 6척(六尺) 쌍검(雙劍)을
 번개같이 휘두르고 활은 백발백중(百發百中)하는 특기(特技)를 번개같이 휘두르고 활은 백발백중(百發百中)하는 특기(特技)를
-가져 문자(文字) 그대로 문무(文武)가 겸전(兼全)한 분으로 그 용맹(勇猛)과+가져문자(文字) 그대로 문무(文武)가 겸전(兼全)한 분으로 그 용맹(勇猛)과
 지혜(智慧)가 나라를 위(爲)하여 방패(防牌)가 되고 성벽(城壁)이  지혜(智慧)가 나라를 위(爲)하여 방패(防牌)가 되고 성벽(城壁)이 
 됨이 충분(充分)하다고 모두들 칭(稱)하였다.\\ 됨이 충분(充分)하다고 모두들 칭(稱)하였다.\\
줄 42: 줄 42:
 병서(兵書)도 서로 토론(討論)하며 시국(時局)과 국정(國政)도  병서(兵書)도 서로 토론(討論)하며 시국(時局)과 국정(國政)도 
 서로 근심 걱정하던 뜻 맞은 친구간(親舊聞)이였었다. 서로 근심 걱정하던 뜻 맞은 친구간(親舊聞)이였었다.
-하루는 두 분이 안변(安邊) 석왕사(釋王寺)를 유람(遊覽)하실 때+하루는 두 분이 안변(安邊) 석왕사(釋王寺)를 유람(遊覽)하실 때,
 그 절의 중들이 떡치는 큰 돌을 굴리려 하여도 돌이 움직이지 그 절의 중들이 떡치는 큰 돌을 굴리려 하여도 돌이 움직이지
-않는지라 이것을 보신 공(公)이 벌떡 일어나 두손으로 번쩍 들어다 +않는지라이것을 보신 공(公)이 벌떡 일어나 두손으로 번쩍 들어다 
-중들이 원(願)하는 곳에 놓아주니 중들이 놀라 어안이 벙벙하여 +중들이 원(願)하는 곳에 놓아주니중들이 놀라 어안이 벙벙하여 
-말을 못하고 이태조(李太祖)는 그 광경(光景)을 보고 황공(黃公)은+말을 못하고이태조(李太祖)는 그 광경(光景)을 보고 황공(黃公)은
 진실(眞實)로 큰 장사(壯士)라 칭(稱)하며 더욱 가까이 하기를 좋아하였다 한다.\\ 진실(眞實)로 큰 장사(壯士)라 칭(稱)하며 더욱 가까이 하기를 좋아하였다 한다.\\
  
줄 52: 줄 52:
 배로 육해군(陸海軍)을 무수(無數)히 싣고 함주(咸州) 등지(等地)  배로 육해군(陸海軍)을 무수(無數)히 싣고 함주(咸州) 등지(等地) 
 수개군(數個郡)을 침입(侵入) 약탈(掠奪) 방화(防火) 살략(殺掠) 등(等)을 수개군(數個郡)을 침입(侵入) 약탈(掠奪) 방화(防火) 살략(殺掠) 등(等)을
-함부로 하여 백성(百姓)을 도탄(塗炭)에 빠뜨림에 왕(王)의 명(命)을+함부로 하여 백성(百姓)을 도탄(塗炭)에 빠뜨림에왕(王)의 명(命)을
 받고 공(公)이 군(軍)을 이끌고 나아가 홍원군(洪原郡) 대문령(大門嶺)에서 받고 공(公)이 군(軍)을 이끌고 나아가 홍원군(洪原郡) 대문령(大門嶺)에서
 싸워 한 번에 크게 이겨 적(敵)을 파(破)하고 도탄(塗炭)에 빠진 싸워 한 번에 크게 이겨 적(敵)을 파(破)하고 도탄(塗炭)에 빠진
줄 60: 줄 60:
 요동(遼東)을 치고자 이성계(李成桂)로 하여 우군도통(右軍都統)을 요동(遼東)을 치고자 이성계(李成桂)로 하여 우군도통(右軍都統)을
 삼고 대군(大軍)을 인솔(引率)하여 위화도(威化島)에 진둔(進屯)케 삼고 대군(大軍)을 인솔(引率)하여 위화도(威化島)에 진둔(進屯)케
-하였더니 때마침 장마비가 날마다 계속(繼續)하고 군량(軍糧)은+하였더니때마침 장마비가 날마다 계속(繼續)하고 군량(軍糧)은
 후속(後續)되지 못하므로 군사(軍士)들의 마음이 많이 동요(動搖)되고 후속(後續)되지 못하므로 군사(軍士)들의 마음이 많이 동요(動搖)되고
 있었다. 이때 공(公)은 있었다. 이때 공(公)은
 전후군(殿後軍)을 거느리고 있다가 천기(天氣)를 살펴보니 비는 좀처럼 전후군(殿後軍)을 거느리고 있다가 천기(天氣)를 살펴보니 비는 좀처럼
-개일 것 같지 않고 지리적(地理的)으로 위화도(威化島)는 수중(水中)에+개일 것 같지 않고지리적(地理的)으로 위화도(威化島)는 수중(水中)에
 잠길 우려(憂慮)가 있는 잠길 우려(憂慮)가 있는
-곳이라 진지(陣地)를 육지(陸地)로 옮길 것을 건의(建議)하고 곧 +곳이라진지(陣地)를 육지(陸地)로 옮길 것을 건의(建議)하고 곧 
 대군(大軍)을 이동(移動)시켜 강(江)을 건너 진(陣)을 옮기자 대군(大軍)을 이동(移動)시켜 강(江)을 건너 진(陣)을 옮기자
 그날 밤부터 더욱 큰 비가 계속(繼續)내려 수일(數日)이 그날 밤부터 더욱 큰 비가 계속(繼續)내려 수일(數日)이
-지나지 않아 위화도(威化島)는 완전(完全) 침몰(沈沒)되고 마는지라 +지나지 않아 위화도(威化島)는 완전(完全) 침몰(沈沒)되고 마는지라
 이에 모든 군사(軍士)들이 공(公)의 신기묘산(神奇妙算)을 칭찬(稱讚)하며 이에 모든 군사(軍士)들이 공(公)의 신기묘산(神奇妙算)을 칭찬(稱讚)하며
 공(公)의 건의(建議)가 없었던들 공(公)의 건의(建議)가 없었던들
 수만(數萬)의 대군(大軍)이 수중고혼(水中孤魂)을 면(免)치 못하였을 수만(數萬)의 대군(大軍)이 수중고혼(水中孤魂)을 면(免)치 못하였을
-것이라 하고 우리들이 살게 된 것은 오직 황공(黃公)의 힘이라 하였다 한다.\\+것이라 하고우리들이 살게 된 것은 오직 황공(黃公)의 힘이라 하였다 한다.\\
  
-\_그 후(後) 또 공(公)은 모든 참모(謀)와 도원수(都元師) +\_그 후(後) 또 공(公)은 모든 참모(謀)와 도원수(都元師) 
 이성계(李成桂)와 함께 진군(進軍)할 것을 의논(議論)할 때 공(公)이 이성계(李成桂)와 함께 진군(進軍)할 것을 의논(議論)할 때 공(公)이
-말하기를 공양왕(恭讓王)은 유약(柔弱)하고 국정(國政)에 어두우며+말하기를 공양왕(恭讓王)은 유약(柔弱)하고 국정(國政)에 어두우며,
 또 영의정(領議政) 최영(崔瑩)은 늙어도 기백(氣魄)은 좋으나 또 영의정(領議政) 최영(崔瑩)은 늙어도 기백(氣魄)은 좋으나
 인심(人心)과 군심(軍心)을 상세(詳細)히 살피지 못하고 또 군사(軍事)에 인심(人心)과 군심(軍心)을 상세(詳細)히 살피지 못하고 또 군사(軍事)에
 뒷받침할 국력(國力)은 헤아리지 않고 다만 원(元)나라와  뒷받침할 국력(國力)은 헤아리지 않고 다만 원(元)나라와 
-고려왕조(高麗王朝) 간(間)에 맺어진 대의(大義)를 저버리지 못하여+고려왕조(高麗王朝) 간(間)에 맺어진 대의(大義)를 저버리지 못하여,
 대원(大元)나라 자체(自體)도 국운(國運)이 쇠(衰)하여  대원(大元)나라 자체(自體)도 국운(國運)이 쇠(衰)하여 
 신흥(新興) 명(明) 태조(太祖)의 세력(勢力)을 어찌 할 신흥(新興) 명(明) 태조(太祖)의 세력(勢力)을 어찌 할
 수 없는 지경(地境)에 이르러 우리 고려(高麗)에게 원군(援軍)을 청(請)하는 수 없는 지경(地境)에 이르러 우리 고려(高麗)에게 원군(援軍)을 청(請)하는
-처지(處地)인데 은 우리나라 입장(立場)으로 원(元)나라도  +처지(處地)인데 은 우리나라 입장(立場)으로 원(元)나라도  
-당(當)치 못하는 명(明) 태조(太祖) 세력(勢力)을 맞아서 막는 것도 이이요 +당(當)치 못하는 명(明) 태조(太祖) 세력(勢力)을 맞아서 막는 것도 이이요, 
-하물며 멀리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나아가서 항(降服)받는다는 것은+하물며 멀리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나아가서 항(降服)받는다는 것은
 화(禍)를 자초(自招)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 화(禍)를 자초(自招)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니 회군(回軍)함이 옳다고 주장(主張)하였다. 이에 모든 참모(謀)들이+것이니 회군(回軍)함이 옳다고 주장(主張)하였다. 이에 모든 참모(謀)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황공(黃公)의 의견(意見)이 국가(國家)를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황공(黃公)의 의견(意見)이 국가(國家)를
 바로 잡는 옳바른 생각(生覺)이라 하여 모두 회군(回軍)을 찬성(贊成)하였다. 바로 잡는 옳바른 생각(生覺)이라 하여 모두 회군(回軍)을 찬성(贊成)하였다.
 이에 이성계(李成桂)는 왕명(王命)은 진군(進軍)이요  이에 이성계(李成桂)는 왕명(王命)은 진군(進軍)이요 
-군심(軍心)은 회군(回軍)이니 진군(進軍)하자니 많은 군사(軍士)를 죽이게 되고 +군심(軍心)은 회군(回軍)이니진군(進軍)하자니 많은 군사(軍士)를 죽이게 되고 
-싸움은 패(敗)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며 또 회군(回軍)이면+싸움은 패(敗)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며또 회군(回軍)이면
 왕명(王命) 거역(拒逆)으로 역모(逆謀)에 몰릴 것이 십상팔구(十常八九)인지라. 왕명(王命) 거역(拒逆)으로 역모(逆謀)에 몰릴 것이 십상팔구(十常八九)인지라.
 침식(寢食)을 잃고 심사숙고(深思熟考) 거듭거듭 침식(寢食)을 잃고 심사숙고(深思熟考) 거듭거듭
-참모회의(謀會議)를 열었으나 회군(回軍) 이외(以外)에 진군(進軍)을+참모회의(謀會議)를 열었으나 회군(回軍) 이외(以外)에 진군(進軍)을
 주장(主張)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는 고(故)로 부득이(不得已) 굳은 주장(主張)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는 고(故)로 부득이(不得已) 굳은
 각오(覺悟)를 하고 회군(回軍)을 명령(命令)하였다. 각오(覺悟)를 하고 회군(回軍)을 명령(命令)하였다.
줄 107: 줄 107:
 너무 비대(肥大)하여 감을 보고 그 반대자(反對者)들이 은연 중(中)  너무 비대(肥大)하여 감을 보고 그 반대자(反對者)들이 은연 중(中) 
 이를 제거(除去)하여 국가(國家)의 위태로움을 면(免)하여야 된다고 이를 제거(除去)하여 국가(國家)의 위태로움을 면(免)하여야 된다고
-생각(生覺)하던 영의정(領議政) 최영(崔瑩)과 정몽주(鄭夢周) 일파(一派)가+생각(生覺)하던 영의정(領議政) 최영(崔瑩)과 정몽주(鄭夢周) 일파(一派)가,
 좋은 기회(機會)가 도래(到來)하였다 하여 곧 회군(回軍)을 멈추게 하고 좋은 기회(機會)가 도래(到來)하였다 하여 곧 회군(回軍)을 멈추게 하고
 이성계(李成桂)를 도원수(都元師)에서 파직(罷職)하려 하였다. 이성계(李成桂)를 도원수(都元師)에서 파직(罷職)하려 하였다.
줄 113: 줄 113:
 아들 방원(芳遠)이 분개하여 장사(壯士)들을 뽑아 최영(崔瑩) 정포은(鄭圃隱) 등(等)을 아들 방원(芳遠)이 분개하여 장사(壯士)들을 뽑아 최영(崔瑩) 정포은(鄭圃隱) 등(等)을
 제거(除去)하는 모책(謀策)을 세우고 그 부친(父親) 이성계(李成桂)에게 제거(除去)하는 모책(謀策)을 세우고 그 부친(父親) 이성계(李成桂)에게
-문의(問議)하니 이성계(李成桂)는 꾸짖고 말리며 황희석(黃希碩)공이+문의(問議)하니이성계(李成桂)는 꾸짖고 말리며 황희석(黃希碩)공이
 항상(恒常) 옳고 좋은 일을 잘 정책(政策)하는 분이니 의견(意見)을 항상(恒常) 옳고 좋은 일을 잘 정책(政策)하는 분이니 의견(意見)을
 들어보라 하였다. 방원(芳遠)은 곧 공(公)에게 그 뜻을 고(告)하니 들어보라 하였다. 방원(芳遠)은 곧 공(公)에게 그 뜻을 고(告)하니
줄 124: 줄 124:
 이태조(李太祖)로 대업(大業)을 성취(成就)케 하였다. 이에 이태조(李太祖)로 대업(大業)을 성취(成就)케 하였다. 이에
 이태조(李太祖)가 과궁(寡躬)이 오늘날 나라를 얻게 됨은 오직 이태조(李太祖)가 과궁(寡躬)이 오늘날 나라를 얻게 됨은 오직
-경(卿)의 정책(政策)과 공(功)이 크다 하여 공신녹권(功臣錄券)과+경(卿)의 정책(政策)과 공(功)이 크다 하여공신녹권(功臣錄券)과
 훈장(勳章)을 내리며 서명(誓命) 즉 임금이 신하(臣下)에게 훈장(勳章)을 내리며 서명(誓命) 즉 임금이 신하(臣下)에게
 하는 맹세에 자손(子孫)(음직유급후세(蔭職宥及後世))에게 까지  하는 맹세에 자손(子孫)(음직유급후세(蔭職宥及後世))에게 까지 
줄 131: 줄 131:
 \_그리고 임신년(壬申年) 7월(七月)에 임금과 모든 신하(臣下)가 \_그리고 임신년(壬申年) 7월(七月)에 임금과 모든 신하(臣下)가
 모여 천지신명(天地神明)과 종묘사직(宗廟社稷)에 고(告)하는 모여 천지신명(天地神明)과 종묘사직(宗廟社稷)에 고(告)하는
-역사적(歷史的)인 회맹(會盟)에는 공(公)은 병환(病患)으로 참석(席)치+역사적(歷史的)인 회맹(會盟)에는 공(公)은 병환(病患)으로 참석(席)치
 못하고 졸(卒)하였다. 태조(太祖)가 친(親)히 빈소에 나시어 못하고 졸(卒)하였다. 태조(太祖)가 친(親)히 빈소에 나시어
 심(甚)히 슬픈 뜻으로 조상(弔喪)하고 은례(恩例)로서  심(甚)히 슬픈 뜻으로 조상(弔喪)하고 은례(恩例)로서 
줄 154: 줄 154:
  
 \_배위(配位)는 신혜택주(愼惠宅主) 삼척(三陟) 박씨(朴氏)니 \_배위(配位)는 신혜택주(愼惠宅主) 삼척(三陟) 박씨(朴氏)니
-부정(副正) 원우(源祐)의 여(女)이요 계배(繼配)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연안(廷安) 이씨(李氏)니+부정(副正) 원우(源祐)의 여(女)이요계배(繼配)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연안(廷安) 이씨(李氏)니
 형조전서(刑曹典書) 기형(琪亨)의 여(女)라, 4남(四男)을 낳으시니 형조전서(刑曹典書) 기형(琪亨)의 여(女)라, 4남(四男)을 낳으시니
 장남(長男)은 상(象)으로 부마(駙馬)로서 재취(再娶)로 파위(罷尉)되었다가  장남(長男)은 상(象)으로 부마(駙馬)로서 재취(再娶)로 파위(罷尉)되었다가 
줄 164: 줄 164:
  
 \_오호(嗚呼)라! 공(公)의 훈업(勳業)이 충훈부(忠勳府)에 기재(記載)되어 있고  \_오호(嗚呼)라! 공(公)의 훈업(勳業)이 충훈부(忠勳府)에 기재(記載)되어 있고 
-그 사실(史實)인 즉 한(漢)나라 소하(蕭河)와 조참(曺)이요, +그 사실(史實)인 즉 한(漢)나라 소하(蕭河)와 조참(曺)이요, 
 당(唐)나라 방현령(房玄齡)과 두여회(杜如晦)에 비(比)하여 조금도 당(唐)나라 방현령(房玄齡)과 두여회(杜如晦)에 비(比)하여 조금도
 부족(不足)함이 없다 하겠다. 정부(政府) 이름으로 예조(禮曹)에서 부족(不足)함이 없다 하겠다. 정부(政府) 이름으로 예조(禮曹)에서
 결의(決議)하여 시호(諡號)를 양무(襄武)로 정(定)하고 이조(吏曹)에서 결의(決議)하여 시호(諡號)를 양무(襄武)로 정(定)하고 이조(吏曹)에서
-기록(記錄)된 사실(事實)이니만큼 정부(政府)에서 이러한 공신(功臣)들의+기록(記錄)된 사실(事實)이니만큼정부(政府)에서 이러한 공신(功臣)들의
 행록(行錄)을 찬술(撰述)한 것이 반드시 있었을 것으로 생각(生覺)이 나나 행록(行錄)을 찬술(撰述)한 것이 반드시 있었을 것으로 생각(生覺)이 나나
 여러차례 병화(兵火)를 겪어 집에 있는 문헌(文獻)에 증거(證據)가 여러차례 병화(兵火)를 겪어 집에 있는 문헌(文獻)에 증거(證據)가
줄 174: 줄 174:
  
 \_가만히 생각(生覺)한 즉 세대(世代)가 더 멀어져 뒷날에 오늘을 보는 것이 \_가만히 생각(生覺)한 즉 세대(世代)가 더 멀어져 뒷날에 오늘을 보는 것이
-도리어 오늘날에 옛날을 보는 이만같지 못할까 두려워 지금(至今)까지+도리어 오늘날에 옛날을 보는 이만 같지 못할까 두려워지금(至今)까지
 전해 내려온 대략(大略)을 기록(記錄)하여 다음날의 고증(考證)을 삼게 하노라.\\ 전해 내려온 대략(大略)을 기록(記錄)하여 다음날의 고증(考證)을 삼게 하노라.\\
 \_\_종예손(宗裔孫) 병(昞) 근찬(謹撰) \_\_종예손(宗裔孫) 병(昞) 근찬(謹撰)
 </typo> </typo>
 </WRAP> </WRAP>
c3-052.1747306241.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5 19:50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