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3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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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4: | 줄 4: | ||
\_**찬사(讚辭)**\\ | \_**찬사(讚辭)**\\ | ||
\_옛 말씀에 이르기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 하였으니, | \_옛 말씀에 이르기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 하였으니, | ||
- | 것을 익히고 위로써 우리의 귀감(龜鑑)으로 삼아야 할 것인바, 우리가 수보(修譜)를 | + | 것을 익히고 위로써 우리의 귀감(龜鑑)으로 삼아야 할 것인 바, 우리가 수보(修譜)를 |
하는 참뜻도 선조의 내력을 명찰하고 유지(遺志)를 봉행하여 후세에 전하기 위한 | 하는 참뜻도 선조의 내력을 명찰하고 유지(遺志)를 봉행하여 후세에 전하기 위한 | ||
것이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데 있어서도 과거를 회고하고 장래를 설계하여야 | 것이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데 있어서도 과거를 회고하고 장래를 설계하여야 | ||
줄 14: | 줄 14: | ||
인륜도덕을 고양하고 족친간의 정의(情誼)를 친밀하게 할 필요성이 시급할 뿐 아니라 | 인륜도덕을 고양하고 족친간의 정의(情誼)를 친밀하게 할 필요성이 시급할 뿐 아니라 | ||
병진보(丙辰譜) 이후 23(二十三)년이 흘러 그 간 족친족척(族親族戚)의 수도 증가하였고, | 병진보(丙辰譜) 이후 23(二十三)년이 흘러 그 간 족친족척(族親族戚)의 수도 증가하였고, | ||
- | 교통, 통신 그리고 인쇄기술의 발달로 보책을 용인하게 발간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 + | 교통, 통신 그리고 인쇄기술의 발달로 보책을 용이하게 발간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
수보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던 차에 원근 제종(諸宗)이 미관(微官)의 불과한 우리 | 수보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던 차에 원근 제종(諸宗)이 미관(微官)의 불과한 우리 | ||
- | 형제에게 찬사를 청탁하므로, | + | 형제에게 찬사를 청탁하므로, |
제종제현(諸宗諸賢)의 뜻을 받들어 삼가 찬사를 상재(上梓)한다.\\ | 제종제현(諸宗諸賢)의 뜻을 받들어 삼가 찬사를 상재(上梓)한다.\\ | ||
줄 22: | 줄 22: | ||
동한(東漢)(: | 동한(東漢)(: | ||
사신으로 배를 타고 가던 중 풍랑으로 우리나라에 평해(平海)에 안거하신 이래 | 사신으로 배를 타고 가던 중 풍랑으로 우리나라에 평해(平海)에 안거하신 이래 | ||
- | 1970(一千九百七十)여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일근만지(一根萬枝), | + | 1,970(一千九百七十)여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일근만지(一根萬枝), |
일지만엽(一枝萬葉)으로 후손이 번성하여 누백(百)년 누십(十)세에 이르기까지 | 일지만엽(一枝萬葉)으로 후손이 번성하여 누백(百)년 누십(十)세에 이르기까지 | ||
수지분파(樹枝分派)되어 전국8(八)역에 산재 거주하게 되었으나 원래는 한 뿌리라 할 것이다.\\ | 수지분파(樹枝分派)되어 전국8(八)역에 산재 거주하게 되었으나 원래는 한 뿌리라 할 것이다.\\ | ||
줄 29: | 줄 29: | ||
무전하고, | 무전하고, | ||
오른 휘 온인(溫仁)을 중조로 모시고 이로부터 세계를 시계(始啓)하게 되었다. 그 후 | 오른 휘 온인(溫仁)을 중조로 모시고 이로부터 세계를 시계(始啓)하게 되었다. 그 후 | ||
- | 1조백(百)손으로 후손이 증가하고, | + | 일(一)조백(百)손으로 후손이 증가하고, |
- | 곤란하다. 우리 족조족친(族祖族親)은 시계(始系)로부터 4(四)세 | + | 곤란하다. 우리 족조족친(族祖族親)은 시계(始系)로부터 4(四)세 |
- | 삼중대광보극(三重大匡輔國) 시호 충경(忠敬) 휘 용(𤨭)이요, | + |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 시호 충경(忠敬) 휘 용(𤨭)이요, |
감사공(監司公) 호 잠재(潛齋) 휘 천계(天繼)이다.\\ | 감사공(監司公) 호 잠재(潛齋) 휘 천계(天繼)이다.\\ | ||
줄 39: | 줄 39: | ||
포천(抱川)에서 남하하시어 풍산현(豊山縣)에 이거하셨고, | 포천(抱川)에서 남하하시어 풍산현(豊山縣)에 이거하셨고, | ||
묘소(墓所)가 있으며, 공의 공덕을 추모하고 봉사(奉祀)를 계속하기 위한 | 묘소(墓所)가 있으며, 공의 공덕을 추모하고 봉사(奉祀)를 계속하기 위한 | ||
- | 영묘재(永慕齋)가 있다.\\ | + | 영모재(永慕齋)가 있다.\\ |
- | \_그후 | + | \_그후 |
이거하셨으며, | 이거하셨으며, | ||
정략장군(定略將軍) 호 만휴당(晩休堂) 휘 귀성(貴成)공과 취적헌(取適軒) 휘 | 정략장군(定略將軍) 호 만휴당(晩休堂) 휘 귀성(貴成)공과 취적헌(取適軒) 휘 | ||
한성(漢成)공의 형제분을 두시게 되었다. 만휴(晩休) 선조(先祖)에서는 지용(智勇)과 | 한성(漢成)공의 형제분을 두시게 되었다. 만휴(晩休) 선조(先祖)에서는 지용(智勇)과 | ||
- | 무략(武略)이 뛰어나 서애(西厓) | + | 무략(武略)이 뛰어나 서애(西厓) |
임진왜란(壬辰倭亂) 시에는 선조(宣祖) 임금을 호위(扈衛)하고 다수의 책략(策略)을 | 임진왜란(壬辰倭亂) 시에는 선조(宣祖) 임금을 호위(扈衛)하고 다수의 책략(策略)을 | ||
헌상(獻上)하여 왜군을 물리치고 종묘사직(宗廟社稷)을 보존케 하는데 큰 공을 세우셨으며, | 헌상(獻上)하여 왜군을 물리치고 종묘사직(宗廟社稷)을 보존케 하는데 큰 공을 세우셨으며, | ||
- | 취적헌(取適軒) 방조(傍祖)에서는 학문(學文)을 숭상하여 시문(詩文)에 능하고 | + | 취적헌(取適軒) 방조(傍祖)께서는 학문(學文)을 숭상하여 시문(詩文)에 능하고 |
경학(經學)에 깊었으며, | 경학(經學)에 깊었으며, | ||
- | 쓰셨으니 당헌양성(堂軒兩星)으로 인하여 후세에 문무일정(文武一庭)이라는 칭송을 | + | 쓰셨으니 당헌양성(堂軒兩星)(: 만휴당(晩休堂)과 취적헌(取適軒))으로 인하여 후세에 문무일정(文武一庭)이라는 칭송을 |
듣게 되었다.\\ | 듣게 되었다.\\ | ||
줄 57: | 줄 57: | ||
기록하고 후세에 전하는 일이야말로 불초 후손의 임무라고 하겠다. 만력 | 기록하고 후세에 전하는 일이야말로 불초 후손의 임무라고 하겠다. 만력 | ||
갑진(甲辰)(: | 갑진(甲辰)(: | ||
- | 이후 8(八)차에 걸쳐 창보(創譜)와 수보(修譜)를 거듭하였고, | + | 이후 8(八)차에 걸쳐 창보(創譜)와 수보(修譜)를 거듭하였고, |
편찬하였으며, | 편찬하였으며, |
c32-007.1749253460.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7 08:44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