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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2-025 [2025/06/07 13:49] – 만듦 ssio2c32-025 [2025/06/08 17:28]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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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운처사황공묘표(雲處士黃公墓表) +===만운처사황공묘표(雲處士黃公墓表)=== 
-황영기(黃榮起甫)가 경북(慶北) 선산(善山)으로부터 이곳에 찾아와 그의 증조부 +<WRAP 37em justify> 
-만운공(雲公)의 유고(遺稿) 한쪽을 지참(持參)하고 묘문(墓文)을 청하여 말하기를 +<typo ff:'한양해서'; fs:1.2em; lh:1.5em> 
-고향 문하생(門下生)인 유계노인(儒契老人)들이 근근이 상석망주(床石望柱)를 갖추 +\_**만운처사황공묘표(晩雲處士黃公墓表)**\\ 
-고 영기(榮起)도 타향(他鄉)에서 근성(謹誠)의 힘을 다하여 천리호남(千里湖南)에서 +\_황영기(黃榮起) 보(甫)가 경북(慶北) 선산(善山)으로부터 이곳에 찾아와 그의 증조부 
-비석을 성역(誠役)의 위업(偉業)을 썩지 않음을 도모하노니 원컨대 한말씀 도와주 +만운공(雲公)의 유고(遺稿) 한쪽을 지참(持參)하고 묘문(墓文)을 청하여 말하기를 
-시옵소서 하니라。 +고향 문하생(門下生)인 유계노인(儒契老人)들이 근근이 상석망주(床石望柱)를 갖추고  
-슬프다가난하고 늙고 약한 손자가 이 큰 역사(役事)에 힘을 쓰니 공의 덕이 사람 +영기(榮起)도 타향(他鄉)에서 근성(謹誠)의 힘을 다하여 천리호남(千里湖南)에서 
-에 들미 깊고 쌓임이 두터움을 알 수 있는지라 어찌 문루(文陋)함으로 사양(辭讓)할 +비석을 성역(誠役)의 위업(偉業)을 썩지 않음을 도모하노니 원컨대 한말씀  
-수 있으리요。 +도와주시옵소서 하니라.\\
-살피건대 공의 휘 극동(極東)이오 자 여직(汝直)이니 학자(學者)들이 만운처사(晚 +
-雲處士)이라 부르더라.이려서부터 동생(董生)하는 행력(行力)이 있더니 자람에 이 +
-노만(李蘆湾)의 문하에 취학(就學)하여 자세히 읽고 익숙하게 생각함에 문예(文芸)가 +
-일찍 성취하니라.숭고한 문장을 지어 벽에 부쳐놓고 같은 학자로 하여금 감동을 +
-일으키게 한바있으니 따라 청하는 자 더욱 많아지고 성취하는 자 많은지라 그의 선 +
-조 만휴당(晚休堂)의 의로운 행척(行績)의 누락(漏落)을 한탄하여 하회(河回)의 류씨+
  
-(柳氏)와 더불어 변증(辨證)한지 三十七년의 오랜 후에 천명(闡明)하니 그 독실(篤 +\_슬프난하고 늙고 약한 손자가 이 큰 역사(役事)에 힘을 쓰니 공의 이  
-實)함이 추선(追先)보도 더 돈독(敦篤)함이 어찌 이런것들이 있겠는+사람에 미 깊고 쌓임이 두터움을 알 수 있는지라 어찌 문루(文陋)으로 사(辭讓) 
-관(弱冠)으로부터 일바를 날마다 기록하여 종세(終世)에 름이 수천만마디의 +수 있리요.\\
-사(遺辭)다. 저술책(著述冊)이 병화에 소실되고 약간편만 남아 있다.어찌 애석하 +
-지 않으리요. +
-은 기량이 넓으며 용(儀容)이 뛰어나 의관정복(衣冠正服)에 사람들이 경복(敬 +
-服)하지않음이 없더라.어버이 섬김에 지체구양(志遭俱養)의 도를 겸하고 돌아가심 +
-에 예를 따라 어김이 없으며 가내(家内)를 어거함에 법도가 있어 매 출입에 사당(祠 +
-堂)에 불천물식(不薦不食)하며 제일(祭日)에 엄숙히 제수(祭需)를 넉넉하게 갖추고 +
-일가친척과 함께함에 다 서로 화목하고 어려움을 도우니。대게 효우(孝友)가 집 +
-에서 행해지고 인애(仁愛)가 남에게 미치니 어찌 성덕(盛德)한 군자(君子)가 아니겠 +
-는가。 +
-그의 선조는 평해인(平海人)이니 고려(高麗) 금오장군휘온인(金吾將軍諱溫仁)이 +
-다. 여러 대(代)를 전하여 휘 용(墉)은 고려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의 +
-시호가 충경(忠敬)이며 후로 휘 천계(天繼)는 이조에 창업공신(物業功臣)으로 삼도관 +
-사(三道觀察使)요, 또 휘귀성(貴成)의 호는 만휴당(晚休堂)이니 임란(壬亂)에 의주 +
-(義州)에서 어가(御駕)를 호종(扈從)한 공로 공신으로서 정략장군(定畧將軍)에 제+
  
-수(除授)되니 이는 공의 十드래초이다. +\_살피건대 공의 휘 극동(極東)이오 자 여직(汝直)이니 학자(學者)들이  
-고조는 휘 만(杰)로 사복식증직(司僕寺贈職)이고 조는 휘 복하(復河)는 추증 +만운처사(晩雲處士)라 부르더라. 어려서부터 동생(董生)하는 행력(行力)이 있더니 자람에  
-(追贈)에 승지(承旨)요 조는 휘 종운(鍾韻)이니 가업을 일으켜 (빈민구제(貧民救濟)하 +이노만(李蘆湾)의 문하에 취학(就學)하여 자세히 읽고 익숙하게 생각함에 문예(文芸)가 
-셨고 고는 휘 경화(景華)니 효로서 세상에 문명(聞名)하고 비(妣)는 전주이씨(全州李 +일찍 성취하니라. 숭고한 문장을 지어 벽에 붙여놓고 같은 학자로 하여금 감동을 
-氏) 성녕군(誠寧君)의 후 양수(陽秀)의 여다. +일으키게 한 바 있으니 따라 청하는 자 더욱 많아지고 성취하는 자 많은지라 그의 선조  
-공은 서기 一八四七 정미(丁未)생에 졸(卒)은 一九二一 신유(辛酉) 三월 二十六 +만휴당(晩休堂)의 의로운 행적(行績)의 누락(漏落)을 한탄하여 하회(河回)의 류씨(柳氏)와  
-수(壽) 七十五로 백운동반월하(白雲洞半月下)에 유원(西原)이라배(配)는 안동김씨 +더불어 변증(辨證)한지 37(三十七)년의 오랜 후에 천명(闡明)하니 그 독실(篤實)함이  
-(安東金氏) 선평(宣平)로 백순(百淳)의 여로 一八四六 병오(丙午)에 생으로서 - +추선(追先)보다도 더 돈독(敦篤)함이 어찌 이런 것들이 있겠는가.\\ 
-九二七 정묘(丁卯) 二월 十三졸로 八十一세로 묘는 공과 합조(合兆)라 + 
-三남-녀에 남에는 찬세(燦世) 찬시(燦時) 찬우(燦宇)요 여는 청송심상춘(靑松 +\_약관(弱冠)으로부터 일한 바를 날마다 기록하여 종세(終世)에 이름이 수천만 마디의 
-相春)이라 장자의 남은 병(昞烈)이요 여에는 단양우희도(丹陽禹熙道)요 차자의 +유사(遺辭)다. 저술책(著述冊)이 병화에 소실되고 약간 편만 남아 있다. 어찌 애석하지  
-남은 병래(來) 병(昞律) 병주(朱)요 三자의 남은 병순(昞舜) 병우(昞瑀)요 여는 +않으리요.\\ 
-양성이광규(陽城李光奎)와 밀양박한갑(密陽朴漢甲)이니 차증손(次曾孫) 영기(榮起) + 
-가 치석(治石)하니 누가 으하버지를 생각하는 독실함에 감탄치 않으리요.부끄러움 +\_공은 기량이 넓으며 의용(儀容)이 뛰어나 의관정복(衣冠正服)에 사람들이  
-없는 조상의 자손이로다. +경복(敬服)하지 않음이 없더라. 어버이 섬김에 지체구양(志軆俱養)의 도를 겸하고  
-檀君四千三百十六年癸亥 春節光山金玟秀撰+돌아가심에 예를 따라 어김이 없으며 가내(家内)를 어거함에 법도가 있어 매 출입에  
 +사당(祠堂)에 불천불식(不薦不食)하며 제일(祭日)에 엄숙히 제수(祭需)를 넉넉하게 갖추고 
 +일가친척과 함께함에 다 서로 화목하고 어려움을 도우니라. 대개 효우(孝友)가  
 +집에서 행해지고 인애(仁愛)가 남에게 미치니 어찌 성덕(盛德)한 군자(君子)가 아니겠는가.\\ 
 + 
 +\_그의 선조는 평해인(平海人)이니 고려(高麗) 금오장군(金吾將軍) 휘(諱) 온인(溫仁)이다.  
 +여러 대(代)를 전하여 휘 용(𤨭)은 고려 대광보국(大匡輔國) 숭록대부(崇祿大夫)의 
 +시호가 충경(忠敬)이며 후로 휘 천계(天繼)는 이조에 창업공신(物業功臣)으로  
 +삼도관찰사(三道觀察使)요, 또 휘 귀성(貴成)의 호는 만휴당(晩休堂)이니 임란(壬亂)에  
 +의주(義州)에서 어가(御駕)를 호종(扈從)한 공으로 공신으로서 정략장군(定畧將軍)에  
 +수(除授)되니 이는 공의 12(二)대조이다.\\ 
 + 
 +\_고조는 휘 만(杰)로 사복(司僕寺) 증직(贈職)이고, 증조는 휘 복하(復河)로  
 +추증(追贈)에 승지(承旨)요조는 휘 종운(鍾韻)이니 가업을 일으켜  
 +빈민구제(貧民救濟)하셨고고는 휘 경화(景華)니 효로서 세상에 문명(聞名)하고비(妣)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성녕군(誠寧君)의 후 양수(陽秀)의 여다.\\ 
 + 
 +\_공은 서기 1847(一八四七정미(丁未) 생에 졸(卒)은 1921(一九二一신유(辛酉) 3()월 26(二十六)일 
 +수(壽) 75(七十五)로 백운동(白雲洞) 반월하(半月下)에 유원(原)이라.  
 +배(配)는 안동김씨(安東金氏) 선평(宣平) 후손으로 백순(百淳)의 여로 1846(一八四六병오(丙午) 생으로서  
 +1927(一九二七정묘(丁卯) 2()월 13(十三)일 졸로 81(八十一)세로 묘는 공과 합조(合兆)라.\\ 
 + 
 +\_3()1(一)녀에 남에는 찬세(燦世) 찬시(燦時) 찬우(燦宇)요 여는 청송(靑松)) 심상춘(沈相春)이라.  
 +장자의 남은 병(昞烈)이요 여에는 단양(丹陽) 우희도(禹熙道)요  
 +차자의 남은 병래(來) 병(昞律) 병주(朱)요  
 +3()자의 남은 병순(昞舜) 병우(昞瑀)요 여는 양성(陽城) 이광규(李光奎)와 밀양(密陽) 박한갑(朴漢甲)이니  
 +차증손(次曾孫) 영기(榮起)가 치석(治石)하니 누가 버지를 생각하는 독실함에 감탄치 않으리요. 
 +부끄러움 없는 조상의 자손이로다.\\ 
 + 
 +\_\_단군(檀君) 4316년(四千三百十六年) 계해(癸亥) 춘절(春節) 광산(光山) 김민수(金玟秀)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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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2-025.1749271789.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7 13:49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