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3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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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2-026 [2025/06/07 13:52] – 만듦 ssio2 | c32-026 [2025/06/08 17:30] (현재) – ssio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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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은공묘갈명(老隱公墓碣銘) | + | ===노은공묘갈명(老隱公墓碣銘)=== |
+ | <WRAP 37em justify> | ||
+ | <typo ff:' | ||
+ | \_**노은공묘갈명(老隱公墓碣銘)**\\ | ||
+ | \_공의 휘는 성구(成九)요, | ||
+ | 종사랑(從仕郞)이며, | ||
+ | 낙(洛)께서 평해(平海)에 거하심에 인하여 관(貫)으로 삼게 되었다. | ||
+ | 태자검교(太子檢校)의 휘는 온인(溫仁)이며, | ||
+ | 휘 유중(裕中)은 시중(侍中), | ||
+ | 증(贈) 우의정(右議政), | ||
+ | 호가 잠재(潛齋)며 자헌대부(資憲大夫) 삼도관찰사(三道觀察使)를 지냈으며 7(七)세에 이른다.\\ | ||
- | 공의 휘는 성구(成九)요, 차는 광집(光集)이며, | + | \_15세(十五世) 휘 한성(漢成)의 호는 취적헌(取適軒)이며 백씨 만휴당(晩休堂) 휘 |
- | 사랑(從仕郞)이며, | + | 귀성(貴成)과 의리가 매우 돈독하여 화목하고 즐겁게 지냈다. 휘 세림(世琳)은 |
- | (洛)께서 평해(平海)에 거하심에 인하여 관(貫)으로 삼게 되었다.태자검교(太子檢校) | + | 진사(進士)며, |
- | 의 휘는 온인(溫仁)이며, | + | 증 사복시정(司僕寺正), 휘 순남(舜南)은 증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 휘 일봉(逸鳳)의 |
- | 휘용(墉)은 충경공(忠敬公)、휘 태백(太白)은 증(贈) 우의정(右議政)、휘우(祐)는 증 | + | 호는 목소(鶩巢), 휘 구석(九錫)의 호는 학남(鶴南)이며 증 형조참판(刑曹參判), |
- | 좌의정(左議政)、휘 천계(天繼)는 호가 잠재(潛齋)며 자헌대부(資憲大夫) 삼도관찰사 | + | 휘 태진(泰鎭)의 호는 낙서(洛西), 휘 오원(五源)은 증 통정대부(通政大夫)니 공의 조부요 |
- | (三道觀察使)를 지냈으며 七세에 이른다. | + | 고(考)의 휘는 종철(宗哲)이고 호는 서산재(西山齋)이며 참봉(參奉)이다.\\ |
- | 十五世 휘 한성(漢成)의 호는 취적헌(取適軒)이며 백씨 만휴당(晚休堂) 휘 귀성(貴 | + | |
- | 成)과 의리가 매우 돈독하여 화목하고 즐겁게 지냈다.휘 세림(世琳)은 진사(進士) | + | |
- | 며, 휘 용서(龍瑞)、휘 유직(有直)、휘 신희(信喜)、휘 흥세(興世)、휘 하응(河應)은 | + | |
- | 사복시정(司僕寺正)、휘순남(舜南)은 증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휘 일봉(逸鳳)의 | + | |
- | 호는 목소(鷺巢)、휘 구석(九錫)의 호는 학남(鶴南)이며 증 형조참판(刑曹 判)、휘태 | + | |
- | 진(泰鎭)의 호는 낙서(洛西)、휘 오원(五源)은 증 통정대부(通政大夫)니 공의 조부요 | + | |
- | 고(考)의 휘는 종철(宗哲)이고 호는 서산재(西山齋)이며 참봉(參奉)이다. | + | |
- | 비(她)는 안동김씨 흥록(興祿)의 따님으로 철종(哲宗) 을묘(一八五五)三월 二十一 | + | |
- | 일에 공을 목현(木峴)의 집에서 낳으니 타고난 자품(資稟)이 준수하였으며 기상(氣 | + | \_비(妣)는 안동김씨 흥록(興祿)의 따님으로 철종(哲宗) 을묘(1855(一八五五)) 3(三)월 |
- | 像)이 크고 어질었다. 자라서는 효우(孝友)가 갖추어졌으며 성실 근검하였고, | + | 21(二十一)일에 공을 목현(木峴)의 집에서 낳으니 타고난 자품(資稟)이 준수하였으며 |
- | 의 업적을 지켜 후손에게 전하는 하나의 규칙을 정하였으며 세상일에는 뜻을 두지 | + | 기상(氣像)이 크고 어질었다. 자라서는 효우(孝友)가 갖추어졌으며 성실 근검하였고, |
- | 않았다.신사(一九四一)년 정월 十五일에 돌아가시니 수(壽) 八十七이러라。목현(木 | + | 선조의 업적을 지켜 후손에게 전하는 하나의 규칙을 정하였으며 세상 일에는 뜻을 두지 |
- | 峴) 후등산(後燈山) 자좌(子坐)의 둔덕에 장사지냈다. | + | 않았다. 신사(1941(一九四一))년 정월 |
- | 四남 그녀를 두었으니 남은 병동(昞東)·병세(世)·병년(昞年)·병규(昞圭)며、 | + | 목현(木峴) 후등산(後燈山) 자좌(子坐)의 둔덕에 장사지냈다.\\ |
- | 여는 강영지(姜永智)·김기동(金紀東)이다. | + | |
- | 병동의 남은 중기(重起)·환기(煥起)요, | + | |
- | 永)·석룡(錫龍)·석순(錫淳)·석호(錫鎬)·석윤(錫潤)이며, | + | |
- | 며, 증손은 상태(相泰)이다. | + | |
- | 병세의 남은 덕기(德起)·형기(亨起)·익기(益起)요' | + | |
- | 석인(錫仁)·석득(錫斗)·석화(錫和)·석준(錫俊)·현한(鉉漢)·석한(錫漢)·창수(昶 | + | |
- | 洙)·현윤(鉉潤)·현국(鉉國)·우수(雨洙)·식수(植洙)·일수(逸洙)·조수(朝洙)이다. | + | |
- | 병년의 남은 창기(彰起)·윤기(允起)요, | + | |
- | 汏)·현호(鉉浩)·현수(鉉濉)이다. | + | |
- | 병규의 남은 영기(濘起)·명기(明起)·수기(守起)·온기(溫起)ㆍ성기(盛起)·부기 | + | |
- | (富起)·현기(顯起)·종기(鍾起)요、여는 김극모(金極模)며、손은 석희(錫熙)·석주 | + | |
- | (錫柱)·계수(桂洙)·지수(智洙)·임수(林洙)·갑수(甲洙)·진수(鎮洙)·화수(華洙)· | + | \_4(四)남 2(二)녀를 두었으니 |
- | 해수(海洙)·남수(南洙)·동수(東洙)·종수(鍾洙)·을수(乙洙)·용수(龍洙)·대수(大 | + | 여는 |
- | 洙)·형수(亨洙)이다. 나머지는 기록하지 않는다. | + | |
- | 아! 공을 말하는 자들은 그 충후(忠厚)한 성품과 독실(篤實)한 뜻에 감탄하는 도 | + | |
- | 다. 세상에 등용 될 만 하였으나 어찌 마땅하게 쓰이지 못하고 산수자연에서 늙었 | + | |
- | 는가? 그러나 이는 다만 공을 사모함을 알고 공의 지켜온 바를 알지 못하겠다.누 | + | |
- | 구나 부귀하고자 하나 본성에 존재하지 않으니 그 일에 규정되면 말(末)이 되어 장 | + | |
- | 단점을 다투게 될 것이다.선세(先世)의 훈계를 후손들에게 전하여 집안의 하나의 | + | |
- | 마땅하고 무궁한 업으로 남겨주는 것과 같은 것이 없을 것이다.그러니 어찌 백세 | + | |
- | 에 울려 불민(不泯)한 것이 아니겠는가? | + | |
- | 는 우원(芋園)의 허술한 집을 찾아와 후세에 전할 한마디 말을 원한다.내 감당하지 | + | |
- | 못하여 정중히 사의의 뜻을 표했으나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이에 명(銘)하노니、 | + | |
- | 아! 저 뭇 사람들이여, | + | |
- | 공께서는 유독 그렇지 않아' | + | |
- | 근검 독실하고 순후(淳厚)하며, 성실하고 미더우며 정직하였네。 | + | |
- | 선세를 계승하고 후세를 계도(啟導)하였으니, | + | |
- | 믈러나 산림에 묻혀 살며' | + | |
- | 내 이르는 것은 신표가 되지 못하닛 이에 빗돌에 새겨 보이노라. | + | \_병동의 남은 중기(重起)·환기(煥起)요, |
- | 一九七七년 丁巳 三월일 | + | 손자는 석영(錫永)·석룡(錫龍)·석순(錫淳)·석호(錫鎬)·석윤(錫潤)이며, |
- | 癸丑(一九七三)년 小春(十월)節 下澣에 宣城 李準規 삼가 짓다. | + | 손녀는 박현도(朴鉉道)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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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병세의 남은 덕기(德起)·형기(亨起)·익기(益起)요, | ||
+ | 손자는 석인(錫仁)·석득(錫斗)·석화(錫和)·석준(錫俊)·현한(鉉漢)·석한(錫漢)·창수(昶洙)·현윤(鉉潤)·현국(鉉國)·우수(雨洙)·식수(植洙)·일수(逸洙)·조수(朝洙)이다.\\ | ||
+ | |||
+ | \_병년의 남은 창기(彰起)·윤기(允起)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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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병규의 남은 영기(濘起)·명기(明起)·수기(守起)·온기(溫起)ㆍ성기(盛起)·부기(富起)·현기(顯起)·종기(鍾起)요, | ||
+ | 손은 석희(錫熙)·석주(錫柱)·계수(桂洙)·지수(智洙)·임수(林洙)·갑수(甲洙)·진수(鎭洙)·화수(華洙)·해수(海洙)·남수(南洙)·동수(東洙)·종수(鍾洙)·을수(乙洙)·용수(龍洙)·대수(大洙)·형수(亨洙)이다. 나머지는 기록하지 않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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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아! 공을 말하는 자들은 그 충후(忠厚)한 성품과 독실(篤實)한 뜻에 감탄하는도다. | ||
+ | 세상에 등용 될 만 하였으나 어찌 마땅하게 쓰이지 못하고 산수자연에서 늙었는가? | ||
+ | 그러나 이는 다만 공을 사모함을 알고 공의 지켜온 바를 알지 못하겠다. | ||
+ | 누구나 부귀하고자 하나 본성에 존재하지 않으니 그 일에 규정되면 말(末)이 되어 | ||
+ | 장단점을 다투게 될 것이다. 선세(先世)의 훈계를 후손들에게 전하여 집안의 하나의 | ||
+ | 마땅하고 무궁한 업으로 남겨주는 것과 같은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백세에 | ||
+ | 울려 불민(不泯)한 것이 아니겠는가? | ||
+ | 우원(芋園)의 허술한 집을 찾아와 후세에 전할 한마디 말을 원한다. 내 감당하지 | ||
+ | 못하여 정중히 사의의 뜻을 표했으나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이에 명(銘)하노니, | ||
+ | \\ | ||
+ | 아! 저 뭇 사람들이여, | ||
+ | 공께서는 유독 그렇지 않아, 꾸미고 장식하지 않았도다.\\ | ||
+ | 근검 독실하고 순후(淳厚)하며, | ||
+ | 선세를 계승하고 후세를 계도(啟導)하였으니, | ||
+ | 믈러나 산림에 묻혀 살며, 내 소유함을 내 즐거움으로 여겼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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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이르는 것은 신표가 되지 못하니, 이에 빗돌에 새겨 보이노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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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_\_1977년(一九七七년) 정사(丁巳) 3(三)월 일\\ | ||
+ | \_\_계축(癸丑) 1973(一九七三)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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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2-026.1749271953.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7 13:52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