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c32-028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링크

다음 판
이전 판
c32-028 [2025/06/07 13:56] – 만듦 ssio2c32-028 [2025/06/08 20:08] (현재) ssio2
줄 1: 줄 1:
-화전공(花田公) 묘갈명(墓碣銘)+===화전공(花田公) 묘갈명(墓碣銘)=== 
 +<WRAP 37em justify> 
 +<typo ff:'한양해서'; fs:1.2em; lh:1.5em> 
 +\_**화전공(花田公) 묘갈명(墓碣銘)**\\ 
 +\_공의 휘는 육구(郁九)요, 자는 순삼(順三)이며, 호는 화전(花田)이요, 관은  
 +종사랑(從仕郞)이며, 성은 황(黃)씨이다. 시조 학사(學士)공의 휘는 낙(洛)이니 중국  
 +강하인(江夏人)으로 배를 타고 동국에 오시어 평해(平海)에 자리 잡으시니 자손들이 이에 
 +관(貫)으로 삼았다.\\ 
 + 
 +\_고려조에 휘 온인(溫仁)은 관이 금오장군(金吾將軍) 태자검교(太子檢校)에 이르렀고,  
 +4(四)세 휘 용(𤨭)은 관이 숭록대부(崇祿大夫)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충경(忠敬)이다. 휘 태백(太白)을 생(生)하니 증 우의정이요, 태백이 
 +휘 우(祐)를 생하니 증 좌의정이다. 우가 휘 천계(天繼)를 생하니 호는 잠재(潛齋)며, 
 +경기 전라 경상 삼도관찰사(三道觀察使)를 지내고, 태조를 도와 창업공신이 되었으나,  
 +포천(抱川)에서 관직을 버리고 남으로 예안과 안동 풍산으로 옮겨 와 사셨으니 
 +그 후로는 관직이 끊어지지 않았다.\\ 
 + 
 +\_15(十五)세 휘 한성(漢成)의 호는 취적헌(取適軒)이니, 타고난 자질이 돈후(敦厚)하였으며,  
 +자품(姿品)이 강직하고 온화하였다. 총명하여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시문(詩文)을 잘하였고  
 +경학(經學)에도 조예가 깊었으나, 산림(山林)에 은거함을 일생의 낙으로 삼으셨다.  
 +백씨공 만휴당(晩休堂) 휘 귀성(貴成)과 함께 난이 평정됨에 고향으로 돌아와  
 +서로 더불어 산수간에 노닐며 기뻐하고 심히 즐거워하였다.\\ 
 + 
 +\_여러 대를 전하여 휘 구석(九錫)의 호는 학남(鶴南)이며, 관은 가선대부(嘉善大夫) 
 +형조참판(刑曹參判)에 이르렀다. 재주와 학문이 일찍이 성취되어 덕과 도량(度量)이 
 +매우 넓었으니, 이분이 공에게 고조가 되신다. 증조의 휘는 태진(泰鎭)이요、호는 
 +낙서(樂西)며 가정의 훈계를 이어 가난한 자를 구휼하고 친척과 화목하게 지내니  
 +친족이 모두 추중하였다. 조의 휘는 오원(五源)이요, 호는 운파(雲坡)며 수(壽)로  
 +통정(通政)이 되셨다. 고(考)의 휘는 종철(宗哲)이니 호는 서산재(西山齋)며 참봉이다. 
 +비는 단인(端人) 안동김씨(安東金氏) 흥록(興祿)의 따님으로 부녀자의 덕행이 있었다.\\ 
 + 
 +\_공께서 고종 병인(丙寅)(: 1866(一八六六))년 8(八)월 25(二十五)일 목현(木峴)의 집에서  
 +태어나시니 성품이 청명(淸明)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백형(伯兄) 중형(仲兄)과 우애가  
 +돈독하였고, 친족을 한결같이 섬겨 화목하게 지냈으며, 손님 접대를 정성스레 하여 
 + 
 +능히 가범(家範)을 이으니 이웃이 추중하였다. 갑신(甲申)(: 1944(一九四四))년 5(五)월 4(四)일에 
 +집에서 돌아가시니 수(壽) 79(七十九)며, 목현 전산(前山) 삼봉(三峰) 묘좌(卯坐)의 둔덕에  
 +장사지냈다.\\ 
 + 
 +\_배(配) 분성김씨는 타고난 성품이 재주가 있었고 순(順)하였으며 부인의 도가 있었다.  
 +신유(辛酉)(: 1861(一八六一))년에 태어나시어 공보다 15(十五)년 먼저  
 +기사(己巳)(: 1929(一九二九))년 6(六)월 16(十六)일에 돌아가시니 목현 후곡(後谷)  
 +자좌(子坐)에 장사지냈다.\\ 
 + 
 +\_1(一)남 1(一)녀를 두었으니 남은 병몽(昞夢)이요, 여는 윤병춘(尹炳春)에게 시집갔다. 
 +병몽의 남은 후기(厚起)·학기(鶴起)·성기(成起)며, 여는 예천(醴泉)  
 +임정국(林廷國)·예천 임영조(林永兆)이다. 후기의 남은 영수(榮洙)며,  
 +여는 안동 권기국(權奇國)·강릉 김진한(金鎮漢)이다. 
 +학기의 남은 주수(柱洙)·이수(利洙)이다. 성기의 남은 석법(錫法)·호법(鎬法)·학법(學法)이며,  
 +나머지는 다 기록하지 않는다.\\ 
 + 
 +\_아! 이제 공이 돌아가신 갑신(甲申)년과는 거의 60(六十)여 년이 되어 가는 어느 날 
 +공의 증손 영수(榮洙)씨와 그 재종숙 응기(應起) 어르신이 나를 찾아와 묘전(墓前)에 
 +세길 글을 책임 치운다. 돌아보건대 보잘 것 없는 재주와 얕은 학식(學識)으로  
 +표덕(表德)의 문(文)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하며 굳이 사양했으나 청이 더욱 굳고 후손 된 
 +정성 또한 높일 만하여 마침내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이에 그 가장(家狀)을 살펴 
 +사실을 모아 위와 같이 석출하고 이어 명(銘)하노니\\ 
 +\\ 
 +평해(平海)의 금 같은 가지요,\\ 
 +학사(學士)공의 옥 같은 후손이로다.\\ 
 +잠재(潛齋)공 선조 계시어,\\ 
 +대대로 유가(儒家)의 업(業)을 지켰도다.\\ 
 +공께서 이 가정에서 태어나시어,\\ 
 +효우(孝友)하고 돈독(敦篤)하고 어질었네.\\ 
 +어질고 선한 행실(行實) 있었기에, \\ 
 +마을과 이웃들이 칭송하도다.\\ 
 +목현(木峴)의 사척(四尺) 봉우리, \\ 
 +공께서 의구(衣屨)를 감추신 곳이라네.\\ 
 +옥돌에 글을 새겨 천년토록 밝게 비추노라.\\ 
 +\\ 
 +\_\_기묘(己卯)(: 1999(一九九九)) 중양절(重陽節)\\ 
 +\_\_순천(順天) 후인(后人) 장재호(張在鎬) 삼가 지음. 
 + 
 +</typo> 
 +</WRAP>
  
c32-028.1749272162.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7 13:56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