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3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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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하여 수신제가(修身齊家)의 학문에서 이미 경학(經學)에 이름에 옛사람의 | 비범하여 수신제가(修身齊家)의 학문에서 이미 경학(經學)에 이름에 옛사람의 | ||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마음을 두었고, 학문을 연마하고 덕행을 닦음에 후세에 요점을 남겨 |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마음을 두었고, 학문을 연마하고 덕행을 닦음에 후세에 요점을 남겨 | ||
- | 주었으니, | + | 주었으니, |
- | 을 상상할 수 있다.\\ | + | 상상할 수 있다.\\ |
\_또 형제 4인이 공의 삼방(三房)에 거하며 백씨·중씨와 계씨에 이르기까지 이웃의 | \_또 형제 4인이 공의 삼방(三房)에 거하며 백씨·중씨와 계씨에 이르기까지 이웃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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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말(始末)을 서술하고 이어서 명(銘)하노니, | 시말(始末)을 서술하고 이어서 명(銘)하노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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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뿌리가 깊으면 잎은 마땅히 무성하고 근원이 깊으면 흐름은 장대하니라.\\ | + | 뿌리가 깊으면 잎은 마땅히 무성하고, 근원이 깊으면 흐름은 장대하니라.\\ |
어찌 소신(小臣)이라 이르겠는가, | 어찌 소신(小臣)이라 이르겠는가, | ||
낙동강을 거슬려, 목현(木峴) 양지녁. \\ | 낙동강을 거슬려, 목현(木峴) 양지녁. \\ | ||
우뚝한 사척(四尺) 봉우리는, | 우뚝한 사척(四尺) 봉우리는, | ||
- | 이 사실을 금석(金石)에 새겨 천년토록 밝게 보이노라.\\ | + | 이 사실을 금석(金石)에 새겨, 천년토록 밝게 보이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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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정축(丁丑)(: | \_\_정축(丁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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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포공(垠浦公) 행적비문(行績碑文) | ||
- | 공(公)의 휘(諱)는 전구(建九)요 초휘(初諱)는 찬봉(燦鳳)이며 자(字)는 주서(周瑞)이 | ||
- | 다. 황씨(黃氏)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신라유리왕(新羅儒理王) 五년(西紀 二十八년) | ||
- | 에 유신 황락(黃洛)이 교시국(지금 월남)에 사신(使臣)으로 갔다가 오던중 풍랑을 만 | ||
- | 나 표류되어 동해기성(東海箕城: | ||
- | 오게 되었으며 누대(累代)를 전하여 고려 태자검교(太子檢校) 금오공(金吾公) 휘온 | ||
- | 인(溫仁)이 평해(平海)를 본관(本貫)으로 하였다. | ||
- | 四대를 전(傳)하여 휘 용(𤨭)은 백중계(伯仲季) 三파 중 계파조(季派祖)이니 벼슬이 | ||
- | 삼중대광보극(三重大匡輔國)으로 시호(諡號)는 충경(忠敬)이다.三대를 전하여 휘 천 | ||
- | 계(天繼)의 호는 잠재(潛齋)요 삼도관찰사(三道觀察使)이다.八대를 전하여 휘 귀성 | ||
- | (貴成)의 호는 만휴당(晚休堂)이며 정략장군(定略將軍)이다.누대(累代)를 전하여 고 | ||
- | 조(高祖)의 휘는 청하(定河)이며 자는 사일(士一)이요 증조(曾祖)의 휘는 종육(鍾六) | ||
- | 이며 호는 농암(農庵)이다.조(祖)의 휘는 경훈(景勛)이며 통덕랑(通德郎)이다.고 | ||
- | (考)의 휘는 인동(寅東)이며 호는 환초와(渙樵窩)이다. 비(她)는 밀양박씨(密陽朴氏) | ||
- | 며 사인대유(士人大有)의 따님이다. | ||
- | 서기 一八九八년 무술(戊戌) 二월 1일에 공(公)이 상인금(上仁今) 옛집에서 태어 | ||
- | 나 풍체가 우람하여 남들로부터 우러러보는 주손(胄孫)으로서 자질(資質)을 갖추었 | ||
- | 다는 인근사람들의 많은 칭송을 받아왔음이라。공은 시국(時局)과 현(現)상황을 밝 | ||
- | 게 판단하여 문내(門内)의 안정(安定)을 도모하여 왔으며 후일에 뜻을 가다듬고 성 | ||
- | 의(誠意)를 다했기에 혜택이 후손에 미쳤으니 이는 성현(聖賢)의 학문(學文)의 가르 | ||
- | 침에서 나온것이며 선세를 찬양하고 후손에게 알려주는 일에 거듭 감동되어 사모하 | ||
- | 는 것은 선조(先祖)의 업(業)에 성의(誠意)를 다함이라. | ||
- | 인금황씨(仁今黃氏)의 얼굴인 익양서당(益陽書堂) 증수문제(重修問題)를 수십차(數 | ||
- | 十次)문회(門會)를 소집(召集)하고 의논(議論)하여 말끔이 수리완료(修理完了)하였으며 더욱이 풍산시우동(豊山時雨洞) 二十一대조 감사공중조(監司公中祖)의 강당(講 | ||
- | 堂)이 없어 수백년을 두고 자손들이 염원(念願)하던 대(大) 역사를 은포공(垠浦公)의 | ||
- | 문중(門中)의 협조(協助)아래 완수(完遂)하였음은 선조(先祖)의 성덕(聖德)과 업적(業 | ||
- | 績)을 추모(追慕)하며 천양하고 효제지심(孝悌之心)과 승조(崇祖)이념이 남다름을 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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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랴。 | ||
- | 공(公)이 서기 一九六八년 무신(戊申) 음(陰) 十二월 十五일에 천수(天壽)를 다하여 | ||
- | 어담동(魚潭洞) 각곡중등(角谷中嶝) 임좌지원(壬坐之原)에 세상만사(世上萬事)를 다 | ||
- | 잊으시고 자연(自然)과 빗을 삼아 편히 잠들어 계시도다. | ||
- | 배(配)는 풍산류씨(豊山柳氏)며 구촌경심후천우(龜村景深后天佑)의 따님이시다. | ||
- | 슬하에 二남-녀를 두었으니 장자(長子)는 병순(昞舜)이고 차자(次子)는 병식(昞植) | ||
- | 이며 서(婿)에는 김상원(金相元)이다.병순(昞舜)의 남(男)은 철기(哲起) 성기(聖起) | ||
- | 순기(順起) 성기(成起) 춘기(春起)며 서(婿)에는 조봉규(趙鳳圭) 권춘경(權春景)이다. | ||
- | 병식(昞植)의 남(男)은 기일(起一) 기훈(起勳)이며 서(婿)에는 정재식(鄭在植) 조상래 | ||
- | (趙相來)이고 녀(女)는 춘연(春蓮)이다. 증손(曾孫) 이하는 생략하노라。 | ||
- | 효(孝)는 백행(百行)의 근본(根本)이며 적선(積善)은 후손의 근원(根源)이라 했는데 | ||
- | 필히 후손이 창성(昌盛)히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바이다. | ||
- | 재종숙(再從叔) 영구(英九)와 방예손(傍裔孫) 현우(鉉禹) 등(等)의 권유로 행적비 | ||
- | (行績碑)를 세울것을 결심(決心)했다면서 공(公)의 차자(次子) 병식씨(昞植氏)가 은포 | ||
- | 공(垠浦公)의 행장(行狀)을 가져와 졸렬(拙劣)한 나에게 부탁하니 어찌 내가 공(公) | ||
- | 의 심중(心中)을 헤아려 다 기록(記錄)하겠는가. 다만 후손들의 번창(繁昌)하기를 비 | ||
- | 는 바이다. | ||
- | 西紀 一九九九年 己卯 十月 日 | ||
- | 完山柳建基謹撰 |
c32-034.1749335947.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8 07:39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