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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8-009 [2025/06/05 07:42] – 만듦 ssio2 | c8-009 [2025/06/05 08:10] (현재) – ssio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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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정유보(1957) | ==평해황씨신천공파보서(平海黃氏新川公派譜序)== |
平海黃氏新川公派譜序 | <WRAP 37em justify><hidden \_한문 원문 보기> |
程子曰修譜系立族法以管攝天下人心蘇氏曰觀吾譜者孝悌之心油然而生夫譜者所以繼其世代收其宗族者也上而祖先下而族屬無不盡載披譜按牒瞭然如會一堂追遠之感自發敦睦之誼益篤是所以孝悌之心油然而興者也蓋吾黃之為姓自海舟東渡學士公諱洛為鼻祖歷羅麗而累經兵燹不知幾代失傳以箕城 | <typo ff:'한양해서'; fs:1.2em; lh:1.5em> |
平 海 | \_**平海黃氏新川公派譜序**\\ |
舊 號 | 程子曰修譜系立族法以管攝天下人心蘇氏曰觀吾譜者孝悌之心油然而生夫譜者所以繼其世代收其宗族者也上而祖先下而族屬無不盡載披譜按牒瞭然如會一堂追遠之感自發敦睦之誼益篤是所以孝悌之心油然而興者也蓋吾黃之為姓自海舟東渡學士公諱洛爲鼻祖歷羅麗而累經兵燹不知幾代失傳以箕城<fs:0.5em>平海舊號</fs>爲氏者鹹以高麗金吾公譯溫仁爲中祖起一世至四世檢校公評理公大國公三兄弟分派而大國公四世孫襄武公以我朝開國功臣崇祿大夫贊成事封平海君於新川公爲八代祖也吾族之有譜舊矣且重刊者數矣往在壬寅又繼修三派大同譜而距今五十六年況值叔季世級日下幻年漸長子姓繁衍莫辨秩序如是若過累代則但知同姓不知同祖故古人必世而一修譜俾無遺漏蓋為是也當此世亂大同合譜難於再行故今以吾入鄉祖諱禧男子新川公派譜以爲一家之私傳由是而溯考先源傍及諸派則吾姓之大同自在其中其餘無忝之訓各在其人之自明餘何必多其辭也議既定委餘敘其顚末不敢固辭概伸如右\\ |
為氏者鹹以高麗金吾公譯溫仁爲中祖起一世至四世檢校公評理公大國公三兄弟分派而大國公四世孫襄武公以我朝開國功臣崇祿大夫贊成事封平海君於新川公為八代祖也吾族之有譜舊矣且重刊者數矣往在壬寅又繼修三派大同譜而距今五十六年況值叔季世級日下幻年漸長子姓繁衍莫辨秩序如是若過累代則但知同姓不知同祖故古人必世而一修譜俾無遺漏蓋為是也當此世亂大同合譜難於再行故今以吾入鄉祖諱禧男子新川公派譜以為一家之私傳由是而溯考先源傍及諸派則吾姓之大同自在其中其餘無忝之訓各在其人之自明餘何必多其辭也議既定委餘敘其顚末不敢固辭概伸如右 | \_\_歲丁西秀葽節裔孫學周謹序 |
歲丁西秀葽節裔孫學周謹序 | </typo> |
| </hidd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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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ypo ff:'바탕'; fs:1em; lh:1.5em> |
| \_**평해황씨신천공파보서**\\ |
| \_옛날 중국(中國) 정자(程子) 즉, 명도선생(明道先生)의 말에 보계(譜系)를 닦고 족법(族法)을 세움으로서 천하인심(天下人心)을 수섭(收攝)할 수 있는 것이라 하였고, 소씨(蘇氏)는 우리 족보(族譜)를 보는 이는 부모(父母)에게 효도(孝道)하고 형제(兄弟)간 우애(友愛)하는 마음 유연(油然)히 나리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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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 | \_대저(大低) 족보(族譜)는 한 족속(族屬)의 세계(世系)를 적은 책이다. 상(上)으로 조선(祖先), 하(下)로 족속(族屬)을 빠짐없이 기재(記載)하여 분명(分明)히 일당(一堂)의 모임과 같아서 추모(追慕)의 마음 자발(自發)하고 목족(睦族)의 의리(誼理) 돈후(敦厚)하여지니, 이것이 효제(孝悌)의 마음이 유연(油然)히 나는 것이다. \\ |
옛날 중국中國 정자程子 즉, 명도선생明道先生의 말에 보계譜系를 닦고 족법族法을 세움으로서 천하인심天下人心을 수섭收攝할 수 있는 것이라 하였고, 소씨蘇氏는 우리 족보族譜를 보는 이는 부모父母에게 효도孝道하고 형제兄弟간 우애友愛하는 마음 유연油然히 나리라하다. | |
대저大低 족보族譜는 한 족속族屬의 세계世系를 적은 책이다. 상上으로 조선祖先, 하下로 족속族屬을 빠짐없이 기재記載하여 분명分明히 일당一堂의 모임과 같아서 추모追慕의 마음 자발自發하고 목족睦族의 의리誼理 돈후敦厚하여지니, 이것이 효제孝悌의 마음이 유연油然히 나는 것이다. 우리 평해황씨平海黃氏는 (서기 28년二十八年 추정推定) 중국 한漢나라로부터 바다를 건너海舟로 동도東渡하신 학사공學士公 휘諱 황낙黃洛 어른을 시조始祖로 삼았었다. 신라新羅, 고려高歷 두 시대時代를 지나는 중中 누차병란累次兵亂으로 문적소실文籍燒失되어 기대幾代나 실전失傳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다만 평해平海로 관貫을 삼는 것은 고려高麗 때 금오장군金吾將軍이신 휘諱 온인溫仁 어른을 중조中祖로 삼아 1세一世로 하고 4세四世에 이르러 검교공檢校公, 평리공評理公, 대광공大匡公 3형제三兄弟 분파分派로서 대광공大匡公의 4세손四世孫인 양무공襄武公은 이조李朝 개국공신開國功臣 숭록대부崇祿大夫 찬성사贊成事 봉封 평해군平海君하신 어른은 신천공新川公의 8대조八代祖되시는 분이다. 오족吾族이 족보族譜를 간직함도 오래되었으며, 중간重刊도 누차累次이다. 지난 임인년壬寅年(1902년) 풍기금양豊基錦陽에서 3파三派 대동보大同譜를 이어 닦은지도 거금距今 56년五十六年이다. 하물며 어수선한 근세를 맞아 풍조風潮는 나날이 변하變下하는 반면反面 유년幼年이 점점 성장成長하고 후손後孫이 번성繁盛하여 족내族內간 서차序次를 알지 못하고 이와 같이 대代를 지나면 다만 동성同姓인줄만 알고 동조자손同祖子孫인줄 알지 못할 것이다. 고인古人은 1세一世(1세一世는 30년三十年)마다 빠짐없이 수보修譜하는 것은 대게 이런 관계일 것이다. 지금은 난세亂世라 대동합보大同合譜 재수再修는 난사難事로 생각生覺되어서 우리 신천공파新川公派 보책譜冊을 간행刊行하여 우리 문중門中에 사전私傳(가승家乘: 한 집안의 역사적 사실을 적은 책)으로 삼는다. 이로 인因하여 직계直系 및 방계傍系 근원根源을 고찰考察하면 우리 황씨黃氏의 대동大同이 그 가운데 있으리라 생각한다. 선대조상先代祖上의 유덕遺德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훈계訓戒는 각각各各 그 사람의 명념明念할 것이오. 나로서 여러말 하지 않고 문의門議로 나에게 파보간행전말派譜刊行顚末을 위탁委託하기로 고사固辭치 못하여 이상과 같이 적어서 구서문舊序文 하下에 붙인다. | |
세정유歲丁西 수요절秀葽節(4월四月) 예손裔孫 학주學周 근서謹序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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派譜初刊跋 | \_우리 평해황씨(平海黃氏)는 (서기 28년(二十八年) 추정(推定)) 중국 한(漢)나라로부터 바다를 건너(海舟)로 동도(東渡)하신 학사공(學士公) 휘(諱) 황낙(黃洛) 어른을 시조(始祖)로 삼았었다. 신라(新羅), 고려(高歷) 두 시대(時代)를 지나는 중(中) 누차병란(累次兵亂)으로 문적소실(文籍燒失)되어 기대(幾代)나 실전(失傳)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다만 평해(平海)로 관(貫)을 삼는 것은 고려(高麗) 때 금오장군(金吾將軍)이신 휘(諱) 온인(溫仁) 어른을 중조(中祖)로 삼아 1세(一世)로 하고 4세(四世)에 이르러 검교공(檢校公), 평리공(評理公), 대광공(大匡公) 3형제(三兄弟) 분파(分派)로서 대광공(大匡公)의 4세손(四世孫)인 양무공(襄武公)은 이조(李朝) 개국공신(開國功臣) 숭록대부(崇祿大夫) 찬성사(贊成事) 봉(封) 평해군(平海君)하신 어른은 신천공(新川公)의 8대조(八代祖)되시는 분이다. \\ |
譜牒之盛이 莫近世若하니 識者或病其文勝이나 然이나 顧今天地飜覆하고 倫網이晦喪한데 非譜면 何以知尊祖敦族之義하야 以為扶植綱常之萬一也哉리요 吾平海之黃은 其來厥이 惟久矣라 而先世沿革之詳과 譜系編修之由는 已備於前人之序跋일세 無敢更贅나 然이나 而時異古今하고 地分南北하야 大同之譜는 勢所難為일세 肆衣昨歲에 門議로서 以為大譜는 雖不能이나 而惟吾派譜는 不可不修라하고 乃以襄武公 諱希碩 九世孫新川公 諱承立 爲派祖하고 凡三易稿而成一冊焉하니 實家乘例也라 功將訖에 責秉龍하야 以一言으로 識後할세 顧無文이 不敢承當이나 然이나 斯役也에 實終始與幹故로 乃書所感於中者라 鳴呼라 我新川公은 以潛德至孝로 丁時搶攘하야 隱居朮志하고 不售於世라 故로 人莫得以知나 然이나 其廉介之操와 闇淡之行을 猶可想像於百世之下矣리라 為吾後承者는 克體公之志하고 益篤公之行하야 在家而盡孝悌之道하고 處族而極敦睦之風則玆豈非承先裕後之大者子乎아 不然而徒以系錄之詳으로 為能事則非修譜之本意也라 故로 敬書以自勉하고 且奉勗於僉宗雲爾 | |
歲丁酉端陽節後孫秉龍謹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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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기사보(1989) | \_오족(吾族)이 족보(族譜)를 간직함도 오래되었으며, 중간(重刊)도 누차(累次)이다. 지난 임인년(壬寅年)(1902년) 풍기금양(豊基錦陽)에서 3파(三派) 대동보(大同譜)를 이어 닦은지도 거금(距今) 56년(五十六年)이다. 하물며 어수선한 근세를 맞아 풍조(風潮)는 나날이 변하(變下)하는 반면(反面) 유년(幼年)이 점점 성장(成長)하고 후손(後孫)이 번성(繁盛)하여 족내(族內)간 서차(序次)를 알지 못하고 이와 같이 대(代)를 지나면 다만 동성(同姓)인 줄만 알고 동조자손(同祖子孫)인줄 알지 못할 것이다. 고인(古人)은 1세(一世)(1세(一世)는 30년(三十年))마다 빠짐없이 수보(修譜)하는 것은 대게 이런 관계일 것이다. \\ |
己巳年重刊跋 | |
丙辰年(一九七六年)吾黃之大同譜를 平海月松先齋서 編修한지 擧經十數年矣라. 間而覽譜則吾族內修單不備로 亦有漏譜者이며 其後多有死亡出生嫁娶等事라 如斯히 又過十數年後修譜時修單詳悉은 克難일줄 思料되든바 今年初以門議로 派譜再刊行코저 決議하고 新川公先祖의 孫四兄弟分派中 伯派分은 永雄, 仲派分은 思鎭, 叔派分은 永鴻, 季派分은 虎鎭, 네 分이 各自派의 修單을 擔當하고 精書는 餘가 擔當進行하여 同年臘月에 僅成冊子하여 印刷頌帙코져 하는 同時 修單擔當하신 네 분의 勞苦와 僉族의 後援하여 주심에 感謝드리며 끝으로 옛날 中國 蘇東坡의 말이 「觀吾譜者는 孝悌之心이 油然而生」 이라 하였으니, 吾族僉位께서도 譜冊을 有時披覽하사 先祖의 遺德을 알며 父母에게 孝道하고 兄弟間友愛하고 子女侄에게 慈愛하는 마음 油然(뭉게뭉게)히 나리라 生覺되며 이로 因하여 家庭이 和合하고 族內가 團合敦睦될 줄 믿으며, 이것이 承先裕後의 第一件事가 되리라 믿고 吾亦有勉함과 同時 僉族에게 奉勉코저 하오며, 이로써 再刊의 始末을 略記하여 卷末에 붙입니다. | |
歲己巳臘月 裔孫秉龍謹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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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년 중간 발 | \_지금은 난세(亂世)라 대동합보(大同合譜) 재수(再修)는 난사(難事)로 생각(生覺)되어서 우리 신천공파(新川公派) 보책(譜冊)을 간행(刊行)하여 우리 문중(門中)에 사전(私傳)(가승(家乘): 한 집안의 역사적 사실을 적은 책)으로 삼는다. 이로 인(因)하여 직계(直系) 및 방계(傍系) 근원(根源)을 고찰(考察)하면 우리 황씨(黃氏)의 대동(大同)이 그 가운데 있으리라 생각한다. 선대조상(先代祖上)의 유덕(遺德)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훈계(訓戒)는 각각(各各) 그 사람의 명념(明念)할 것이오. \\ |
병진년丙辰年(1976년)에 우리 황씨 대동보大同譜를 평해월송平海月松 선재先齋에서 편수編修한지 어느덧擧經 십수년十數年이라. 간간이 보책을 들여다 보니 우리 문중의 수단修單이 미흡하여 족보에서 빠진 사람도 있고, 그후 사망死亡 출생出生 결혼嫁娶 등의 일이 많아, 이러하여 또 십수년이 지난 후 수보修譜할 때 자세하게 하는 것詳悉은 아주 어려울 줄 사료思料되든바 금년今年 초初 문중에서 논의하여 파보派譜를 재간행再刊行코저 결의決議하고 신천공新川公 선조先祖의 후손孫 4형제四兄弟 분파分派 중中 맏이伯派分는 영웅永雄, 둘째仲派分는 사진思鎭, 셋째叔派分는 영홍永鴻, 넷째季派分는 호진虎鎭, 네 분分이 각各 자기파自派의 수단修單을 담당擔當하고 정서精書는 제餘(병룡)가 담당擔當 진행進行하여 그해同年 12월臘月에 겨우 책자로 만들어僅成冊子 인쇄印刷 배포頌帙코져 하는 동시同時 수단修單 담당擔當하신 네 분의 노고勞苦와 모든 일가僉族의 후원後援하여 주심에 감사感謝드리며 끝으로 옛날 중국中國 소동파蘇東坡의 말이 「이 족보를 보는 사람觀吾譜者은 효제하는 마음孝悌之心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생긴다油然而生」 이라 하였으니, 우리 일가 모든 분吾族僉位께서도 보책譜冊을 수시로 열어보기有時披覽하시어 선조先祖의 유덕遺德을 알며 부모父母에게 효도孝道하고 형재간兄弟間 우애友愛하고 자녀子女 조카侄에게 자애慈愛하는 마음 유연油然(뭉게뭉게)히 나리라 생각生覺되며 이로 인因하여 가정家庭이 화합和合하고 족내族內가 단합돈목團合敦睦될 줄 믿으며, 이것이 승선유후承先裕後(: 선대의 빛난 업적을 계승하여 후대에 넉넉히 전해 주다)의 제일건사第一件事가 되리라 믿고 저 역시 근면吾亦有勉함과 동시同時 모든 일가僉族에게 받들고 힘쓸奉勉고자 하오며, 이로써 재간再刊의 시말始末을 약기略記하여 권말卷末에 붙입니다. | |
세기사歲己巳 12월臘月 예손裔孫 병룡秉龍 삼가 씁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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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재간 발己巳再刊 跋 | |
인류사회人類社會는 역사歷史의 궤도상軌道上에서 영원永遠히 전傳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가國家에는 국사國史가 향중鄉中에는 향사鄕史가 가문家門에는 가승家乘이 있어서 그 실천사실實踐事實의 우열優劣에 따라 국가國家나 사가私家나 인물人物이 평評해집니다. 오족문중吾族門中은 옛 조선祖先으로 부터 예절禮節을 준행遵行하고 효제孝悌를 실천實踐하여 온 유가儒家의 후예後裔로서 세급世級이 일하日下하는 오늘날 우리들이 일상생활日常生活에 과연당행果然當行하고 실천實踐할 일을 하고 있는가를 조용히 반성反省해 봅시다. 불초不肖한 나의 생각으로는 당행사當行事로는 윤리사상倫理思想의 확립確立이며, 실천實踐할 일은 효제관념孝悌觀念의 실행實行이라 하겠나이다. 효孝는 백행지원百行之源이라는 고인古人의 말씀 있으며, 또는 사유시종事有始終하고 물유본말物有本末이라는 말도 있지요. 근본根本 도리를 망각忘卻하고서는 어찌 예의질서禮義秩序를 운위雲謂하며, 행복幸福과 광영光榮을 바랄 수 있을 것인가? 차제此際 우리 첨족僉族은 각자各自 경계근신警戒謹愼하며 정신자세精神姿勢를 바로잡아 과거선조過去先祖의 유덕遺德을 숭봉崇奉하고 전통傳統을 계승繼承하여 오늘날 근검위주勤儉為主하면 자신自身의 생활生活도 윤택潤澤케 되고 목족지의陸族之誼로 단합團合하여 상부상조相扶相助의 관념觀念을 실천實踐하면 우리 문중門中도 빛날 것이며, 미래未來 후손後孫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유산遺產을 물려 주어야 실천책임實踐責任이 될 것이며, 장래將來 후손後孫은 화합和合과 친목親睦으로 조상祖上의 유업遺業을 숭봉崇奉하여 영원永遠히 지속持續하기를 갈망渴望하며 감敢히 췌언贅言 췌언贅言: 쓸데없는 군더더기 말. 췌담贅談. 췌론贅論 | |
을 기록記錄하여 권말卷末에 첨부添付하니, 첨족僉族은 서람恕覽하십시오. | |
세歲 기사己巳납월臘月 후손後孫 호진虎鎮 근지謹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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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나로서 여러말 하지 않고 문의(門議)로 나에게 파보간행전말(派譜刊行顚末)을 위탁(委託)하기로 고사(固辭)치 못하여 이상과 같이 적어서 구서문(舊序文) 하(下)에 붙인다.\\ |
| \_\_세(歲) 정유(丁西)(1957) 수요절(秀葽節)(4월(四月)) 예손(裔孫) 학주(學周) 근서(謹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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