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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9-005 [2025/05/17 14:02] – ssio2 | c9-005 [2025/06/03 16:32] (현재) – ssio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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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 行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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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公諱永錫 字建祚 號黙菴, 姓黃氏平海人. 我太祖朝 有襄武公諱希碩 卽公之十八代祖也. 七傳諱禧男 丙亂後自平昌 寓于清安 更移卜於龍宮之新里.\\ | \_公諱永錫 字建祚 號黙菴, 姓黃氏平海人. 我太祖朝 有襄武公諱希碩 卽公之十八代祖也. 七傳諱禧男 丙亂後自平昌 寓于淸安 更移卜於龍宮之新里.\\ |
\_禧男生諱承立 號新川, 及親喪居廬 有馴虎之異以孝聞. 六傳諱光澈 官中樞府事 是公高祖也. 曾祖諱鳳秀, 祖諱鐘周 號月浦 以文翰著.\\ | \_禧男生諱承立 號新川, 及親喪居廬 有馴虎之異以孝聞. 六傳諱光澈 官中樞府事 是公高祖也. 曾祖諱鳳秀, 祖諱鐘周 號月浦 以文翰著.\\ |
\_父義鎭 妣清州鄭氏 藥圃先生後 昌宇之女 曉小學書 壼儀甚備 以高宗癸未十月二十九日 生公于佳谷里第. 公生之日 有人以明心寶鑑 來請易米 母夫人曰 方生此兒而適來是異事 遂以米易冊焉.\\ | \_父義鎭 妣淸州鄭氏 藥圃先生後 昌宇之女 曉小學書 𠆊儀甚備 以高宗癸未十月二十九日 生公于佳谷里第. 公生之日 有人以明心寶鑑 來請易米 母夫人曰 方生此兒而適來是異事 遂以米易冊焉.\\ |
\_自幼性温謹 不煩提教 六嵗就坦堂金公 學解字煩慧多爲長者所稱許 既受小學書 一日告塾長曰 覺得灑掃後似有平天下之樣 朱子所謂灑掃應對 爲治平之本者 果不我欺也. 塾長嘆嗟曰, 此兒將有大進之漸.\\ | \_自幼性溫謹 不煩提敎 六嵗就坦堂金公 學解字煩慧多爲長者所稱許 旣受小學書 一日告塾長曰 覺得灑掃後似有平天下之樣 朱子所謂灑掃應對 爲治平之本者 果不我欺也. 塾長嘆嗟曰, 此兒將有大進之漸.\\ |
\_嘗與其弟永根共飯 弟指器内餘液曰 盍刷而盡之? 公蹙然曰 不獨於器液 乃爾吾日用言動類多不精 汝須檢察以言其聞過從善 亦多此類.\\ | \_嘗與其弟永根共飯 弟指器內餘液曰 盍刷而盡之? 公蹙然曰 不獨於器液 乃爾吾日用言動類多不精 汝須檢察以言其聞過從善 亦多此類.\\ |
\_曾以百緡金有貸於人 而不報者公受心經近思錄二冊折券 而還告于親曰 此書學聖之訣 不以金錢方之也 伏願勿慮焉.\\ | \_曾以百緡金有貸於人 而不報者公受心經近思錄二冊折券 而還告于親曰 此書學聖之訣 不以金錢方之也 伏願勿慮焉.\\ |
\_己亥丁内艱 毀戚踰禮時的冬寒 與弟永根省墓歸路 遇賊\\ | \_己亥丁內艱 毀戚踰禮時的冬寒 與弟永根省墓歸路 遇賊\\ |
掠取其衣服 公脫與之曰 此阿季年弱酷寒 若裸則不免僵斃矣 願勿迫焉. 辭甚懇賊感而舍.\\ | 掠取其衣服 公脫與之曰 此阿季年弱酷寒 若裸則不免僵斃矣 願勿迫焉. 辭甚懇賊感而舍.\\ |
\_庚子秋聞毅堂朴先生講道 于清風茀山與弟永根 徃拜受學 先生一見許其異器. 乙巳毁聖廟之變 先生舉義討復 公以致死之義從軍 而共還, 公錄先生語 在先生文集中.\\ | \_庚子秋聞毅堂朴先生講道 于淸風茀山與弟永根 徃拜受學 先生一見許其異器. 乙巳毁聖廟之變 先生擧義討復 公以致死之義從軍 而共還, 公錄先生語 在先生文集中.\\ |
\_後謁持菴金先生 於南隱寓舍 先生語于公曰 人之有性本無不善 而惡之所生氣質病之也. 公避席而答曰 風氣之病甚於氣質之害, 先生曰子自得乎? 答曰 曾見於柳省齋集中. 先生嘆其不剿襲也. \\ | \_後謁持菴金先生 於南隱寓舍 先生語于公曰 人之有性本無不善 而惡之所生氣質病之也. 公避席而答曰 風氣之病甚於氣質之害, 先生曰子自得乎? 答曰 曾見於柳省齋集中. 先生嘆其不剿襲也. \\ |
\_平居討静室危坐 日必冠帶 未嘗有惰容, 几案書冊整頓 不亂放案上. 常置心近諸書 座右揭愼其獨保晚節 六宇朝夕省覽 扁其所居室曰默菴.\\ | \_平居討靜室危坐 日必冠帶 未嘗有惰容, 几案書冊整頓 不亂放案上. 常置心近諸書 座右揭愼其獨保晩節 六宇朝夕省覽 扁其所居室曰默菴.\\ |
\_凡一切是非得喪 旁人過惡絕口不道 尤惓惓於誠敬 自治愈嚴, 雖處困拂 坦然若無事. 嘗曰 求仁去私, 尊攘崇闢 我毅堂先生平日講學骨子 爲吾徒者當守 此準的.\\ | \_凡一切是非得喪 旁人過惡絶口不道 尤惓惓於誠敬 自治愈嚴, 雖處困拂 坦然若無事. 嘗曰 求仁去私, 尊攘崇闢 我毅堂先生平日講學骨子 爲吾徒者當守 此準的.\\ |
\_日倭卒数十軰 剽掠村閭人 皆逃避 公獨毅然對坐. 彼見闊袖衣 而詰之, 曰此何服也? 答曰吾先王法服. 彼曰 奈邦禁何? 對曰 儒者所守禮義而己.\\ | \_日倭卒數十軰 剽掠村閭人 皆逃避 公獨毅然對坐. 彼見闊袖衣 而詰之, 曰此何服也? 答曰吾先王法服. 彼曰 奈邦禁何? 對曰 儒者所守禮義而己.\\ |
\_時王矯制 有不暇恤也 酬應自若彼亦義之 或以新學誘之曰\\ | \_時王矯制 有不暇恤也 酬應自若彼亦義之 或以新學誘之曰\\ |
現今文化世界 許多奇巧 可謂開發人才 所謂儒道云云 不免陳腐. 公笑曰 吾数十年所讀 皆虛也耶? 吾請言其所以 子其聽之. 吾儒只此三綱五常 亙古今罔墜之道. 彼所謂學滅倫 反常壞經 侮聖糜人沼國之毒螫也. 且所謂奇技淫巧 尤蠱惑人膓肚而已.\\ | 現今文化世界 許多奇巧 可謂開發人才 所謂儒道云云 不免陳腐. 公笑曰 吾數十年所讀 皆虛也耶? 吾請言其所以 子其聽之. 吾儒只此三綱五常 亙古今罔墜之道. 彼所謂學滅倫 反常壞經 侮聖糜人沼國之毒螫也. 且所謂奇技淫巧 尤蠱惑人膓肚而已.\\ |
\_鄉里子姪多犯西教者 所謂牧士主教者 以其術動之 因進一編云聖經. 公徐笑曰 其所謂聖怎麼聖人 乃劈破邪正之 不容相混 彼亦嘿退, 謂人曰 某公精透金石 明析毫銖 莫以異教惑之也.\\ | \_鄕里子姪多犯西敎者 所謂牧士主敎者 以其術動之 因進一編云聖經. 公徐笑曰 其所謂聖怎麼聖人 乃劈破邪正之 不容相混 彼亦嘿退, 謂人曰 某公精透金石 明析毫銖 莫以異敎惑之也.\\ |
\_弟永根分戶仍稟于親曰 只有渠兄弟二人 弟飢兄何忍獨飽? 願以数項田益之, 其友于之篤 爲人所誦.\\ | \_弟永根分戶仍稟于親曰 只有渠兄弟二人 弟飢兄何忍獨飽? 願以數項田益之, 其友于之篤 爲人所誦.\\ |
\_庚戌秋 聞國破之報 西望號痛 橅釼自歌曰 隆熙四年秋 杖釼讀春秋 華夷人獸界 白刃漂欲秋. 又吟一絶曰, 磨爾一片心 誓我百年心 義利交錯地 借爾快剖心. 以釼密藉納之篋. 既而聞毅堂先生自靖之報 設位而痛哭 赴吊而加麻. 己未高宗昇遐時 議懾於虜勢岐 於着白之論 公據本朝君喪儀 以白笠三年之制 率同志行哭班. 舉因山前 廢大小祀之儀, 停正朝茶禮 隣里從之.\\ | \_庚戌秋 聞國破之報 西望號痛 橅釼自歌曰 隆熙四年秋 杖釼讀春秋 華夷人獸界 白刃漂欲秋. 又吟一絶曰, 磨爾一片心 誓我百年心 義利交錯地 借爾快剖心. 以釼密藉納之篋. 旣而聞毅堂先生自靖之報 設位而痛哭 赴吊而加麻. 己未高宗昇遐時 議懾於虜勢岐 於着白之論 公據本朝君喪儀 以白笠三年之制 率同志行哭班. 擧因山前 廢大小祀之儀, 停正朝茶禮 隣里從之.\\ |
\_甲子正月値回錄之災 家藏什物盡入灰燼. 公唏曰, 家財捐失 固不足恤 世守遺籍 逮余不完保 甚慨焉. 公素不喜著作而槩毁稿 弟永根請其灰燼之餘者 蒐輯以備後蹟 公止之曰 學貴行己而已, 奚文爲也? 惟以家訓九篇 企子孫之服膺 勿替而已焉.\\ | \_甲子正月値回錄之災 家藏什物盡入灰燼. 公唏曰, 家財捐失 固不足恤 世守遺籍 逮余不完保 甚慨焉. 公素不喜著作而槩毁稿 弟永根請其灰燼之餘者 蒐輯以備後蹟 公止之曰 學貴行己而已, 奚文爲也? 惟以家訓九篇 企子孫之服膺 勿替而已焉.\\ |
\_公以暴患舌噤神亂 不能遺一語 以垂昆謨經二日 而瞑時 甲子二月十五日戌時 得年四十二. 踰月而葬于烏頭谷 枕坤原, 遠近士友痛惜焉. 配義城金氏 士人碩周女, 生二男長秉龍 次秉道.\\ | \_公以暴患舌噤神亂 不能遺一語 以垂昆謨經二日 而瞑時 甲子二月十五日戌時 得年四十二. 踰月而葬于烏頭谷 枕坤原, 遠近士友痛惜焉. 配義城金氏 士人碩周女, 生二男長秉龍 次秉道.\\ |
\_嗚乎 若公者以醇温謹密之姿 加學問淵源之正 其孝友之篤 得之天畀, 不敢一毫 自有而自專.\\ | \_嗚乎 若公者以醇溫謹密之姿 加學問淵源之正 其孝友之篤 得之天畀, 不敢一毫 自有而自專.\\ |
\_其存省之察 則靜以存養, 儼然若思 動以省察 條暢發越 畏兢亹亹. 雖造次顚沛動遵塗轍 一以古人自期 其尊攘崇闢之嚴 得之師門 截然有不可犯, 故其道亡之痛 發於撫釼之句. 毅然有舍命 不渝底氣, 使人讀之 不覺膽落而氣欝也.\\ | \_其存省之察 則靜以存養, 儼然若思 動以省察 條暢發越 畏兢亹亹. 雖造次顚沛動遵塗轍 一以古人自期 其尊攘崇闢之嚴 得之師門 截然有不可犯, 故其道亡之痛 發於撫釼之句. 毅然有舍命 不渝底氣, 使人讀之 不覺膽落而氣欝也.\\ |
\_惜乎, 若天假之以年 而征邁不已 則斯文之托庻穆卜 而才及無聞 天奪之速 何哉? 此豈孟子所謂性也 有命焉非歟? 余少從茀山門下遊 見公二難於鏗瑟之席 得於動容辭氣 而服公者深且久矣.\\ | \_惜乎, 若天假之以年 而征邁不已 則斯文之托庻穆卜 而才及無聞 天奪之速 何哉? 此豈孟子所謂性也 有命焉非歟? 余少從茀山門下遊 見公二難於鏗瑟之席 得於動容辭氣 而服公者深且久矣.\\ |
\_아버지는 의진(義鎭)(25世)이고 어머니는 청주정씨(淸州鄭氏)로 약포(藥圃)선생 후예로 창우(昌宇)의 따님이니 소학 책에 밝았고((요소학(䁱小學): 요(䁱)자는 오기(誤記)일 것 같아 역자가 밝은 효(曉)자로 정정했음을 밝힌다.)) 부인의 깊은 덕을((곤의심비(壼儀甚備): 곤의는 왕후(王后)의 덕을 말하고 왕후를 은유하는데, 여기서는 그토록 빼어난 부인의 덕을 아주 깊이 갖추었다는 뜻이 된다.)) 갖추었는데 고종 계미(癸未) 1883년 10월 29일에 가곡리(佳谷里) 가곡리(佳谷里): 1)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현 경북도청 동쪽), 2) 경상북도 예천군 개포면 가곡리가 있으나, 풍천면 가곡리로 추정됨)) 본댁에서 공을 낳으셨다. 공이 출생하시던 날 어떤 이가 명심보감을 가지고 와서 쌀을 바꾸기를 요청하매 모부인(母夫人)((모부인(母夫人): 남의 어머니를 높여 이르는 말.))이 ‘방금 이 아이가 났는데 마침 기이한 일이로고!’하시면서 책과 쌀을 바꾸어 주셨다.\\ | \_아버지는 의진(義鎭)(25世)이고 어머니는 청주정씨(淸州鄭氏)로 약포(藥圃)선생 후예로 창우(昌宇)의 따님이니 소학 책에 밝았고((요소학(䁱小學): 요(䁱)자는 오기(誤記)일 것 같아 역자가 밝은 효(曉)자로 정정했음을 밝힌다.)) 부인의 깊은 덕을((곤의심비(壼儀甚備): 곤의는 왕후(王后)의 덕을 말하고 왕후를 은유하는데, 여기서는 그토록 빼어난 부인의 덕을 아주 깊이 갖추었다는 뜻이 된다.)) 갖추었는데 고종 계미(癸未) 1883년 10월 29일에 가곡리(佳谷里) 가곡리(佳谷里): 1)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현 경북도청 동쪽), 2) 경상북도 예천군 개포면 가곡리가 있으나, 풍천면 가곡리로 추정됨)) 본댁에서 공을 낳으셨다. 공이 출생하시던 날 어떤 이가 명심보감을 가지고 와서 쌀을 바꾸기를 요청하매 모부인(母夫人)((모부인(母夫人): 남의 어머니를 높여 이르는 말.))이 ‘방금 이 아이가 났는데 마침 기이한 일이로고!’하시면서 책과 쌀을 바꾸어 주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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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공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순하고 삼가서 별반 가르치지 않아도 6세에 탄당(坦堂) 김공(金公)((탄당 김공(坦堂 金公): 호가 탄당인 김영주(金永冑) 선생이다.))에게 가서 글자를 애써서 해득하였는데 연장자들처럼 지혜로워 소학(小學) 책을 배우다가 하루는 글방 선생에게 말했다, ‘물 뿌리고 청소하는 쇄소(灑掃)를 한 뒤에는 천하가 태평한 것 같이 깨달으오니 주자(朱子)가 쇄소응대(灑掃應對)((쇄소응대(灑掃應對): 주희(朱熹)의 대학장구(大學章句 序)에 ‘인생 8세에 다 소학(小學)에 입문케 하여 물 뿌리고 마당 쓸며 손님 응대하게 함으로 진퇴의 예절을 배우게 한다’는 데서 어릴 적에 기초교육의 훈련을 말한 것이다. | \_공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순하고 삼가서 별반 가르치지 않아도 6세에 탄당(坦堂) 김공(金公)((탄당 김공(坦堂 金公): 호가 탄당인 김영주(金永胄) 선생이다.))에게 가서 글자를 애써서 해득하였는데 연장자들처럼 지혜로워 소학(小學) 책을 배우다가 하루는 글방 선생에게 말했다, ‘물 뿌리고 청소하는 쇄소(灑掃)를 한 뒤에는 천하가 태평한 것 같이 깨달으오니 주자(朱子)가 쇄소응대(灑掃應對)((쇄소응대(灑掃應對): 주희(朱熹)의 대학장구(大學章句 序)에 ‘인생 8세에 다 소학(小學)에 입문케 하여 물 뿌리고 마당 쓸며 손님 응대하게 함으로 진퇴의 예절을 배우게 한다’는 데서 어릴 적에 기초교육의 훈련을 말한 것이다. |
))를 말한 바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기초가 됨은 과연 저를 그르치지 않았습니다.’ 선생이 감탄하여 말했다, ‘이 아이는 장차 점점 크게 진보함이 있으리라.’\\ | ))를 말한 바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기초가 됨은 과연 저를 그르치지 않았습니다.’ 선생이 감탄하여 말했다, ‘이 아이는 장차 점점 크게 진보함이 있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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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하여서 이교(異敎)가 유혹할 수 없다.”\\ | 명석하여서 이교(異敎)가 유혹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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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아우 영근이 분가(分家)를 나자 제적등본에 의하면, 명치 43년(1910년) 10월 10일 동군(비안군) 정북면 신리동 1통 9호 분가. 이는 (법적으로) 25살에 분가한 것이다. 참고로 저자가 돌아가실 때의 본가는 비안군 현동면 오가동이다. (거리는 100~200m 정도) | \_ 아우 영근이 분가(分家)를 나자((제적등본에 의하면, 명치 43년(1910년) 10월 10일 동군(비안군) 정북면 신리동 1통 9호 분가. 이는 (법적으로) 25살에 분가한 것이다. 참고로 저자가 돌아가실 때의 본가는 비안군 현동면 오가동이다. (거리는 100~200m 정도) )) |
어버이께 여쭈었다, “아우가 주리면 형이 어찌 홀로 배불리겠습니까? 몇 필지를 아우에게 더해 주시기 원합니다,” 그 돈독한 우애를 사람들이 되뇌게 되었다. | 어버이께 여쭈었다, “아우가 주리면 형이 어찌 홀로 배불리겠습니까? 몇 필지를 아우에게 더해 주시기 원합니다,” 그 돈독한 우애를 사람들이 되뇌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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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 1910년 가을 나라가 망한 소식을 듣고 서쪽을 향하여 애통하게 부르짖고 검을 만지면서 스스로 읊었다, | \_경술 1910년 가을 나라가 망한 소식을 듣고 서쪽을 향하여 애통하게 부르짖고 검을 만지면서 스스로 읊었다.\\ |
隆熙四年秋 杖釼讀春秋 華夷人獸界 白刃漂欲秋 | \_隆熙四年秋 융희4년 가을 |
“융희4년 가을/ 지팡이와 칼 잡고 춘추 읽는데/ | \_杖釼讀春秋 지팡이와 칼 잡고 춘추 읽는데\\ |
화이(華夷)와 인수(人獸) 세상에는/ 칼날이 떠도는 가을이 오네.” 춘추(春秋), 화이 인수(華夷 人獸): 춘추는 공자가 지은 노(魯)나라 역사책인데 역사서의 표준으로 인식되어 옳고 그름의 바른 모범으로 삼는다. 화이는 문명의 중국과 야만의 주변국들을 말하고, 인수는 사람과 짐승을 말하니 역시 문명의 인간세계와 모모한 짐승의 세계를 대조하는 표현이니 일본을 야만으로 중국과 우리를 문명인으로 은유하는 것 같다. | \_華夷人獸界 화이(華夷)와 인수(人獸) 세상에는\\ |
| \_白刃漂欲秋 칼날이 떠도는 가을이 오네.((춘추(春秋), 화이 인수(華夷 人獸): 춘추는 공자가 지은 노(魯)나라 역사책인데 역사서의 표준으로 인식되어 옳고 그름의 바른 모범으로 삼는다. 화이는 문명의 중국과 야만의 주변국들을 말하고, 인수는 사람과 짐승을 말하니 역시 문명의 인간세계와 모모한 짐승의 세계를 대조하는 표현이니 일본을 야만으로 중국과 우리를 문명인으로 은유하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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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절구(絶句) 한 수를 읊었다, | 또 절구(絶句) 한 수를 읊었다. \\ |
磨爾一片心 誓我百年心 義利交錯地 借爾快剖心 | \_磨爾一片心 이 일편단심 갈아서\\ |
“이 일편단심 갈아서/ 내 마음 백년을 맹서커니/ 의리와 이익 뒤섞인 데는/ 그 마음의 칼을 빌려 심장을 가르리.” | \_誓我百年心 내 마음 백년을 맹서커니\\ |
그로서 칼은 은밀히 상자에 넣었다. | \_義利交錯地 의리와 이익 뒤섞인 데는\\ |
| \_借爾快剖心 그 마음의 칼을 빌려 심장을 가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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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에 의당 선생의 자결 소식 의당 박세화의 순도(殉道)를 말한다. 순도=단식을 통한 순절(殉節) | 그로서 칼은 은밀히 상자에 넣었다.\\ |
을 듣고는 위패(位牌)를 차리고 통곡을 하고는 달려가 조문하고 상복을 입었다. 기미 1919년 고종 임금이 승하했을 때는 노세기(虜勢岐)에서 노세기(虜勢岐): 그 지역의 지명(地名) 같다. | |
삼가 흰옷 입는 의논을 하니 공이 조선의 임금의 상례의 예전에 근거하여 백립(白笠)의 백립(白笠): 흰 베로 싸개 한 흰 갓이란 말로 국상(國喪)에 백성이, 또는 대상(大祥) 지낸 뒤 담제(禫祭)까지에 상제들이 패랭이에 흰 헝겊이나 백지를 둘러서 사용하는 갓이다. | |
3년 예제(禮制)로서 하고 동지들을 이끌어 곡하는 반열(班列)을 실행하였다. 임금의 인산(因山) 인산(因山): 인산위릉(因山爲陵)이란 말로 산에 능(陵)을 만든다는 뜻이라 임금이나 태상왕(太上王, 왕비, 태자 등의 장례를 높인 표현이다. | |
전에는 크고 작은 제사의 예를 폐하고 설날 차례도 정지하니 이웃 마을이 그렇게 따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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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甲子) 1924년 1월에 화재로 집에 간직한 집물(什物)이 다 재가 되었다. 공이 탄식하였다, “집의 재산 손실은 진실로 근심하지 않지만 대를 이어 간직해온 서적을 내 온전히 보전하지 못한 것이 심히 개탄스럽도다.” 공은 평소에 저작(著作)을 즐겨하지 않았는데 대개 있던 원고도 없어져서 아우 영근이 그 화재에서 남은 것들을 수집하고 그 후의 유적을 갖추도록 청하자 공은 만류하였다, “배워서 실행함이 귀할 뿐인데, 글을 무엇 하겠는가? 다만 가훈(家訓) 9편은 자손의 마음에 새기도록 폐(廢)하지 말게 하라.” | \_얼마 후에 의당 선생의 자결 소식((의당 박세화의 순도(殉道)를 말한다. 순도=단식을 통한 순절(殉節) ))을 듣고는 위패(位牌)를 차리고 통곡을 하고는 달려가 조문하고 상복을 입었다. 기미 1919년 고종 임금이 승하했을 때는 노세기(虜勢岐)에서((노세기(虜勢岐): 그 지역의 지명(地名) 같다.)) |
| 삼가 흰옷 입는 의논을 하니 공이 조선의 임금의 상례의 예전에 근거하여 백립(白笠)((백립(白笠): 흰 베로 싸개 한 흰 갓이란 말로 국상(國喪)에 백성이, 또는 대상(大祥) 지낸 뒤 담제(禫祭)까지에 상제들이 패랭이에 흰 헝겊이나 백지를 둘러서 사용하는 갓이다.))의 |
| 3년 예제(禮制)로서 하고 동지들을 이끌어 곡하는 반열(班列)을 실행하였다. 임금의 인산(因山) ((인산(因山): 인산위릉(因山爲陵)이란 말로 산에 능(陵)을 만든다는 뜻이라 임금이나 태상왕(太上王, 왕비, 태자 등의 장례를 높인 표현이다.)) |
| 전에는 크고 작은 제사의 예를 폐하고 설날 차례도 정지하니 이웃 마을이 그렇게 따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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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갑작스런 병환으로 입을 다물고 정신이 어지러워 한마디도 남길 수가 없었으니 그렇게 이틀이 지나 편안히 눈을 감으시니, 갑자 1924년 2월 15일 술시(戌時)로 향년 42년이었다. 달을 넘겨 오두골[烏頭谷] 곤좌(坤坐)에 장사지내니 원근 각지의 선비들이 안타까이 슬퍼하였다. 배위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선비[士人] 석주(錫周)의 따님이니, 두 아드님을 두어서 장남 병룡(秉龍)(27世)과 차남 병도(秉道)이다. | \_갑자(甲子) 1924년 1월에 화재로 집에 간직한 집물(什物)이 다 재가 되었다. 공이 탄식하였다, “집의 재산 손실은 진실로 근심하지 않지만 대를 이어 간직해온 서적을 내 온전히 보전하지 못한 것이 심히 개탄스럽도다.” 공은 평소에 저작(著作)을 즐겨하지 않았는데 대개 있던 원고도 없어져서 아우 영근이 그 화재에서 남은 것들을 수집하고 그 후의 유적을 갖추도록 청하자 공은 만류하였다, “배워서 실행함이 귀할 뿐인데, 글을 무엇 하겠는가? 다만 가훈(家訓) 9편은 자손의 마음에 새기도록 폐(廢)하지 말게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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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공과 같은 이는 진실 온화하고 근실한 자태에 연원도 깊은 정도(正道)의 학문을 더하였으며 효도와 우애가 돈독함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품으로 터럭만큼이라도 마음대로 하지 아니하였도다. | \_공은 갑작스런 병환으로 입을 다물고 정신이 어지러워 한마디도 남길 수가 없었으니 그렇게 이틀이 지나 편안히 눈을 감으시니, 갑자 1924년 2월 15일 술시(戌時)로 향년 42년이었다. 달을 넘겨 오두골[烏頭谷] 곤좌(坤坐)에 장사지내니 원근 각지의 선비들이 안타까이 슬퍼하였다. 배위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선비[士人] 석주(錫周)의 따님이니, 두 아드님을 두어서 장남 병룡(秉龍)(27世)과 차남 병도(秉道)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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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을 반성하고 살핀즉 고요히 본심을 잃지 않고 착한 성품을 길렀으니, 생각하는 듯 행동을 엄연히 성찰하여 자라고 펴져서 뛰어났으며, 두려워 조심함이 꾸준하였다. 비록 잠시 동안 조차전패(造次顚沛): 조차(造次)는 급하고 당황스럽다는 황망(慌忙)함의 뜻이고 전패(顚沛)는 좌절하고 넘어지면서 곤궁함에 빠진다는 말을 합친 표현이니, 잠시 동안이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 \\_아아 공과 같은 이는 진실 온화하고 근실한 자태에 연원도 깊은 정도(正道)의 학문을 더하였으며 효도와 우애가 돈독함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품으로 터럭만큼이라도 마음대로 하지 아니하였도다.\\ |
옛 방도를 따를지라도 동준도철(動遵塗轍): 도철은 과거에 지나간 옛날의 길이고 동준은 따라서 행동함을 말하니, 옛 방식을 따라감을 뜻한다. | |
옛 사람들이 스스로 기약했던 한 방식에 따라 숭상하고 배척하며 받들고 물리치는 엄격함을 스승에게 배운 바를 확실하게 범하지 아니하였으니, 그러므로 도(道)가 망하는 아픔에서 칼을 어루만지던 시구(詩句)가 무검지구(撫劒之句): 이는 앞의 언급한 경술국치(庚戌國恥) 때에 공이 읋었던 ‘무검자가(撫劒自歌)’의 시를 말한다. | |
나온 것이다. 의연히 목숨을 버릴 뱃심의 변하지 않는 정신이 있었으니, 읽는 이로 하여금 낙담하지 말고 기가 죽지 않도록 깨우침이 아니겠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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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석하도다, 하늘이 수명을 더 주어 멀리 나아가게 정매(征邁): 멀리 나아감. | \_본성을 반성하고 살핀즉 고요히 본심을 잃지 않고 착한 성품을 길렀으니, 생각하는 듯 행동을 엄연히 성찰하여 자라고 펴져서 뛰어났으며, 두려워 조심함이 꾸준하였다. 비록 잠시 동안((조차전패(造次顚沛): 조차(造次)는 급하고 당황스럽다는 황망(慌忙)함의 뜻이고 전패(顚沛)는 좌절하고 넘어지면서 곤궁함에 빠진다는 말을 합친 표현이니, 잠시 동안이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
했다면 유학자(儒學者)가 될 기대를 한 몸에 받도록 점쳐졌는데 그 재주 이뤘다 소리 못 듣고 하늘이 빼앗아 갔으니 어찌된 일인고? 이 어찌 맹자가 말한 소위 본성(本性)에는 명(命)이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 젊어서 불산(茀山)의 의당(毅堂) 문하에서 형제가 낭랑히 함께 공부할 때 갱슬지석(鏗瑟之席): 낭낭히 거문고를 연주하는 자리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글을 읽고 뛰어나게 공부를 하는 자리를 은유한다. | 옛 방도를 따를지라도((동준도철(動遵塗轍): 도철은 과거에 지나간 옛날의 길이고 동준은 따라서 행동함을 말하니, 옛 방식을 따라감을 뜻한다.)) |
둘이 난형난제(難兄難弟)였으니 이난(二難): 형제(兄弟)를 뜻하니, 세설신어(世說新語 德行篇)에 전하기를, 후한(後漢) 때 진기(陳紀 字元方)와 아우 진심(陳諶 字季方)이 훌륭하여서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해 난형난제(難兄難弟)의 고사가 나왔는데, 그들의 아버지 진식(陳寔)이 일찍이 두 형제를 평론하기를, “원방은 형이 되기 어렵고, 계방은 아우 되기가 어렵다(元方難為兄, 季方難為弟)”고 했다는 데서 이난(二難)이라는 것이다. | 옛 사람들이 스스로 기약했던 한 방식에 따라 숭상하고 배척하며 받들고 물리치는 엄격함을 스승에게 배운 바를 확실하게 범하지 아니하였으니, 그러므로 도(道)가 망하는 아픔에서 칼을 어루만지던 시구(詩句)((무검지구(撫劒之句): 이는 앞의 언급한 경술국치(庚戌國恥) 때에 공이 읋었던 ‘무검자가(撫劒自歌)’의 시를 말한다.))가 |
그 행동과 말씨에 내가 감복한 것이 깊었고 또 오래였도다. | 나온 것이다. 의연히 목숨을 버릴 뱃심의 변하지 않는 정신이 있었으니, 읽는 이로 하여금 낙담하지 말고 기가 죽지 않도록 깨우침이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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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공의 아우 영근(永根)이 내게 와서 가장(家狀) 한통을 소매에서 꺼내주면서 말했다, “이는 돌아가신 형님의 짧은 삶의 대략이온데, 동문(同門)으로 덕 있는 선비들이 거의 세상 떠나시고 제 형님을 깊이 아는 분이 군(君)만한 분이 없으니 어찌 그 자취를 모아 말씀을 갖추어 들어내 주지 않겠소?” 옛 친구를 생각하면 끝내 내가 사양할 수 없어서 위와 같이 채워서 총괄하고 간절한 그리움으로 이렇게 이르노라. | \_애석하도다, 하늘이 수명을 더 주어 멀리 나아가게((정매(征邁): 멀리 나아감.)) |
행장 1926년 음력 3월 순흥 안재극\\ | 했다면 유학자(儒學者)가 될 기대를 한 몸에 받도록 점쳐졌는데 그 재주 이뤘다 소리 못 듣고 하늘이 빼앗아 갔으니 어찌된 일인고? 이 어찌 맹자가 말한 소위 본성(本性)에는 명(命)이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 젊어서 불산(茀山)의 의당(毅堂) 문하에서 형제가 낭랑히 함께 공부할 때((갱슬지석(鏗瑟之席): 낭낭히 거문고를 연주하는 자리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글을 읽고 뛰어나게 공부를 하는 자리를 은유한다.)) |
| 둘이 난형난제(難兄難弟)였으니((이난(二難): 형제(兄弟)를 뜻하니, 세설신어(世說新語 德行篇)에 전하기를, 후한(後漢) 때 진기(陳紀 字元方)와 아우 진심(陳諶 字季方)이 훌륭하여서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해 난형난제(難兄難弟)의 고사가 나왔는데, 그들의 아버지 진식(陳寔)이 일찍이 두 형제를 평론하기를, “원방은 형이 되기 어렵고, 계방은 아우 되기가 어렵다(元方難爲兄, 季方難爲弟)”고 했다는 데서 이난(二難)이라는 것이다.)) |
| 그 행동과 말씨에 내가 감복한 것이 깊었고 또 오래였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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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o> | \_하루는 공의 아우 영근(永根)이 내게 와서 가장(家狀) 한통을 소매에서 꺼내주면서 말했다, “이는 돌아가신 형님의 짧은 삶의 대략이온데, 동문(同門)으로 덕 있는 선비들이 거의 세상 떠나시고 제 형님을 깊이 아는 분이 군(君)만한 분이 없으니 어찌 그 자취를 모아 말씀을 갖추어 들어내 주지 않겠소?” 옛 친구를 생각하면 끝내 내가 사양할 수 없어서 위와 같이 채워서 총괄하고 간절한 그리움으로 이렇게 이르노라.\\ |
| \_\_1926년 음력 3월 순흥 안재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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