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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9-005 [2025/06/03 16:32] – ssio2 | c9-005 [2026/01/05 14:47] (현재) – ssio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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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도적을 만나 의복을 빼앗으려 하자 공은 옷을 벗어주며, 말했다. ‘이 동생은 나이 어리고 너무 추우니 옷을 벗으면 쓰러져 죽음을 면치 못하겠으니 압박하지 말기를 바라오.’ 말씀이 심히 간절하여 도적도 감동하고 놓아주었다.\\ | 우연히 도적을 만나 의복을 빼앗으려 하자 공은 옷을 벗어주며, 말했다. ‘이 동생은 나이 어리고 너무 추우니 옷을 벗으면 쓰러져 죽음을 면치 못하겠으니 압박하지 말기를 바라오.’ 말씀이 심히 간절하여 도적도 감동하고 놓아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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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경자 1900년 가을에 의당 박(毅堂 朴) 선생((의당 박세화(毅堂 朴世和) 선생을 말한다.))의 가르침을 듣고서 청풍(淸風)의 불산(茀山)으로 동생 영근과 함께 찾아뵙고 가르침을 청하니 선생이 그 기이한 기량(器量)을 한 번 보고는 허락하였다. 을사 1905년에 문묘(文廟) 훼손에 박 선생이 국권의 회복을 위해 의병(義兵)을 일으키자 공이 죽도록 싸움터로 나아갔다가 함께 돌아왔고((편집자주: 을사년(乙巳, 1905). 스승인 의당의 거의(擧義)에 참여하려고 문경으로 갔으나, 의당의 병으로 귀가한 것으로 보인다. 근거: 의당 박세화 학술총서 1 “의당 박세화의 학문세계”, “의당 박세화의 삶과 죽음” 98p 구완희, “박세화는 황해도 쪽으로 와 달라는 유인석의 청을 따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듬해 1905년 가을, 일제가 주군(州郡)을 통폐합하고 ‘성묘(聖廟)’를 헐어버리고 ‘합방(合邦)’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나라와 도(道)가 함께 망하는’ 상황으로 인식하였다. 이에 의병을 준비하려고 문경 산중으로 들어갔으나 갑자기 병으로 눕는 바람에 중도에 그치고 말았다. 게다가 기밀이 누설되어 아들인 형교(衡敎), 손자인 면기(冕基), 문인인 윤응선.이종하(李鍾夏).김유성(金逌成) 등이 모두 문경까지 잡혀가게 되었다. 이때 신현국.이수영(李守榮) 등이 병참까지 찾아가서 소란을 피우며 항의하다가 대구까지 끌려가 석 달이나 구금되는 일이 생겼다. 박세화 일행은 서울ᄁᆞ지 잡혀갔다가 이듬해 4월에야 풀려 날 수 있었다.”)), 공은 선생 문집 의당집(毅堂集)(( 속에 선생의 말씀을 기록하였다. 이 행장(行狀)을 쓰신 사암 안재극이 직접 이강년의병진(李康秊義兵陣) 좌종사로 활약하고, 또 의당 박세화 문인이므로, 이 기록은 확실하다고 판단된다. 의당집(毅堂集)에 묵암 황영석의 질문과 의당의 답변이 수록되어 있다.))\\ | \_경자 1900년 가을에 의당 박(毅堂 朴) 선생((의당 박세화(毅堂 朴世和) 선생을 말한다.))의 가르침을 듣고서 청풍(淸風)의 불산(茀山)으로 동생 영근과 함께 찾아뵙고 가르침을 청하니 선생이 그 기이한 기량(器量)을 한 번 보고는 허락하였다. 을사 1905년에 문묘(文廟) 훼손에 박 선생이 국권의 회복을 위해 의병(義兵)을 일으키자 공이 죽도록 싸움터로 나아갔다가 함께 돌아왔고((편집자주: 을사년(乙巳, 1905). 스승인 의당의 거의(擧義)에 참여하려고 문경으로 갔으나, 의당의 병으로 귀가한 것으로 보인다. 근거: 의당 박세화 학술총서 1 “의당 박세화의 학문세계”, “의당 박세화의 삶과 죽음” 98p 구완희, “박세화는 황해도 쪽으로 와 달라는 유인석의 청을 따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듬해 1905년 가을, 일제가 주군(州郡)을 통폐합하고 ‘성묘(聖廟)’를 헐어버리고 ‘합방(合邦)’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나라와 도(道)가 함께 망하는’ 상황으로 인식하였다. 이에 의병을 준비하려고 문경 산중으로 들어갔으나 갑자기 병으로 눕는 바람에 중도에 그치고 말았다. 게다가 기밀이 누설되어 아들인 형교(衡敎), 손자인 면기(冕基), 문인인 윤응선.이종하(李鍾夏).김유성(金逌成) 등이 모두 문경까지 잡혀가게 되었다. 이때 신현국.이수영(李守榮) 등이 병참까지 찾아가서 소란을 피우며 항의하다가 대구까지 끌려가 석 달이나 구금되는 일이 생겼다. 박세화 일행은 서울까지 잡혀갔다가 이듬해 4월에야 풀려 날 수 있었다.”)), 공은 선생 문집 의당집(毅堂集) 속에 선생의 말씀을 기록하였다.((이 행장(行狀)을 쓰신 사암 안재극이 직접 이강년의병진(李康秊義兵陣) 좌종사로 활약하고, 또 의당 박세화 문인이므로, 이 기록은 확실하다고 판단된다. 의당집(毅堂集)에 묵암 황영석의 질문과 의당의 답변이 수록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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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후에 남은(南隱)의 거처에 사시는 지암(持菴) 김 선생((지암 김재경(持菴 金在敬) ))을 찾아뵈니 선생이 공에게 말했다, ‘사람의 품성은 본래 선하지 않음도 없고 악이 기질의 병폐도 없는 것이다.’ 공이 자리를 피하면서 대답하였다, ‘풍조의 병은 기질의 해악보다 더욱 심합니다.’ 선생이 이르기를, ‘그대가 스스로 터득한 것인가?’물으니 대답하였다, ‘일찍이 유성재(柳省齋)((유성재(柳省齋): 유중교(柳重敎/ 1832-1893)의 호가 성재인데, 그는 고흥유씨로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었으며 사헌부장령 등에 제수를 받았으나 취임하지 않았고, 성재문집(省齋文集) 60권 등 저서를 여럿 남겼으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의 | \_후에 남은(南隱)의 거처에 사시는 지암(持菴) 김 선생((지암 김재경(持菴 金在敬) ))을 찾아뵈니 선생이 공에게 말했다, ‘사람의 품성은 본래 선하지 않음도 없고 악이 기질의 병폐도 없는 것이다.’ 공이 자리를 피하면서 대답하였다, ‘풍조의 병은 기질의 해악보다 더욱 심합니다.’ 선생이 이르기를, ‘그대가 스스로 터득한 것인가?’물으니 대답하였다, ‘일찍이 유성재(柳省齋)((유성재(柳省齋): 유중교(柳重敎/ 1832-1893)의 호가 성재인데, 그는 고흥유씨로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었으며 사헌부장령 등에 제수를 받았으나 취임하지 않았고, 성재문집(省齋文集) 60권 등 저서를 여럿 남겼으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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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경술 1910년 가을 나라가 망한 소식을 듣고 서쪽을 향하여 애통하게 부르짖고 검을 만지면서 스스로 읊었다.\\ | \_경술 1910년 가을 나라가 망한 소식을 듣고 서쪽을 향하여 애통하게 부르짖고 검을 만지면서 스스로 읊었다.\\ |
| \_隆熙四年秋 융희4년 가을 | \_隆熙四年秋 융희4년 가을\\ |
| \_杖釼讀春秋 지팡이와 칼 잡고 춘추 읽는데\\ | \_杖釼讀春秋 지팡이와 칼 잡고 춘추 읽는데\\ |
| \_華夷人獸界 화이(華夷)와 인수(人獸) 세상에는\\ | \_華夷人獸界 화이(華夷)와 인수(人獸) 세상에는\\ |
| \_공은 갑작스런 병환으로 입을 다물고 정신이 어지러워 한마디도 남길 수가 없었으니 그렇게 이틀이 지나 편안히 눈을 감으시니, 갑자 1924년 2월 15일 술시(戌時)로 향년 42년이었다. 달을 넘겨 오두골[烏頭谷] 곤좌(坤坐)에 장사지내니 원근 각지의 선비들이 안타까이 슬퍼하였다. 배위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선비[士人] 석주(錫周)의 따님이니, 두 아드님을 두어서 장남 병룡(秉龍)(27世)과 차남 병도(秉道)이다.\\ | \_공은 갑작스런 병환으로 입을 다물고 정신이 어지러워 한마디도 남길 수가 없었으니 그렇게 이틀이 지나 편안히 눈을 감으시니, 갑자 1924년 2월 15일 술시(戌時)로 향년 42년이었다. 달을 넘겨 오두골[烏頭谷] 곤좌(坤坐)에 장사지내니 원근 각지의 선비들이 안타까이 슬퍼하였다. 배위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선비[士人] 석주(錫周)의 따님이니, 두 아드님을 두어서 장남 병룡(秉龍)(27世)과 차남 병도(秉道)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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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아아 공과 같은 이는 진실 온화하고 근실한 자태에 연원도 깊은 정도(正道)의 학문을 더하였으며 효도와 우애가 돈독함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품으로 터럭만큼이라도 마음대로 하지 아니하였도다.\\ | \_아아 공과 같은 이는 진실 온화하고 근실한 자태에 연원도 깊은 정도(正道)의 학문을 더하였으며 효도와 우애가 돈독함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품으로 터럭만큼이라도 마음대로 하지 아니하였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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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본성을 반성하고 살핀즉 고요히 본심을 잃지 않고 착한 성품을 길렀으니, 생각하는 듯 행동을 엄연히 성찰하여 자라고 펴져서 뛰어났으며, 두려워 조심함이 꾸준하였다. 비록 잠시 동안((조차전패(造次顚沛): 조차(造次)는 급하고 당황스럽다는 황망(慌忙)함의 뜻이고 전패(顚沛)는 좌절하고 넘어지면서 곤궁함에 빠진다는 말을 합친 표현이니, 잠시 동안이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 \_본성을 반성하고 살핀즉 고요히 본심을 잃지 않고 착한 성품을 길렀으니, 생각하는 듯 행동을 엄연히 성찰하여 자라고 펴져서 뛰어났으며, 두려워 조심함이 꾸준하였다. 비록 잠시 동안((조차전패(造次顚沛): 조차(造次)는 급하고 당황스럽다는 황망(慌忙)함의 뜻이고 전패(顚沛)는 좌절하고 넘어지면서 곤궁함에 빠진다는 말을 합친 표현이니, 잠시 동안이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