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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008

경진보서(庚辰譜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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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庚辰譜序
凡人本乎祖猶木之根水之源也木自根而達乎枝水由源而沿乎派矣况人豈有 本而不究其苗也有後而不明其先乎是以士之有譜所以明先系之何自而某爲 某祖也譜之有序所以究後承之何由而誰爲誰孫也吾姓之貫箕而著國與我東 之名家世族其德業風節非無駢美匝輝而累經兵燹譜乘之莫傳固其宜也以錦 海兩先生之博聞草輯而未詳傳疑繼有南塘公所序之譜各藏未刊者久矣粵庚 寅錦翁之胄孫山梧伯仲公與吾慕古窩曾大父剏設譜所于豐之錦陽互證胥校 辦訛質疑壽其傳而成其完鋟出二卷則其述先貽後之功果何如而其後辛卯壽 春承旨令宗更修譜于洛之華寺輪通諸邑活印六冊而以長派之不應爲欠矣去 庚戌秋山南之嗣孫憲周氏先告各邑與遠邇諸宗合謀並力綴其遺而正其謬古 之漢學士今據信蹟而改以唐朝則其眞雁/眞之顯晦亦有時而然者然以力綿而僅 成三卷猶未免率漏之歎各思有八路會同之意矣迺者豐宗範鱗宇鎭甫主幹其 事每恨前譜之不廣定有司輪告于各道遠邑且遣貫邑愈往勤督積有年所而間 値歲歉自至止且止吾延拕矣今夏始與族從濤及瀞偕到則各處僉宗
長湍禮浩慶州
應極平海在淵
江陵炳淸
安弼欽

已齊會而設役矣共閱幾朔叅互勘檢遂成幾卷印得若干帙昔之未詳
今得益詳後之傳疑先破其疑派系之多糢昭穆之易失瞭然於開卷寓目之間有 若祖考儼臨雲仍傍列推之一本如枝之連根派之溯源雖世曠地遐之宗悅然合 堂同席獲識講敦孝油然生風以之厚不讓蘇程之譜則庶不負今日收族作譜之 意而告訖之夕譜廳之會宗以吾海月先祖卷弁有序且叅掌幹之任不可無一言 遂不敢辭而略敍顚末庸附于左
  崇禎後五庚辰端陽節後裔孫冕九謹序


 경진보서
 무릇 사람이 조상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 나무의 뿌리와 물의 근원과 같은 것이다. 나무는 뿌리로 부터 가지에 달하며 물은 근원으로 부터 지류에 이르나니 하물며 사람이 어찌 근본이 있는데 그 싹을 생각지 않겠으며 후세가 있는데 그 선세를 밝히지 않겠는가? 이것이 사족의 족보를 두게 되는 바이며 또 족보는 선계가 어디로 부터 왔으며 누가 누구의 조상이 됨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족보의 서문이 있는 바는 후승이 어디로 말미암아 누가 누구의 자손 됨을 알게 하는 것이다.
 우리 성의 본관이 평해 이후 이름 있는 세족들과 함께 덕업 풍절이 아름다움을 가지런히 두루 빛남이 없지 않았으나 여러번 병란을 겪어 보첩을 소실하고 전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대동의 환난에 있음인즉 함이라 우리 황(黃)의 불행한 일이라. 이로 말미암아 금계(錦溪)·해월(海月) 양선생의 박식다문으로 이루어진 초집마저 자서하지 못하여 의문으로 전하며 이어 남당공의 초보도 발간치 못함이 오래더니 지나간 경인(庚寅)년에 금계 주손 산오(山梧) 백중공이 나의 증대부 모고와(慕古窩)와 함께 보소를 풍기 금양에 설치하고 서로 증거를 들어 교정하되, 그릇됨은 변증하고 의심남은 질문하며 오래도록 이 족보책이 전해지기를 기원하면서 완공을 이루어 두권 책자를 출판한 것인 즉 그 선대의 뜻을 받어 이었고 후세에 물려주는 공이 과연 무엇으로 비할고.
 그후 신묘(辛卯)에 춘천 종인 승지 도(燾)씨가 화장사에다 보소를 설치하고 수보하여 6권 책자를 인출하였으나 장파 풍기의 불응이 흠이었다. 그리고 지난 경술년 가을 산남의 사손 헌주(憲周)씨께서 각 고을에 통고하사 멀고 가까움을 무릎쓰고 여러 일가가 모여 합의로 결정, 힘차게 역어 놓은 자취는 참으로 잘하심이라, 그 옳치 못하게 내려온 전날의 한(漢) 학사를 사적을 근거로 고침으로써 당(唐)나라 학사시니라. 그 옳고 그른 것이란, 나타남은 더디더라도 역시 때는 있나니라. 그것은 그렇다 함이나 면력이 모자라 겨우 세권 책자로 완성이란 훗날 경솔히 누락시킨 한탄을 면치 못할 것임이오, 그것도 팔도의 종인들이 회동 협력한 결과니라.
 이번 경진(庚辰) 수보는 풍기 종인 범린(範麟)·우진(宇鎭) 두사람의 주간에 매양 지난번 보첩이 넓게 수합치 못하였음을 한탄하면서 유사를 정하여 각도 각읍에 두루 통고하고 또 평해에는 사람을 보내어 부지런히 독려하였으나 수년을 요하였다. 이것은 그간 해마다 흉년을 거듭 지연됨에 따른 바 이제 금년 여름 처음으로 족종 도(濤)와 정(瀞)으로 더불어 함께 각처의 첨종 - 장단의 예호(禮浩), 경주의 응극(應極), 평해의 재연(在淵), 강릉의 병(炳), 청안의 필흠(弼欽) 등 - 각읍 제씨가 모여 설역을 함이라. 함께 수개월을 더 겪은 뒤 감검하여 드디어 몇권을 완성하고 약간질을 인쇄함이니 옛날 미상함을 이제 더욱 자상함을 얻었고, 후세에 의심으로 전하던 바 깨우쳐 풀었노라. 그리고 파계에 모호함이 많은 것과 소목 항렬에 분간이 어려웠던 점을 밝혔음으로 보책을 펴서 살펴볼 때 조상이 엄연히 오신 것 같으며 자손이 곁에 벌려 서 있는 것 같음을 느끼리라.
 다시 한번 추상할 때 한줄기의 가지가 뿌리에 연한 것과 같으니 비록 세대가 멀고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사는 종친들이라도 한 집 한 자리에서 돈목과 효제를 강론하며 유연한 풍속을 진작시키는 것 같아서 돈후한 정이 생기는 것 같도다. 이러하니 어찌 소(蘇)씨와 정(程)씨의 족보에 사양하겠는가? 무릇 제종은 오늘날 일가를 거두고 보첩을 만드는 뜻을 저버리지 말고 효제 충신의 도를 힘쓸지로다.
 보사를 마침에 보청에 모인 종친들이 우리 해월 선조 서문이 권두에 있고 또한 장간(掌幹)의 소임도 맡음이니 한마디 없어서는 되겠는가 함으로 거침을 무릅쓰고 두어줄 전말을 기록 책 말미에 붙이노라.
  숭정후 5 경진(庚辰)(1880) 단양절 후예손 면구(冕九) 근서

c-008.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6 17:49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