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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군묘표비문(平海君廟表碑文)
평해군 묘표 비문
조선 태조(太祖) 조에 벼슬이 추충협찬 순충분의 좌명 개국공신으로
숭록대부 찬성사 봉 평해군 증 우의정 시호 양무로서 성은 황(黃)이오
휘는 희석(希碩)인데 개국의 원훈임에 특별한 명으로 정상하되 불천지묘위라.
본시는 서울의 이현에 있아 옵더니 임진계사의 왜란으로 소실되니,
6세손 창(琩)이 장질 윤신(潤身)과 더불어 나라의 명을 받들어
청안의 원평으로 이안, 유좌(酉坐)의 자리에 뫼셔 왔더니,
영조(英祖) 5년(1729) 기유(己酉) 봄에 예손 종(鍾)과 더불어 제종이 중수하였고,
또 그후 단기 4270년(1937) 정축(丁丑) 봄에 예손
계흠(啓欽)과 성원(聖源)으로 더불어 제종이 중수하였고,
또 그후 단기 4285년(1952) 임진(壬辰) 봄에 예손 의모(義模)와 더불어
청안의 제종이 문간과 원장을 수리하였으나, 선조(宣祖) 이후 400여년의
오랜동안 3~4차례를 중수 보건이 있었으나, 하오나 정전이 불과 3간으로
규모도 협착할 뿐더러 기둥이 기울고 재목이 퇴락하니 자손된 이는 누구든
어찌 송구하고 죄스럽지 아니하리오.
임자(壬子)년(1972)에 예손 인모(麟模)와 더불어 주손 원구(元九)며 제종이
협찬일대 중건이 본우하니 비로소 묘당의 의도를 처음 갖추었다 하겠음이라.
이러함은 우리 동방의 국조 이래로 어진 현신과 공훈의 충신께 포장하는
도의(道義)의 정상이니라. 이제 자손이 된이는 유한이 없으리니,
조상을 받듬에 치성을 다할지어다.
영원한 세세를 끊임이 없으리.
후예손 현모(賢模) 근찬
단기 4311년(1978) 무오(戊午) 월 일 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