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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보서(壬寅譜序)
壬寅譜序
내가 豊基에 寓居하여 錦溪 先生의 嗣孫 黃斯文 宇鎭氏와 함께
이웃하여 살게된 것은 通家로 因緣하고 誼가 더욱 敦篤한 사이다.
今年 여름에 黃氏가 譜所를 錦陽精舍에 設置하고 譜事를 推進 中인데
어느날 여러 親友들과 함께 한가로운 틈을 타서
訪問한 즉 木版을 새기는 技術工들이 가지런히 앉아 刻版에 모든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내가 마침 堂上에 앉아 亭子 아래 소나무 한그루를 보니
둘래가 하도 커서 몇 아름이 되는지 알 수 없으며 또 줄기가 곧아서
몇 길이 되는지 헤아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奇怪한 나무가지의 모양은
蟲龍과 같고 푸르고 빽빽한 솔잎은 연기와 구름 같으니 이는
그것이 흙이 肥厚하여 뿌리가 깊이 내려졌으므로 잎이 저와 같이
繁盛해진 탓일 것이다. 사람의 氏族도 또한 이와
같아서 같은 血統을 通하여 마음으로 모임을 느끼는 것이다.
黃氏의 譜事가 거의 마치게 될 무렵에 宇鎭氏와 그 三從叔 鶴周와
그 族人 友英과 함께 나에게 序文을 付託함으로 友英인 즉
海月 先生의 後裔로 나의 집과는 代代로 契好의 重함이 있어 이를
생각할지라도 敢히 사양치 못할 일이나 元來 말솜씨가 能치 못할 뿐 아니라
黃氏의 累次 譜事로 많은 序文들이 있은 즉 내가 다시 다른 말로
表現할 것이 없으며 결국 전에 하던 말을 되풀이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 하고 문득 생각하기를 지난날에 亭松의 느낌이 있었던 것을
비유로 取해서 告하노니 盛하고 아름답도다. 黃氏의 겨례여 學士公
諱 洛이라는 어른께서 中國으로부터 東海岸 平海 月松에 오셨으니
이 亭子의 소나무가 처음 뿌리를 月松에서 부쳤는가?
그 後에 혹 나타나는 世代가 바르지 못하여 兄亡而弟及은 비록
옛날 바꾸지 못하는 法典이지만 이것이 오히려 人家를 위하여
不幸이로다. 이것은 어린 소나무가 쑥대와 명아주에 시달려 곤경을
받는데 비유함인저
金吾公의 諱 溫仁은 그로부터 모든 派의 鼻祖가 되었으니 이는
소나무의 빼어난 줄기가 처음으로 크게된 것이다. 두어 世代를
지나 檢校 諱 璡과 評理 諱 瑞와 大匡 諱 墉이라는 三兄弟 분이
있어서 처음으로 가지가 나누어지고 갈래가 갈라졌으니
이는 소나무의 가지와 줄기가 漸漸 무성하여 진 것이며 司藝 諱 瑾은
곧은 절개로써 이름이 높았고 判書 諱 有定은 맑은 清德으로써
世上에 들어났고 正言 諱 玎은 淸白으로써 史冊에 記錄되었고
府尹 諱 鉉과 錦溪 諱 俊良과 大海 諱 應清과 海月 諱 汝一
등의 모든 先生은 모두 道德文章으로 온 世上에 들어났으니 錦溪 先生은
곧 退溪門의 높은 弟子라 이는 소나무의 奇怪한 모양의 蟲龍과
같은 가지가 아니였던가? 牧使 諱 原老와 襄武公 諱 希碩과 監察 諱 季夏와
繕工正 諱 震孫과 持平 諱 允元과 正郞의 諱 允亨의 모든 君子는
科擧와 벼슬로서 여러 代로 들어났으며 그 뒤에도 벼슬한 이가 많으나
모두 다 들어 말할 수 없으니 이들은 곧 소나무의 푸르고 빽빽함이
연기와 구름 같은 것일까?
嗚呼라 祖先의 德과 어짐을 쌓은 것의 소나무의 흙이 살찌고 두꺼워
뿌리가 깊이 내리는데 비유할진데 子孫의 孝友敦睦함은 소나무의 북을 돋아
養分을 吸收하는 것에 비유하리로다.
程子가 말하기를 譜系를 닦는 것은 宗法을 세워 天下人心을 管攝한다
하였고 蘇氏가 말하기를 나의 族譜를 보는 사람은 孝悌之心이
油然히 生하나니 譜를 어찌 可히 하지 않고 말겠으리요? 라고 하였다.
祖先의 積德累仁을 좇으며 後承의 孝友敦睦을 힘쓴 즉 다음날에
繁衍昌大함이 어찌 亭松의 千百年을 지나도 그치지 아니하고
더욱 繁盛한 것과 같을 뿐이랴!! 처음 한 族譜와 두번째 한 族譜의
顛末은 모두 黃氏 譜牒에 있으므로 여기 다시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다만 비유를 取하여 黃氏를 위한 稱頌으로 하노니 이에 힘쓸 것을 바라노라.
歲在 壬寅 仲秋 上澣 眞城 李仲麟 謹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