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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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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검교공파보서(己亥檢校公派譜序)

 己亥檢校公派譜序
 우리 黃氏의 派譜는 지난 壬戌年에 宗家의 伯從兄 永來氏가 처음 닦은 族譜로서 이것은 한 집안 世系를 記錄한 冊이다.
 그後 三十六年이 지나서 戊戌年에 錦陽精舍에서 다시 重修하였는데 이때 通文을 發하니 遠近에 사는 宗親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一齊히 呼應하여 모두 한 곳에 모여 一心協力하고 있었다. 이때 지나던 한 客이 묻기를 그대들이 族譜의 意義를 아는가? 그리고 告하여 말하되 天下에 生民의 歷史가 오래니 家門이 없을 수 없고 家門이 있은 즉 族屬 이生하는 法이며 族屬이 生한 즉 士族之家에 반드시 族譜가 있는 法이니라. 이 族이라는 것은 흩어진 子孫들을 모아서 서로 사이가 疏遠해진 것을 親合하게 하는 것이요, 譜라는 것은 그 世系를 밝혀 記錄하고 잃어버리고 빠진 것은 補添한 것이니라.
 書傳에 이르되 能히 높은 德을 밝혀서 九族을 親近히 하라 하였으니 이는 堯임금 같은 이도 九族이 昭明한 然後에 民心이 順和하는 政治가 이루어짐을 말한 것이다. 또 程子 즉 明道 先生 같은 분도 譜系를 밝혀서 宗法을 세움으로서 天下人心을 管掌 包攝할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
 무릇 譜系가 昭明치 못한 즉 어느 祖上의 子孫인지 알지 못하고 더욱이 親盡 즉 五世 以上이 되지 않는 堂內에서라도 서로 알지 못하는 者 있다하니 이 어찌 사람을 가르치고 祖上을 尊崇하며 宗族을 收合하는 道理라 할 것이겠는가. 반드시 모아 들이고 詳細히 記錄하면 百世라도 한 系統이 되고 千里를 隔하여도 한 집안 같은 것이다.
 이로 因하여 忽忘하게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 어찌 그 意義가 重且大하지 않다하리오. 司馬遷이 自己 世系의 序文을 지은 것과 班固의 世紀敍述 等을 모두 제 집의 來歷을 記述한데 不過한 것이다.
 盧陵의 歐陽修와 眉山의 蘇氏 즉 蘇軾이가 처음 自己의 家譜를 記述하여 氏族의 根源과 分派의 昭穆序列이 있음을 밝히니 自然히 그 祖先의 世系가 밝아지고 世代의 錯誤 즉 堯舜禹湯 等의 世系의 疑心도 풀려졌던 것이다.
 지금 黃氏의 族譜 있은지 四百餘年에 重刊과 續刊한 것이 여러 차례였고 이것을 祖上에서 보면 다 같은 子孫이나 子孫의 代에 이르러 親한 者가 나뉘어 멀어지고 모였던 者가 흩어져 갈라지니 그 뜻이 어디 根據한 것인가. 그 詳細한 연유를 듣고자 願하노라 하거늘 내가 이르기를 그러하다 그러나 나는 答하지 않고 넘어가려 하였더니 不得已 말하노라.
 우리 黃氏의 東方에 나타나게된 年代는 오래다. 中國古 代 전頊帝王 때에 黃姓을 받은 以來로 이어 내려오기를 數千年인데 그동안 滿天下의 黃氏가 모두 黃帝軒轅씨를 始祖로 삼았으니 그 後 唐나라 學士公이 배를 타고 우리나라 東海岸 越松에 오셔서 사시게 된 後로 甲古 乙 古丙古 三兄弟를 두셨는데 이 세분이 나라에 功을 세워 各各 封爵을 받은 후 그 封爵에 따라 箕城 長水 昌原으로 貫鄕을 삼고 三派로 나누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世代가 멀고 荒朴하여져서 歷史를 考證할 文獻은 없다. 그리고 그 중에도 平海黃氏가 가장 멀고 오래되며 金吾公을 中祖로 삼고 數代를 지나 檢校 評理 大匡 三兄弟분이 나누어 三派가 되고 이름난 宰相과 높은 官員이 靑史에 빛나는 이가 많았다. 그러나 여러차례 兵亂과 火災를 치뤄서 文籍이 없어져서 同根 同祖이면서도 서로 보고 알지 못하여 他人과 같이 되었으므로 한탄하더니 우리 祖上 錦溪 先生이 넓게 여러 門中에 흩어진 家乘을 상고하여 비로소 草譜를 편집하고 이어서 海月 先生의 編修한 譜牒이 있은 뒤로 모든 分派가 한 根源에서 始作되고 여러 가지가 한 나무 줄기에서 나왔음을 알게 되었으니 宗統과 分派가 나타나고 昭穆이 밝혀졌다.
 지금 우리 平海黃氏가 全國 各邑에 散居하고 무려 그數가 數十萬에 達한다. 그러나 政局은 方今은 나라 안이 들끓고 南北은 完全 兩分되었으니 갈라진 者는 根本을 찾기 어려워 잃어 버리기 쉽고 또 分派가 오랜 者는 根源을 찾으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平海 淸安 兩派의 諸宗들은 譜事가 거창한 일이라 하여 各己 제 祖上만 숭상하고 제 派만 編修하니 大同譜를 할 수 없음을 가히 알 수 없으나, 이때에 서둘러 合譜하지 못하면 앞으로 各派 宗族을 收合하기 더욱 힘들 것 같고 또 後進들로 千年前 祖上이 누구인지 알지 못할 것을 두려워 族叔 正鎮 泰鎮으로 더불어 合議하고 곧 收單을 거두어 檢校公 以下부터 派系를 定하니 곧 一家의 譜牒이라 하겠다.
 이렇게 한 것은 分派나 만들려는 뜻이 決코 아니라 내 말을 믿지 못하거든 저 錦水 위에 一片浮雲을 보라. 無心히 떠다니며 合했다 흩어졌다하는 것이 마치 人事의 合散이 一定치 않음과 같음을 알 것이다. 내가 여기에 무슨 다른 뜻이 있으리요 하니 그 客이 肯定하고 물러갔다.
 宗人들이 헌이 無狀하나 譜事에 듣고 참여하라 하니 참람함을 헤아리지않고 忘加隱括(망가은괄) 즉 좁고 비뚤어진 것을 바로 잡는데 自己를 잊어버리고 그 世代의 錯誤된 것을 고치고 그 源派의 紊亂한 것을 가리고 또 註를 달고 부연하였으며 官職의 잘못된 것을 訂正하고 누락된 것을 보첨하며 끊어진 데를 잇고 붙인 자를 올려서 大小 모든 일을 다들어 맞추었으니 또한 一家의 大同譜라 할만하다. 아! 先代의 先父老의 어진 孝誠으로도 三年이 걸려서 이루어 졌는데 오히려 어려움을 한탄한 바 있었거늘 더욱이 至今과 같은 비색한 世運에 能히 一年에 譜事를 完成했으니 이는 祖上의 쌓은 功德의 所致로 後孫에 내려주신 恩德이라 하겠다.
 그리고 泰鎮氏의 自己를 잊어버리고 勤勉한 誠意가 이 일을 完結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음을 謝禮한다. 詩傳에 이르기를 너의 德性을 닦아서 네 祖上에 辱되게 하지 말라하였으니 무릇 여러 宗人들은 멀리 祖上의 깊은 恩惠와 厚한 遺德을 追慕하여 後世들의 孝友와 敦睦을 힘쓰게 하면 다음날에 門運이 번창함을 저울질하리라 하노라.
 族譜의 始初와 顛末은 舊譜 序文에 갖추어 있으니, 헌이 다시 더 말하지 않노라.
  朝鮮 開國 五百七十八年 己亥(=1959) 後裔孫 通仕郞 權知 承文院 副正 [土憲]1) 謹序

1)
26세, 세진(世鎭)의 장자. 字 경도(景度), 號 錦洲. 1875년생 1972년졸
c3-032.1747026606.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2 14:10 저자 125.131.156.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