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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2-001

기묘파보서(己卯派譜序)

서(序)
 대체로 족보가 있다는 것은 그 선대에 보답하고, 후손들의 화목을 돈독케 하고자 함이다. 한 권의 보책(譜冊)은 뿌리를 찾게하고, 조상의 화려한 사적(事蹟)을 영원히 유지보존하게 함에 있다. 멀리 흩어져 있어도 삶을 가깝게 하고, 공동체의식을 고취시키며, 가문을 일으킨 조상의 명예(名譽)를 알게 하는 것이 족보다.
 우리 평해황씨(平海黃氏)의 족보간행을 살펴보면 영조시(英祖時) 경인대동보(庚寅大同譜)(: 공(共) 2권(二卷))을 시작으로 병진보(丙辰譜)까지 7(七)회의 대동보, 8(八)회의 파보간행 기록이 있다. 무술(戊戌) 파보간행 42(四十二)년, 병진(丙辰) 대동보 간행 후로 24(二十四)년이 됨에 그 동안 출생·선화(仙化)·출가 등 많은 변화가 있어 개수보(改修譜)함이 당연하게 되었다.
 영주(榮州) 세섭(世燮) 족조(族祖)와 증평(曾坪) 인모(麟模) 족조와 함께 대동보를 편찬할 것을 의논하였으나, 종의(宗議)를 합치하지 못함은 실로 유감천만이다. 부득이 무인(戊寅)년 12(十二)월 학기(鶴起)·하기(河起) 족제(族弟)와 수보할 것을 발의하여 종중(宗中)에 발문(發文)하니 50(五十)여명의 종인(宗人)이 참집(參集)하여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감사공파보(監司公派譜)를 편찬키로 결의하였다.
 수단(修單)을 시작함에 각처에 산재한 자손들을 방문하여 수합케 한 임원과 유사의 노고를 치하하며 종인 각자의 의견을 청취하여 고정(考正)하였음은 다행으로 생각한다. 인간사회는 최초의 시조의 근원이 있었기에 차손의 지엽(枝葉)이 형성되었음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정기(精氣)가 운행(運行)하는 이치이다. 그러나 일조지손(一祖之孫)으로 혹자(或者) 등이 누보(漏譜)되어 크게 상심되고 한스럽다.
 파보를 편찬하면서 감사공 이하 6세대(六世代) 조고비위(祖考妣位) 사적이 병화(兵火)로 인하여 소실(燒失)되고 실전(失傳)되어 수많은 자손들의 도리가 아님을 느끼던 차에 도기(度起)·현우(鉉禹) 등의 발설로 감사공후(監司公后) 6세대(六世代) 조고비(祖考妣) 실전제단비(失傳祭壇碑) 수갈(竪碣), 시우동(時雨洞) 위토(位土), 수로개수(水路改修), 팔왕동(八旺洞) 선영입구(先瑩入口) 도로확장포장공사(道路擴張鋪裝工事) 등을 추진(推進)함은 진실로 다행한 일이다.
 원고를 인쇄함에 종인들이 서문을 위촉(委囑)함에 소임(所任)에 있어 피치 못하고 파보속간(派譜續刊)의 전말을 간략하게 서술하여 책머리에 붙이는 바입니다.
  서기(西紀) 1999년(一九九九年) 기묘(己卯) 12월(十二月) 일(日)
  예손(裔孫) 응기(應起) 근지(謹識)

c32-001.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8 10:28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