檀翁 黃秀瓊公 墓碑
단옹 황수경 공 묘비(檀翁 黃秀瓊公 墓碑)
泰仁 龍머리는 山村 諱載萬公께서 계시는 곳、 湖南甲의 명당임을 자타가 의심치 않는 이 兆域에 뒤이어 永眠하시는 檀翁은 本貫이 平海、諱가秀瓊、字는 景玉이라 했고 檀翁이 곧 雅號이다。
一七八四年에 考 壽村 諱一漢公과 妣 文化柳氏의 長男으로 出生하여 一八四〇年 五十七歲로 考終하셨다。 본시 厚德하시고 學行이 높아 鄕黨에서 淸望이 있었다。 또 先代이래의 誠實·孝友의 家訓을 몸소 實踐하여 御史가 方伯에게 登薦하도록 했는가 하면 雲石 趙寅永이 完伯으로 와서 別薦하고자 했으나 끝내 固辭하기도 했다。 薑山 李書九、梅山 洪直弼、臺山 金邁淳등과도 相親하여 往來했다。 특히 祖考의 頤齋遺稿 十三卷을 剞劂할 때 趙寅永이 적극 協助했고 李書九、洪直弼도 기꺼이 叅詣한 일은 오랜 友誼뿐만 아니라 誠孝에 欽念함에서였다。 公이 長逝하신후 十年이 지나 道內儒林들이 西河祠에 配享하고자 했으나 차례가 미치지 못하여 保留되었고 얼마전 龜東祠에 配享되었다。
遺集 二卷이 越松世稿에 收載되어 上梓되었다。 墓는 바로 이 泰仁 龍頭山 山村先兆의 階下亥坐이고 配 扶安金氏와 男 中燮、女婿 全義人 李鳳年을 두었다。 이제 公이 逝世하신지 一百五十六年을 지나 追慕를 위한 墓碑를 세우기 위하여 六世宗孫 炳茂가 文辭를 요청하기에 이에 기꺼이 草하고 銘句로 끝을 맺는다。
여기 吉地에 上奉下率의 모범을 보이신 어른이 계시니
찾아뵙는 後孫들은 先代의 遺訓을 顯彰하리라。
一九九六年 봄
來孫1) 元九 삼가짓고
七世孫 邦衍 삼가쓰고
六世孫 炳茂、炳寬 삼가세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