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황씨파보서(尙州黃氏派譜序)
尙州黃氏派譜序
옛날 中國 周文王 때부터 國家社會의 龜鑑이 되는 휼륭한 일을 한 사람을 褒賞하고 그 後孫들을 厚待하는 制度가 있었다 이러한 制度로 말미암아 官에서 記錄한 文書는 國史이고 私家에서 自己 祖上의 業績을 記錄해 놓은 것은 族譜의 發殷인지라 우리나라에서 으뜸가는 族譜는 萬姓譜이니 이 萬姓譜에 이르기를 黃氏는 新羅 文武王 時節(實은 後漢 光武 建武 四年이니 新羅 儒理王 五年이요 西紀 二八年에 該當된다)에 歸化한 것으로 알려졌고 그 後孫 諱 溫仁께서 벼슬길에 올라 高麗의 金吾將軍을 거쳐 太子檢校를 歷任하시였고 將軍의 孫子되시는 諱 裕中께서는 門下侍中(李朝時 領相 現國務總理)의 높은 벼슬을 하시였으며 다시 曾孫되시는 諱 瑞 또한 評理門下侍中에 오르는 等 高官大爵이 줄을 이으니 當代의 名門巨族으로 발돋움하여 大姓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지금 濟州에 살고있는 黃氏 中 昌原黃氏 以外는 거의가 尙州를 本貫으로 삼는 黃氏이다 이들은 金吾將軍(諱 溫仁)의 十三世孫이 되시는 嘉善大夫 諱 世明 어른께서 尙州에 사시다가 이 섬에 들어오셨음을 길이 기억하고저 本貫을 尙州라 하게된 것이다
嘉善大夫의 九世孫되는 鎭琇氏가 家牒을 모시고와서 「우리 黃氏는 여의치 못하여 先世의 史蹟을 收錄한 族譜가 없어 매우 송구하게 여겨 오던 바 근자에 와서 古文書 하나가 옷고리짝 속에서 나와 자세히 보니 바로 家乘인지라 陸地에 사는 일가 黃氏 집을 찾어 大同譜와 일일이 對照를 해본 바 조금도 誤差가 없으므로 이를 土台로하여 濟州一圓 일가 親族끼리 派譜를 編纂하려 하오니 바라건데 그릇된 바를 바로 잡아주시고 書頭의 글(序文)도 써 주십시오」하기에 「내가 두루 살펴 약간의 加筆이나 修正이나 한다면은 모르겠으나 序文만은 글이 거칠기도 하고 조잡하니 다른 名文名筆家를 찾어 받도록 하시지요」하고 辭讓하고저 하였더니 鎭琇氏가 매우 難處해 하며 다시 말하기를 「이 序文을 호화롭고 찬란하게 美文麗句로 꾸며 주시요하는 付託이 아니고 그저 家牒에 對한 事實만을 記錄하여 일가 親族끼리 나눠 가짐으로써 孝親睦族의 길잡이로 삼도록 하게끔 系寸을 밝혀 先祖 崇拜思想을 일깨워 주려함이 나의 소원일 뿐이오니 그리 어렵게 生覺하지 마시고 手苦스럽지만 再三付託을 드립니다」하며 거듭 청하는지라 송구스럽기도하고 거절하기도 어려움을 깨닫고 몸을 일으켜 경건한 마음으로 이를 수락한 다음 雙方間에 오고간 對話內容을 적고 아울러 퇴폐하여가는 世俗 속에서 말씀하신 몇가지 만이라도 黃公 여러분이 能히 行할 수만 있다면 黃氏宅 家風은 過히 模範이 될만 하옵기에 이와같이 적어 序文으로 삼나이다
癸未十月上旬 漢愚居士 許鉀1) (當代文章家) 삼가 씀
당시 명사들의 문집들에서 몇 편의 서문을 얻어 볼 수 있다. 최면암(崔勉庵)선생이 지은 한학사유허비문(韓學士遺墟碑文: 표선면 가시리에 있음)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