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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8-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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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海黃氏忠敬公曾孫贊成公派譜


 始祖學士公 諱 洛께서 西紀二八年(戊子、後漢光武帝 四年、新羅 儒理王 五年) 後漢의 使臣으로 尚書 左僕射 丘大林과 交趾國에 使臣으로 가시다가 풍랑으로 越松浦(現 月松)에 漂着하여 북쪽 산기슭에 世居의 터전으로 한 오랜 由緒를 가진 宗族(이에 대한 異説이 있으나 斯界의 硏究家 黃氏가 우리나라 歷史上 歸化의 第一號라 함)이나 高麗 末부터 倭寇의 빈번한 노략질로 竹嶺 以南 특히 海岸은 廢墟되고 壬辰倭亂以後의 兵禍는 倭寇의 노략질 보다 甚하여 祖上의 얼이 담긴 文籍 遺品은 焼失、亡失되는 受難에서 後孫은 咸北 永興地方 等 散地四方으로 흩어져서 集姓村을 이루었으나 譜牒上 迷兒는 얼마나 되는지!
 이와같은 渦中은 先系의 行跡과 同源이면서 貫을 달리하여 考證할 수 없게 된 然由인가 생각된다.
 다행히 朝鮮 中宗時 文臣인 錦溪公 俊良께서 譜史를 草譜한후 수차에 修譜하고 최근 丙辰年(西紀一九七六年)에 平海黃氏大同譜를 出刊하였으나 先系를 비롯하여 考證하여야 할 곳이 너무나 많은가 싶다.
 詳考하건대 漂流에서 生存하기 위한 前提條件은 自然히 유순한 위에 사람이 아닌 微物이라도 내生命 내苦痛보다 先行하는 心性이 危機로 부터 살아남는 요체인 점을 많은 漂流記와 遺墟壇에 얽힌 口傳을 감안할 때 우리의 始祖는 仁을 바탕한 忠孝와 落葉歸根의 生死觀을 가진 思想이 後裔에게 内部 깊숙히 遺傳子로 傳承된 宗族이기에 名望있는 宰相 및 文武官 學者 그리고 孝子가 배출되었고 他姓들도 黃哥라 하면 賤視하지 않는 것도 先祖들의 深仁厚德과 到處 先瑩의 陰德이 아 니겠는가.
 三綱五倫을 至上의 價值로 삼았던 傳統社會에서는 祖上鞭 立庭 點譜 等의 應分의 措置로 共同体의 確立과 祖上을 崇拜하였으나 오늘날 近代化 過程에서 物質重視로 祖上崇拜를 封建社會의 遺物視하거나 異端視하여 先瑩은 荒廢하고 核家族化에 따라 道德的義務로 하는 家族觀이 사라지고 人生旅程의 한낱 路上 行人으로 共同體 意識이란 느끼지 아니하는 時流에 故場의 規範이 되어 줄만한 뼈대있는 집안은 오늘날 자취를 감춘지 오래되어 祖上의 行跡 到處의 先瑩 行列等은 無關心하고 또한 生業을 위하여 轉轉하는 此際에 다음 世代는 어떤 思考를 가질지 熟考 끝에 直系 以外 傍系는 事由를 省略하고 派譜를 出刊하였으나 厖大한 宗牒을 혼자서 編輯하니 未盡함을 禁할 수 없다.
 다만 바라는 것은 後孫에게 祖上으로써 禮遇를 받고 싶거든 祖上을 위하라는 平凡한 眞理를 남기고져 하며 아울러 祖上의 美風을 繼承發展시켜 黃門을 빛내고 이 나라의 棟樑材가 많이 나오기를 祈求한다.
  西紀 一九九四(甲戌)年 六月 六日 胄孫 昞龍

c8-021.1749168209.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6 09:03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