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순찰사에게 올린 청원문
도내(道內) 평해(平海)에 사는 유학(幼學) 황순구(黃錞九), 황현연(黃炫淵), 황정(黃瀞) 등(等)은 삼가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백배(百拜)하며 순상(巡相)1)
합하(閤下)께 글을 올립니다.
엎드려 생각하니 저희들의 선조(先祖) 학사공(學士公) 휘(諱) 낙(洛)은 곧 한(漢)나라 광무황제(光武皇帝) 4년에 구대림(丘大林) 장군(將軍)과 같이 동국(東國)으로와서 본군(本郡) 월송포(月松浦) 뒤 굴미봉(窟美峯)2)
아래 살았으니 팔도(八道) 황씨(黃氏)의 시조(始祖)이십니다.
신라(新羅)와 고려(高麗)를 거쳐 오는 동안 누차 난리(亂離)를 겪어서 묘소(墓所)를 실전(失傳)했으므로 유허지(遺墟地)에 설단(設壇)과 비석(碑石)을 세워놓고 본 고을에 사는 자손(子孫)들이 매년 시월(十月) 중정일(中丁日)에 향(香)을 피우고 제사(祭祀)를 지낸 것이 이미 몇백년이나 되었는데 그 상향축문(尙饗祝文)에 이르기를 “중조옥패(中朝玉佩) 부해이동(桴海而東)이니 극개극창(克開克昌) 만세위종(萬世爲宗)이요”, 즉 “중국(中國) 조정(朝政)에서 벼슬하다가,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 동(東)쪽으로 와서, 가문을 여시고 번창하게 하였으니, 만세(萬世)의 조종(祖宗)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후손(後孫)된 자(者) 추모(追慕)하며 존경(尊敬)하고 우러러 봄이 당연합니다.
또 다행히 모래사장 바닷가에 장송(長松)이 울창하고 빽빽해서 비각(碑刻)과 원장(垣墻)이 비바람 몰아침을 막아서 다년간 무너지는 근심이 없었는데 근래(近來)에 와서 푸른 나무에 붉은 껍질과 긴 가지에 많은 솔잎이 점점 도끼와 낫(부근(斧斤))으로 침해(侵害)를 입어 민둥산에 이르렀으니 저희들이 보호(保護)하고 있는 선조(先祖)의 단(壇)이 그 형편이 어쩔 수 없으므로 지난 갑신(甲申) 년간(年間)에 본 고을 성주(城主)에게 탄원서(歎願書)를 올려서 다행히 단 주변 땅에 경계(境界)를 정(定)하고 공문(公文)으로 금(禁)하도록 해서 영구(永久)히 수호(守護)하는 방법(方法)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인심(人心)이 옛날 같지 아니해서 혹시라도 금지(禁止)하기 어려운 폐단(弊端)이 생길까 염려(念慮)됨으로 전번(前番)에 올려서 결재(決裁)한 공문(公文)을 첨부(添附)하여 한 목소리로 순찰사명패(巡察使銘佩) 앞에 올리면서 우러러 호소(呼訴)하옵니다.
엎드려 비오니 상세(詳細)히 살펴보신 후에 특별히 금호(禁護) 조치하는 완문(完文) 입지(立旨)를 내리셔서 누대(累代) 잔손(孱孫)으로 하여금 선단(先壇)을 보존(保存)하도록 하시면 영세(永世)토록 덕을 칭송(稱頌)할 것이며 천만번 정성(精誠)을 드려 간절히 비옵니다.
순찰사(巡察使) 합하(閤下)께 처분(處分)을 바랍니다.
을유(乙酉)(=1885년) 7월 일
유학(幼學)
황명구(黃明九), 황재운(黃載運), 황 간(黃 澣), 황종운(黃鐘運),
황 준(黃 濬), 황교욱(黃敎旭), 황길운(黃吉運), 황 수(黃 洙),
황천운(黃千運), 황경희(黃景禧), 황두상(黃斗祥), 황영창(黃永昌),
황우현(黃禹鉉), 황병하(黃柄河), 황윤필(黃允弼), 황성해(黃成海),
황두한(黃斗漢), 황종팔(黃鐘八), 황석해(黃錫海), 황효엽(黃孝葉),
황지해(黃之海), 황응신(黃應信), 황 형(黃 泂), 황주하(黃周河),
황계후(黃季厚), 황병칠(黃柄七), 황사중(黃泗中), 황성하(黃聖河),
황교영(黃敎英), 황영식(黃永湜) 등(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