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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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己亥檢校公世譜序\\ | \_己亥檢校公世譜序\\ | ||
惟我黃氏之有派譜在昔壬戌宗伯從兄永來氏之創修一家之史牒也越三十有六年 | 惟我黃氏之有派譜在昔壬戌宗伯從兄永來氏之創修一家之史牒也越三十有六年 | ||
- | 戊戌重修於錦陽精舍通牒一出遠邇同聲齊會而致力焉客有過土憲而誥之曰子能知 | + | 戊戌重修於錦陽精舍通牒一出遠邇同聲齊會而致力焉客有過<fc #ff0000>憲</fc>而誥之曰子能知 |
夫族與譜之義乎天下之生久矣有家則有族有族則有譜族者溱也溱其族而聚疏遠 | 夫族與譜之義乎天下之生久矣有家則有族有族則有譜族者溱也溱其族而聚疏遠 | ||
- | 者也譜者譜也普其錄而補闕漏者也帝典曰克明峻德以親九族以帝堯之德九族旣 | + | 者也譜者普也普其錄而補闕漏者也帝典曰克明峻德以親九族以帝堯之德九族旣 |
- | 明然後以瑧於變之治程子曰明譜系立宗法以管攝天下人心譜系不明則人不知來 | + | 明然後以臻於變之治程子曰明譜系立宗法以管攝天下人心譜系不明則人不知來 |
處往往親未絶而不相識是豈敎人尊祖收族之道也哉必須聚之精錄之詳則百世而 | 處往往親未絶而不相識是豈敎人尊祖收族之道也哉必須聚之精錄之詳則百世而 | ||
- | 一統千裏而一閑可使因此而不至於忽忘也其義不重且大歟馬遷之自序班固之敘 | + | 一統千里而一閑可使因此而不至於忽忘也其義不重且大歟馬遷之自序班固之敍 |
傳是不過自述其家緖而己以至廬陵之歐眉山之蘇始述家譜以明氏族之有源派昭 | 傳是不過自述其家緖而己以至廬陵之歐眉山之蘇始述家譜以明氏族之有源派昭 | ||
穆之有統緖然後庶可無舜禹世系之起疑焉今黃氏之有譜上下四百有餘禩重印續 | 穆之有統緖然後庶可無舜禹世系之起疑焉今黃氏之有譜上下四百有餘禩重印續 | ||
- | 鋟累矣自祖宗親之則均是子孫至於子之身親者分而遠之聚者散而柝之其義何據 | + | 鋟累矣自祖宗視之則均是子孫至於子之身親者分而遠之聚者散而柝之其義何據 |
- | 願聞其詳餘曰然雖欲無言惡可已也吾黃之著於東國遠矣自顓頊之世受姓於黃綿 | + | 願聞其詳余曰然雖欲無言惡可已也吾黃之著於東國遠矣自顓頊之世受姓於黃綿 |
歷數千載布滿天下者皆鼻祖於陸終而至唐學士東舟以後甲乙丙三兄弟分封立貫 | 歷數千載布滿天下者皆鼻祖於陸終而至唐學士東舟以後甲乙丙三兄弟分封立貫 | ||
- | 於箕城長水昌原然世代荒樸杞宋莫證而箕城之黃最遠且久自金吾公至評理大匡 | + | 於箕城長水昌原然世代荒朴杞宋莫證而箕城之黃最遠且久自金吾公至評理大匡 |
- | 三昆弟又分爲三派名公钜卿輝暎靑史然累經兵燹文獻蕩佚不知同祖者爲誰相視 | + | 三昆弟又分爲三派名公鉅卿輝暎靑史然累經兵燹文獻蕩佚不知同祖者爲誰相視 |
若秦越可勝歎哉吾先祖錦溪先生博攷諸家逸乘始衰輯草譜繼而有海月先生所修 | 若秦越可勝歎哉吾先祖錦溪先生博攷諸家逸乘始衰輯草譜繼而有海月先生所修 | ||
之譜然後始知萬水之自一源萬支之自一本統緖賴以復明昭穆賴以有序今吾氏之 | 之譜然後始知萬水之自一源萬支之自一本統緖賴以復明昭穆賴以有序今吾氏之 | ||
布在八域其麗不億而況寰海震盪南北分裂離柝者無返本之望派遠者無溯源之志 | 布在八域其麗不億而況寰海震盪南北分裂離柝者無返本之望派遠者無溯源之志 | ||
且平海淸安兩派諸宗憚功役之浩汗各尊其祖各修其派而止焉則譜事之未能大同 | 且平海淸安兩派諸宗憚功役之浩汗各尊其祖各修其派而止焉則譜事之未能大同 | ||
- | 推此可想迨此遐時若不汲汲修合則渺玆稚孩亦安知千載上祖先爲誰也土憲爲是之 | + | 推此可想迨此暇時若不汲汲修合則渺玆稚孩亦安知千載上祖先爲誰也<fc #ff0000>憲</fc>爲是之 |
懼與族叔正鎭泰鎭合議收單斷自檢校公以下釐爲一家之私牒非所有意於分而柝 | 懼與族叔正鎭泰鎭合議收單斷自檢校公以下釐爲一家之私牒非所有意於分而柝 | ||
之也若以吾言爲不誣請看錦水山上一片浮雲無心而合無心而散人事之合散無定 | 之也若以吾言爲不誣請看錦水山上一片浮雲無心而合無心而散人事之合散無定 | ||
- | 正如是也吾何與於其間客唯唯而退僉宗以土憲之無狀與有聞於斯役乃不揆僣越忘 | + | 正如是也吾何與於其間客唯唯而退僉宗以<fc #ff0000>憲</fc>之無狀與有聞於斯役乃不揆僣越忘 |
- | 加檃括整其世代之叅差晰其源派之錫亂以至鉒腳之附演官啣之杜撰悉遵舊規訂 | + | 加檃括整其世代之叅差晰其源派之錯亂以至紸脚之附演官啣之杜撰悉遵舊規訂 |
- | 其訛補其闕絶者系之附者陞之大小畢舉亦一家之大同也噫粵在晟時先父老之賢 | + | 其訛補其闕絶者系之附者陞之大小畢擧亦一家之大同也噫粵在晟時先父老之賢 |
- | 孝誠墾閱三歲而尙歎其難況今運啓百六能成之於一歲之中是誰之賜此特由於祖 | + | 孝誠墾閱三歲而尙歎其難况今運啓百六能成之於一歲之中是誰之賜此特由於祖 |
- | 先積累之功啓遠我後昆而泰鎭之克承勤幹而有以致之也詩曰律修厥德無忝爾祖 | + | 先積累之功啓遺我後昆而泰鎭之克承勤幹而有以致之也詩曰律修厥德無忝爾祖 |
凡我僉宗遹追乎祖先之深仁厚澤克勉乎來謨之孝友敦睦則異日門運之繁衍昌大 | 凡我僉宗遹追乎祖先之深仁厚澤克勉乎來謨之孝友敦睦則異日門運之繁衍昌大 | ||
庶可權輿於此矣始譜與顚末具在舊譜序文土憲何庸架疊哉\\ | 庶可權輿於此矣始譜與顚末具在舊譜序文土憲何庸架疊哉\\ | ||
- | \_\_朝鮮開國五百六十八己亥後裔孫通仕郞權知承文院副正字土憲謹序 | + | \_\_朝鮮開國五百六十八己亥後裔孫通仕郞權知承文院副正字<fc #ff0000>憲</fc>謹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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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기해검교공세보서\\ | \_기해검교공세보서\\ | ||
- | \_우리 황씨(黃氏)의 파보(派譜)는 일찍이 임술년(壬戌年)(1922)에 종백(宗伯) 종형(從兄) 영래(永來)씨(氏)가 일가(一家)의 사첩(史牒)을 수정하여 편찬한 것이다.\\ | + | \_우리 황씨(黃氏)의 파보(派譜)는 일찍이 임술년(壬戌年)(1922(一九二二))에 종백(宗伯) 종형(從兄) 영래(永來)씨(氏)가 일가(一家)의 사첩(史牒)을 수정하여 편찬한 것이다.\\ |
- | \_36(三十六)년 뒤 무술년(戊戌年)(1958)에 금양정사(錦陽精舍)에서 다시 편찬하였는데 통첩(通牒)이 등장하자 멀든 가깝든 한 목소리를 내었고 함께 모여 힘을 다하였다.\\ | + | \_36(三十六)년 뒤 무술년(戊戌年)(1958(一九五八))에 금양정사(錦陽精舍)에서 다시 편찬하였는데 통첩(通牒)이 등장하자 멀든 가깝든 한 목소리를 내었고 함께 모여 힘을 다하였다.\\ |
\_객(客)이 나를 방문하여 물었다.\\ | \_객(客)이 나를 방문하여 물었다.\\ | ||
- | \_『그대는 「족(族)」과 「보(譜)」의 뜻에 대해 알고 있는지요? | + | \_『그대는 「족(族)」과 「보(譜)」의 뜻에 대해 알고 있는지요? |
- | \_사마천(司馬遷)의 자서(自序), | + | \_「족(族)」은 「진(溱)(모으다)」이니, |
- | \_지금 황씨(黃氏)의 족보(族譜)는 위아래로 | + | \_그 뜻은 참으로 중차대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
+ | 사마천(司馬遷)의 자서(自序), | ||
+ | \_지금 황씨(黃氏)의 족보(族譜)는 위아래로 | ||
\_나는 말했다.\\ | \_나는 말했다.\\ | ||
- | \_『그러지요. 비록 말하고 싶지 않지만 어찌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 + | \_『그러지요. 비록 말하고 싶지 않지만 어찌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
+ | \_우리 황씨(黃氏)가 우리나라에 등장한 것은 오래 되었습니다. 전욱(顓頊) 시대부터 황씨(黃氏) 성을 받아 수천년을 거치며 천하를 가득 채운 사람들이 다 조상이었고 <fc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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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우리 선조 금계선생(錦溪先生)께서 깊이 생각하시고 여러 사람들이 기꺼이 협조하여 비로소 초보(草譜)가 편찬되었고 연이어 해월선생(海月先生)께서 편찬한 족보가 등장한 후에야 비로소 만갈래의 물이 하나의 근원에서 시작되고 만갈래의 가지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계통이 다시 밝혀지고 내력(來歷)도 순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황씨가 전국에 흩어져 있어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데, 더욱이 온나라가 진동하고 남북이 분열되어 있으며, 헤어져 갈라진 사람들은 근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없고 파(派)가 먼 사람들은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뜻이 없습니다.\\ | \_우리 선조 금계선생(錦溪先生)께서 깊이 생각하시고 여러 사람들이 기꺼이 협조하여 비로소 초보(草譜)가 편찬되었고 연이어 해월선생(海月先生)께서 편찬한 족보가 등장한 후에야 비로소 만갈래의 물이 하나의 근원에서 시작되고 만갈래의 가지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계통이 다시 밝혀지고 내력(來歷)도 순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황씨가 전국에 흩어져 있어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데, 더욱이 온나라가 진동하고 남북이 분열되어 있으며, 헤어져 갈라진 사람들은 근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없고 파(派)가 먼 사람들은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뜻이 없습니다.\\ | ||
\_또한 평해(平海), | \_또한 평해(平海), | ||
\_그러니 지금처럼 시간이 있을 때 만약 서둘러 정비하고 수합(收合)하지 않는다면 더욱 모호해질 것이며, 또한 어린 아이들이 어찌 천년전의 조상이 누구인지 알겠습니까? | \_그러니 지금처럼 시간이 있을 때 만약 서둘러 정비하고 수합(收合)하지 않는다면 더욱 모호해질 것이며, 또한 어린 아이들이 어찌 천년전의 조상이 누구인지 알겠습니까? | ||
- | \_나는 이를 두려워하여 족숙(族叔) 정진(正鎭), | + | \_나는 이를 두려워하여 족숙(族叔) 정진(正鎭), |
+ | \_한 조각 떠가는 구름은 무심히 모였다가 무심히 홀어지는데, | ||
\_객은 그저 「예예」하며 대답하고는 물러났다.\\ | \_객은 그저 「예예」하며 대답하고는 물러났다.\\ | ||
- | \_모든 종친들이 내가 대책없이 이 일에 착수한 것을 듣고서도 분수에 어긋난다고 여기거나 나무라지 않고 도리어 세대가 뒤섞인 것을 바로 잡아주고 내력이 잘못된 것을 밝혀주었다.\\ | + | \_모든 종친들이 내가 대책없이 이 일에 착수한 것을 듣고서도 분수에 어긋난다고 여기거나 나무라지 않고, 도리어 세대가 뒤섞인 것을 바로 잡아주고 내력이 잘못된 것을 밝혀주었다.\\ |
\_주해가 붙어있거나 관직이 틀린 것은 모두 옛 제도를 따랐으며, | \_주해가 붙어있거나 관직이 틀린 것은 모두 옛 제도를 따랐으며, | ||
\_아! 성대(聖代)에 사셨던 부로(父老)의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정성스럽고 간절함이 3(三)대를 살면서 살펴보아도 그 비길 데 없음을 오히려 감탄하였다.\\ | \_아! 성대(聖代)에 사셨던 부로(父老)의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정성스럽고 간절함이 3(三)대를 살면서 살펴보아도 그 비길 데 없음을 오히려 감탄하였다.\\ | ||
\_지금 운수가 액운을 밀어내고 있어, 1(一)년 사이에 족보를 완성했으니 이는 누구의 하사품인가? | \_지금 운수가 액운을 밀어내고 있어, 1(一)년 사이에 족보를 완성했으니 이는 누구의 하사품인가? | ||
\_또한 태진(泰鎭)이 바쁜 일을 제켜두고 뜻을 받들어 부지런히 도와주었기에 이에 이룰 수 있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스스로 그 덕을 닦아, 조상들을 욕되게 하지 않으리』라고 하였다.\\ | \_또한 태진(泰鎭)이 바쁜 일을 제켜두고 뜻을 받들어 부지런히 도와주었기에 이에 이룰 수 있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스스로 그 덕을 닦아, 조상들을 욕되게 하지 않으리』라고 하였다.\\ | ||
- | \_무릇 우리 모든 종친이 선조의 깊은 인의(仁慈)와 두터운 은혜를 본받고 존중하며, | + | \_무릇 우리 모든 종친이 선조의 깊은 인자(仁慈)와 두터운 은혜를 본받고 존중하며, |
\_시보(始譜)와 전말(顚末)은 옛 족보의 서문에 수록되어 있으니, 내가 굳이 다시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 \_시보(始譜)와 전말(顚末)은 옛 족보의 서문에 수록되어 있으니, 내가 굳이 다시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 ||
- | \_\_조선 개국 568년 기해년(1959) 후예손 통사랑권지 권지(權知)(: | + | \_\_조선 개국 568(五六八)년 기해년(1959(一九五九)) 후예손 통사랑권지 권지(權知)((권지(權知): 벼슬 이름 앞에 붙어 그것이 임시직(臨時職)임을 나타내는 말)) 승문원부정자((부정자(副正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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