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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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00 [2025/05/21 08:57] – ssio2 | a-100 [2025/05/28 07:31] (현재) – ssio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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滄月이 映輝에 照林八角之墟하니 周道如砥에 其直如失라 立於禮하고 成於樂하니 | 滄月이 映輝에 照林八角之墟하니 周道如砥에 其直如失라 立於禮하고 成於樂하니 | ||
永世進修之誠은 百世不忘키로 顚末載之云爾\\ | 永世進修之誠은 百世不忘키로 顚末載之云爾\\ | ||
- | \_\_一九七六年 丙辰 小春節 裔孫 潤範 盥手 謹叙\\ | + | \_\_一九七六年 丙辰 小春節 裔孫 潤範 盥手 謹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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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24: | 줄 24: | ||
풍조가 점차로 아름답고 밝은데 이르게 되어서 가문의 역사와 나라의 역사에 의심되는 것도 | 풍조가 점차로 아름답고 밝은데 이르게 되어서 가문의 역사와 나라의 역사에 의심되는 것도 | ||
있고 믿을 만한 것도 있다.\\ | 있고 믿을 만한 것도 있다.\\ | ||
- | \_그래서 만성씨족고(萬姓氏族攷)와 청구보실록(青邱譜實錄)을 상고해 본즉 황제(黃帝)씨 이하로 황씨의 관적(貫籍)이 184(一八四) 관(貫)행이 중국의 강하(江夏)에서 그 계통이 나왔다고 | + | \_그래서 만성씨족고(萬姓氏族攷)와 청구보실록(靑邱譜實錄)을 상고해 본즉 황제(黃帝)씨 이하로 황씨의 관적(貫籍)이 184(一八四) 관(貫)행이 중국의 강하(江夏)에서 그 계통이 나왔다고 |
하여 한편에서는 말하기를 전욱(顓頊) 고양(高陽)씨 후 육종(陸終)이란 사람이 황(黃)에 | 하여 한편에서는 말하기를 전욱(顓頊) 고양(高陽)씨 후 육종(陸終)이란 사람이 황(黃)에 | ||
봉(封)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씨(氏)로 삼았다고 전하고 휘 낙(洛)은 관직이 학사(學士) | 봉(封)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씨(氏)로 삼았다고 전하고 휘 낙(洛)은 관직이 학사(學士) | ||
였다고 했다.\\ | 였다고 했다.\\ | ||
- | \_한(漢)나라 광무(光武)제 건무(建武)년간 (二五~五五)에 한나라 상서(尚書) 벼슬을 하던 | + | \_한(漢)나라 광무(光武)제 건무(建武)년간 |
구대림(丘大林)과 더불어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월송리(越松里)에 이르렀는데 이때가 신라 | 구대림(丘大林)과 더불어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월송리(越松里)에 이르렀는데 이때가 신라 | ||
남해왕(南海王)때라고 말하니 이것이 비록 선조(先祖)에서 발견하지 못한 일이기는 하나 | 남해왕(南海王)때라고 말하니 이것이 비록 선조(先祖)에서 발견하지 못한 일이기는 하나 | ||
줄 38: | 줄 38: | ||
돌에는 이끼가 돋았으니 후손된 도리에 송구스러운 마음이 더할 수가 없다.\\ | 돌에는 이끼가 돋았으니 후손된 도리에 송구스러운 마음이 더할 수가 없다.\\ | ||
\_이제 금번 을묘년(一九七五)에 종회(宗會)의 의논이 일치하여 거듭 옥돌에 새길 것을 | \_이제 금번 을묘년(一九七五)에 종회(宗會)의 의논이 일치하여 거듭 옥돌에 새길 것을 | ||
- | 동의함에 비를 새워 기성근(箕城君) 휘 갑고(甲古)와 태자검교공(太子檢校公) 휘 온인(溫仁)과 | + | 동의함에 비를 새워 기성군(箕城君) 휘 갑고(甲古)와 태자검교공(太子檢校公) 휘 온인(溫仁)과 |
군기소윤공(軍器少尹公) 휘 우정(佑精) 문하시중(門下侍中公) 휘 유중(裕中)의 위(位)에 | 군기소윤공(軍器少尹公) 휘 우정(佑精) 문하시중(門下侍中公) 휘 유중(裕中)의 위(位)에 | ||
차례대로 나열 하여 향화(香火)를 받들고 재실을 구축하고 설단(設壇)을 보위(保衛)하였으니 | 차례대로 나열 하여 향화(香火)를 받들고 재실을 구축하고 설단(設壇)을 보위(保衛)하였으니 |
a-100.1747785473.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1 08:57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