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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81 [2025/05/30 07:39] ssio2b-081 [2025/06/01 19:09]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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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곡황유일묘갈명(虎谷黃有一墓碣銘)=== ===호곡황유일묘갈명(虎谷黃有一墓碣銘)===
 <WRAP 37em justify><hidden \_한문 원문 보기> <WRAP 37em justify><hidden \_한문 원문 보기>
-<typo ff:'한양해서'; fs:1.2em>+<typo ff:'한양해서'; fs:1.2em; lh:1.5em>
 \_**虎谷黃有一墓碣銘**\\ \_**虎谷黃有一墓碣銘**\\
 國朝右文之化莫盛於\_明宣之世而時則有若虎谷黃公以大海先生之子 國朝右文之化莫盛於\_明宣之世而時則有若虎谷黃公以大海先生之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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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及發榜而卒于邸例\_贈成均館正字享年二十七墓安東養義谷泥川員辛 及發榜而卒于邸例\_贈成均館正字享年二十七墓安東養義谷泥川員辛
-之原配端人順天金氏縣監允明女墓同原乾坐生二男中吉中美中吉男 +之原配端人順天金氏縣監允明女墓同原乾坐生二男中吉中美中吉男 
-女李克遵權士權斗晟中美出爲季父後有男鉛鈷鎳鈦女南南斗遠南+女李克遵權士權斗晟中美出爲季父後有男鈊鉉鏶𨥭女南<fc #ff0000>幌</fc>南斗遠南
 尙仁琴尙素公以天出之姿內而襲家庭之訓外而受師友之資才足以補袞 尙仁琴尙素公以天出之姿內而襲家庭之訓外而受師友之資才足以補袞
 行足以範俗而發軔之初達爾摧折豈非命耶日其後孫相遇甫持遺事一通 行足以範俗而發軔之初達爾摧折豈非命耶日其後孫相遇甫持遺事一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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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而略敍始末如右系以銘曰顯允黃公乃家遺風早得依歸猗我文忠二條禮 而略敍始末如右系以銘曰顯允黃公乃家遺風早得依歸猗我文忠二條禮
 儀來自上國自下達上是爲學則公唯拜受匪敢或懈仁壽無驗孰不興喟泥 儀來自上國自下達上是爲學則公唯拜受匪敢或懈仁壽無驗孰不興喟泥
-川之原悶 厥晶光千秋必反後嗣應昌\\+川之原悶厥晶光千秋必反後嗣應昌\\
 \_\_聞韶金鴻洛撰 \_\_聞韶金鴻洛撰
 </typo> </ty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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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으로부터 비롯했고 려조(麗朝)에 휘(諱) 온인(溫仁)은 중조(中祖)로 관(官)이 태자검교(太字檢校)이며 기후(其後)로 관작(官爵)이 어른으로부터 비롯했고 려조(麗朝)에 휘(諱) 온인(溫仁)은 중조(中祖)로 관(官)이 태자검교(太字檢校)이며 기후(其後)로 관작(官爵)이
 부절(不絶)하였다. 다시 수세(數世) 후(後)에 휘(諱) 서(瑞)라는 분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중(門下侍中) 부절(不絶)하였다. 다시 수세(數世) 후(後)에 휘(諱) 서(瑞)라는 분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중(門下侍中)
-시(諡) 문절공(文節公)이 있어+시(諡) 문절공(文節公)으로,
 3차(三次)나 원(元)나라에 들어가서 왕(王)을 도운 익대훈공(翊戴勳功)으로 관향(貫鄕)인 평해현(平海縣)을 군(郡)으로  3차(三次)나 원(元)나라에 들어가서 왕(王)을 도운 익대훈공(翊戴勳功)으로 관향(貫鄕)인 평해현(平海縣)을 군(郡)으로 
 승급(陞級)시켰다. 휘(諱) 종량(宗亮)을 생(生)하니 전서(典書)이요 전서공(典書公)이 휘(諱) 세영(世英)을 생(生)하니 예빈동정(禮賓同正)이요 승급(陞級)시켰다. 휘(諱) 종량(宗亮)을 생(生)하니 전서(典書)이요 전서공(典書公)이 휘(諱) 세영(世英)을 생(生)하니 예빈동정(禮賓同正)이요
 동정공(同正公)이 휘(諱) 용기(龍起)를 생(生)하니 예빈정(禮賓正) 회재(晦齋) 이선생(李先生)((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과 같이 등과(登科) 급제(及第)하였다. 조(祖)는 휘(諱) 동정공(同正公)이 휘(諱) 용기(龍起)를 생(生)하니 예빈정(禮賓正) 회재(晦齋) 이선생(李先生)((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과 같이 등과(登科) 급제(及第)하였다. 조(祖)는 휘(諱)
-우(瑀)이니 관(官) 성주목사(星州牧使)이요 고(考)는 (諱) 응청(應淸)이니 즉 대해(大海) 선생(先生)이라 누차(累次) 왕명(王命)이 있었으나 +우(瑀)이니 관(官) 성주목사(星州牧使)이요 고(考)는 (諱) 응청(應淸)이니 즉 대해(大海) 선생(先生)이라누차(累次) 왕명(王命)이 있었으나 
-관도(官途)에 나아가지 않았다. 특명(特命)으로 진보현감(眞寶縣監)을 제수(除授)하고 명계서원(明溪書院)에 봉향(奉享)하 +관도(官途)에 나아가지 않았다. 특명(特命)으로 진보현감(眞寶縣監)을 제수(除授)하고 명계서원(明溪書院)에  
-였다. 비(妣)는 울진장씨(蔚珍張氏) 한보(漢輔)의 여(女)이요 조(祖)는 부사(府使) 백손(伯孫)이다.\\+봉향(奉享)하였다. 비(妣)는 울진장씨(蔚珍張氏) 한보(漢輔)의 여(女)이요 조(祖)는 부사(府使) 백손(伯孫)이다.\\
  
-\_公은 嘉靖辛酉生이며 나면서 특이한 才質이 있어 從兄海月先生이 大器로 크게 +\_공()은 가정(嘉靖) 신유(辛酉) 생()이며 나면서 특이한 재질(才質)이 있어 종형(從兄) 해월(海月) 선생(先生)이 대기(大器)로 크게 
-期待하였다.童年時로부터 나의 先祖鶴峯先生門下에서 學業을 닦으니 그때 先 +기대(期待)하였다. 동년시(童年時)로부터 나의 선조(先祖) 학봉(鶴峯) 선생(先生) 문하(門下)에서 학업(學業)을 닦으니 그때 선생(先生)께서 중국(中國)에서 돌아와 시동자례(示童子禮)와 거향잡의(居鄕雜儀두 조목(條目)을 제자질(諸者姪)에게 보이고 말하되 이 양절(兩節)로 몸을 단속하고 처세하는데 법칙(法則)을 삼으라 하시니 공()이 등사(謄寫)하여 
-生께서 中國에서 돌아와 示童子禮와 居鄕雜儀 두 條目을 諸者姪에게 보이고 말 +강습(講習)하기를 청()함으로 선생(先生)이 질() 운천옹(雲川翁)에게 등사케 하여 공()을 주니 이를 몸에  
-하되 이 兩節로 몸을 단속하고 처세하는데 法則을 삼으라하시니 公이 謄寫하여 +혀서 잊어버리지 않더라. 평시(平時)에 경출사(景出寺)가 선생(先生)의 거소(居所옆에 있음으로 선생(先生)께  
-講習하기를 請함으로 先生이 姪雲川翁에게 등사케하여 公을 주니 이를 몸에  +배견(拜)하고는 경출사(景出寺)에 머물러 침식하며 한 봄을 지내고 또 한 여름을 지내며 독학(篤學)하니 
-혀서 잊어버리지 않더라 平時에 景出寺가 先生의 居所옆에 있음으로 先生케 拜 +그 성력(誠力)이 심히 놀라왔더라.\\
-見하고는 景出寺에 머물러 침식하며 한봄을 지내고 또 한 여름을 지내며 篤學하니+
  
-丁亥年에 文科會試에 入參하였으나 榜이나기 전에 旅舍에서 卒하니 貫例에 따라 +\_정해년(丁亥年)에 문과(文科) 회시(會試)에 입참(入參)하였으나 방()이 나기 전에 여사(旅舍)에서 졸()하니 관례(貫例)에 따라 
-成均官正字에 贈職이나 다 當享年이 二十七歲의 아까운 靑春이다. 墓는 安 +성균관(成均官) 정자(正字)에 증직(贈職)이나, 당() 향년(享年)이 27세(二十七歲)의 아까운 청춘(靑春)다. 묘()는  
-東養義谷泥川辛坐之原이요 配는 端人順天金氏縣監允明의 女이요 墓는 同原乾 +안동(安東) 양의곡(養義谷) 이천(泥川) 신좌지원(辛坐之原)이요. 배()는 단인(端人) 순천김씨(順天金氏) 현감(縣監) 윤명(允明)의 여()이요, 묘()는 동원(同原) 건좌(乾坐)다. 2남(二男)을 두었으니 중길(中吉) 중미(中美)이요, 중길(中吉)의 남()은 선()이요 여()는 이극준(李克遵) 권사필(權士必) 
-坐다. 二男을 두었으니 中吉中美이요 中吉의 男은 銑이요 女는 李克遵權士必 +권두성(權斗晟)에 각각(各各) 출가(出嫁)다. 중미(中美)는 계부(季父)에 출계(出系)하여 4남3녀(四男三女)를 두니 남()은 심() 현() 
-權斗晟에 各各出嫁하다. 中美는 季父에 出系하여 四男三女를 두니 男은 鈊鉉 +집(鏶) 영(𨥭)이요 여()는 남황(<fc #ff0000></fc>) 남두원(南斗遠) 남상인(南尙仁) 금상소(琴尙素)에게 각각(各各) 출가(出嫁)다. \\
-鎳鈦이요 女는 南幌南斗遠南尙仁琴尙素에게 各各 出嫁하다. 嗚呼라 公의 아 +
-름다운 品質로 안으로 家庭의 敎訓을 받고 밖으로 師父와 師友들의 뒷받침을 +
-얻었으며 또 才能이 足히 君王을 보필할만하며 行身이 俗世에 모범이 될만하거늘 +
-出發之初에 돌연히 꺾였으니 이 어찌 命이 아니리요.\\+
  
-\_어느날 그 後世孫相遇氏가 遺事一通을 가지고 와서 碑刻文을 내게 請하거늘 鴻 +\_오호(嗚呼)라 공(公)의 아름다운 품질(品質)로 안으로 정(家庭)의 교훈(敎訓)을 고 으로 사부(師父)와 사우(師友)들의 뒷받침을 
-洛이 老退하고 無識함으로 사양한즉 相遇氏가 事件과 世誼의 을 들어 責望 +얻었며 또 재능(才能)이 족(足)히 군왕(君王)을 보필할 만며 행신(行身)이 속세(俗世)에 모범이 될만거늘 
-로 굳이 辭避치 못고 간략게 敍述하노라 銘曰\\ +출발지초(出發之初)에 돌연히 꺾였으니 이 어찌 명(命)이 아니리요.\\
-仁壽無驗孰不興喟泥 +
-川之原悶 厥晶光千秋必反後嗣應昌+
  
 +\_어느날 그 후세손(後世孫) 상우(相遇)씨(氏)가 유사(遺事) 1통(一通)을 가지고 와서 비각문(碑刻文)을 내게 청(請)하거늘 홍락(鴻洛)이 노퇴(老退)하고 무식(無識)함으로 사양한 즉 상우(相遇)씨(氏)가 사건(事件)과 세의(世誼)의 중(重)을 들어 책망(責望)함으로 굳이 사피(辭避)치 못하고 간략하게 서술(敍述)하노라. 명왈(銘曰)\\
 +\\
 顯允黃公 어질고 아름다운 黃公은 \\ 顯允黃公 어질고 아름다운 黃公은 \\
 乃家遺風 法家의 遺風이 있었네 \\ 乃家遺風 法家의 遺風이 있었네 \\
줄 89: 줄 84:
 千秋必蔭 千秋를 두고 음덕이 있으리니 \\ 千秋必蔭 千秋를 두고 음덕이 있으리니 \\
 後嗣應昌 後孫이 길이 창성하리로다.\\ 後嗣應昌 後孫이 길이 창성하리로다.\\
-\_\_聞韶金鴻洛謹撰+\\ 
 +\_\_문소(聞韶) 김홍락(金鴻洛) 근찬(謹撰)
 </typo> </typo>
 </WRAP> </WRAP>
b-081.1748558393.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30 07:39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