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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30 [2025/05/11 17:32] – created ssio2c3-030 [2025/05/16 20:21] (현재) 121.166.63.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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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下之水가하나에서始作되었으나만가지로가지런하지못한것은여러가지로分派된때문이요天下之樹가뿌리는다 +===무술보발(戊戌譜跋)=== 
-르되그大小가같지않음은枝條가갈라진탓이다陰陽이五行의精氣를運行하는것이비록치우치는 것이비록치우치는것과온전한것이있 것과온전한것이있 +<WRAP 33em justify> 
-으되 그理致는한가지다況次사람인데야그복잡함이더할것이當然하다 +<typo ff:'한양해서'> 
-대저族譜하는法이古代周나라제도에氏族을記籍하는事務를官에서관장한것으로부터비롯된것인데이것은系統을 +\_**戊戌譜跋**\\ 
-밝히고昭穆의차를없애기爲한것이었다氏族이있으면族譜가없을수없는것이다世上에得姓한것이오래면子孫이 +\_천하지수(天下之水)(=물)가 하나에서 시작(始作)되었으나 만 가지로 가지런하지 못한 것은 
-많아져서大同譜를하면篇帙이더많아지고또遺漏함도많아지며或은無後하여後世에傳치못하는일도있으므로眉山 +여러가지로 분파(分派)된 때문이요. 천하지수(天下之樹)(=나무)가 뿌리는 다르되 그 대소(大小) 
-蘇氏가派譜를만들어낼때簡略함을取한것은오래도록계속하려는데있었던것으로可히따를만한일이다 +같지 않음은 지조(枝條)가 갈라진 탓이다. 음양(陰陽)이 오행(五行)의 정기(精氣)를 운행(運行)하는 
-이에우리黃氏는八道에散居하는子孫이헤아릴수없이많고高官貴人이代代로이어서배출되었으며大匡같은어른 +것이 비록 치우치는 것과 온전한 것이 있으되 그 이치(理致)는 한 가지다
-은그벼슬이一人之下에萬人之上인崇秩에오르셨고 그後몇대를지나襄武公이李太祖의建國을도와推忠協贊功業彰 +황차(況次사람인데야 그 복잡함이 더할 것이 당연(當然)하다.\\ 
-著로贈爵封君하는榮貴를누렸으니그盛班함에감탄치않을수없다이와같이이름높은門閥이오늘에東方의大氏族이 + 
-되어修譜하는일이어찌重大한일이아니겠는가? +\_대저 족보(族譜)하는 법()이 고대(古代) 주()나라 제도에 씨족(氏族)을 기적(記籍)하는 사무(事務) 
-丁酉年봄에族從義模와孫元九가大同譜刊行을發議하고勞心焦思하며豊基와平海를往來하면서교섭하되異論 +관()에서 관장한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인데이것은 계통(系統)을 
-이있어不應하므로大匡公으로分派의中祖를삼고그以上의系譜는昭詳히記載되어있으니그以下의子孫錄은大匡公 +밝히고 소목(昭穆)의 (誤差)를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씨족(氏族)이 있으면 족보(族譜) 
-派親族에不過할뿐이다따라서役事가省略되고便覽하기쉽게하니실상이것이다吾族의一部惇史라하겠다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세상(世上)에 득성(得姓)한 것이 오래면 자손(子孫)이 
-譜事가끝나印版에붙일것을보고할때윗사람들이나역시府使公의後裔로서一이없을수없다기에敢히참람함을잊 +많아져서 대동보(大同譜)를 하면 편질(篇帙)이 더 많아지고 또 유루(遺漏)함도 많아지며 
-고卷端에이글을붙여다음世代에알리고자한다 +혹()은 무후(無後)하여 후세(後世)에 전()치 못하는 일도 있으므로 미산(眉山) 소씨(蘇氏)가 파보(派譜) 
-戊戌小春後裔孫夏模謹跋+만들어 낼 때 간략(簡略)함을 취()한 것은 오래도록 계속 하려는데 있었던 것으로 
 +가()히 따를만한 일이다.\\ 
 + 
 +\_이에 우리 황씨(黃氏)는 팔도(八道)에 산거(散居)하는 자손(子孫)이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고관귀인(高官貴人)이 대대(代代)로 이어서 배출되었으며 대광공(大匡公) 같은 어른은 
 +그 벼슬이 일인지하(一人之下)에 만인지상(萬人之上)인 숭질(崇秩)에 오르셨고그 후(몇 대를 지나 
 +양무공(襄武公)이 태조(李太祖)의 건국(建國)을 도와 추충협찬(推忠協贊) 공업창저(功業彰著)로 증작(贈爵) 봉군(封君)하는 
 +영귀(榮貴)를 누렸으니 그 성반(盛班)함에 감탄치 않을 수 없다이와 같이 이름 높은 
 +문벌(門閥)이 오늘에 동방(東方)의 대씨족(大氏族)이 
 +되어 수보(修譜)하는 일이 어찌 중대(重大)한 일이 아니겠는가?\\ 
 + 
 +\_정유년(丁酉年봄에 족종(族從) 의모(義模)와 주손(胄) 원구(元九)씨가 대동보(大同譜) 간행(刊行)을 발의(發議)하고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며 풍기(豊基)와 평해(平海)를 왕래(往來)하면서 교섭하되 이론(異論) 
 +있어 불응(不應)하므로 대광공(大匡公)으로 분파(分派)의 중조(中祖)를 삼고 그 이상(以上)의 계보(系譜) 
 +소상(昭詳)히 기재(記載)되어 있으니 그 이하(以下)의 자손록(子孫錄)은 대광공파(大匡公派) 친족(親族)에 불과(不過) 
 +뿐이다따라서 역사(役事)가 생략(省略)되고 편람(便覽)하기 쉽게 하니 실상 이것이 다 오족(吾族) 
 +일부(一部) 돈사(惇史)라 하겠다.\\ 
 + 
 +\_보사(譜事)가 끝나 인판(印版)에 붙일 것을 보고할 때 윗사람들이 나 역시 
 +부사공(府使公)의 후예(後裔)로서 일언(言)이 없을 수 없다기에 감()히 참람함을 잊고 
 +권단(卷端)에 이 글을 붙여 다음 세대(世代)에 알리고자 한다.\\ 
 +\_\_무술(戊戌) 소춘(小春) 후예손(後裔孫) 하모(夏模) 근발(謹跋
 +</typo> 
 +</WRAP>
c3-030.1746952334.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1 17:32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