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3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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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2-012 [2025/06/07 11:24] – 만듦 ssio2 | c32-012 [2025/06/08 12:22] (현재) – ssio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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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휴당전래사적(晚休堂傳來事蹟) | + | ===만휴당전래사적(晩休堂傳來事蹟)=== |
- | <WRAP 37em justify>< | + | <WRAP 37em justify> |
<typo ff:' | <typo ff:' | ||
- | 전해지기를 「말안장과 말굴레는 상공(相公: | + | \_**만휴당 전래사적(晚休堂傳來事蹟)**\\ |
- | 로 병오화면(丙午火變) 때 모두 불에 타버렸다」고 한다. | + | 〇전해지기를 「말안장과 말굴레는 상공(相公)(: 서애 류성룡)이 특별히 주신 물건으로 |
- | ○ 하회교량(河回橋梁)은 공이 상공(相公)에게 수업하면서 내왕하던 길로、상공은 | + | 병오화면(丙午火變) 때 모두 불에 타버렸다」고 한다.\\ |
+ | |||
+ | 〇포암(浦巖)은 공[만휴당(晩休堂)]이 낚시하며 노닐던 곳으로 지금도 후손들이 추모하는 곳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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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〇하회교량(河回橋梁)은 공이 상공(相公)에게 수업하면서 내왕하던 길로, 상공은 | ||
아침저녁으로 옷을 걷고 물을 건너는 수고로움을 염려하여 두 집안이 창설하였으며 | 아침저녁으로 옷을 걷고 물을 건너는 수고로움을 염려하여 두 집안이 창설하였으며 | ||
지금도 부로(父老)들이 그 사실을 전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역군(役軍)들의 전설이 | 지금도 부로(父老)들이 그 사실을 전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역군(役軍)들의 전설이 | ||
- | 되었다. | + | 되었다.\\ |
- | ○ 팔왕(八旺)은 공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당시 상공이 지관(地官)을 뽑아 보내어 정 | + | |
- | 하였다고 한다. | + | |
- | ○ 상공의 슈찰(手札)과 취적헌(取適軒: | + | |
- | 에 가득 실려 있었는데 병오화면 이후로 다만 다 떨어진 한 폭의 종이만 겨우 전하 | + | |
- | 니 한스러울 따름이다. | + | |
- | ○ 적군을 평정한 후 공은 고향으로 돌아와 충효로써 자제들을 가르치고, | + | |
- | 書)로써 벗들과 지내면서, | + | |
- | 도 하면서 만년에 휴식하는 즐거움을 다하였으니 이 절과이 당은 단치 옛 터만 남 | + | |
- | 아 있어 지금도 자손들에게 사고를 받고 있다. | + | |
- | ○ 공의 선대는 시우동(時雨洞현 풍산읍 소재)에서 인금(仁今: | + | |
- | 로 옮겨와 살았는데 대소가(大小家)들이 떨어진 거리가 수십 리나 되어도 전할 일이 | + | |
- | 있으면 늘 편지를 부쳤다. 집안에 큰 개가 있어 개의 목에 편지를 매어 스스로 왕래 | + | 〇팔왕(八旺)은 공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당시 상공이 지관(地官)을 뽑아 보내어 |
- | 하게해서 서로의 뜻을 통하였다. 대개 이 길은 큰길에서 떨어져 있고 돌길과 늪으 | + | 정하였다고 한다.\\ |
- | 로 되어있으며 호랑이와 늑대들이 울부짖고 있었는데도 미물(微物: | + | |
+ | 〇상공의 수찰(手札)과 취적헌(取適軒)(: | ||
+ | 집안 농에 가득 실려 있었는데 병오화변 이후로 다만 다 떨어진 한 폭의 종이만 겨우 | ||
+ | 전하니 한스러울 따름이다.\\ | ||
+ | |||
+ | 〇적군을 평정한 후 공은 고향으로 돌아와 충효로써 자제들을 가르치고, | ||
+ | 금서(琴書)로써 벗들과 지내면서, | ||
+ | 거닐기도 하면서 만년에 휴식하는 즐거움을 다하였으니 이 절과 이 당은 단지 | ||
+ | 옛 터만 남아 있어 지금도 자손들에게 사모를 받고 있다.\\ | ||
+ | |||
+ | 〇공의 선대는 시우동(時雨洞)(: | ||
+ | 옮겨와 살았는데 대소가(大小家)들이 떨어진 거리가 수십 리나 되어도 전할 일이 | ||
+ | |||
+ | 있으면 늘 편지를 부쳤다. 집안에 큰 개가 있어 개의 목에 편지를 매어 스스로 | ||
+ | 왕래하게해서 서로의 뜻을 통하였다. 대개 이 길은 큰길에서 떨어져 있고 돌길과 | ||
+ | 늪으로 되어있으며 호랑이와 늑대들이 울부짖고 있었는데도 미물(微物)(: 개)이 오히려 | ||
능히 이와 같을 수가 있었던 것은 그 당시의 교화가 미물에게 미쳤음을 알 수 있을 | 능히 이와 같을 수가 있었던 것은 그 당시의 교화가 미물에게 미쳤음을 알 수 있을 | ||
- | 것이다. 지금도 그곳을 구애(狗崖: | + | 것이다. 지금도 그곳을 구애(狗崖)(: 개 언덕)라 전한다.\\ |
- | ○ 구성봉(九成峯) 아래의 대봉암(對鳳菴)은 공이 창건하였으며 그 당시 성묘하고 | + | |
+ | 〇구성봉(九成峯) 아래의 대봉암(對鳳菴)은 공이 창건하였으며 그 당시 성묘하고 | ||
강습하던 곳이다. 그 때 조상들을 생각하며 지음 작품과 낙성식(落成式) 때 편액한 | 강습하던 곳이다. 그 때 조상들을 생각하며 지음 작품과 낙성식(落成式) 때 편액한 | ||
- | 글들이 상자 속에 소장되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다만 이 두 편의 문과 세 수 | + | 글들이 상자 속에 소장되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다만 이 두 편의 문과 세 수의 |
- | 의 詩만 사(絲)동의 옛 상자 속、낡은 종이에 쓰여진 | + | 시(詩)만 사(絲)동의 옛 상자 속, 낡은 종이에 쓰여진 |
- | 행으로 병오년의 화면(火變)을 면할 수 있었겠는가.이것이 곧 이른바 봉문일우(鳳 | + | 다행으로 병오년의 화변(火變)을 면할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곧 이른바 |
- | 文一羽: | + | 봉문일우(鳳文一羽)(: 좋은 문장 중의 극히 일부분)격인 것인져. 이에 감히 옥연정(玉淵亭)을 |
- | 수하는 편액에 기록하여 나의 숨겨진 사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정성을 붙인다. | + | 중수하는 편액에 기록하여 나의 숨겨진 사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정성을 붙인다.\\ |
- | 후손극동謹書 | + | \_\_후손 극동 |
- | 자헌대부삼도관찰사잠재공묘갈명(資憲大夫三道觀察使潛齋公墓碣銘) | + | |
- | 안동부(安東府) 서쪽 四十리 풍산(豊山) 시우동(時雨洞) 화전산등(花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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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2-012.1749263065.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7 11:24 저자 ssio2